제37과 신명기(5): 모세의 두 번째 설교(4)(19-26장) 11 |
5-3. 이스라엘로 도망 온 노예에 대한 규례(15-16)
여기서 의미하는 종은 모든 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혹독한 학대를 못 이기거나 기타 정당한 사유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로 도망쳐 온 이방 족속 노예를 가리킨다(Onkelos). 고대 사회에서는 일단 도망쳤다가 주인에게 붙잡혀 온 노예는 대부분 사형에 처하거나 두 발이 잘리는 등 중벌에 처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the Hammurabi Code). 따라서 주인의 부당한 압제를 견디다 못해 도망쳐 온 노예를 다시 그 주인에게 인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를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 비인도적인 행위가 된다. 따라서 모세 율법은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하여 이를 금지시키고 있다. 도망쳐 온 이방 족속 노예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도피성(수20:1-6)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여 그들에게 신변 안전과 안식을 보장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당한 사유로 인해 도망쳐 나온 종들에게 해당되는 규례일 뿐(15절), 도둑질이나 간음, 살인 따위를 저지르고 도망쳐 나온 이방 노예들에게까지 해당되는 규례는 아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러한 도망자들까지 보호해 준다면 그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법과 공의를 파괴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Calvin). 이 점은 마치 이스라엘의 도피성 제도가 무죄한 오살자(誤殺者)들에게만 혜택을 부여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민 35:16-25).
< 적 용 >
1. 교회는 약자를 압제자의 부당한 횡포로부터 보호할 책임이 있다. 만일 약자가 부당한 횡포를 피하여 교회의 도움을 청할 때에는 도피성과 같은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이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로서는 마땅한 도리이다.
2. 우리 주님과 교회는 어느 누구든지 찾아오는 자들에게 넓은 문을 열고 환영할 수 있다.
5-4. 창기와 남창금지(17-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회에 창기나 미동(남자 창기)을 용납지 말라고 하셨다. 창기나 미동의 제도는 가나안 민족들의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의 신당 부근에는 창기의 거처가 부설되어 있었으며, 음행은 우상 숭배의 한 순서에 속했다. 그런 악한 제도는 신정 국가(神政國家)에 용납될 수 없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참 종교는 어디까지나 윤리적 성격을 근본적 요소로 가진다. 창기(케데솨)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직업적으로 몸을 파는 여자인 '조나'와는 달리(22:21), 주로 우상의 신전(神殿)에 소속되어 우상 숭배의 한 행위로써 종교적인 매춘 행위를 하는 창녀를 가리킨다(창 38:21). 그리고 미동(카데쉬)도 성소에서 몸을 파는 남자, 즉 '남창'(男娼)을 가리킨다. 다른 곳에서는 '남색(男色)하는 자'로 번역되어 있는데(왕상 14:24; 15:12; 22:46), 성경 기록으로 보아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성(性)의 여신 '아스다롯'(Astarte)을 섬기는 예배 의식에서 창기와 미동을 통한 매음 행위가 널리 성행하고 있었다고 한다(Keil, Pulpit Commentary).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깨끗한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녀의 일을 해서 번 돈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금하셨다. (잠 21:27)에는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라고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슨 물질을 바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바쳐야 된다. 하나님께서 창녀의 삯뿐 아니라 개를 판돈까지 거절하는 것은 제단의 성결성이 부정한 예물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개는 다른 짐승과 비교할 때 경멸하는 뜻에서 배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돼지를 죽이는 것도 개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잘못이었지만, 돼지를 판돈은 예물로 바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개는 단지 부정한 짐승으로서만이 아니라, 추하고 경멸스런 짐승으로 배척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전과 제단에 돌려야 할 올바른 경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칼빈).
'개 같은 자의 소득'이란 말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해석이 있다. 문자적 의미대로 '개를 판돈과 같이 부정하고 추잡한 거래에서 생긴 소득'(계22:15)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Calvin, Matthew Henry), '개'를 남창으로 이해하여 '남창의 소득'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Dake, Lange). 그런데 17절에 의거해 볼 때, 일단은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그러나 이는 포괄적으로 '음란하고 사악한 짓을 통해 얻어지는 모든 수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결코 부도덕한 행위나 부정한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이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같은 헌금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각종 부정이나 죄악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선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릇되고 부정한 수단이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증한 것('토에바')은 '심히 꺼리다', '구역질나다', '강력히 거부하다'란 의미를 지닌 '타아브'에서 파생된 말로, 곧 '지독히 싫어하는 것', '혐오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 말은 하나님의'거룩성'(코데쉬)과 정면 배치되는 것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되고 있는데(7:26; 13:14), 주로 우상 숭배나 성적(性的) 문란 행위 등에 적용되었다.
< 적 용 >
1.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들이 음란한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에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2.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이나 헌물들은 의로운 것이어야 한다. 목적과 의도가 선해도 방법이 그릇된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 않으신다.
3. 하나님께서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도 중히 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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