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종합]인물.말씀.강연

롯 [아브라함의 조카]

好學 2011. 3. 28. 20:56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의 형 하란의 아들입니다.

롯이라는 뜻은 <가리웠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리웠다는 의미일가요?

끝에 가서 결론으로 이 질문을 풀어 보려고 합니다. 롯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롯의 장점 - 동행

롯은 남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행>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롯은 아버지 하란이 죽자 작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늘 동행하였습니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영을 받게 됩니다.

이를 소위 접촉의 영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도 6장에서 창녀와 접하는 자는 창녀의 영을 받고, 그리스도와 접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따라 고향을 버리고 동행한 것은 롯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놈위에 탁월한 놈이 하나 있는 데 붙어 있는 놈이라고 합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붙어 있었습니다. 늘 동행하였습니다. 갈데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 가나안으로, 가나안에서 애급으로, 애급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늘 아브라함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 하였으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 하였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의 음성을 들으면 됩니다.

롯은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과 동행하였으므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같이 누렸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동행하였기에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와 동행하였기에 복음서를 제일 먼저 쓸 수가 있었습니다.

롯의 장점은 동행이었습니다. 누구와 동행하느냐는 그 사람의 생애를 좌우합니다.

 

롯의 단점 - 역행

그러나 롯이 잘못 한 것이 하나입니다. 동행하다가 역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동행하는 롯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같은 정도의 물질적인 축복을 주었습니다. 목축의 축복이었습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창 13;5-7)

가난할 때에는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부하게 되니까 같이 살 수 없었습니다. 가난보다 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

이 때 롯은 이렇게 말해야 동행입니다.

<삼촌!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은 삼촌과 동행하였기 때문이지요. 제가 어떻게 좌로 가고 우로 가겠습니까? 종들이 싸운다고 우리가 헤어져서야 됩니까? 싸우는 종들을 파면시키지요. 나는 죽기까지 삼촌에 가는 곳에 내가 가고, 삼촌이 머므는 곳에 내가 머믈고, 삼촌이 눕는 곳에 나도 눕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선택도 있습니다.

<삼촌! 도저히 동행이 불가능하다면 먼저 삼촌이 선택하시지요. 내가 나머지를 갖겠습니다.>

이것이 조카로서의 도리였습니다. 그러나 롯은 동행하다가 역행하였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창 13;10-11)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선택이 인생입니다.

휴퍼에 가면 25,000가지 중에 선택하여야 합니다. 커피도 옛날에는 선택없이 커피였는 데 이제는 커피도 54 종류나 됩니다. 영화관도 옛날에는 선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8 가지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도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좌우합니다. 롯은 역행을 선택하였습니다.

 


롯의 결론 - 추행

롯의 결론은 추한 것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롯은 이중적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따라 나섰지만 세상을 바라 보았습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섰지고 육적으로 보았습니다. 신앙적이면서도 눈에 보이는 좋은 땅을 가지고 싶어 하는 육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유드고처럼 한 발은 교회 안에 한 발은 교회 밖에 두고 창가에 걸터 앉았습니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갯벌과 진펄처럼 물이 들어오면 바다지만 물이 나가면 땅입니다. 갯벌과 진펄은 바다도 아니고 땅도 아니었습니다. 롯은 알쏭당쏭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따르는 것 같았는 데 세상을 따라 갔습니다.

이런 사람을 크리스탄이라고 부릅니다. 크리스챤으로 시작하는 것같은 데 사탄으로 끝을 내렸습니다. 동행으로 시작하여 역행하다가 추한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겉만 보고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사람이 더려워지면 땅이 더러워집니다. 유황불로 하나님이 멸망시켰습니다. 그 때 롯의 가정은 아브라함의 기도로 겨우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산은 하나도 건지지 못 하였습니다.

아내는 뒤를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롯은 두 딸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아 모압과 암몬 이방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8복을 알려 주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우하면 좌하고, 좌하면 우하겠다고 한 아브라함이 땅을 얻었습니다. 먼저 선택한 롯은 땅을 잃었습니다.

동행하다가 역행한 롯은 추행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서두에서 제시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들어 가려고 합니다. 롯의 뜻은 <가리웠다>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이 가리웠다는 말일가요?

영의 세계가 가리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참 진리의 길이 가리워졌다는 의미입니다.

동행하다가 역행하면 추행하게 되는 진리를 몰랐다는 의미입니다.

 

 

 

롯의 불행이 남긴 교훈

아마 성경에 언급된 인물들 가운데 롯(Lot)처럼 수치스런 이름도 없을 것이다. 우유부단한 성격, 소극적 신앙, 그리고 포기하지 못하는 세속적 욕망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자신은 물론 아내와 두 딸, 그리고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두 자손(모압과 암몬 족속)에게까지 불행과 불명예를 안겨주는 실패의 상징이다.


롯의 불행은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누린 복과 대비되어 묘사된다. 조실부모의 비극으로 시작된 그의 어린시절부터(창11:28), 그리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들어 고향을 떠나는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나설 때부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성품으로 길들여졌던 것 같다.

삼촌과 동행하여 풍요를 얻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거주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우선권을 양보한 아브라함(창13:9)과는 달리 풍요와 환락의 도시 소돔(창13:10)을 선택함으로써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벗어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야훼와의 언약을 최고가치로 간주하여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던 아브라함과 달리 언약 밖에서 누리는 세속적 부귀를 선호한 롯의 실패는 곧바로 소개되는 전쟁이야기(창14:1∼12)에서 드러난다.

소돔과 고모라의 부를 탐낸 메소포타미아의 아므라벨이 이끄는 4개 연합군이 소돔성을 침공하자 그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전쟁포로가 된다.

자신을 구출해 준 삼촌이 아니었다면 그의 생은 거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포로에서 해방된 이후 다시 소돔성에 들어간 롯은 소돔성에서 자행되는 엄청난 음란과 불의로 인하여 고민하나(벧후 2:7∼8) 그것도 잠시일 뿐, 개혁의 의지는 고사하고 오히려 이미 맛본 소돔의 풍요에 물들게 되고, 역사상 가장 타락한 문화로 기억되는 소돔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때 일련의 비극적이고 수치스런 행동을 연출하게 된다.

멸망 직전의 소돔성은 음란과 무질서 그 자체였다.

약자의 절규가 하늘에 미칠 정도로(창18:20∼21) 강포가 만행되었고, 풍요문화의 종착역이자 종말의 대표적 징조(눅17: 27-29)인 동성애가 극에 달해, 소돔성을 방문한 두 천사에게 소돔인들이 성폭행을 시도했을 정도다.

위급한 상황에 두 딸을 대신 내놓으려 했던 롯, 함께 탈출하도록 권고한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 두고 온 재물과 향락이 아쉬워 경고를 무시하고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그의 아내 등은 소돔성이 총체적으로 부패했음을 반영한다.

유황불로 잿더미가 된 것을 바라보며 인근 동굴에서 두 딸이 자행한 근친상간은 아버지의 자녀교육 실패를 탓하기에 앞서 소돔성의 무질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이실직고한다.

성경은 여기에서 태어난 두 아들이 모압과 암몬, 즉 이스라엘이 그토록 혐오하던 두 원수 국가의 조상임을 밝힘으로써 한 사람의 실수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강조한다.

롯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성경 저자가 주지한 또 하나의 메시지는 아브라함의 친족(롯)을 위한 중보기도와 그 영향력이다(창 18:22∼33;19:29).

의인 열 사람이 없어 멸망한 소돔이었지만 의인 한 사람의 중보기도를 통하여(약5:16) 롯의 가족이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며, 며칠 뒤 서울광장에서 드려지는 백만 성도의 기도를 통해 평화통일이 앞당겨지고, 환난을 당한 북한 동포들이 해방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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