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종합]인물.말씀.강연

마르다

好學 2011. 3. 27. 18:56

 

마르다

예수님께서 가장 심방을 많이 간 가정이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가 3 남매가 살고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부모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마르다라는 뜻은 <여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옆 동네 베다니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주 가시는 갈릴리 그리고 여리고로 오고 가실 때 통과하는 동네였습니다.

그 날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에 들어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을 보면 그 때 마르다가 나와서 예수님 일행을 집으로 모시고 들어 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라고 40절에서 마르다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1. 이미 부탁하였는 데 동생이 말을 안 들었었는 지도 모릅니다.

2. 자기가 이렇게 정성껏 주님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38-42)

 

마르다의 장점

마르다의 장점을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집착>입니다.

무엇인가 한 가지 일을 하게 되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 일에 빠지는 집착성이 있습니다.

인류를 빛낸 이들은 한 가지 일에 집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수많은 조소에게도 불구하고 방주만드는 일을 120년간 한 한가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나타시우스(Athanasius,283-373)는 반대자들의 모함으로 5번이나 추방당하며 유리걸식하

면서도 불굴의 노력과 끈기로 삼위일체론을 완성시킨 한 가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은 키워드(key word)입니다.

김 연아의 키워드는 스케이팅입니다.

박 세리의 키워드는 콜프입니다.

박 찬호의 키워드는는 야구입니다.

베토벤의 키워드는는 음악입니다.

이같이 한 가지에만 집착한 이들이 무슨 일이든지 이루어냈습니다.

 

날씨가 잔득 흐린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려는 데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퇴근하고 돌아 올 때 우산 5개만 사오세요. 우리 둘, 아들 그리고 딸의 것 그리고 한 개는 여분이예요.>

남편은 그렇게 하겠다고 집을 나섰습니다.

전철 옆에 남자가 우산을 옆에 두고 신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우산에 집착하여 우산만 생각하던 그는 옆 사람 우산을 집어 들고 내리려고 하였습니다. 옆 사람이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내 우산인 데요.>

그는 미안하여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우산에 집착하여 착각하였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우산을 5개 사가지고 전철에 앉았습니다. 우연이었습니다. 아침에 옆에 있었던 사람이 옆에 앉았습니다. 그는 우산 5개를 들고 있는 그를 보면서 자만히 말했습니다.

<오늘 수입이 좋으시군요.>

 

집착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을 <집착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마르다도 집착 행동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접하려고 분주하였습니다. 이렇게 집착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기 행동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자기와 같이 하기를 원합니다. 마르다는 대접에 집착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도 그렇게 해주기를 원하였습니다. 마르다의 장점입니다.

 

마르다의 약점

그러나 마르다의 약점이 있었습니다. 본질을 상실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분주하게 음식을 만드는 데 집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음식 아니라 말씀이었습니다. 육이 아니라 영이었습니다. 땅이 아니라 하늘이었습니다. 순간이 아니라 영원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기쁘게 하려면 내가 좋아 하는 일을 하지 말고 그 사람이 좋아 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여야 하는 데 마르다는 반대였습니다.

<나의 원대로 따라 오시고 당신의 원대로 마옵소서!>

이것이 마르다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추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목사님 집에 초대를 받아서 하루 잔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사모님이 물었습니다.

<강 목사님! 진 밥 좋아 해요? 된 밥 좋아 해요?>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진작 물어 보시지 밥을 먹으려고 하는 지금 물으시면 어떻게 해요?>

이스라엘 사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물어 보려고 하였는 데 못 물어 보아서 둘 다 해 놓았어요.> 나는 지금도 이스라엘 사모님의 그런 자세를 잊지 못 하고 있습니다. 마르다의 약점은 자기 중심이었습니다.

 

마르다의 결론

그러나 마르다는 승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나중에는 영적인 사람으로 바뀌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후 동생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갈릴리에 계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나사로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르다가 밖으로 나가 예수님을 영접하며 말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 11; 21-22)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마르다가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예수님이 하신 말씀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이 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다른 하나는 요한복음 11;25-26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그런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은 단 한 명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밤에 니고데모 한 명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부활에 대한 말씀은 마르다 한 명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무엇인가 할 있으시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런 고백의 믿음으로 동생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마르다는 육적으로 시작하였지만 영적으로 끝났습니다.

본질을 잃은 것으로 시작하였지만 본질을 찾고 결론지었습니다.

시작보다 끝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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