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과 민수기(2): 광야에서(10:11-19장) 11 |
가데스바네아에서 광야 길로 다시 돌이킨 후에, 이스라엘의 여정은 20세 이상된 자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고라 당의 반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죽어갔으며,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로 죽는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이로 인해 가족들을 장례해야 하는 일들도 빈번해 졌다.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시체로 부정해진 사람들을 정결케 하기 위한 규례를 정해주셨다. 인간의 죽음은 타락과 죄의 결과로 주어졌다.
죽음은 사람들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체와 접한 자들을 부정한 자로 간주하셨다. 죽음과 그 부패에 접한 모든 사람이나 물건들은 7일간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주검으로 인해 부정케 된 사람들은 모두 진 밖으로 내어보냄을 받았다(민 5:2-4). 대제사장은 자기의 몸이 부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 친족의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으며, 제사장은 자기 친족의 장례식에만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었다(레 21:1-6, 10-12). 사망률이 정상일 때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당시 이스라엘은 광야의 방랑 생활 중에서 사망률이 급격히 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체를 접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체로 부정하게 된 사람이나 물건을 그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는 특별한 조치를 주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 부모들이 가데스에서 죄를 짓고 죽어 가는 모습과 부모의 시체를 지켜보면서, 하나님 앞에 겸비한 태도를 가져야만 했다. 시체로부터 정결케 하는 규례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정결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죄에 대한 경각심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도 동시에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 부정을 정결케 하는 재를 만듬(1-10)
하나님께서는 시체로 부정케 된 자들을 위해서 특별한 재료들을 준비하게 하셨다. 정결 의식에 쓰일 재료는 온전하고 흠이 없으며, 아직 멍에를 매어보지 못한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로 만들어졌다. 이 정결 의식은 시체로부터 부정케 된 자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속죄제'(하타아트)라고 불리어졌다(9,17). 그러나 일반 속죄제와는 그 성격이 달랐기 때문에 희생 제물과 제사 의식도 이에 적합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일반 속죄제의 희생 제물은 수송아지인데 반해(레 4:14), 이 의식을 위한 제물은 암송아지였다. 이 암송아지는 히브리어로 '파라'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열매", 또는 '열매를 맺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생명의 상징을 나타낸다. '파라'는 어린 암송아지와 장성한 암소의 중간에 있는 젊은 암소를 가리킬 때에 사용된 말이다. 시체로 부정케 된 자를 정결케 하기 위해 생명력의 상징인 '파라'가 사용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왕성한 생명력만이 사망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왕성한 암소는 왕성한 청년기에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한다.
또한 이 희생 제물은 '붉은 암송아지'였다. 제물로 붉은 송아지가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붉은 암송아지가 귀중하고 비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붉은 색은 피 빛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피의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셋째는 반대로 붉은 색은 원기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색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흘리실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위의 네 가지 견해 중에 한가지를 택하기보다는 이 문제들이 모두 함께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이 희생 제물은 "아직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암소"였다. 아직 다른 멍에를 한 번도 메어보지 않은 젊고 생명력이 넘치는 암소가 시체로 부정케 된 자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 희생되었다. 백성의 정결을 위해서 다른 일에 아직 사용된 적이 없는 송아지가 온전히 이 일만을 위해 드려져야만 했다. 또한 이 암소는 '온전하여 흠이 없는 것'이라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부정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온전하고 흠이 없는 암소가 대신 희생이 되어야만 했다. 죽음의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기 위해 사용된 처방은 그 특성이나 색깔, 그리고 생명력에 있어서 가장 활기차고 온전한 암소였다. 이러한 왕성한 생명력만이 죽음으로 부정케 된 자들을 다시 정결케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암소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부정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하고 죄가 없으며 흠이 없는 분이셨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해서 흠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원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인류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희생이 되셨다. 이것은 죄로 인해 사망의 노예가 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온전하시고 흠 없는 그리스도만이 타락한 인류의 죄를 속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흠 없으신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인류를 정결케 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정결케 함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1-2).
이 암소는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맡겨졌다. 아마도 대제사장인 아론은 모든 부정으로부터 분리되어져야 했기 때문에 이 일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이 암소를 진 밖으로 끌어내서 자기가 보는 앞에서 잡게 했다. 이 암소는 가장 온전하고 흠이 없는 것이어서 진안에 있어야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정결을 위해서 진 밖에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주님께서도 인류의 죄를 위해서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 암소를 잡은 후에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희생된 암소의 피를 찍어서 회막을 위하여 7번 뿌림으로서 속죄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 엘르아살이 보는 앞에서 그 암소의 모든 것, 즉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했다. 이때에 제사장 엘르아살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취해서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로 던졌다. 백향목은 부패하지 않는 나무로서 나무의 왕으로 이해되었고, 성전이나 왕궁과 같은 귀중한 것을 만들 때에 사용되었다. 백향목의 부패하지 않는 속성은 영생을 상징하며, 이것은 죽음을 정결케 하기 위한 재료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슬초는 이스라엘에서 부정해진 자들을 정결케 할 때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식물이었다. 그리고 홍색 실은 생명력과 희생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재료들은 결코 죽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주님의 희생의 피를 생각나게 해주는 재료들이다. 이러한 재료들이 희생된 암소와 함께 곁들여져서 시체로부터 부정하게 된 사람들을 정결케 하는 기능을 더욱 더 강화하고 있었다. '속죄한다'는 히브리어인 '카베드'는 '덮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의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덮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3-6).
이 일을 행한 제사장 엘르아살과 송아지를 불사른 자는 부정한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옷을 빨고 목욕을 한 후에야 진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그 날 저녁까지 부정한 자로 취급을 받았다(7-8). 이는 그들이 주정한 자의 속제물을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이 암송아지의 재는 정해진 자가 거두어다가 정해진 장소에 보관하여 두었다. 이 재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보관해 두었다가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물을 만들 때와, 시체로 부정케 된 자를 정결케 할 때에 사용될 것이다(9), 이 재를 가둔 사람도 역시 부정한 자로 취급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도 역시 옷과 몸을 씻고서야 진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그 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법이 이스라엘 회중과 이스라엘에 거하는 외인들에게 영원한 율례가 되게 하셨다(10). 맥밀란이란 의사는 성경이 의학적으로 정확하다는 글을 썼다. 그는 사람이 죽어서 시체가 되면 즉시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균이 나와서 시체와 접촉한 자들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시체를 만진 자가 부정하게 취급된 것은 이러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율례에는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영적 의미가 우선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정결케 하는 법(11-22)
가. 시체를 인해 7일간 부정케 되는 경우(11-16)
"시체를 만진 자"(11-13)
시체를 만진 자는 7일간 부정하였다. 7은 완전 숫자이므로 7일은 부정케 된 자가 완전히 정결케 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시체로 부정케 된 자는 제 3일과 제 7일에 정결케 하는 물로 스스로 정결케 해야만 그는 정결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정하게 된 사람이 이 물로 그를 정결케 하지 않으면 그는 7일이 지난 후에도 부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부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힌 자로 간주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그 죄 값으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장막에서 사람이 죽었을 경우"(14-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체로 부정하게 되는 경우는 갑자기 장막에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을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사람이 죽었을 당시에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들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7일간 부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뚜껑을 닫아놓지 않은 그릇도 부정하게 취급되어 정결하게 해야만 했다.
* 들에서 칼에 죽임을 당한 사람의 시체나 뼈, 그리고 무덤을 만진 자도 7일간 부정함(16).
*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였으며, 부정케 된 그 물건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게 취급되었다(22).
나. 정결법(17-22)
이와 같이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들은 미리 준비한 재로 정결케 해야 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한 재를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서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로 그 물을 찍어서 부정하게 된 장막과, 그 안의 모든 사람들과 가구들, 그리고 시체의 뼈나 죽임을 당한 시체와, 무덤을 만진 자들에게 두 번(제 3일과 7일) 뿌려서 그들을 정결케 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7일만에 다시 정결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정하게 되고도 이 에식을 통해서 종결함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그 부정함으로 인해서 죽임을 당했다.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취급되었으며, 그 부정케 된 물건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정결 규례를 위해서 물을 뿌린 사람은 옷과 몸을 물로 씻어야 했으며, 그 날 저녁까지 부정하게 취급되었다.
<적용 문제들>
1. 하나님께서는 의식적 정결을 통해서 내면적인 정결을 유지하게 하신다.
2. 정결의 길을 주었어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자는 멸망을 당한다.
3. 우리의 죽음을 위해서 온전하신 능력의 주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셨다.
4. 모든 죄악은 그와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게 만든다.
5. 죄의 속함과 회개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신중히 실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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