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메건法

好學 2011. 2. 18. 21:48

[만물상]메건法

 

 

“피랍자 마리아 파월. 7세 흑인 여아. 납치 용의자 30세가량 백인 남자. 파란색 포드 토러스를 타고 버지니아 바닷가 쪽으로….” 미국 라디오와 TV는 가끔씩 이런 방송을 내보낸다. 도로 전광판이나 자동판매기에 달린 메시지판에도 그런 글귀가 뜬다. 어린이 유괴사건이 터지면 처음 1시간 동안은 20분마다, 2시간까지는 30분마다, 8시간까지는 60분마다 반복된다. 2004년부터는 휴대전화와 이메일로도 보낸다. ‘앰버경보’다.


▶1996년 텍사스에서 아홉 살 여자어린이 앰버 해거먼이 유괴돼 무참히 살해됐다. 충격 속에 지역 언론과 경찰이 합심해 조기 경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소녀 앰버의 이름을 붙였다. 2004년 부시 대통령은 앰버경보를 전국에 확대하는 ‘어린이보호법’에 서명했다. 서명식엔 앰버의 어머니가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지난 1월 곤살레스 법무장관은 10년 전 희생된 앰버 해거먼을 기리며 “지금까지 241명의 어린이가 앰버경보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1994년 뉴저지에서 메건 칸카라는 일곱 살 여아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범인은 메건 집 건너편에 살았다. 이미 성범죄로 두 차례 형(刑)을 받은 상습범이었다. “이런 흉악범이 이웃에 사는 걸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며 주민들이 들끓었다. 성범죄자 신원을 공개하는 법을 만들라는 청원에 43만명이 단숨에 서명했다. 메건 사건 89일 만에 뉴저지주가 ‘메건법’을 통과시켰고 1996년 연방정부도 이 법에 서명했다.


▶민간단체 ‘메건법을 위한 부모’는 각 주의 성범죄자 신원공개 실적에 따라 평점을 매긴다. 작년엔 플로리다가 A+를, 캘리포니아가 F를 받았다. ‘제시카법’ ‘스테파니법’도 있다. 모두 어린이가 성폭력에 희생된 뒤 재발을 막으려고 만든 것들이다. 영국도 2000년 여자어린이 사라 페인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되자 메건법과 비슷한 ‘사라법’을 만들었다.


▶50대 남자가 여자아이를 성추행해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다섯 달 만에 동네 어린이를 성추행해 살해하고 불태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비분강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차례 요란하게 떠들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잊고 만다. 어린이 성범죄에 쏟아지는 분노를 예방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 한국판 ‘앰버경보’와 ‘메건법’을 탄생시킬 만하다. 이번 어린이의 희생을 또 덧없이 지나쳐 보내면 금쪽같은 우리 아이들이 계속 희생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