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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虛와 實 - ‘오늘’을 진단한다 3

好學 2011. 1. 30. 22:38

한국교회의 虛와 實 - ‘오늘’을 진단한다 3

 

 

-한국교회 전도, 무엇이 문제인가? 3

 

전도에 대한 대원칙 고수로 교회성장 박차

 

성공적인 삶의 지혜를 말할 때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머리를 쓰고 땀을 흘려 노력해도 일이 잘 안 풀리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며 원리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서로 돌아가자, 즉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곧 원리원칙으로 돌아가자는 말과 같다.

별스런 방법으로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머리를 쓰고 몸부림 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뒤늦게 깨달은 진리가 바로 “성서로 돌아가자”였다. 복음전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좀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보다 빨리 교회를 성장시켜 보겠다는 조급함이 앞서

“꿩 잡는 게 매”라는 부끄러운 말로 성경적인 복음전도의 대원칙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지 오래다.
현재 우리는 목적달성을 위해서 정의나 불의, 진리나 비리, 양심과 신앙까지도 개의치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승리가 정의를 증명한다”는 히틀러의 괴변을 앞세워 교회성장, 전도숫자가 하나님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해 전도의 법칙을 깬 결과 한국교회는 지금 오랜 기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거듭, 변화, 희생을 복음전도의 대원칙으로 진실된 전도 가능
복음전도의 6하원칙을 따라 목적 의식있는 전도수행 필요


‘8복’ 중심으로 본 복음전도 대원칙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위에 올라가 산상수훈을 말씀하실 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8복에 대해서였다.

먼저 복 받을 자의 여덟 가지 자세를 말하고 이어서 복의 종류를 설명하셨다.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이 말하신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최고로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8복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복음전도의 원칙을 삼아볼 필요성이 있다.

첫째, 거듭나야 하고 둘째, 변화돼야 하고 셋째, 희생해야 한다. 거듭나지 않고는 변화될 수 없고, 변화하지 않고는 희생할 수 없다.

전도자가 이 원칙만 따라간다면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면서

아울러 능력 있는 전도자의 기본 자격을 잘 가르쳐 주신 것이다.
첫 번째 원칙은 거듭나기이다. 복 있는 자,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성경,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애통하며 회개하여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고 거듭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 했으니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성도는커녕 신자도 아니기 때문에

전도자가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에(고전 12:3)” 더욱 그렇다.
신앙연조나 교회직분 또는 사회적인 신분은 결코 전도자의 요건이 될 수 없다. 성령 받고 거듭난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진리의 말씀을 통해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더욱 열심히

그리고 간절한 마음과 눈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선물,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변화되기이다. 진실로 성령 받고 거듭난 성도들은 거듭난 증거로 각종 은사를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격과 생활 속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는 4대 변화가 자신의 삶을 통해 증거 돼야 한다.
이 네 가지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윤리적인 문제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겸손해진 사람은 어려운 이웃, 불쌍한 사람을 가엽게 볼 줄 알고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특별히 전도자들에게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와 같은 변화가 가장 힘 있는 전도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 원칙은 희생하기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나타났고 완성되었다.

진실한 사랑은 자기희생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희생은 최고의 사랑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희생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사랑은 언제나 희생과 함께 자라는 것이다.

 

복음전도의 육하원칙

 

육하원칙은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는 하나의 기준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와 같은 순서를 따라 기사를 쓰다보면

주제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은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전도도 마찬가지이다. 전도를 할 때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또 왜 전도해야 하는지도 등 전도의 육하원칙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에 나오라고만 성화를 대는 식의 전도로 인해 현재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복음전도의 육하원칙 중 언제, 어디서에 대해서는 성경에 너무도 명확한 대답이 나와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고 문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전도해야 되느냐 하는 4가지 문제에 대하여 재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누가”의 문제이다. 이는 전도자의 자격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5)”라는 성경 구절에 나오듯 전도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야 한다.

목사나 전도팀장의 보내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전도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야 하고 복음전할 부탁을 받아야 한다.

아무나 전도자가 되겠다고 용기를 가지고 나간다고 전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신자를 옳게 여기시고 복음전도를 부탁하실까 관심 있게 살펴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성경에는 신자의 종류를 항상 두 종류로 나누고 있다. 쉽게 말하면 알곡과 쭉정이다.

하나님께서 알곡은 전도자로 사용하시지만 쭉정이는 절대 사용하시지 않는다.

알곡은 그럼 어떠한 신자인가? 두 말할 필요 없이 생명이 있는, 성령 받고 거듭난 성도다.

그러므로 전도훈련의 제1과제는 성령 받은 거듭난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전도내용에 해당하는 “무엇을”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라고 말해, 바울이 전한 복음이 참 복음이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다 다른 복음이라 말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십자가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구주라는 사실,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만 알고 십자가만 전하고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전도자들이 이와 같은 자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전도할 때 십자가는 말하지 않고

세상적인 축복과 신비와 기적에 대해서만 말하기 바쁘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말을 들어주고 교회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에 끌고 오기 위한 유인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전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전도자는 필히 십자가만 알고 전하고 자랑해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우리들의 구주라는 진리를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의 진수는 예수와 십자가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이고 십자가의 도다. 전도자는 이것만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고전 1:19)와 복음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셋째,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전도방법을 크게 둘로 나누면 하나님의 전도방법과 사람의 전도방법이 있다.

하나님의 전도방법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사람의 전도방법은 대개 간증으로 나타난다.

목회자나 성도들은 일반적으로 전도하면 방법을 생각하고 방법하면 간증을 생각하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성경에는 그 어떤 간증보다 더 효과적인 전도방법이 산처럼 쌓여있다.

성경적인 하나님의 전도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도 간증 일변도에서 벗어나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전도방법을 연구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님, 베드로, 바울, 바나바, 빌립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도방법들이 나온다.

그 중에 예수님은 끝없는 용서라는 전도방법을 사용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 삭개오, 우물가의 여인, 현장의 여인 등 이들과의 대화 중 마지막에는 항상 용서가 있다.

용서는 전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용서는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필요가 없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부부, 부모와 자녀, 형제, 친구, 동료,

이웃과 같이 항상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쌓인 마음속에 앙금이나 실수를 통해 생긴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란 특별히 가족, 이웃전도에 절대 필요한 방법이다.

예수님께서 가장 효과적인 관계전도방법은 용서라는 것을 잘 가르쳐 주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명감에 해당하는 “왜”에 대한 문제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기쁨으로 할 때 가장 잘된다고 한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을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할 때 가장 효율성이 떨어진다.

전도훈련의 3대 과제 중 사명감 고취는 그래서 최대 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진리를 깨닫고 보면 성경은 온통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의 사명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복음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성도의 최대 사명이다.

성령 받고 거듭난 성도는 누가 전도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전도하는 사람이 아니다.

반대로 하지 말라고 막아도 기어코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가장 능력 있는 전도훈련은 신자들이 성령을 받고 구령에 불타는 심정을 가지고 스스로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도자들이 많이 나와야 교회가 저절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전도현실은 거듭나지도 못한 영적인 어린아이들을 전도자로 내보내면서

전도열매만 강조하고 있으니 교회가 성장할 리가 없다.

조금은 시간이 걸리고 교회성장이 더딜지라도 복음전도의 원칙을 따라 무엇보다 먼저 기존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듭날 수 있도록 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성령으로 전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전도가 성경말씀 몇 구절 외워 두었다가 그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 말처럼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어야(살전 1:5)”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