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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虛와 實 - ‘오늘’을 진단한다 2

好學 2011. 1. 30. 22:37

한국교회의 虛와 實 - ‘오늘’을 진단한다 2

 

 

 -한국교회 전도, 무엇이 문제인가? 2.

 

복음전도에 대한 이해로 전도실패 극복해야

마이너스 성장의 큰 이유는 업적주의와 교회성장 지상주의가 원인
체계적이고 진실된 방법으로 지속적인 전도사역으로 교회성장을

 

신학교학생 시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택하신 뜻이 복음전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6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족하지만 오직 전도의 길을 걸으며, 35년간 각 교단 신대원 강의와

개 교회 전도훈련을 감당해오고 있다.

그때만 해도 전도훈련이 무엇인지 몰라 새 분야를 개척하듯 땀 흘렸었는데 근래에는 수많은 전도훈련 기관과

전도훈련 강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여 진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작금 한국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의 한 요인이 바로 무자격 전도강사 난립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문성을 겸비한 전도강사 필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롬 10:15)” 전도자의 자격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성경본문이다.

이 말은 전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전도의 명언이다.

전도를 일컬어 증인이라고 하는데 아무나 증인이 될 수 없다. 세상 법정에 증인으로 설려면 직접 보았거나 들었어야 한다.

보거나 듣지 못했으면 아무리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말을 잘한다 할지라도 결코 증인석에 앉을 수 없다.

전도도 마찬가지다. 성령 받지 못해 영적으로 보고 듣지 못한 영적인 불구자들은 결코 전도자가 될 수 없다.
전도자도 아무나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전도강사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강사는 최소한의 기본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팔이 의사가 사람 죽이듯 엉터리 전도훈련 강사는 성도들로 하여금

다른 복음을 전하게 하여 저주를 받게 할 수도 있다.

목사라고 다 전도강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신학지식이나 전도학적 기본소양도 안 돼 있는 평신도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전도에 대한 깊은 관심과 뜨거운 열정은 매우 귀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나 훈련은 관심과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먼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전도용품 활용의 문제

 

전도용품 전문제작회사가 생겨날 만큼 오늘날 전도에 전도용품이 인기다.

갖가지 생활용품에서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전도용품이 활용되고 있다.

작게는 이쑤시개에서 사탕, 크게는 크리넥스 박스, 각종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전도용품을 선호하는 전도자들은 그것을 대화의 매개체로 활용하여 좋고, 또 그냥 입으로만 전도하는 것보다

분위기가 다르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인지 개 교회 전도비의 상당액이 이 전도용품 구입비로 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기 전에 한번 곰곰이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성경적인 예를 들어 보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는 거지에게 한 말을 먼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거지가 바라는 것은 돈이나 먹을 것, 즉 물질이다.

그런데 사도들은 “내게 금과 은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킬 때 그는 일어나 뛰며 걸었다.
모든 전도자들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라는 본문 말씀을 천만번 되새기면서

지금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금과 은은 없었어도 능력과 권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도자들에겐 아마 능력과 권능은 없어도 금과 은은 많은 것 같다.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쟁, 곧 복음전도는 금과 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고귀한 물품이나 긴요하게 쓰일만한 생활용품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전도자에게 전도용품은 한낱 거추장스런 물건일 뿐이다.

전도훈련을 전도의 원리에 합당하게 진리의 말씀대로 시켜야 한다.

 

성령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해지기

 

전도는 영적 전쟁이다. 마귀와 싸워야 하는 무서운 전쟁이다.

마귀를 깨쳐버리고 마귀에게 짓눌려 있는 영혼을 구원의 길로 빼앗아오는 영적 전쟁이라고 알고 있는 신자들에겐 담대함이 절대 필요하다

그래서 능력 있는 바울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전도자의 담대함은 일반적인 담대함과 다르다.

모 전도훈련기관의 담력훈련 프로그램 중에 경찰서장을 만나고 오라느니

또 버스 안에서 몇 분씩 담대히 말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영적인 일을 육적인 방법으로 하려고 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도훈련 기관들이 이처럼 비복음적인, 반복음적인 훈련을 시키고 있으니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세상적인 담력은 세상 것으로 얻을 수 있다.

돈이 많아서, 권력이 있어서, 내게 5단의 태권도 실력이 있어서, 인간적인 여러 방법으로 훈련받아서 얻을 수 있다.

세상적인 담대함은 사람을 대할 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자의 담대함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 충만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믿고 경험할 때 담대해진다.

예를 들면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책망 받을 것이 없을 때 담대해지고,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았을 때, 즉 기도응답을 받았을 때 우리는 담대해진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담대해진다.

 

전도방법론에 관한 지나친 맹신

 

대부분의 목회자나 절대다수의 신자들이 전도훈련 하면 방법을 생각한다.

복음전도의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도훈련의 최대 급선무는 사명감 고취다.

마음속으로 전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거듭난 성도에게 맡기신 최대 사명임을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한다.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불신자들의 영혼이 불쌍하여 그 영혼을 구원해야겠다는 불타는 구령욕이 있어야

바쁜 시간을 쪼개고 없는 돈도 나누어 쓰며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전도의 간절한 마음이 없다면 방법은 무용지물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실시되고 있는 전도훈련 프로그램을 보면 방법에 치우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전도 간증이다. 물론 전도 간증이 전도훈련 속에 포함되어야 하지만 너무 치우쳐서는 안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전도 간증은 거의 천편일률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일 뿐이다.

간증이나 방법일지라도 가능하면 성경적인 전도방법을 연구 활용해야 한다.

개인의 주관적인 방법은 그때 그 사람이 저 사람에게는 가능하지만 전도의 4대 요건(전도자, 대상, 장소, 시기) 중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그 방법은 쓸데없게 된다. 그러나 성경 속에 산적해 있는 전도방법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활용 가능한 가장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다.
하나님의 전도방법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성경적인 전도법을 하나 예로 들어 보자.

열매를 맺어야 하는 가지의 임무를 말씀하시면서 그 법칙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간단한 이 말씀 속에 복음전도의 원리가 숨어 있고 가장 효과적인 하나님의 전도방법이 들어 있다.

전도자가 전도를 잘하려면 첫째, 말씀으로 깨끗해야 하고 둘째,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무엇보다 성도는 말씀을 먼저 믿어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쳐야 한다.

따라서 가장 효율적인 전도훈련은 성도들이 먼저 성경말씀을 믿게 하고 또 그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하여

포도나무에 항상 붙어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면 열매는 저절로 맺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도방법이요, 성경적인 전도훈련의 원리다.

 

단순암기를 통한 획일적인 언어훈련

 

언어는 전도의 생명과 같은 매개체지만, 인위적인 언어훈련으로 전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평상시에 성경말씀을 많이 외워두고 또 좋은 책을 많이 읽어 세련된 문장과 언어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일부 전도훈련 단체에서는 마치 여호와의증인들처럼 짜여진 문장을 외우게 하는 전도훈련의 실수를 범하고 있어 문제다.
예수님께서 후대 전도자들이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할까봐 미리 말씀해 주셨다.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口才)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4)”고 확실하게 약속해 주셨다.

누구를 만나건, 설령 그가 교수건, 변호사건, 불교신자나 여호와의증인과 같은 이단이라 할지라도

말해야 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그때 거기에 알맞은 말씀을 주시겠다는 분명한 약속이다.
말이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 주어진 상황에 따라 거기에 맞는 말을 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바로 그때 할 말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전도할 때 ‘말하는 이’ 곧 전도대상을 만나서 전도자가 말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전도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전도는 전도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도구로만 쓰일 뿐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능력의 말씀을 주사 듣는 이의 마음을 녹여 주실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하나님께서 그때 주신 말씀만 잘 전달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역사하신다.

단, 합당한 자로 인정받아 보내심을 받은 전도자에게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해 주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