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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된 교회는 미래가 없다 - 이정석 (풀러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2

好學 2010. 11. 13. 22:47

 

 

 

 

세속화된 교회는 미래가 없다 - 이정석 (풀러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2.

 

그리스도의 주권 반환

 

한국교회의 미래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교권투쟁이다. 과거에는 교권쟁탈전이 총회차원에 제한되었으나, 이제 한국의 민주화 이후 모든 개교회로 확산되었다. 거의 모든 교회들에서 목사와 장로들의 주도권 대립이 심화되고 있으며, 많은 교회들은 극한적인 투쟁과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서로 교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주인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평신도는 평신도대로, 모두 교회의 주인임을 자부하고 있다. 실로, 교회의 실제 주인인 그리스도는 소외되고 밀려나고 있으며, 이는 교회의 근본적 세속화를 초래한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아니라면,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도스또예브스키의 소설 카라마조브의 형제에 보면, 종교재판이 기승을 부리던 중세에 예수님이 스페인의 세빌을 방문하여 대재판관인 추기경과 만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추기경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겁하여 즉시 그를 깊은 감옥에 가두고 처형 하려다가 어두운 밤에 풀어주며 다시 교회를 찾아오지 말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이제 이미 인간들의 체제로 안정된 교회에 예수님의 개입이 대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연상시킨다. 주인이 보낸 종들과 아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려다가 진멸 당하는 비극적 운명에 처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자본주의적 논리를 받아들여 세속화하고 있다. 모두가 대형화를 추진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목적인 교회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현대문화의 해악인 허영과 광기를 조장하고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대형교회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위성교회를 만들고 자기 브랜드의 교회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부심보다 특정 교회의 일원이라는 프라이드가 더 강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목사가 주인이 되어 절대교권을 휘두르며 교회 인사권과 재산권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특권적인 당회장직을 세습하는가 하면, 정치적인 장로들이 교권을 장악하고 목사들을 마음대로 갈아 치우면서 자기의 목자를 피고용인 취급하여 목회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주권을 반환하고 모두 그의 충성된 손발이 되어 섬기는 공동체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비극적인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파벌 철폐

 

그리스도의 주권이 확립될 때 교회는 하나가 된다. 이 말은 역으로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파벌적 대립과 분리가 존재한다면 그리스도의 주권적 보좌를 파벌의 보스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회의 주인이 한 분이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여야 한다. 따라서, 교회에 분리가 발생하였다면 그것은 전혀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인간들의 독자적 행위일 뿐이다.

 초대교회도 하나였고, 천상의 완성된 교회도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교권주의자들은 교회를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분리하고 백가쟁명을 하며 한결같이 자기 교파와 자기 교단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유럽교회의 세속화와 몰락의 원인을 추구하던 학자들은 종교개혁 이후에 발생한 교회 분열이 국가와 교회의 균형을 와해시켰으며, 그 결과 교회가 국가 아래 복속되는 정치적 세속화가 발생하였고 교회의 약화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분열된 교회는 힘이 약화되고, 결국 국가와 사회로부터 무시와 소외를 당하게 된다. 예수님은 그 당위성을 이렇게 말씀하였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 12.25) 그래서, 그는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며 이렇게 기도하였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즉, 세상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며, 분열된 교회는 이 거룩한 소명을 성취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교회가 하나 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유와 겸손의 미덕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즉, 과격하고 교만해지면 분열된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어떤 인간도 계시의 담지자로 보지 않으며 예배하거나 숭배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후계자는 아무도 없으며, 인간 후계자가 가능하지도 않다. 사도의 권위는 존중하지만, 12명이나 되는 사도를 인정하며 4권이나 되는 복음서를 수용함으로서 신앙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바울이나 베드로를 절대화하거나 특정 복음서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이단적 발상이다. 고린도교회에 파벌이 존재하였으나 바울은 자기를 추종하는 파벌을 책망하며 해체를 요구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 1.13) 실로, 초대교회에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신앙이 존재하였으나, 그것 때문에 분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는 철저하였으나, 그 이외의 이슈나 제도에 대해서는 양심의 자유를 수용하고 아디아포라(adiaphora)의 영역으로 관용하였다.

 

교회가 하나 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본질인 사안에 대해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교회가 한국교회를 비판하거나 한국교회가 미국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로 문화와 정서가 다르고 상황과 역사가 다른데 어떻게 모든 면에서 일치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아프리카교회나 정교회와 같이 우리와 별 문화적 교류가 없는 교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교파와 교단이 분열하여 난립하게 된 데에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독선주의 때문이었다. 지성적인 장로교회는 감성적인 오순절교회를 관용하지 못하고, 사회적 관심이 많은 진보교회는 내면적 관심이 많은 보수교회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인종이 달라도 모두 한 몸이듯이, 신앙의 성향이 달라도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중생하였다면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런데도, 교회가 분열되고 분열이 영속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권 정치가들은 정적으로부터 자기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선동적으로 교회를 분열하였고, 그 후에는 어용신학자들이 분리주의(separatism)를 미화하며 그러한 파벌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신학체계를 개발하고 강화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기원도 잘 모르는 수많은 외국의 교파와 파벌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하였고, 끝없이 허무한 대리전을 벌리고 있다. 교회 정치가들은 자기 집단의 강화를 위해 무조건 자기 교파와 교단의 전통을 강조하고, 신학자들은 미리 파벌적으로 선택된 학교에 유학하여 자기 모교 신학의 노예가 되고 자기 지도교수의 학파를 섬기고 대리전을 하는데 일생을 바친다.

 

아, 불쌍한 한국교회여!

초기의 선교사들이 성령의 인도아래 교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오로지 하나의 교회만을 세우자고 합의하였으나, 모국 선교부의 교파주의로 말미암아 그 숭고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애통하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서구교회 파벌의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 모든 전통과 교파신조를 상대화하고 하나의 교회를 건설한다면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의 지도적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며, 한국교회의 미래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그야말로 찬란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전통과 신학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어서 해방되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 이외에 어떤 것에도 심판권을 부여하지 않는 ‘오로지 성경(sola Scriptura)’의 사도적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만난 이스라엘교회는 전 민족이 신앙을 고백하고 성경을 암송하며 철저한 종교생활을 하는 집단으로서, 외형적으로는 강력한 교회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자기들의 종교적 전통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떠나버린 죽은 교회였다.

하나님이 보낸 그의 독생자도 배척하고 그토록 기다린 메시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아도취적이고 자기숭배적인 종교집단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예수님의 신앙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하는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하고 지적하면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탄식하였다(마 15.3, 8-9). 한국교회가 파벌적 신조와 전통을 절대시하면서 그 기준으로 정죄하고 징계하는 범죄를 중단하고, 성경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교회와 같은 비극적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