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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Platon) 의 모방(L'imitation)

好學 2010. 10. 25. 20:26

 

플라톤(Platon) 의 모방(L'imitation)



플라톤(Platon, 428-348 BC)이 예술(les beaux-arts)이나 시를 비난했다고 해서 그를 예술의 문외한(philistin)이거나 어리벙한자(béotien)로 보는 것은 너무 단순한 판단이다. 플라톤은『국가』편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하고, 말 없는 그림과 쓰여진 담화를 배척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법률』의 이방인(이 대화편의 한 인물로서 아테네출신)의 눈에는 이집트 예술에서만이 은총을 발견한다고 한다. 그러나 플라톤에서는 예술에 대한 언급은 없고, 기예(술)(art, techne)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 『정치가』편에서 직물을 짜는 기술(art)을 상기시키고, 지배하는 기술을 분석한다. 『고르기아스』편에서는 수사학이 기술인지를 묻고 있고, 『필레보스』편에서는 변증술을 기술들 중의 최고 정상에 둔다. 근대적 의미의 예술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히피아스』편에서 미(la beauté)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있고, 『향연(Symposium)』편에서 아름다운 물체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미에 대한 사랑으로 순화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디드로(Diderot, 1713-1784)에 의해서 예술(arts, 우리는 여기서는 예술로 번역한다)에 대한 논의가 정립된다고들 한다. 이런 시각에서 한편으로는 미를 어떤 예술의 생산에 결부시키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가 감성적(미학적, esthétique)쾌락을 산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플라톤 속에는 미적 요소들이 억압된 것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니체(Nietzsche)는 플라톤주의(platonisme)를 전복하려 애썼다. 니체(Nietzsche, 1844-1900)는, 예술을 감각적 현상(플라톤은 이 현상을 착각과 오류라고 했다)이라고 비난한 플라톤주의 속에서, 생명에 적대적이고 허무적인 제일형식을 보았다. 여기서 니체는 미학을 심리학과 생리학으로 규정하면서, 그 자신이 허무주의의 선구자로 남지 않았는가? [신체와 신체 속의 영혼을 통한 자아의 실현은 어쩌면 허무주의나 죽음의 필연성을 인정해야 했고, 이를 극복을 위해 영원회귀는 다시 플라톤주의식으로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새로운 탄생에서 찾으려 한다. 이 새로운 탄생은 엔트로피의 역행이다. 영원회귀는 생명 있는 존재의 자기 실현의 무한한 과정, 역으로 환원되는 것도 아니고(순환성의 거부), 끊임없는 무정형화로 하강을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형상을 목표로 삼는 것도 아니라는 측면에서 자기증식과 자기 확장이다. 이런 방식을 베르그송 식으로 말하면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나선형의 진화 운동이다.]


I. 모방(l'imitation, mimesis)

미의 생산으로서 모방에 관한 논의를 위하여, 우리는 우선 『국가』편 5권(595a)에서 예술의 지위에 대하여 규정을 본다. 시인을 배척해야한다고 하는 것은(Ibid, 398a,b) 시가 미메시스 즉 모방(l'imitation)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메시스로서 기예(술)(art)의 정의는 존재와 진리의 개념과 관련되어있다.

모방이란 의미에서 화가는 거울을 가진 사람이다. 즉 거울을 통하여, 대상을 그대로 반사하듯이, 생산한다(produire, poiein)는 의미이다. 여기서 거울은 진리를 생산하기 보다 현상을 생산한다. 여기서 진리(ta onta tê alêtheia)와 현상(onta phainomena)관계는 사물과 거울의 허상의 관계와 닮았다. 이런 모방은 장인의 모방이다. 그림 같은 모방의 성질인 미메시스(mimesis)는 기술자(l'artisant)의 모방과 구별해야한다.

철학자에게는 형상이외에 3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에서 이데아, 수학적 도형, 개별사물, 그림자처럼, 형상, 자연적(naturel, phusis), 개별적(individuel), 그려진 것(peint)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이데아로서 형상을 제외하고서, 먼저, 자연적인 것이란 『국가』편(597b)에서 예를 들면, 실제의 침대 또는 만들기 전에 구상한 침대를 말한다. 개별적이란, 장인이 만드는 것으로, 사물에 동일성 즉 단일성을 갖는 것을 만든다(Ibid 598a). 그리고 그려진 것이란 화가(zôgraphos)가 그림을 그리는 것 (거리감과 떨어짐[각도]에 의하여 파악한다.)이다. 화가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가 나타나는 대로 모방한다. 이런 의미에서 화가는 현상(un phantasma, 상상에 기초한 모상)(『국가』598b)을 그린다. 그래서 회화는 실재와 진실된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멀어진 정도에 의해 규정된다. 더하여 회화는 [사물에 대한] 모상(simulacre) 즉 우상(idole, eidolon)을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화가나 거울을 지닌 사람처럼 모상(simulacre)을 생산한다(『국가』600e). [그러나 시인은 사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진상(Idea)에 대하여 모상을 실행하려 한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이 대화편을 통하여 진상의 참모습을 탐구하듯이 호머는 인간의 본질적 성질을 '신화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했다고 보자. 우리가 보기에 플라톤은 지식(인식)의 의미(방식)를 찾는다면, 시인은 인간의 욕망(소원)을 풀어보고자 한 것이다.]

['실재(réel)를 있는 그대로'란 형상에 대한 모방으로써, 존재적 측면에서 이데아들에 대한 수학적 도형과 관계이고, 인식적 측면에서 노에시스와 디아노이아(추론적)의 관계이다. 그런데 실재가 나타는 대로란 의미는 현실적 대상(objet actuel)인 자연물이 현상으로(en apparence)나타나는 대로 모방이며, 이것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사물의 모형과 그림자 관계이고, 인식론적 측면에서 피스티스와 아이스테시스 관계이다. 플라톤이 화가를 비난한다면 디아노이아를 통한 모방(mimesis)가 아니라, 아이스테시스를 통한 모방을 비판한다. 그러나 조각과 건축에는 디아노이아 측면이 부각되고, 회화에는 아이스테시스 측면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건축을 평균[비례]와 수로 파악하는 기술(예술, techne)로 간주하는 『필레보스』편(56a)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두 측면에 관한 논의를 회화론의 예술사에서 검토해보면, 선(디아노이아)과 색(아이스테시스)관계가 서로 반전의 기회를 갖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 물론 자연학에 대한 철학의 역사에서 사물의 제1성질의 학문과 제2성질의 학문의 구분에 대한 견해차이는 선과 색의 관계와 닮았다. ]

모방에 대한 설명을 알아보고 난 뒤에, 우리의 관심을 모방에 대한 기예 또는 예술(techne)로 옮겨보자. 플라톤의 작품들에서 테크네(기예(술), art)는 지식, 즉 반성하고 추론하는 지식을 지칭한다(『고르기아스』편, 346b, 『파이드로스』편, 260e). 그리고 『필레보스』편(56a)에서는 기술의 분류에 대한 설명이 있다. 평균(절도)과 수의 예술로서 건축을 말하고, 경험 직관 추측의 예술로서 음악, 의학, 농업을 구분한다.

그리고 『국가』편에서 미메시스와는 다른 모상에 대한 견해가 제기된다. 이 문제제기는 두 가지 측면으로 모상을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소피스트』편에서 미메시스의 본성을 정확히 규정한 것을 주목하자. 이 대화편에서 기예(술)을 습득의 예술과 생산의 예술로 나눈다(Ibid 265-266). 그리고 생산의 예술은 다시 실재적 사물의 생산과 모상(simulacre, eidola)의 생산으로 나눈다. 그래서 예술사에서 회화(그림, Ibid 266a)는 인간에 의해서 제작된 대상에 대한 모상으로 여긴다. 이것은 신에 의해서 창조된 자연적 대상에 대한 모상에, 즉 동굴의 우화에서처럼 회화는 그림자에 비유된다. 이 이분법적 분류은 모방(mimesis)의 예술에서 새로운 구별을 도입한다(Ibid, 266d; 235d-236c). 하나는 모상(simulacre), 즉 원본에 맞는(conforme) 복사(copie)의 기예(술)이며, 다른 하나는 환상적(illusoire) 현상(l'apparence)의 기예(술)이다.

[인공물(상징, Idea, 그러나 플라톤에서는 실재)에 대한 모상과 자연물에 대한 모상 - 전자의 경우를 이집트의 예술로 보고 후자의 경우를 그리이스의 예술로 보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은 브젤(Floremce Begel)이 쓴 『예술 철학』에서 플라톤 관점에 따라 그리스의 예술과 이집트의 예술을 구분하고 전자는 상상에 기초한 모상(simulacre, phantastike techne)이고, 후자는 모델에 닮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복사(copie, 모조품, eikastike techne)이다. 그렇다고 후자는 겉모습(현상)은 아니며, "아름다운 형상의 진실한 비례"를 존경하고, "각 부분에 알맞은 색깔"을 부여하는 것이다.(『소피스트』235-236c). 여기서 그리스 예술과 이집트예술의 차이를 말한다. 우리가 보기에, 이집트 예술은 기술 습득의 훈련을 하는 제자가 대가의 방식을 모상하는 습득의 예술과 닮았다면, 그리스 예술은 이제 그 제자가 자신방식을 창안하여 자신의 상상을 불어넣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집트의 예술은 죽은 자의 무덤에서 그려진 벽화의 예술이라면, 그리스 예술은 살아있는 자들의 삶의 모습에서 그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설명은 이집트의 예술이 이미 만들어진 방식의 기술 이상을 발전시키지 않고 옛 기술을 그대로 전수하는 예술인데 반하여, 그리스 예술은 자연의 살아있는 대상을 모방함으로서 새로운 활동과 행동에 관련한 모습을 새롭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 예술은 생명성과 활동성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나간 것이다. 이런 방식의 도래와 그리스인의 올림픽경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체의 활력, 즉 건강함은 전쟁에서 보다 나은 전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가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발상은 그 다음 지중해 지배자들에게서도 분명하며, 예술에서 신체의 건강함을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문맥상으로 전자의 모상(simulacre)이나 후자의 모상(copie)이나 간에, 모방(mimesis)의 두 양식이다.]

그러면 예술가는 모델에 비례하여, 실재적 차원에 따라 모방상(eikon)을 실현할 수 있다(『법률』편 668e). 그리고 예술가는 예를 들면 폴리클레트(Polyclète, BC 5세기 조각가)에 의해서 확정된 신체 비례의 법칙을 존중하는 진실한 작품을 창조한다. 그러나 또한 예술가는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면서 착각(l'illusion)인 환상(phantasma) - 순수하게 겉으로 닮은 모습에서 환상 - 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조각가는 자기 작품이 일정하게 떨어진 거리에 보여질 것을 고려하여 작품을 만든다. 영남대 교수인 유홍준님이 쓴 "우리문화유산 답사기 2"에서 석굴암이 석불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와 형상을 고려하여 신라 시대인의 키를 추정하는 글이 있다. 이 글에서 추정자는 불상을 가장 잘 조화롭게 보는 위치까지 설명한다. 가까이 보면 전체를 볼 수 없고, 너무 멀어지면 전체를 볼 수 있으나 실물의 구체성에서 멀어진다.

플라톤은 예술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그의 고풍스러운 취미는, 소피스트와 같은 상대주의적이고 인간 만물 척도적인 개념을 내포하는 그의 시대의 혁명적인 예술의 착각주의(l'illusionisme)를 비판한다. 이런 예술 철학적 시각을 뒤집어엎고서, 15세기 플로랑스에서 알베르티(Alberti, 1404-1472)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를 이어받아, 바둑판 같은 선을 이용하여 인위적인 원근법(perspectiva artificialis)을 사용한다.

곰브리치(Gombrich, 1909-)는 『예술과 착각(L'art et l'illusion)』에서 이집트 작품의 영속성을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경의 그리스 조각의 급속한 혁명을 비교한다. 또한 그의 『서양미술사, 상』에서 "이집트인들은 대략 실재로 존재한다고 그들이 알고 있은 바를 그렸고,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렸음에 비해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법을 또한 배웠던 것이다(최민역, 열화당, 1996(1977, 원1971), p. 151.)"라고 한다. [나의 견해로는 진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착각인 것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은, 어쩌면 시각을 속이는 새로운 예술에 대한 관점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이 금의 시대에 대한 동경 즉 고대 동방의 진리관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다시 말하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만큼 동방의 심성, 또는 (이집트 원류의 고풍스런) 복고주의적 사유행태를 가진 것을 아닐까? 왜냐하면, 그가 『국가』편의 이상국가 건설에서, 금, 은, 동의 자손을 구분하는 방식에서도 이집트의 황금의 시대를 동경한 것은 아닐까? 이런 가정이 추측으로 근거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플라톤의 사상이 그리스적 사유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 서구의 합리주의적 사유 양식에 맞춘 것은 아닌지를 의문을 달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한 새로운 사유는 과거의 거대한 체계에 대한 사유 위에서 성립하는 철학사의 사례들을 보면, 플라톤이 여전히 소크라테스의 사유의 전개를 보다더 잘 확장시킬 수 있는 것도 소크라테스의 사유의 내용에는 동방의 색채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그 당시의 실물로 착각할 만큼의 정밀모방예술(l'art du tromp-l'oeil)이라 부르는 스키아그라피아(skiagraphia)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 예술이 선의 원근법(perspective linéaire)에 의해서든 명암과 색깔의 방식에 의해서든 간에 관람자에게 착각을 부여한다고 보았다. 이 선의 원근법은 아가타르코스(460경) 아이스킬로스를 위하여 비극의 무대장식에 그렸다고들 하고, 데모크리토스와 아낙사고라스도 이런 원근무대장식법(la scénographie)을 새로운 기술의 규칙이라 정의했다고들 한다. 이 그리스의 원근 장식법은 15세기 플로랑스의 합리적 구성(costruzione legittima) 즉, 인위적인 원근법(perspectiva artificialis)과는 다르다. 이런 탐구는, 메를로 뽕티(Merleau-Ponty, 1908-1961)에 의하면, 존재의 심연(la profondeur de l'Etre)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예술을 수단으로 탐구한 첫 번째 방식으로 여긴다. 이런 정밀모방예술가로서 가장 완벽하게 그린 사람은 아폴로도로스(Appollodore)일 것이다. 여기서 그림자(스키아, skia, ombre)란 대상밖에 있는 그림자가 아니라, 대상에 나타난 명암의 점진적 정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한가지 덧보태면, 그리스 전승에 의하면, 정밀모방의 대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제욱시스(Zeuxis)와 파르하지오스(Parrhasios)는 작품을 걸어놓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전자가 그린 그림에 그린 포도를 쪼았던 참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구경온 사람이 벽의 커튼을 열려고 했는데 그 커튼은 후자가 그린 그림이었다고 전한다. [이런 정밀모방예술에 대한 전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솔거가 그린 소나무는 너무나 소나무를 닮아서 까치가 날아와 부딪혔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로마의 장군이자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e)의 『자연사』(35권 36, 5)에서, 헤겔의 『입문』(p.47)에서, 곰브리치의 『예술과 착각(L'art et l'illusion)』(p. 259)에서도 전한다.

다시 『국가』편으로 돌아가서, 색깔에 속는 것(602c)은 어떤 영혼에서인가를 자문하면서, 플라톤은 심리적 문제로서 눈의 기만적 인상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영혼의 혼동(tarachê)으로 여긴다. 이렇게 눈을 통해 기만하는(skiagraphia) 회화는 마법(sorcellerie, goêteia)과 멀지 않다(Ibid, 602b)고 한다. 정밀모방은 일정한 거리에서 일정한 시각에서 이루어는 임에 틀림없다(『테아이테투스』208e). 이런 설명을 『공화국』편(586b,c)에서 하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인상은 사라지고, 착각은 거짓쾌락처럼 혼동된 것 속으로 사라진다. 플라톤이, 모방(mimêsis)이 본질인 그 당시의 예술을 비방한 것은, 이데아의 관조가 조각상을 찬양하는 인간의 운동[운동서 즉 생명성]을 환기시키는데 비하여, 그 예술이 시각에 따라서 실재인 것[실물]의 감정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크라틸로스』편(432b)에서 지적하듯이 완전은 이미지를 파괴하고 동일성에 이른다면, 『소피스트』편(240b,c)에서는 정밀묘사에서 성취한 모방은 진실이자 동시에 허위 즉 현재 있는 것이자 현재 있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즉 존재(on)와 비존재(mê on)의 혼동된 교차인 셈이다.

II. 예술의 유혹

플라톤이 정밀모방이란 점에서 화가 시인 소피스트를 비난한다. 이런 모방은 매끄러운 거울의 반사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모방기예로서 거울은 어떤 매혹도 없으며, 이런 예술의 주술(magie)은 은유도 아니다. 그런데 파라독스하게도 착각(l'illusion)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어떤 존재는 매혹(fascination)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회화의 색깔을 지칭하기 위한 단어 파르마콘(pharmakon)은 마법사의 미약(le philtre)과 마찬가지로 환기시키지 않는가? 플라톤도 회화를 비난했지만, 모방이 본질인 기예(art)가 미적 권능(la puissance)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그 권능이 있다는 것은 예술작품이 어떤 심리적인 상태를 환기할 수 있는 대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상징물로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성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체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이 가진 의미가 감상자에게 미적 취향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기인의 기억 속에서 어떤 단독성(개인의 고유한 애정적 상흔(traumatisme)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류의 본원적 의식의 한 부분(들뢰즈가 말하는 세분화된 한 의식)을 자극하면서 거대한 힘(puissance, 신적 능력이라 부를 수 있는)을 치솟게 한다는 점에서, 즉 작품 자체가 감상자에게 환희와 고뇌의 감정과 감동의 너울(아우라)를 생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목표로서 새로운 신성(니체의 초인의 권능)을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매혹적인 측면이 있다. 니체가 『와그너에 반대하는 니체』에서 "미학은 응용된 심리학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정식화하여 말한 것도 플라톤과 예술 사이의 관계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에서 미는 반대의 효과를 갖는다. [이점에서 니체는 플라톤주의의 뒤엎음 일뿐만 아니라 플라톤에 대해서 (비대칭적) 대립이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미는 감성과 신체에서 등을 돌리는 것인데 반하여 니체는 감성과 신체를 지니고서 미로 향한다는 것이다.

『법률』편에서 조심스럽게 이상국가를 세우는 이방인(이 대화편의 한 인물로서 아테네출신이며 이름이 없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불린다)은, 젊은 시민들의 도덕 교육에서 음률(la musique, 노래와 춤을 포함하는)은 본질적 역할을 한다(654b)고 한다. 또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이 건강한 상태로 지내기 위하여 따라야 할 식이요법을 권하듯이 법률가는 기예가 신체와 정념에 미치는 영향을 규제하고 공리적으로 다루어야 한다(797d,e)고 한다. 마찬가지로 『국가』편(401d)에서 이 음률의 문화는 그 동기에서 최고의 탁월함이고, 영혼의 핵심에 리듬과 조화보다 더 깊숙이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아폴론의 선물인 음악에 대한 찬미는 향연(축제)과 포도주 사용의 엄격한 규제하는데, 이런 규제는 디오니소스의 능력을 아주 분명하게 의식한 것이다(『법률』672d). 이런 장면을 『향연(symposium)』에서보면 소크라테스만은 많을 술을 마시는 향연에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심포지움은 함께 술 마시다라는 뜻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기예의 비합리적 유혹을 저항하는 사람이고[그렇다고 금욕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음악에게 정념 교육에 대한 아폴론의 기능을 부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과 아이러니는 정화(catharsis)의 부정적 기능이다. 아이러니를 사용하는데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진리에 이르는 길에서] 아이러니를 사용하는 소크라테스는 [상승의 길에서 현기증날 정도의 혼란함을] 마비시키는 거짓 모방자인데 반해, 다른 방식으로 아이러니를 사용하는 예술가는 자신의 무지를 대중의 거울로 변형시키면서 각성을 일으킨다. 그래서 『국가』편(607b)에서 말하는 철학과 시(학)사이의 케케묵은 논쟁이 나온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이온』편(532c)에서 음류시인인 이온이 시인 호머[의 시]는 기예(술)도 지식도 아니다 라고 해석한다고 말하고, 『소크라테스 변명』편(22c)에서 말하듯이 [호머의 시와 같은 것은] 비합리적 방식이고 어떤 본능의 덕분이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시인들은 자신이 말한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무녀처럼 무녀자신의 견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탁자가 의도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인가?] 화가들은 자신이 그린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뮤즈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예술가는 디아노이아(추론지식)를 넘어서는 직관에 이른 신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런 신성에 관한 것은 『메논』편의 마지막에서, 그리고 『법률』편(682a)에서도 분명하게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파이드로스』편에서, 시인과 증명자와 구별하게 해주고, 시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망상(délire, mania)은 신들의 은혜(un bienfait)이다(245a)고 한다. 하이덱거(Heidegger)의 해석에 따르면 호머에 대한 플라톤의 존경은 시인의 신성에 대해서이나, 모방을 본질로 하는 비난은 그래도 역시 분명하다.


III 미와 예술적 창조

플라톤은 예술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에서 우리는 기예에 대한 심리학적이고 생리학적인 결과의 분석을 발견할 수 있으며, (예를 들어 18세기의 디드로의 미학과 같은)미학을 재발견하게 하는 시적 열정의 서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플라톤은 기예들을 미(美)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방(mimêsis)에 의해서, 다시 말하면 존재론적 열등성에 의해서, 진실한 실재성 즉 이데아에서 멀어짐에 의해서 규정한다. 이때 [이미 이데아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미는 그 반대의 방향으로 향하는 운동으로 이데아로 다시 이끌려 간다. 그렇다면 플라톤에서 미의 개념이 그의 고유성과 다른 것인가? 사정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히피아스』편에서 플라톤의 방식은 미의 본질의 일자(unité)에 다수의 아름다운 사물들을 함께 모으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일자로부터 현재 있는(présent) 사물의 각각이 이일자의 현전(présence) 때문에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난다(294a). 이런 것을 도식화하면 아름다움의 본질 즉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물음은 3가지로 답할 수 있다.

a) 플라톤은 아름다운 사물 자체가 있다고 인정한다. 그것은 어떤 뒤섞임도 없는 쾌락을 제공한다(『필레보스』51a). 색깔과 기하적 형식은, 소피스트 히피아스가 한순간 미의 본질을 발견했다고 믿는 논증에 의하여, 소리와 향기처럼 아름답다고 한다(『히피아스』298b). 그리고 "음식과 음료에 관련한 감각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당신은 말하지 않는 가요?(Ibid, 298e)" 소크라테스는 다른 길로 들어서서 시각과 청각에서 오는 쾌락이 보다 더 아름다운지(선한지) 그래서 그 쾌락이 "유용한" 쾌락이 아닌지 자문한다(303e). 그러면 순수쾌락은 아름다운가? 플라톤의 미학에 대한 거부는 『법률』에서 이방인의 증명을 따른다면 더욱 분명하다. 이방인은 쾌락이 모방 기예들과 특히 음악을 판단하게 하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를 자문한다(668a).

b) 노에시스와 더 많이 관련되고 아이스테시스와는 덜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아름다움은 부분들의 비례와 전체의 조화(harmonia)에 남아있다. (여기서 조화란 피타고라스의 옥타브(l'octave)를 지칭한다(『파이돈』85e에서).『정치가』(284b)에서 기예들은 선량하고 아름다운 실현을 얻게되는 것은 정확한 척도를 지키면서이다. 『필레보스』에서 "도처에서 척도와 비례는 미와 어떤 탁월한 것을 생산하는 결과로 삼는다(64e)."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헤라 여사제의 조각상들과 같은) 조각상을 그리는 예술가의 작업을 상기시키면서 "전체의 아름다움을 실현하기 위하여 알맞은 색깔을 각 부분에 적용해야 한다(420c)." 이 아름다움은 기예의 작품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화가의 생산처럼 건축가 또는 조선가의 생산작업(production)에 속한다(『고르기아스』503e, 『파이돈』86c) 결국 아름다움은 지적 영역의 실현으로 정의된다. 『고르기아스』편은 "이들 각각은 한 사물을 다른 사물에 알맞거나 적합한 것이 되도록 강제로 위치하게 하거나 총합이 질서와 배열을 실현하는 작업을 구성하는 경우에까지, 이들 각각이 사물들 각각을 제자리에 둘 때, 이들 각각은 어떤 순서를 제시한다(503e)." .

c) 내재적 또는 내부의 미의 형식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상호강제와 전체의 조화는, 상호강제와 조화자체를, 목적에 정합성에 근거한다. 이런 의미에서 무화과나무로 만든 숟가락은 그 숟가락이 완전하게 숟가락질하는 기능에 적용되기 때문에 아름답다(『히피아스』(290d)고 하겠다. 이처럼 미의 본질은 유용성이다(『고르기아스』494d). 미를 유용성에, 힘에, 어떤 사물을 생성하는 능력에 동화시키는 것을 소크라테스는 칸트가 말하는 변형된(métamorphosé) 이상한 논증에만 대립될 수 있다. 여기서는 순수 쾌락의 절대미에서, 박자와 조화에 맞는 지적 파악의 미를 거쳐, 그 본질이 유용성인 상대적 미에까지 적용한 것이다. 사물이 아름답다는 것은 단일하고 영속적인 이데아 즉 미의 이데아에 사물이 참여에서이다. 이런 미의 이데아의 참여는 『향연』에서 변증법적 상승의 참여에 해당한다. 아름다움의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름다운 감각적 사물의 다수성을 통하여 정의에 의한 일자의 탐구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에는 미의 기예가 있고, 이 기예는 변증법적이고 『필레보스』편에서 말하는 최고의 기예이며, 근대적 의미에서 예술의 하나는 아니다. 플라톤에서 미의 기예는 쾌락을 순화하는 것이고, 쾌락의 본질을 예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미(최고미, la Beauté)는 감각적이라 할지라도 기예의 작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으로 금욕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모방의 기예는 최고미의 탐구에 방해물이다는 것이다. 에로스(Eros)는 최고미에 대한 사랑이다. 『향연』에서 최고미에로 상승은 신체의 미에 대한 사랑, 지성, 법칙, 학문에 대한 미, 그 다음에 최고미 자체에 대한 상승이다(『향연』210-211). 이런 상승은 역시 인식론적으로 피스티스, 디아노이아, 그 다음에 노에시스로 상승 즉 존재론적으로 이데아로 상승이다. 에로스 즉, "마법사처럼 주술적 미약의 발명자처럼 교묘한(Ibid 203d)" 다이몬(Démon)은 약간은 소피스트이고 일종의 신적 예술가가 아닐까?

『향연』에서 여사제 디오티메(Diotme)이야기를 빌어서 지식(에피스테메)과 무지 사이에서 사랑(Eros)은 영혼불멸의 욕망에서 활기를 얻는다. 이 욕망은 얘기를 갖고자하는 욕망의 성적형식에서부터 출발해서 순화되고 승화되어 교육적 작품을 행하는 욕망이 된다. 말하자면 인간적 욕망이 문제인데, 영혼불멸자는 욕망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세계를 초월해서 표현된다. 『향연』의 변증법은 이런 예술적 창조의 표현을 보여주고 있고, 이런 방식을 신플라톤주의로 연결되고 프루스트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다. [들뢰즈가 프루스트를 통하여 감각의 논리를 전개한 것은 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 미의 감수성(affection)의 역할에 대한 한 견해

현대예술론의 한 화두거리로서, 예술작품이 어디에 있든 간에, 예술작품에서 우러나는 비의적(ésotérique)현상을 아우라(Aura)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이 아루라의 환상(phantasme, 비의적 현상이란 의미에서)을 비의적, 불가사의적, 주술적, 신비적, 내밀한 의미가 왜 생산되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더 나아가, 이런 아우라의 전이에는 인간의 소망(독어로 Wunche, 불어번역 désir, 욕망)을 미래에 투영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 참여적 투영을 실현이라는 것은 역사에서 인간본성의 실행이며, 시회적 실천에서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미래적 투영이기에 인간이 부여한 의미의 산물이다. 역사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아우라가 투영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역사의 자기 발전에서 의미체를 형성하는 아우라는 역사적 의식의 산물인셈이다.

정치의 예술화(나치의 선전술)과 예술의 정치화(소비에트 선전예술)는 둘 다 같은 위계에 속한다고 우리는 본다. 하나는 소박한 관념성을 강조했고 다른 하나는 통속적 유물론에 의탁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역사와 진화를 드러내는 변장된 범신론으로서 질료형이상학 즉 질료변증법에서 예술의 생성론은 위의 둘과는 다른 위상에 있다.

『안티조선』사이트에서 미학방을 열고 있는 진중권님에 의하면, 영화 예술에서 아우라(Aura)가 작품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옮겨갔다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한다. 아우라의 전이(transfer)라는 측면은 예술작품이 여기 '지금 있는 원 작품'에서 아우라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의 모방이라 할지라도 작품에 있다기보다 작품의 작가와 작가의 발굴자로서 이론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메타퍼는 작품의 현상에 있다기보다 작품이 갖는 시대성과 그 작품 생명성과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연결된 관점의 창조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아우라의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아우라에 대한 자아의 환각은 자신을 잃어버린 환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자신을 유지하면서 오로라는 생산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전체와 단일자간의 연관에서 나온다. 이런 아우라는 자아상실에서 오는 전자의 지배방식과 달리, 후자의 경우는 내적 연관의 공감과 상호침투에 의한 일치감에서 온다. 이 후자의 위상적 연관은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구체적이고 무매개적으로 느끼는 원형(archtype)이다. 여기서 이런 두 가지의 체험은 신비주의의 두 가지 양식과 닮았고, 인식론의 측면에서 존재의 두 속성을 인식하는 경우와 비유될 수 있다.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두 위상으로 가지는 경우도 거의 같은 의미이다. 이런 것은 사유의 행태와 실천의 행태에 방향이 다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사유는 시간의 근원으로서 원인성을 묻는다면, 실천은 미래에도 적용될 수 있고 유용할 수 있는 목적성(결과라는 의미는 아니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적성은 관념론의 영원한 목적이나 종말론과 닮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적해두자.

그리고 인민의 역사와 인간의 생명의 발전 진화의 과정에 인간적 생명적 노력의 과정과 노력의 결정(크리스탈)이 이해되고 감지될 때, 아우라는 빈 존재(빈 상자) 또는 무의미(무심한 대상)에 불현듯이 상징과 내용이 채워지고, 거기에 인간의 정서와 감화가 덧붙여진다. 이런 형성물(formation)은 단순히 대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심성과 동화하여 새로운 형성체가 되어 감상자(보는 사람)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이런 대상이자 영향자이자 인도자이게 된 빈존재(존재론적 무(존재)도 논리적 비존재도 아니다)가 생성한 것이 아우라(정신분석적으로 감화, affection)이다. 다시 말하면, 신이라는 말뿐인 소리(signifiant, 중세의 의미에서 flatus vocis)에 개념 설정(signifié)이 덧붙여져서, 그것이 갑자기 존재론적으로 대상이 될 뿐만이 아니라(가벼운 반질거리는 종이조각 위의 그림 일뿐 것이) 인식론적으로 과거를 담고 미래에 참여하는 의미(그림 속에 추억과 삶의 흔적에 대한 이야기와 미래의 희망에 부풀었던 아련한 기억이 솟아나는 것으로)가 생겨난다. 이런 측면에서 완성과 충만에로의 의미를 들뢰즈(Deleluze, 1921-1955)는 『차이와 반복(1969)』에서 첨가한다(soutirer), 사색한다(contempler), 문제 제기한다(questionner) 라고 말한다. 인간이 왜 무의미한 한 장의 복사된 그림에서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투영하게될 때, 하찮은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의미를 창발한다. 마치 무의식이 의식으로 솟아나려는 것과 같기에 때문에, 꿈과 실언, 실수행위, 나아가 어린이의 행동, 미친 이의 이상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프로이드가 의미 있다고 했듯이, 예술 작품에서 솟아오르는 이 새로운 창발은 그만큼 의미 있다. 이의미가 플라톤이 최고미에서 이루어지는 미로서 '미의 신성'과 같은 의미 일 것이다. 이 신성이 인식론적으로 최고라고 한다고 해서, 진리의 최고치, 도덕의 최고선, 종교의 최고 성스럼과 같은 위계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메타퍼에 속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서로 위상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메타퍼에 속지 말자. 플라톤이 진리를 설명할 때조차도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우화처럼 메타퍼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언어의 번역불가능성처럼, 종교의 성스럼을 언어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듯이. 예술의 미도 개념적으로 정의해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가 말(parole)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그래서 말로 표현되면서 개념에 이미 아우라가 묻어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화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이미 의미를 담고 있다.

나는 가끔 예술가가 자기 작품을 만들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중간에 버리는 작품을 깨끗이 사라지게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듣곤 했다. 마치 한인간이 살아가다가 자신의 미래를 더 이상 이어가거나 생성 발전해나갈 수 없다는 포기로서 끝을 맺고 그리고 사라지고자 원할 때 어떤 흔적도 남김없이 사라지고자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까? 19세기 생물학이 발전함에 따라, 살아온 생명의 과정과 최고의 완성도(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를 죽음에서 보고 다음세대도 이를 거쳐간다고 하면, 죽음의 끝은 물질적 발전 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하고, 그 최고치의 연구는 다음에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의 이 글인 초고도 휴지통으로 사라져 없어져 버릴 한갓 헛된 것일 지라도, 이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삶에서 밟고 지나가는 것만큼, 그 문제에 대해 발전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난제는, 유전의 방식을 인정하는 자에 한에서 그 인간이 과거의 조상의 과거를 잊고 일정부분을 다시 학습(수련)함에도 불구하고, 누구(조상의 계보)의 유전을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은 논리처럼 단일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배적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 분배적 차이는 외연의 차이가 아니라, 실질(hyle)과 내용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각각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나 다르다, 같기 때문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평등과 자유를 이야기한다. 이 다르다는 것은 계급적 위계가 아니라 위상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지배한다 말인가? 사는 노력만큼, 개혁과 혁명의 노력만큼 세상을 변형(transformation)시킬 수 있다. 보수라는 이름 앞에 개혁적 혁명적이란 접두어로 위장하는 것은 보수자가 자신의 길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은 당연하다, 누가 죽기를 바라는가? 그러나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인간을 스스로 반성하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