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韓國文學感想]

너무도 쓸쓸한 당신 2. - 박완서

好學 2010. 10. 4. 21:20

 

     너무도 쓸쓸한 당신 2. -  박완서    
그러나 마주앉자 두 사람은 할말이 없었다. 
졸업식까지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그가 꾀죄죄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반들반들 벗겨진 구릿빛 정수리에서 샘솟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이었을 때의 별명이 놋요강이었다. 그는 워낙 땀이 많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머리였던 건 아니다. 
검은 머리가 뻣뻣하게 곤두서 약간은 사납게 보이던 젊은 날, 
아아, 덥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들입다 한 번 머리를 흔들면 
땀방울이 샤워처럼 사방으로 튀곤 했었다. 
그땐 그를 사랑했었나? 
그녀는 생각날 듯 날 듯 감질나는 옛기억을 붙잡으려는 시늉으로 양미간을 모았다. 
한때 있었던 것의 사라짐, 그게 사랑이든, 삼단 같은 머리칼이든 간에, 
그 뒤엔 일말의 우수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허나 그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우린 부딪히면 안 돼. 피차 보호막 없이 부딪힌다는 건 잔인한 일이야. 
그녀가 밑도끝도없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충분히 땀을 들이고 난 남편은 큰 소리로 주문을 했다. 
“여기 뜨거운 코피 두 잔 다고. 
생각 같아서는 비싼 냉코피를 팔아주고 싶다만 
이렇게 춥게 해놨으니 어떻게 찬 걸 먹냐?” 
구석구석까지 잘 울려퍼지는 예의 건조한 고성에 그녀는 허를 찔린 듯이 질겁을 했다. 
페스타롯치에 웃던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어련히 주문 받으러 올라구요.” 
“여기서 뭣하러 마냥 앉았나. 얼른 자릿값이나 하고 가봐야지.” 
“아직 시간 많아요. 여기 좀 좋아요. 시원하고 요새 애들 구경도 실컷 하고…….”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백주에 놀고먹는 아녀석들을 위해서 
전력을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내 원 한심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옛날 고렷적 도덕책 같은 소리만 하는 
남편을 외면하면서 그녀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 마음을 누군가가 읽고 안 되겠는 게 뭐냐고 묻는다 해도 아마 대답을 못 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두서가 없고 애매했다. 커피가 왔다. 
남편은 나도 요새 불랙인가 뭔가에 맛을 들였지, 
괜찮드라고 하면서 육개장 국물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언제 떠난데? 갸아들은.” 
“미국 학기 시작할 때 대가야 한다니까 일간 떠나겠죠, 뭐.” 
“떠날 때까지 데리고 있지 그랬어? 새며느리 말야. 
아들 가진 쪽에서 그 정도는 본때를 보여야 하는 거 아냐? 적어두.” 
“아들 좋아하시네.” 
그녀는 울컥 치미는 반감 때문에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는감?” 
당신이 언제 틀린 말 한 적 있수, 하고 되받으려다 말고 그냥 픽 웃고 말았다. 
70년대 말까지 남편은 평교사였다. 
남편은 교감, 교장이 된 후에도 그때를 한창 날릴 때였다고 회상하곤 했는데 
시골 소학교 선생이 날릴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교감이나 교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 
그러니까 그나마 출셋길이 열려 있던 시절이란 뜻이었을까. 
새마을 정신이 어린이들 의식까지 짓누른 유신시대였다. 
그녀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숨이 막혔다. 
그가 담임 맡은 반은 온통 국민교육헌장으로 도배를 했고, 
한 아이도 빠짐없이, 지진아까지 그걸 달달달 외우는 반으로 유명했다. 
그걸 입술로만 외우는 게 아니라 뜻을 충분히 새겼다는 걸 
알아보려는 경시대회가 군내에서 있었는데 그의 반은 거기서도 일등을 먹었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된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였는데 
그의 교장실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사진이 
가장 높은 정면에 으리으리하게 걸렸다. 
그건 시골학교라서가 아니라 장관실이라 해도 아마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문제는 갈등없는 추종이었다. 
마치 주인이 바뀐 노예처럼 주인의 이름이나 인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이라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사진이 바뀌고나면 그의 표정과 말투도 사진을 닮아 달라졌다. 
조회 설 때마다 늘어놓는 장광설의 내용도 물론 
그 최고권력자의 어록에서 따왔을 것이다. 
그가 만일 출세지향적인 권력의 측근자였다면 그런 언동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알아서 기는 교육공무원의 소심증이었다고 해도 
아내에게만이라도 그걸 더럽고 치사하게 여기면서 
참아내기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그녀도 어떡하든 위로해주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부장의 고독한 책무는 
어쩌면 정의감 이상으로 비장해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위로가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위로가 필요없는 인간처럼 참을 수 없는 인격이 또 있을까. 
그의 체제순응은 강요된 것도 의도적인 것도 아닌 체질적인 거였다. 
그의 매력없음의 본질 같은 거였다. 
그와 다시 합친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생각하기가 싫어서였다. 
그러나 오늘은 표면적인 별거의 이유가 완전히 소멸되는 날이다. 
그녀가 교장 관사에다 남편을 혼자 남겨놓고 
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온 것은 채정이가 대학에 붙고 나서였다. 
채정이가 다닌 시골 고등학교에서 서울의 웬만한 대학에 합격자를 내기는 
채정이가 처음이어서 학교 정문에다 크게 플래카드를 내걸 정도로 영광스러워했다. 
부모가 우쭐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의 뒷바라지는 유난스럽고도 고달픈 거였지만
자신의 학부모 노릇에 자신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드디어 딸이 떳떳하게 그 시골구석을 벗어나게 됐다는 데 
그녀는 터질 듯한 기쁨을 느꼈다. 
채정이 밑으로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채훈이가 남아 있었다. 
아들은 딸보다 더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그녀의 욕심과, 
과년한 딸을 혼자 객지로 내돌릴 수 없다는 
남편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져서 
그들은 남 보기에도 그들끼리도 조금도 무리 없는 별거상태로 들어갔다. 
그녀가 처음 자리잡은 서울의 지하 셋방은 
위층에서 오줌 누는 소리, 입맛 다시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그래도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교장 관사를 벗어난 게 
꿈이 아니라 생시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실로 황홀한 기쁨이었다. 
조회 설 때마다 판에 박은 듯 만날 똑같은 교장의 훈시에 귀가 다 먹먹해지고, 
언제나 저 놋요강 두들기는 소리 안 듣나 하고 지겨워하는 
아이들의 수군거림까지 들릴 듯한 교장 관사 생활은 
고문의 기억처럼 진저리가 쳐졌다. 
아이들 뒷바라지는 핑계일 뿐 그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것은 교장 사모님 노릇을 
안 하는 거였다는 걸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별거에 들어간 후에도 남편의 봉급은 다달이 거의 다 그녀의 통장으로 입금됐다. 
아무리 혼자라도 어떻게 그 나머지로 살까 싶게 남편이 떼어낸 액수는 미미했다. 
그러나 서울 생활 역시 그 봉급으로는 빠듯했으므로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얼마 안 살고 나서 채훈이 과외공부를 시키기 위해 그녀도 돈벌이를 하게 됐다. 
아파트를 낀 상가의 화장품 할인매장을 하는 친구를 도와주다가 
그 가게를 아주 인수하게 됐고, 
국산 화장품 외에도 외제 소품을 겸함으로써 수입을 늘려나갔다. 
자신이 생각해도 돈 버는 수완이 있었고, 운도 따랐다. 
아이들 복인지도 몰랐다. 
둘의 학비가 한창 많이 들 때 그녀의 수입도 피크에 다다랐다가 
근처에 대형 백화점이 생기면서 조그만 상가가 사양길에 들어서자 
학비 걱정도 줄어들다가 아주 안 하게 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