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韓國文學感想]

허생전 1 - 박지원.

好學 2010. 10. 3. 22:43

 


  허생전 - 박지원.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일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 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허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앟고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망건 갑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디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게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