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韓國文學感想]

너무도 쓸쓸한 당신 1. - 박완서

好學 2010. 10. 3. 22:46

 

 너무도 쓸쓸한 당신 1. -  박완서    
그녀가 경험한 졸업식은 하나같이 추웠었다. 
그녀 자신의 졸업식을 비롯해서 아들 딸의 각급 학교 졸업식의 공통점은 혹독한 추위였다. 
그러나 가장 추운 졸업식은 교장 관사의 따듯한 아랫목에서 
목소리로만 듣던 시골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시골 공기는 도시보다 보통 3,4도는 더 춥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도시 아이들보다 입성이 부실한 시골 아이들이 얼마나 추울까 하는 
최소한도의 배려조차 없이 교장의 졸업식사는 장장 반 시간 이상 계속됐다. 
해마다 같은 소리였다. 
짖어대듯 정열없는 고성도 변함이 없었다.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보태어 살의까지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귀를 틀어막아도 보고,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어보아도 
그 소리를 참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언 발이 결국은 무감각해지듯이 들끓는 분노가 
체념으로 잦아들 무렵에나 교장의 식사는 끝났다. 
그녀는 남편 직장과 겨우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 데 절망적인 염증을 느꼈다. 
교장선생님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후기 졸업식은 처음이었다. 
후기 졸업식을 코스모스 졸업식이라고도 한다는 소리를 어디선지 들은 것 같지만 
그 가냘픈 꽃들이 피어나게 할 산들바람이 스며들 여지가 
있을 것 같지 않게 늦더위는 견고하고도 끈끈했다.
 ‘파바로티’라는 밝고 넓은 찻집 안은 별천지처럼 냉방이 잘돼 있었다. 
갑작스러운 냉기가 데친 토마토처럼 
농익은 신열을 얄팍하게 개칠해서 그녀의 감각을 헷갈리게 했다. 
종업원들은 다들 타이츠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검정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몸매는 청년이라기보다는 
소년처럼 군더더기없이 청순하고 깡말라 보였다. 
저런 걸 유니섹스라고 하는 걸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되는 젊은이들이었다. 
하나같이 화장기 없이도 얼굴은 희고 곱살하고, 
정결한 생머리를 짧게 커트친 애도 있고, 뒤로 묶은 애도 있었다. 
바지에 비해 다소 헐렁한 윗도리를 걸친 가슴은 아무렇지도 않게 빈약했다. 
그녀는 그애들의 중성적인 엉덩이나 넓적다리를 
슬쩍 만져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곳은 아이스 바처럼 단단하고도 시릴 것 같았다. 
그애가 만일 남자라면 그짓은 성추행이 될 것이다. 
온몸 도처에서 개칠한 냉기를 뚫고 열꽃처럼 피어나는 열망에 그녀는 으스스 전율했다. 
이런 요상한 느낌은 얼마 만인가. 난생 처음인 듯도 했다. 
대학가 커피숍은 나이 지긋한 이들이 갈 데가 아니란 소리는 
여러 번 들어서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은밀하거나 퇴폐적이지 않을 뿐더러 
음악이 옆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도록 시끄럽지도 않았다. 
나무랄 데 없이 건강하고 정결하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음악도 첼로인 듯싶은 음색이 파스텔조로 은은하게 
실내에 번져들도록 있는 듯 마는 듯 낮춰놓고 있었다. 
튀는 점이 있다면 종업원들의 검정 유니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기도 전인 남편의 촌티에 자꾸 신경이 써질 만큼 
그녀 보기에 이 커피숍의 세련미는 완벽했다. 
남편과 만날 장소를 파바로티로 정해준 것은 딸 채정이었다. 
채정이 졸업식 때도 그들 부부는 별거중이었다. 
시골서 당일로 올라오는 남편과는 졸업식장 근처에 있는 
초대 총장 동상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대학에는 그 동상말고도 동상이 너무 많았다. 
남편은 누구 동상이라는 것은 확인해보지 않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동상 앞에 마냥 죽치고 앉아 있었으니 
식구들하고 만나질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날은 채정이가 오랫동안 연애하던 남자친구네 부모하고
처음으로 상견례를 치르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식이 다 끝난 후까지 찾아헤맨 끝에 가까스로 만나긴 했지만 
그날 촌스럽고 변변치 못한 남편 때문에 속상하고 초조했던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새록새록 울화가 치밀었다. 
새 사돈 될 집에 비해 내세울 거라곤 없는 집안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더욱 그날의 조바심은 피를 말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객들이 반 이상 빠져나간 후에 겨우 만나진 남편은 차라리 안 만나니만 못했다.
그 추운 날 오버도 없이 세탁을 잘못해 모양이 망가진 누비 파카에다 
색 바랜 껑충한 면바지를 입은 모습은 사돈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못봐주게 추비했다. 
채정이가 울상을 하고 엄마 귓전에다
 ‘난 몰라, 아빤 우리들이 미워서 일부러 거지처럼 하고 왔나봐’라고 속삭일 정도였다. 
평소에도 마음에 안 드는 건 뭐든지 거지에다 빗대는 건 
채정이의 아주 나쁜 버릇이었지만 그때는 듣기 싫지도 않았다. 
그쪽 식구들 앞만 아니라면 더 심한 말도 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두고두고 채정이 졸업식날을 악몽처럼 기억하는 건 
남편의 무신경한 옷차림 때문인데 채정이는 하마터면 
아빠를 못 찾을 뻔했던 게 더 기억에 남는 모양이었다. 
동생 채훈이의 졸업식을 앞두고도 또 아빠 못 만나면 어떡하냐고 그 걱정부터 하더니, 
제가 미리 학교 앞을 답사하고 와서 제일 찾기 쉽고 
노인네들도 눈치 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정해준 곳이 파바로티였다. 
딸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는 하면서도 
후기 졸업식에는 그닥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 않아 괜한 일이다 싶었다. 
채정이는 부모가 서로 못 만날까봐보다는 따로따로 오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집 가서 제 자식 낳고 살면서 겉보기에도 안정되고 철들어가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딸 때하고 달라서 사돈한테 그닥 신경이 써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아들이 좋다 싶은 게, 
사돈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거였다. 
사돈한테 죄 지은 거 없이 저자세로 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결혼식까지 치른 후가 아닌가. 
흉잡혀봤댔자였다. 
확실하게 칼자루를 쥐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들하고 대학 동기인 며느리가 아들이 군대 가 있는 동안 마음 변치 않고 
조신하게 기다려준 게 기특하긴 해도 꼭 그래 줬으면 하고 바란 것도 아니었다. 
기특하게 여기는 마음보다도 여자로서는 한물간 동갑내기라는 걸
서운해하는 마음을 더 드러내보이고 싶은 게 시에미의 꼬부장한 심정이었다. 
지금 처가살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사돈한테 면목없을 게 없었다. 
식 올린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고, 곧 둘이 같이 유학을 떠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 동안 시집살이를 안 시키는 걸 그쪽에서 고마워할 일이지 
이쪽에서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까만 타이츠의 소년, 어쩌면 소녀가 
유리컵에 얼음물을 갖다놓고 잠시 그녀 앞에서 지체했다. 
뭔가 시키기를 바라는 몸짓이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뭘로 하실 거냐고 묻는 건 
주문을 재촉하는 걸로 여겨질까봐 삼가고 싶은 듯,
나이에 맞지 않는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는 가버렸다. 
졸업식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나 남아 있었다. 
아빠는 분명히 일찍 오실 테니 엄마도 늦지 말라고 당부한 것도 채정이었다. 
딸의 아버지에 대한 그런 확신은 애정이나 믿음보다는 
촌사람 취급 쪽이 더 강했을 거라고, 그녀는 여기고 있었다. 
기다린다기보다는 방심한 시선으로 문 쪽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오고 있었다. 
불그죽죽한 넥타이로 목을 잔뜩 졸라맨 정장 차림이었다. 
그녀가 일어서서 여기예요 여기, 하면서 손짓을 하려는데 
먼저 그의 매마른 고성이 넓은 홀 안에 고루 퍼졌다. 
“여기가 페스타롯치 다방, 맞소?” 
종업원들은 물론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손님의 대부분은 고등학생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웬 페스타롯치? 하면서 여기저기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여기라고 외치는 대신 황급히 그에게로 다가가 소매를 끌었다. 
마누라를 보자 안심한 듯 그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내가 그래도 옳게 찾아왔구먼. 많이 기다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