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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好學 2010. 9. 25. 22:05

 

[ESSAY]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베라 홀라이터 에세이스트·방송인

나는 책에서 내가 겪은 '나의' 서울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다양성이 넘치는 카오스의 도시,
가끔은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하는 도시,
그 서울을 그려내고 싶었다

요즈음 내가 자주 떠올리는 소설 속의 인물은 요제프 K다. 카프카의 '소송'의 주인공인 그는 죄명도 모른 채 재판에 회부된다. 올해 7월 독일에서 출간되었고 이달 초 한국에서도 출간된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책 때문에 지난 8월 말부터 지금까지도 인터넷을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논란이 있었다. 책 내용 중에 들어 있는 "서울 지하철의 나쁜 매너를 '(사막)쥐'의 습성에 비유한 것"이나 "한국 젊은 여자들은 유행을 광적으로 좇기 때문에 미니스커트를 입는데 지하철 계단을 올라갈 때 왜 그렇게 가리면서까지 입을까"라는 지적 등이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말로 인터넷에서 떠돌자 조금은 요제프 K가 된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 중으로 알려진 외국인이기에 논란은 더 가열됐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죄명이 점점 더 부풀려져 가는 것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것뿐이었다.

내 책을 둘러싼 스캔들이 독일에 알려지자 독일에서는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독일에서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한국을 혐오하고 비방하는 글이 아니라 독일 독자들이 잘 모르는 나라, 독일과 너무나 다른 나라인 한국을 경험한 독일인의 유머러스하고 솔직한 현장체험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책이 출간된 이후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에서는 지금까지도 팬레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읽은 뒤 한국을 여행하고 싶어졌다며 저렴한 숙박시설이나 관광 정보, 어학코스 같은 실용적인 조언을 원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독일 책시장의 빈틈을 채워준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외국에 사는 독일인이나 독일에 사는 외국인의 삶을 그린 체험기가 여행서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 인기를 누리는 추세다. 독일의 주변 국가들, 미국, 캐나다, 호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책은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이전에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유럽인이 쓴 한국에 대한 책 중에 그나마 읽을 만한 것이 한 권 있었는데 80년대 초반에 쓰인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책이 왜 그렇게 적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 쓰는 사람에게 한국은 정말이지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고 재미있고 짜증 나고 기이한 현상들, 이색적인 이야기들이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알파벳을 배우는 여섯 살의 나에게 읽고 쓰기는 어른들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었다. 내 눈에는 어른들이 책 속에 비밀을 담아두는 것처럼 보였다. 호기심 많은 여섯 살짜리는 어느새 열일곱 살의 꿈 많은 문학소녀가 되었고, 단편을 발표하고 기사를 기고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내 직업이 되었다. 여섯 살 이후로 글쓰기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글을 쓰는 데는 소재가 필요했다.

나는 글쓰기의 소재를 모으기 위해 집중해서 살아가기로 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고 모르는 것은 뭐든지 알려고 했다. 이십대 초반부터 미지의 나라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르메니아, 카메룬, 몽골 여행에서 경험한 것들은 독일에 돌아온 뒤 내 이야기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소재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은 한국에 오고 나서였다. 끊임없는 소재거리와 수개월씩 집필에 매달릴 수 있는 시간, 그 두 가지를 한국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나는 한국에서의 내 경험을 썼다.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모르고 한국어도 잘 모르고 한국에 연고도 없는 새내기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을 꾸밈없이 그리고 싶었다. 이 책은 일부러 부정적 경험만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다. 개인적 체험의 가감 없는 기록이다. 서울의 일상은 내게 수많은 문젯거리를 안겨주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 비자 문제, 일자리와 집을 구하는 문제 등 서울에 사는 외국인이면 누구나 겪는 문제였다.

나는 책에서 내가 겪은 '나의' 서울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다양성이 넘치는 카오스의 도시, 가끔은 사람을 정말 힘들게 하는 도시, 그 서울을 그려내고 싶었다. 물론 내가 그리고 있는 서울이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는 1100만명의 서울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살아도 각자 다른 경험을 하지 않는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도 개인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주관적이지 않은 책이 어디 있겠는가? 책의 테마는 작가라는 개인의 눈을 통해 여과되고 결국 책은 한 개인의 생각과 경험을 반영하는 매체일 뿐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나는 한국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경험보다 나쁜 경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 듯도 하다. 이번 인터넷 스캔들에서도 배운 것이 많다. 일단 인터넷에 올라온 나에 대한 기사는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에는 인터넷 루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많다. 인터넷 루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컴퓨터만 끄면 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공포와 궁핍 속에 살아가며 오히려 이렇게 컴퓨터를 끄듯이 버튼만 누르면 사라지는 문제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