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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스와이-낭트의 자유로움

好學 2010. 9. 25. 22:03

 

[ESSAY] 스와이-낭트의 자유로움

 

 

이상철 LG 경제연구원 고문·전 광운대 총장

평범한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용기를 내어 자유인의 삶을 선택한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따로 있었다

늦은 연세에 나를 보셨던 어머니는, 형들이 입다 작아진 옷을 입혀주면서 "응, 옷이 너무 꼭 끼면 못쓰는 법이야" 하시며 새 옷을 입고 싶어하는 어린 나를 달래곤 하셨다. 나는 이 '헐거운 옷'을 입으면서 일찍부터 자유로움을 몸으로 느낀 것 같다. 아버지의 칼같이 엄한 규율을 지켜야 했던 형들과는 달리 막내라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현실에 얽매여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여하튼 나는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나에겐 너무나 헐거웠던 형들의 그 옷처럼, '자유의 동경'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내 몸 일부이자 습관처럼 감각으로 다가온다. 지금도 나는 현실 세계가 나의 자유를 속박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 도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선 그 어떤 무엇을 찾게 된다는 뜻이다. 나를 향해 진군하듯 다가오는 현실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나의 자유 의지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이 하나의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해준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를 갖기 원할 것 같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신도 두렵지 않을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인간이 자신과 맞짱 뜨는 사태를 신인들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신은 인간에게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결코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해서 사람들은 점집을 찾는다. 점쟁이들은 사주팔자의 여덟 글자(八字)가 인생의 DNA인 양 그것으로 사람의 지나온 과거를 용케 알아내고 미래에 대해서도 그럴 듯하게 '설'을 푼다.

일러스트=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문제는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도 늘 맞는 말만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학의 일인자 범증이 항우를 보고 첫눈에 천하통일을 할 사람으로 보아 그 밑에서 참모를 하다 나중에 유방을 보고는 자기가 틀린 것을 알고 크게 낙담을 했다든지 이인자로 알려진 방통이 적이 매복한 것도 모르고 진격하다 낙봉파에서 스러져간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세상만사의 법칙을 다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영화 매트릭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선택(choice)'이라는 말이다.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가상현실의 세상을 살면서도 인간은 자유의지로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간다. 그래서 컴퓨터가 만든 세상에서도 미래는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끝낸 뒤 계속 미국에 남아 6년 동안 미국회사에서 일했다. 내 할 일만 하면 세계 어느 곳보다도 자유스러웠을 그곳이 마치 목욕통에서 수영하듯 좁디좁게 느껴졌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첫 직장인 국방연구소에서 '차세대 xxx'라는 이름이 붙은 프로젝트들을 도맡아 했다. 자체개발 하려는 우리들은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하려는 사람들을 모두 '적(敵)'으로 간주하면서 그들과 투쟁하며 살았다. 후에 공기업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새롭게 연구소를 만들고 새 사업부서를 신설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급기야 새로운 무선통신회사의 초대 수장이 되었고 후에 그 모기업으로 옮겨서는, 공기업이던 회사를 민간기업으로 바꾸는 대변화를 가져왔다. 지나온 그 격랑 같던 삶의 중심을 지배했던 화두가 '자유'였다.

앉아서 돌아가신 것으로 유명한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을 생전에 친견한 자리에서 그는 인간의 궁극적 지향점은 '참사람'이며 그의 요체는 '자유로움'이라 갈파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새까만 눈동자로 상대방을 응시하는데, 그 눈빛이 마치 두 눈을 지나 뒤통수에 와 닿는 듯해서 전율했던 기억이 난다. 육신을 뚫고 지나가는 그 눈빛의 힘은 득도한 자유인만이 지닐 수 있는 정신의 날카로움이 아니었을까.

평범한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용기를 내어 자유인의 삶을 선택한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따로 있었다. 올 초에 무려 20년 가까이 소식이 없던 한 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영국의 웨일스에서 온 편지에는 20년 전 내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나를 안내해 주던 런던의 모 전자회사 홍보담당 직원이었다. 지금은 웨일스의 시골로 이사 와서 시냇물 소리와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를 벗 삼아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정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 편지봉투 뒷장에 무슨 '스와이-낭트(swy-nant)'라고 쓰여 있는 주소였다. 나중에 이메일로 나의 근황을 얘기하며 그 주소의 뜻을 물었다. 영어에 그런 말이 있느냐고. 얼마 후 돌아온 그의 답은 무척 의외였다. 그것은 물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본떠 주소로 쓴 것이고 그곳 사람들은 다들 그곳이 어딘지 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 큰 컵에 가득 따른 밀크티를 마시며 창문을 열면, 굴뚝을 돌아 웅웅거리던 바람이 마치 새로운 곳을 찾았다는 듯이 휘익 하고 들어와 커튼을 날리고, 자장가 같던 시냇물 소리는 '스와이-낭트' 하며 고함지르듯 집 속으로 들어 온다"며 그 속에서 글을 쓰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집 앞의 작은 마당엔 집 밖이나 다름없는 야생화들의 천국이고 겨울이면 어디가 집 경계선인지 알 수 없는 망망한 고립의 섬에서 생활을 한다는 그는 필경 우주의 모든 자유를 다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오십 후반에 들어선 그가 내가 그토록 바라는 바로 자유인의 표상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