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글]긍정.행복글

[ESSAY] 고객은 나의 심호흡

好學 2010. 9. 25. 22:06

 

[ESSAY] 고객은 나의 심호흡

 

 

송정희 보험영업사원·30년째

나는 올해로63세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나더러 언제은퇴할 것인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고객이 나를 떠나는 순간 나의 심호흡은 멎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객이 있는 한 나의 사전에는 은퇴는 없을 것이다

이순(耳順)을 넘겼지만 나는 매일 오전 6시10분 을지로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근하자마자 대걸레를 잡는다. 사무실을 정리 정돈하는 것은 늘 내 몫이다. 후배들이 이제 대걸레를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나는 이 일이 너무 즐겁다. 지난 80년 2월 보험업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올해로 벌써 30년째 대걸레를 잡고 있다.

매일 사무실을 청소하는 것은 내 직장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파산지경에 이른 가정을 살려야 하는 일념으로 보험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아파트 한 채가 몇 백만원 하던 시절인데 남편이 남긴 빚이 무려 3000만원이나 됐다. 빚쟁이들의 빗발치는 성화, 경매로 날아간 집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나를 보험 영업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보험 영업은 말같이 쉽지 않았다.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매일 매일 차비를 아끼기 위해 사무실이 있는 청량리에서 종로통을 걸어 다녔다. 하루에 걷는 거리는 줄잡아 30㎞가 넘었다. 겨울에는 내 발은 항상 동상에 걸렸다. 여름에는 양말을 두서너 켤레 준비해야 했다. 하도 걸어서 발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업은 쉽지가 않았다. 남편 거래처의 명함 몇 장 들고 시작했는데 3개월이 지나면서 찾아갈 고객이 없어졌다. 집안 살림도 엉망이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인감도장이 필요해 집에 갔는데 저녁 늦게까지 7살, 4살 난 두 아들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날씨에 떨고 있었다. 단칸방 월세에 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오후 3~4시만 되면 대문을 걸어 잠가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는 추위에 떨고 있는 애들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채무자들의 성화는 끊이지 않았고 먹고살 길은 막막해 남편, 친정 부모,아이들 앞으로 각각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계약도 잘 안 되고 집안일도 엉망이어서 포기하기로 하고 윗사람에게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런 차에 직장 상사는 교육을 권유했다. 117번 방문 끝에 계약을 성사시킨 한 일본 보험영업맨의 영업 수기가 나의 가슴을 꼭 찔렀다. 나는 다시 뛰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후퇴할 퇴로도 없었다. 자살은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종로통의 노점상,가게들을 훑고 다녔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하루는 청량리역 근처의 약국에 들어갔다. '보험 하나만 들어주세요'라는 말에 약국 주인은 '개시도 안 했는데….재수 옴 붙었다'며 물을 뿌렸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악착같이 일해서 반드시 부자가 돼야겠다는 것과 시간을 잘 관리해야겠다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내가 만약 오후에 약국에 들어갔다면 물 세례까지는 받지 않았을 터이니….

나는 정말 지독하게 일했다. 발로 뛰는 영업을 하다 보니 허리에 병이 찾아 왔다.

디스크로 입원했다. 너무나 화가 났다.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병실에서 잠재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병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병상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입원 20일 동안 70명에게 보험을 가입시켰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목소리가 잠기고 급기야 성대결절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입원해 있는 병원 인근 식당에서 고객을 만나기로 약속이 잡혀 있었다.

약속시간에 고객이 나타나지 않았다. 식당 주인에게 A4 용지를 한 장 달라고 해서 서빙하던 종업원을 불러 놓고 필답(筆答) 상담을 해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나는 회사에서 보험 영업을 제일 잘하는 설계사에게 주는 연도상 챔피언을 무려 네번이나 수상했다. 언론에 나의 이름이 대서특필 되고 그러다보니 나는 저명 인사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청와대에서는 95년 불우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타의 모범이 된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모아 놓고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나도 초청장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재한 오찬 시간 동안 나는 우리 회사 자랑을 20여번이나 했다. 듣고 있던 김 전 대통령이 "앞으로 삼성과 관련된 현안은 송정희씨와 의논하겠다"며 빙그레 웃었다.

매스컴을 타다 보니 이런저런 곳에서 강의 요청을 많이 해 오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KB국민은행, 외환은행 등에서 나의 고객관리 노하우를 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강단에 설 때마다 '고객은 나의 심호흡'이라고 강조한다. 심호흡을 못하면 죽은 몸이다. 영업맨에게 고객은 심호흡과 같은 존재다.

몇해 전에는 미장원을 운영하는 한 고객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 고객은 남편이 남긴 빚이 많았다. 보험금 2억4800만원을 수령해 빚 갚고 아이들 대학까지 보냈다. 이런 고객들과 호흡하는 게 어찌 보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험설계사로 나는 정상에 올랐다. 그건 과거의 일이다. 영업맨에게 어제는 어제일 뿐이다. 오늘과 내일이 있을 뿐이다. 나는 요즘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바지를 입지 않는다. 고객의 나이, 직업에 따라 옷을 골라 입는다. 내 사무실에는 문상에 대비해 검은색 투피스는 물론이고 고객에 맞춰 입기 위해 여러 벌을 준비해 놓고 있다.

나는 올해로 63세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나더러 언제 은퇴할 것인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고객이 나를 떠나는 순간 나의 심호흡은 멎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객이 있는 한 나의 사전에는 은퇴는 없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의 고객은 국민, 학교의 교육은 학생, CEO의 고객은 임직원들이다. 모두가 고객 섬김 마인드로 무장하는 더욱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