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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그곳의 가을은 찬란했다

好學 2010. 9. 25. 22:04

 

[ESSAY] 그곳의 가을은 찬란했다

 

 

양성우 시인·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나는 황폐해진 요즘의 고향이 아닌,
옛 고향의 모습을 배경으로 꿈을 꾼다.
내가 맨발로 강둑을 달리며 물총새를 쫓고,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을 세며
소월과 같은 시인이 되기를희망하던…

그곳의 가을날은 찬란했다. 들녘은 누렇다 못하여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곳곳에 허수아비는 혼자 취하여 우스꽝스럽게 서 있었다. 시절을 만난 참새들은 떼를 지어서 이 논 저 밭으로 몰려다니고, 우여어 우여어 흙팔매질로 새를 쫓는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 가운데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어쩌면 해지는 산그늘을 타고 오는 서늘한 바람의 탓이었을까? 반쯤은 마르고 푸석해진 풀잎이 이제 막 눕기 시작하는 밭 언덕에는 늙은 호박덩이들이 잠시 낮잠을 즐기는가 하면, 낮고 쓸쓸한 무덤들 너머로 총총히 어우러진 억새들이 춤을 추는 듯이 흰 머리채를 앞뒤로 주억거리고 있었다. 뙤약볕 내리는 헛간의 지붕 위에는 진홍의 고추가 널리고, 뒤뜰에서는 휘어진 나뭇가지 끝의 색 바랜 잎사귀들을 제치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고운 감들이 얼굴자랑을 했다. 동백도 밤송이들도 그렇게 익고, 가시나무 울타리에 셀 수 없이 열린 탱자들까지도 주황색으로 눈부셨다.

또 어느 해나 그렇듯이 그곳의 가을은 개울을 막고 물을 퍼내서 고기를 잡는 일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정말 어떻게 그리 많은 물고기가 흐린 물속에서 어울려 살고 있었을까? 피라미 참붕어 메기 쏘가리 새우 미꾸라지들, 아랫도리를 벗어던진 채 서로 히히덕거리거나 밀쳐대면서 그것들을 몰아서 잡는 재미는 직접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이 아니던가. 그 자리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야채를 썰어 넣고 끓인 물고기찌개를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장면은 마치 작은 축제와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젊으나 늙으나 가을걷이 다음으로, 때가 되면 개울을 막고 물고기를 잡을 생각으로 가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그곳의 가을은 늘 그렇게 왔고, 그때마다 드넓은 들을 에돌아서 흐르는 긴 강물은 여느 때보다 더 깊었다. 바람이 한 점 없어도 물결이 일었고, 그것들은 신명이 난 듯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기우뚱하게 돛을 펼치고 삐거덕거리며 바람에 몸을 맡긴 돛배들과 함께 몸집 작은 발통선들이 갈치나 고등어를 잔뜩 싣고 통통거리며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쯤이면, 서쪽 산등성이에 지는 노을을 뒤에 두고 기러기들은 끼욱끼욱 울면서 들녘을 날았다. 어떤 놈은 혼자 맨 앞장을 서고 다른 것들은 양쪽으로 나란히 줄을 지어 깃털구름의 하늘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무슨 신호로 그러는지 몰라도, 와글와글 강바닥을 훑던 청둥오리들도 행여나 기러기들에게 질까 봐서 그러는지, 새까맣게 떼를 지어 날아오르고 내려앉기를 온종일 거듭했다. 그럴 때에는 강물까지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일없이 출렁거리다가는 넓은 개펄에 몸을 던져 스스로 잦아드는 모양은 한 편으로 애잔했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지다 보면 그곳의 사람들은 누구나 무척 부산했다. 어느 한 사람도 쉴 틈이 없이 종종걸음으로 논과 밭을 오고 가느라고 발바닥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더욱이 어머니들의 경우라면 새벽부터 밤중까지 부엌일은 말할 것도 없고, 텃밭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들을 더듬어야 하는 힘들고 고된 일은 끝이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실을 잣고 베를 짜고 옷을 짓는 일까지 그 손으로 다 해냈다. 그이들에게 계절이 어찌 따로 있을까마는, 무덥고 긴 남루의 끝에 축복이듯이 밝고 풍요로운 때를 만났으므로, 별로 여유롭지 못할지라도 아무것도 남부럽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죽어라고 농사를 지어서 거둔 것이 다음해 봄이 되기도 전에 바닥을 볼지언정, 곡식을 팔아 돈을 사서 자식들의 학비로 보내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것을 어찌하랴. 세상의 모든 부모가 다 같지만, 특히 그이들에게는 자식들을 멀리 도시로 내보내서 공부시키는 것이 살아가는 낙이요 보람이었으므로.

그래서 그곳 들녘의 하루해는 너무도 짧았다. 들의 끝머리에서부터 집 안마당에까지 등에 볏짐을 지고 나르는 남정네들에게는 잠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도 아까웠다. 논둑에 선 채로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고, 다시 논바닥에 들어가서 허리를 굽히는 모습들은 절대 한 폭의 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곳 사람들의 생활이었으며 현실이었다. 마침 때가 되어서 새참을 머리에 이고 들길을 건너오는 아낙들의 실루엣마저도 그곳에서는 새삼스럽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가을을 살아가는 이들은 틈만 나면 지게막대기로 장단을 맞추며 육자배기에 흥타령을 주고받았고, 더욱 흥이 오르면 수제비 칼국수를 나눠먹으며 밤새도록 깽매깽매 풍물도 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공터에 영화가 들어오면 줄을 지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거기에서 처녀총각들은 연애도 했다. 그리고 또 읍내에서 나락수매가 있는 날이면 어른이건 애들이건 집안을 비우다시피 했고, 누구네 집에 갑자기 초상이 나거나 새신랑이라도 드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은 여지없이 일손을 놓았다.

이것이 바로 내 옛 고향의 가을날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거나 변하고 말았지만, 이런 풍경들만은 내 마음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황폐해진 요즘의 고향이 아닌, 옛 고향의 모습을 배경으로 꿈을 꾼다. 내가 맨발로 강둑을 달리며 물총새를 쫓고,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을 세며 소월과 같은 시인이 되기를 희망하던, 지난날 내 고향의 찬란한 가을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