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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선심후물(先心後物)

好學 2010. 9. 12. 21:18

 

[ESSAY] 선심후물(先心後物)

 

 

박 승·전 한국은행 총재

청첩장을 보내고 축의금까지 받고 보니
누가 오고 누가 안 오고 또 누가 얼마를 내고 하는 것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은 내게 고통이었다

나는 5남매를 두고 있는데 첫째와 둘째의 혼례식 때 모두 청첩장을 찍지 않고 성당에서 순수한 가족행사로 치렀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결혼이란 상대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돈댁 쪽에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 주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쪽이 딸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날 하루의 문제이긴 하나 한쪽은 많은 하례객이 줄을 서 붐비는데 한쪽은 그렇지 못해 생기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대인관계상의 문제였다. 나는 지인들의 관혼상제에 빠짐없이 다니면서 나는 알리지 않고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보니 지인들에게 부담감을 주게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셋째의 결혼식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올렸는데 일반 관행처럼 청첩장도 보내고 축의금도 받았다. 그렇게 하고 보니 여러 가지 폐해가 크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사회적인 폐해는 예견했던 바이지만 나 스스로도 예상치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청첩장을 보내고 축의금까지 받고 보니 누가 오고 누가 안 오고 또 누가 얼마를 내고 하는 것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은 내게 고통이었다.

그래서 넷째와 다섯째 때는 다시 첫째와 둘째처럼 순수한 가족행사로 예식을 올렸다. 서울대 호암관에서 올린 막내아들의 결혼식에서는 예단도 없애고 신랑은 평소 입던 양복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고 예식을 올렸으며 절약한 그 경비를 저축통장에 넣어 주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나라 관혼상제의 허례허식을 고쳐야 하며 이러한 일에 부유층과 지도층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물질보다 더 중요하다는 선심후물(先心後物)이란 말은 나의 좌우명이다. 나는 우리의 혼례문화도 허례허식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일부 계층의 지나친 혼례 사치를 시정해야 한다. 특히 문제 되는 것은 혼례식 절차이다. 청첩장을 보내면 축의금을 마련해 가야 하는데 요즘의 교통 사정을 감안하면 이것은 거의 반나절 이상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하면서 예식장에 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가서는 혼주에게 눈도장만 찍고 돌아오는 수가 많은데 이 무슨 사회적 낭비인가. 나는 이러한 관행에서의 탈출을 시도해본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는 동네 목욕탕에서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느낄 때가 많다. 냉탕에서 자녀들 수영 연습을 시키는 사람, 신문을 화장실에서 읽고 두고 오는 사람, 옆에 사람이 있어도 양해도 구하지 않고 폭포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쓴 수건을 두고 오는 사람도 많다. 나는 널려 있는 수건이 너무 많을 때 이것을 수거하여 정리해준 일이 종종 있었는데 주인이 언제 바뀌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이나 종업원만이 수건을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생활 모든 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 삶의 질을 선진화함에 있어서도 경제 성장보다 정신 개혁이 앞서야 되겠다는 생각이고 이런 의미에서 선심후물이란 말의 뜻을 음미해보고 싶다.

우리는 지금 나 혼자만 잘살면 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못살 때, 쌀과 옷이 문제일 때는 남이야 어떻든 나 혼자만 잘살 수 있었다. 쌀이나 옷과 같은 사유재(私有財)는 각자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삶의 질은 교육·환경·휴식 공간과 같은 공공재(公共財)가 결정하는 단계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공재는 개인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삶의 질 선진화에 물질보다 정신이 앞서야 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우리는 사교육 근절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왔지만 헛수고였다. 다른 나라에서의 교육은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모두 즐거운 삶의 현장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통의 현장이다. 대학에 가야 하는 고3 학생이 오후 3시쯤 되면 학교에서 돌아와 야구나 골프 등 운동이나 취미를 즐기고 있는 외국의 교육 환경을 볼 때마다 우리는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유럽이나 미국 어디를 가보아도 우리처럼 사교육이 번창하는 나라는 없다. 그런 나라 국민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유산을 학교에 바쳐 좋은 학교를 만들고 누구나 그 학교를 믿고 자녀교육을 맡기고 있다. 대학원까지 모두 공짜인 나라도 있다. 이것이 바로 공공재로서의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재인 교육을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사유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세나 유산을 학교에 내는 데는 인색하면서 내 자녀만 잘 가르치려고 사교육비는 펑펑 쓰는 것이다. 만일 그동안 사교육비에 쓴 돈을 교육세로 냈더라면 우리 교육문제는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고치지 않고는 아무리 소득이 늘고 어떤 정책이 나와도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물질은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지만 의식은 그보다 한참 뒤져 있다. 이것이 시정되지 않으면 고소득이 돼도 삶의 질 선진화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사회는 천민자본주의를 지향하기 쉽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물질보다 마음과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