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일사일언] 불 좀 꺼주세요

好學 2010. 9. 25. 21:56

 

[일사일언] 불 좀 꺼주세요

 

 

영화는 꿈꾸는 현실이다. 2시간 동안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하기도 하고 모험을 떠나기도 하며 평소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복수의 칼날을 맘껏 휘둘러 보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와 함께 웃고 울다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환하게 장내 불이 켜지게 되면 마법에서 벗어나 현실의 나로 돌아 오게 된다.

잠시 웃고 울다가 만 영화의 경우 현실로 빠르게 복귀(?)되지만 깊고 긴 여운을 주는 영화는 다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를 볼 때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마자 환하게 켜지는 조명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었던 나를 갑자기 발가벗겨 땡볕 아래로 던져버린 느낌이었고 퉁퉁 불어터진 얼굴을 누가 볼새라 주책맞은 나를 탓하며 극장을 나섰었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인디스월드’는 반대의 경우다. 너무도 잔인하고 비정한 세상에 던져진 소년이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웅얼거리며 기도하던 모습이 내 인생의 최고의 엔딩으로 기억되는건 막막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동안 일어서질 못했었던 나의 감정을 끝까지 유지시켜준 꺼진 조명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요즈음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 장내 불을 켜지 않고 엔딩 끝까지 관람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제곡이 이 영화의 정서와 여운을 더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엔딩 끝까지 관람하자는 것은 작품성 위주의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에도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영화 1편을 위해 모든 피와 땀을 쏟은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읽어주자. 눈여겨 보면 새삼 영화 1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수고했는지 놀랄 것이다. 그들에게 눈도장을 찍어 주고 응원해 주자. 그럼으로써 우리의 애정이 그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우린 더 좋은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김은경·백두대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