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 워크맨

好學 2010. 9. 12. 21:34

 

[만물상] 워크맨

 

 

 

1978년 일본 소니의 이부카 명예회장이 출장을 떠나기 앞서 오가 부사장에게 부탁했다. “비행기에서 음악을 듣고 싶은데 녹음기 ‘프레스맨’에 재생기능만이라도 스테레오 회로를 넣어주지 않겠나.” 프레스맨은 한 해 전 소니가 내놓은 손바닥 크기의 테이프 녹음기. 기자들 취재용으로 알맞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소니 기술자들은 프레스맨에서 녹음기능을 떼내고 스테레오로 재생되게 개조했다. 여기에 커다란 전축용 헤드폰을 연결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이부카는 음질에 만족했다. 동업자인 모리타 회장은 눈이 더 밝았다. 녹음도 안 되는 이 반쪽짜리 제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그는 이를 상품화하는 데 사운(社運)을 걸었다. 1979년 ‘워크맨’이 탄생했다.

▶워크맨은 나오자마자 세계적 히트상품이 됐다.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라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열었고 소니는 ‘세계의 소니’가 됐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나만의 음악’은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를 바꿨다. 미국 대학에선 전축이나 밴드 없이 각자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저마다 춤을 추는 ‘개인주의적’ 댄스파티가 유행했다. ‘워크맨춤’이다.

▶‘워크맨(walkman)’은 ‘걸어다니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뜻이지만 어법에 맞지 않는 일본식 영어였다. 모체(母體)가 프레스맨이었고 당시 ‘슈퍼맨’ 영화가 히트한 것과도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통하겠느냐는 불안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사운드어바웃(soundabout)’ 같은 대안도 짜냈지만 워낙 ‘워크맨’이 알려진 덕분에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1986년엔 영국 옥스퍼드사전에까지 올랐다.

▶소니가 오는 3월 사이타마(埼玉) 공장을 폐쇄해 일본 내 워크맨 생산을 끝내기로 했다. 미국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에 일본시장을 절반 넘게 내줄 만큼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시장에서 밀린 탓이다. 소니는 카세트테이프 대신 콤팩트디스크(CD)와 미니디스크(MD)를 이용한 워크맨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워크맨의 성공에 취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한 것이다. 소니는 결국 인터넷과 MP3라는 새롭고 거대한 조류를 놓치고 말았다. 3억 개가 팔리며 상품을 넘어 ‘문화’였던 워크맨도 어느덧 잊힌 이름이 됐다. 시장의 심판은 냉혹하고 엄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