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행복론]Seneca

제 18 장 6

好學 2010. 7. 10. 06:20

 



 Seneca,의 De vita beata 제 18 장 6 

제왕은 흔히 죽은 자를 칭찬하고 산 자를 책망한다. 
그리하여 예컨데 고인이 된 중신을 직언을 잘했다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고인이 되었으니 그의 직언은 이제 들을 수 없으므로 하는 말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도 그러했다. 
황제는 그의 딸 듀리아의 불의와 음탕한 행위로 말미암아 
그녀를 먼 곳에 유배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황제는 딸의 비행에 관한 새로운 보고를 들을 적마다
”아 아그리파나 메세나스가 살아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실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며, 
황제 자신이 그 화근이지도 모른다.
남을 함부로 칭찬하기보다는 그런 결함을 한탄할 일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보기 드문 것이었다. 
전쟁이나 화제에 의한 로마의 손실이 아무리 막대하더라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를 곧 복구시킬 만한 힘이 있었지만, 
두사람 사이의 우정의 손실은 어떻게도 보상할 수 없어 
황제는 한평생 한탄했던 것이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저 터무니없이 어리석은 왕)가 그리스에 
군대를 침투시켜려고 했을 때, 
어떤 신하는 그리스군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어떤 신하는 페르시아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만 들어도 
그리스군이 도망쳐버릴 것이므로 그리스의 어느도시를 공격해도 
금새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신하들도 저마다 왕이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려는 의견에 
이구동성으로 아첨하며 왕을 선동했다. 
그러나 그 아첨들은 결국 왕의 파멸을 초래했다. 
그러나 많은 신하들 가운데서 오직 다마라타스 만이 왕에게 직언하여, 
군사의 머리 수만 많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으며, 때로는 
대군이 오히려 짐이 될 뿐 손실만 가져오고 이득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가령 적이 병력 300명만 산골짜기에 투입하여 진을 치고 대기하면 
우리 군대를 충분히 저지시킬 수 있으며, 일단 저지를 당하면 
우리의 대군은 큰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예언은 후일 그대로 적중되어 왕은 그 부하의 충절에 탄복했다고 한다. 
수천 명의 신하중에서 진실한 충성심에서 간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가련한 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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