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신학]바울의 生涯와 神學

로마 전도여행

好學 2010. 5. 23. 00:03

 

 

로마 전도여행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1 1. 예루살렘에서 체포되는 바울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행 21:27-30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바울이 이번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AD 57년경~59년경, 회심 후 거의 24년(회심을 AD33년으로 할 때)이 지난 후이므로 벌써 많은 세월이 흐른 것이다. 바울은 도착 후에 야고보를 만나 이방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였다. 야고보는 유대인 중 믿는 자 수만 명이 모두 율법에 열심이며 바울에 대한 소문을 들어 반대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 대비책을 제시하였다. 4명의 서원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결례를 행하고 그 비용을 바울이 지불하면 바울도 율법을 지키는 자임을 그들이 알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이전에 바울과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예루살렘 성안에 함께 있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성전의 이방인 금지구역(로마여행1.JPG)에 드로비모도 함께 데려온 줄로 착각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로 보건대 드로비모도 함께 예루살렘에 들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성전 안뜰과 성전 바깥뜰(이방인의 뜰)사이 성전 문 위에 "이방나라의 백성은 성전 경내 나 경계 벽 내로 들어오지 못한다. 누구든지 붙잡히게 되면 자신의 죽음은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라는 글을 새긴 돌들이 있었다. 이것은 로마 당국의 허락 하에 유대인들이 자치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리였다. 로마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행23:26)와 군사들에 의해 결박 당한 바울이 영문 안으로 들려 가다가 헬라말로 자신을 밝힌 뒤, 층대 위에서 히브리 방언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변명하게 된다. 이때의 히브리 방언은 그 당시의 유대인의 모국어인 아람어일 가능성이 크고 히브리어 일수도 있다. 백성들에게 말하는 도중에 소란이 일어나서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오게 된다.

이후 영문 안에서 군사들이 채찍질 하려하자 바울은 비로소 자신이 로마사람 임을 밝히고 정당한 절차를 밟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가 열렸지만 바울은 부활을 믿는 것 때문에 심문을 받는다고 함으로써 공회의 양대 구성요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격론을 이끌어 냄으로써 공회는 무산되고 바울은 다시 영문에 들어가게 된다.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위의 말씀으로 볼 때, 바울은 죄수로써 로마까지 가게 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바울을 중간에서 죽이기 위해 다시 공회로 데리고 오려는 음모가 있었으나 바울의 생질이 천부장에게 그 사실을 알림으로써 밤중에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은 이송되었고 헤롯궁에 갇히게 되었다(행23:35). 이 곳은 총독의 거주지이며 로마 군사들의 주둔지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로마여행2.jpg)

이때 천부장의 바울에 대한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행:23: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2. 가이사랴에서의 심문  (행24:33-26:32)

<가이사랴> 제국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 케사르(Augustus Caesar). 헬라어로 가이사랴를 기르는 뜻으로 이름을 본 땀. 지중 해변의 항구 도시이며, 유대지방의 로마 행정도시로 유대 총독들의 본거지이다. 이곳에서 1961년 극장 폐허에서 '유다총독 본디오 빌라도'라고 씌우진 금석문이 발견되었다. 예수님을 심문하던 당시는 본디오 발라도는 예루살렘에 거하고 있었다. 바울을 심문했던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이 부임한 곳이다. 베드로에 의해 백부장 고넬료가 성령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행10장). 헥사플라(Hexapla)로 유명한 오리겐의 주 활동지.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이 가이사랴로 이송된 뒤, 닷새 후에 도착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사의 고소자 무리들과 함께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는다.

그러나 벨릭스 총독은 쌍방의 의견을 들은 뒤 예루살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 오거든 다시 처리하겠다고 판결을 유보한다. 이때 종이나 친구들이 바울을 수종 하는 것을 허락한다. 이때에 함께 한 형제는 누가와 아리스다고 였다(행27:2, 행28:1,7,9,15,16). 벨릭스는 그의 아내와 함께 바울의 강론을 자주 들었으며 돈(뇌물)을 받기 원하였다.

행24: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위와 같은 이유로 바울을 2 년간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베스도 총독 앞에서

벨릭스 이후 총독이 된 베스도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을 올라갔을 때,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다시 바울을 고소하였다(행25:1,2). 다시 가이사랴로 돌아온 베스도는 바울을 심문하나 특별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나(행25:25)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자기 앞에서 심문 받겠느냐는 제의를 하였다. 그러나 음모를 아는 바울은 거절하였고 로마의 황제 가이샤 앞으로 상소하였다. (행 25:11)

 

아그립바 왕 앞에서(행25:13-26:3)

총독 베스도의 부임으로 인사차 가이사랴에 방문한 헤롯 아그립바 왕에게 총독 베스도가 바울의 송사 건에 대해 상소할 재료를 찾기 위해(행25:26) 그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헤롯 아그립바 왕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26: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3. 로마 압송 중 유라굴라 광풍을 만남

행27: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표)   율리오 백부장이 몇몇 죄수들과 바울을 데리고 배편을 이용하여 로마로 호송하게 된다. 이때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여 로마로 떠나게 된다. 저자 누가도 함께 했다는 것은 '우리'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행 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행 28: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행 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행 28: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행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시돈 도착 무라에서 배를 갈아탐 그레데섬의 미항(로마여행3.jpg) 이때의 기후가 좋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단어는 '간신히'이다. 이 단어는 7절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8절 '간신히 그 해안을 지나', 그리고 16절에서 '간신히 거루를 잡아', 이렇게 3번 사용되었다. 결국 유라굴로라는 광풍으로 지중해에서 14일간 표류하게 된다. 짐과 배의 기구를 바다에 내어 던졌으나 276인 모든 사람들은 무사하였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게 된다. (소리) (번개)

 

4. 멜리데섬(Malta)에 도착(로마여행4.jpg)

파선과 동시에 멜리데 섬에 도착한 바울은 독사에게 물렸으나 이상이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낫게 하여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이 곳에서 석 달을 머문 뒤에 그 곳에서과종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5. 보디올(Puteoli)에서 형제들과 함께

이곳의 형제들의 청함으로 바울은 7일을 함께 보낸다(행 28:14).

6. 압비오 저자(Appian Way)와 삼관(Three Taverns)(로마여행5.jpg)

로마 형제들이 이곳까지 마중 나옴으로 바울이 담대한 마음을 얻게 된다.

 

7. 로마 도착

이곳에서 바울은 셋집에서 자기를 지키는 군사 1 명과 따로 있을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강론하였고 2 년동안 담대히 자기에게 오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으나 금하는 자가 없었다.

 

8. 로마여행 동역자들

 

☞2 8. 1. 누가

3차 전도여행의 인물 '누가'편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된 이후 로마까지 줄곧 동행하였다.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행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행 27: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행 28: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행 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행 28:7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행 28: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행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누가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그의 활동이 전혀 보이지 않다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행 24:25-27) 감옥에서 지낸 뒤 로마로 압송되는 순간에 다시 그가 나타난다. 이 2 년 동안에 누가는 바울의 주위에 머물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때 어떻게, 어떤 자격으로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함께 배로 떠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람세이는 바울을 수종드는 종으로 함께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는 이달리야행 배가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 14일간을 표류하면서 겪은 상황을 매우 자세히 묘사했다.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격려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파선한 후 바울과 함께 멜리데섬에 도착하여 3달을 지낸 후 다시 배를 타고 수라구사, 레기온을 거쳐 브디올에서 형제들 만나 7일을 함께 보낸다. 그는 계속하여 로마로 진행하여 바울이 셋집에서 살면서 오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장면까지 보고, 그것을 사도행전을 통하여 기록했다.

 

☞3 8. 2. 아리스다고

행 27: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차 전도여행의 '아리스다고' 인물 편에서 언급했듯이 3 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그의 이름이 나타난 후 예루살렘까지 동행하였다.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그는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행 배를 탈 때, 다시 나타나서 의사 누가와 함께 했다. 로마까지의 여행은 매우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좋지 않은(유라굴라 광풍을 만났듯이)때였고, 바울도 죄수의 몸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가는 때에 아리스다고는 기꺼이 바울과 동행하였다. 바울에게 많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빌레몬서 24절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감옥에 있는 바울과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 8. 3. 드로비모

행 21:29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3차 전도여행의 '드로비모'인물 편에서 언급했듯이 드로비모는 에베소 사람으로 3 차 전도여행 중 처음 등장한 뒤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바울과 함께 동행하였다. 여러 동행자가 있었지만 예루살렘의 유대인의 눈에 특별히 띄인 사람이다. 그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성내에 있는 것을 본 유대인들이, 바울이 성전 안에 있을 때, 바울과 함께 다니던 이방인 드로비모도 함께 성전 안에 들어온 줄로 착각하여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 일 후 바울이 감옥에 갇혀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있었고 그 후 로마 행 배를 탔을 때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죽을 때가 임박하여 기록한 디모데후서에서 그는 다시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