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제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아시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데, 이 여행의 목적은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개척한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보내는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구제헌금은 단순히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던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것 뿐 아니라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의 하나됨을 확인하고,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이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바울의 사역과 메시지를 인정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임무를 마친 후에 로마로 가서 그곳 성도들과 교제하고 그후 그들의 보내줌으로 서바나에까지 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바울의 계획은 그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1. 예루살렘으로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과 작별한 후 바울은 몇 도시를 돌아서 가이사랴에 이른다. 이 도시에는 전도자 빌립이 예언의 은사를 가진 네 딸과 살고 있었는데, 바울은 그 집에 유했다. 그 때 선지자 아가보가 찾아와 바울의 띠를 자신의 수족에 매면서 이 띠의 임자가 예루살렘에서 이렇게 결박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했지만, 바울은 결박당하는 것 뿐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자신의 계획을 실천할 것을 강경하게 말했다.
2. 예루살렘에서
1) 형제들의 환영: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야고보를 만나 환영을 받았다. 야고보는 바울에게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고 적의를 감소시키기 위해 서원한 사람 네 명과 함께 결례를 행할 것을 권했다. 바울은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대로 행하는데 오히려 이 사건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성내에 있었던 것을 본 유대인들이 그가 성전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이방인을 성전 안에 데리고 들어간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2) 유대인들의 소요와 바울의 변호: 성난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아 성밖으로 끌고 나가 죽이려 했다. 이러한 소요 속에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 극적으로 개입하여 바울을 구출했다. 바울은 천부장에게 유대인 군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하여 그들 앞에 자신의 간증을 한다. 바울은 바리새인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는가를 말하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과 그분으로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사명을 받은 것을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들은 성난 군중들은 다시 소란을 피웠다.
3)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바울의 변호: 바울은 이튿날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다시 말할 기회를 얻었다. 이 때 바울은 그들이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것을 보고, 자신은 죽은 자의 소망인 부활로 인해 이렇게 심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공회원들은 즉시 둘로 나뉘어서 서로 다투었다. 이들의 소란으로 바울이 찢길 것을 염려한 천부장은 결국 바울을 예루살렘에서 재판하기 어려움을 깨닫고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의 총독 벨릭스에게 그를 보낸다.
3. 가이사랴에서
1) 벨릭스 앞에서의 증언: 바울은 벨릭스 앞에서 두 번 증언을 하는데, 한번은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변사 더둘로를 데리고 와서 그를 고소했을 때이고 또 한번은 벨릭스와 그의 아내 앞에서였다. 더둘로는 바울을 염병이라고 부르면서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을 다 듣고 또 바울의 자기 변호를 들은 후에 이 문제가 유대인의 신앙에 관한 것임을 파악한 뒤 자신이 판결을 내리지 않고 천부장이 내려 올 때까지 그것을 미루었다. 한편 벨릭스는 유대 여자인 아내와 함께 바울의 말을 개인적으로 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자세히 설명하여,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다.
2) 베스도 앞에서의 증언: 벨릭스의 후임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 앞에서 바울은 다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재판의 반복으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없음을 깨달은 바울은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사용해서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요청했다.
3) 아그립바 앞에서의 증언: 얼마 후에 아그립바 왕이 가이사랴를 방문했는데, 베스도는 그에게 바울의 이야기를 했고 아그립바는 바울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했다. 바울은 아그립바와 그의 아내 앞에서 다시 자신의 간증을 했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와 그후의 변화 등에 관해 말한 후 마지막으로 자신이 전하는 복음(26:22-23)에 대해 말하자 아그립바는 그가 미쳤다고 외쳤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처럼 결박된 것 외에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증거했다.
4. 로마로
1) 태풍 유라굴로: 아그립바와 베스도는 바울이 무죄임을 알았지만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그를 로마로 가게 했다. 바울을 태운 배는 선장이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무리한 항해를 한 결과 태풍 유라굴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 태풍으로 인해 배에 탄 사람들은 살 소망을 다 잃었다. 하지만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로마에서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바울과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을 다 건져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바울은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고백하면서 배에 탄 사람들을 격려했다.
2) 멜리데 섬에서: 바울을 실은 배는 표류하다가 멜리데 섬에 닿게 되었다. 이 섬 주민들은 바울 일행에게 극진한 환대를 베풀었다. 그들은 난민들을 위해 피운 불에서 뛰쳐나온 뱀이 바울의 손을 물었는데도 그가 상하지 않자 그를 신이라고 생각했다. 또 바울은 그 섬의 제일 높은 사람의 부친의 열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바울은 그 섬에서 석 달을 유하고 배가 준비되자 다시 로마로 향했다.
5. 로마에서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일종의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2년 정도 유하면서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이 이방인에게로 간다고 말했다. 사도행전은 이와 같이 예루살렘에서 전파되기 시작한 복음이 로마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그후 바울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그가 그토록 원했던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후 다시 로마 감옥에 감금되어 네로 황제 때(AD 64년경)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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