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2장은 베드로가 중심인물이 되어 복음이 유대와 그 인근 지역에 전파되는 상황을 담고 있고, 13-28장은 바울이 중심인물이 되어 복음이 로마 제국의 곳곳에, 즉 그 당시 알려져 있던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상황이 담겨있다. 누가는 베드로와 바울을 두 주인공으로 삼고 그들의 사역을 거의 대등하게 소개함으로써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과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의 유대관계를 변호한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양 부분에 담겨있는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와 이적들은 그 수와 내용에 있어서 매우 흡사하고 대등함을 볼 수 있다.
1. 1차 선교여행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자 여러 곳으로 흩어져 간 성도들은 먼저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다. 그후 수리아의 안디옥에 이른 성도들은 그곳에서 유대인 뿐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된 안디옥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 이은 제 2의 기독교의 요지로서 여기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선교의 사역이 본격화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심히 핍박했던 바울이 바로 이 이방인 선교에 앞장을 서게 된다.
1)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안디옥 교회에는 바나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그리고 바울이 선지자와 교사로 섬기고 있었으며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께서 당신이 불러 시키시는 일을 위하여 그중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울 것을 지시하셨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좇아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안수하고 파송하였다.
2) 구브로 선교: 두 사람은 먼저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회당에서 전했다. 그리고 바보에 이르러서 바울 일행은 거짓 선지자 박수 엘루마와 부딪히게 되는데, 마치 베드로가 사마리아에서 마술사 시몬을 책망했듯이, 바울도 그를 대적하는 이 무당을 책망함으로써 그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 결과 그곳의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3)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 바울 일행이 구브로에서 밤빌리아의 버가로 갔을 때 그들과 동행했던 마가는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여기에 기록된 바울의 설교(행13:16-41)는 구약의 역사를 더듬어 내려오면서 다윗에게 주신 메시아의 약속을 확인하고 그 약속의 성취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사함을 얻게 하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설교는 본질적으로 베드로의 설교(행2장)와 같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언제나 낯선 도시에 가면 먼저 그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후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지 않고 바울을 대적하면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이방인에게로 간다고 그들에게 선언했다(13:46).
4) 이고니온과 루가오니아 선교: 비시디아 안디옥을 떠난 바울 일행은 이고니온으로 갔다가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로 갔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데, 이 기적을 본 그곳 주민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그들이 섬기던 신 쓰수와 허메로 착각하고 그들을 섬기려 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그들을 만류했고, 창조와 역사의 증거를 지적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14:15-17). 그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찾아와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버렸는데, 바울은 다시 일어나 그 다음날 60마일이나 떨어진 더베를 향해 떠났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평생의 제자요 동역자인 디모데를 얻었다(16:1).
5) 안디옥에로의 귀환과 정착: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복음을 전했던 도시들을 차례로 다시 방문하여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고 제자들을 굳세게 한 후, 자신들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해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을 보고했다.
2. 예루살렘 공회
그후 예루살렘으로부터 어떤 유대인들이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구원을 받기 위해선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존 스토트는 갈라디아서의 수신인을 '남갈라디아'로 보면서 갈라디아서 2장의 사건을 예루살렘 공회 이전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말과는 달리 야고보가 보낸 자들이 아니었으며(15:24), 베드로와 바나바까지 흔들렸던 복음의 위기에 바울의 단호함은 결코 그의 독선이 아니라 복음의 사활이 걸려있었던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 그 결과 최초의 교회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15장).
1) 베드로의 증거: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셔서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신 것과 그곳에서 어떻게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는지를 설명했다. 그의 증거의 요지는 첫째,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케 하시는 일에 전혀 분간치 않으셨다는 것과 둘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다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2) 바울과 바나바의 증거: 베드로의 증거가 있은 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이 그들의 선교여행에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어떤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으며, 이방인들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였는지를 설명했다.
3) 야고보의 결정: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 장로였던 야고보는 모든 보고를 들은 후에 두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그는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 얻는 길에 할례나 율법을 부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확증했고, 둘째, 하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할 것을 권하자고 제안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판결을 받아들였고, 안디옥 교회에 보내는 공식 편지를 써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주고 유다와 실라를 그들과 함께 보냄으로써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 두 교회 사이에 입장이 일치함을 확고히 했다.
이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은 복음의 핵심인 구원론에 있어서나 교회의 선교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예루살렘 공회는 구원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주어진다는 것과, 더 이상 인종적 구분에 제한될 수 없다는 것을 확증했다. 이 결정은 기독교가 유대교를 떠나 세계적인 종교로 뻗어가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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