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神 論]God.Jesus.성령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好學 2010. 4. 12. 20:34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들어가는 말

 

교회력에 따라서 각종 절기 때만 되면 기독교 TV를 틀면 절기 설교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침 7월 첫주는 한국교회가 정해 놓은 교회력에 따라 맥추절인지라 맥추절을 지키라는 설교가 봇물처럼 흘러넘치고 있다.

설교마다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좋은 신앙이고 지키지 않는 것은 신앙 없음이 되는냥 외쳐지고 있다.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목사들의 설교를 듣다가 보면 마치 구약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목사들마다 포장하여 다른 척 각색하여 설교를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한 본질이다.

직설적으로 한마디로 말한다면 구약처럼 바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아 먹었으면 좀 듬뿍 내어 놓으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았으면 감사하는 것이 옳은 믿음이지 받아먹고 입 싹 닦으면 그것이 도적놈이지 무슨 성도냐 라는 식으로 은근히 공갈을 치며 압박하니 무섭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니 알아서 바친다.

그러니 절기 때만 되면 교회들이 헌금이 쏟아진다.

목사가 내어 놓으라고 하면 교인들이 내어 놓으니 어느 누가 이런 장사를 마다 하겠는가?

악착같이 절기를 챙겨 먹어야지?

 

없는 절기도 만들어야지,,,

신년주일이라고 돈 뜯어내고, 사순절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자면서 한 주간 한끼 금식하라고 하면서 돈 뜯어내고, 부활절이라고 뜯어내고. 성령강림절이라고 뜯어내고, 맥추절이라고 뜯어내고, 추수감사절이라고 뜯어내고, 성탄절이라고 뜯어내고, 송구영신이라고 뜯어내고 또 어떤 놈들은 일천번제를 드려야 한다고 뜯어내고, 자식들을 위해 서원하라고 뜯어내고, 거기다가 성전 짓는다고 뜯어내고, 성전을 짓고 나면 교육관 짓는다고 뜯어내고, 교육관 짓고 나면 주차장 넓힌다고 뜯어내고, 주차장 넓히고 나면 노인들위해 공원묘지 준비해야 한다고 뜯어내고, 심심하면 선교사 불러다가 선교보고 한답시고 또 뜯어내고, 농어촌 교회 목사들 순회 강연하면서 수금해 가고,,이래서 뜯어내고 저래서 뜯어내고,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갖가지 명목의 이름으로 뜯어내고 또 뜯어낸다.

한국교회에서는 최소한도 잘 뜯어 내는 놈이 능력있는 목사로 대접을 받는 실정이다.

 

오죽했으면 목사들 서재에 헌금개발론이라는 책이 책장에 다 꼽혀 있겠는가?

 

심지어 어떤 목사는 양들은 일정한 주기로 양털(돈)을 깍아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건강해 진다고 한다.

참으로 거머리 같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고 돈뜯어내는 지독한 돈 버러지들이다.

 

교인들은 목사들의 이런 설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에는 그리 담대하지를 못하다.

몰라서 못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목사의 설교에 토를 달기라도 하면 믿음 없는 것으로 낙인찍히니 속으론 씁쓸해 하면서도 따를 수 밖에 없다.

낙인찍히면 그 큰 교회에서 승진하는 것은 포기하여야 한다.

그러니 안다고 하여도 속으로 궁시렁 거리면서도 바쳐야 한다.

다 수금 장부에 기록이 되니,,,,

이 장부야 말로 교인들을 옭아매는 좋은 패가 아닌가?

장차 안수 집사를 뽑고 장로 권사를 뽑을 때 고가점수가 부족하여 불 이익을 당할까봐서 안 할 수가 없다.

솔직히 교인들이 이런 설교를 들으면 베뢰아 교인들과 같이 과연 그러한가 살펴보아햐 하는데도,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따지기 보단 목사가 어련히 잘 알아서 가르쳐 주지 않겠는가? 라는 대단한 믿음으로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경외 할만한 대단한 믿음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서 론

 

흔히들 구약은 그림자요 신약은 실체라고 한다.

그림자와 실체란? 외국영화로 비유한다면 그림자는 화면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동영상과 같고 실체는 전개 되어지는 활동 그림을 해석해 주는 자막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은 신약을 전제로 하고 있고, 신약은 구약을 배경으로 서로가 서로를 조명하고 있는 한 셋트이다.

신약이든 구약이든 어느 것 하나 없어서도 안 되고 경홀히 여겨서도 안 된다.

서로가 서로를 해석해 주는 키가 되기 때문이다.

 

구약을 옛 언약이라 하고 신약을 새 언약이라고 한다.

옛 언약의 절기 속에는 새 언약이 담겨져 있다.

예수님께서 언약의 완성 자이시므로 결국 옛 언약 속에 포함된 절기는 예수님께서 완성 하셨음을 알수가 있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 신앙을 고수 하였던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로부터는 모든 구약을 예수그리스도로 재 해석하였던 것이다.

 

고후 3:14-16=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바울은 구약을 수건이라 하고 그 수건은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벗어진다고 하였다.

구약이라 함은 율법을 말하는데 율법 속에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십일조나 제사들이나 먹고 마시는 것들이 들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새 언약을 겨냥하여 주어졌는데 예수그리스도로 해석하면 다 풀린다는 뜻이다.

즉 예수그리스도로 해석이 되어져야 온전히 해석을 하였다고 할 수가 있다.

아니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로 해석이 되어져야 한다.

 

잘 알듯이 사도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구약의 율법 신앙에 특심하였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는 것도 구약이 명하는 대로 지켜 왔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율법적 관점에서 보던 눈에 비늘이 떨어졌다.

그 후로부터는 모든 성경이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 완성된 이야기임을 알았다.

 

다메섹 사건 이후 바울은 반전하여 이제는 모든 성경을 예수그리스도 재 해석하는 일에 진력하였다.

도리어 구약식 해석하는 자들과 피나는 싸움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설교할 때마다 구약의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모든 율법은 장래 일의 그림자로서 실상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골로새서 2장 16-17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구약 시대에 절기나 먹고 마시는 것들은 단순하게 명절날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여흥을 즐기며 배를 불리기 위하여 먹거리로 준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말해주고자 있는 것이란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면서 내 아들 장자라고 하였다.

 

출 4:22-23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 오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였다.

 

마 3:16-17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구약에선 이스라엘을 아들이라 하였고, 신약에선 예수그리스도를 아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참 아들은 예수그리스도이시므로 구약 이스라엘은 참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표상적 존재로서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약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또한 신약의 성도를 표상하기도 하는 이중적 계시가 들어 있다.)

 

고로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절기나 월삭이나 모든 먹고 마시는 모두 것이 예수님과 연관된 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각종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은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문자적으로 지시하는 대로 엄격히 지켜야 했다.

문자대로 양을 잡으라면 양을 잡고 떡을 먹으라면 떡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구약식으로 지키면 도리어 징벌을 당한다.

왜냐하면! 의미의 실상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양고기를 먹지 않고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지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구약식으로 하면 반칙이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몰라서 이렇게 지킨 것이 아니고 그 유월절 양이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살과 피로 지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33년을 사셨는데 유월절은 매년 지키는 것이므로 32년 동안은 부모님과 형제들끼리 구약 방식대로 지켰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를 앞두고 자신이 유월절 양이심을 밝히셔야 했기에 마지막 유월절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자기 몸이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제물이라는 사실을 알리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실체가 왔음에도 그림자를 붙잡고 있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말하면 어느 가정에 남편이 멀리 외국에 나가면서 아내에게 사진을 주고 여보 내가 보고 싶으면 여기 내 사진을 보고 그리움을 달래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이 보고 싶을 때마다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아내에게 있어 남편의 사진은 그냥 그림이 아니고 실체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사진을 지갑 속에 항상 넣고 다니면서 남편이 곁에 있는 것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외국 근무를 마치고 귀국을 하였다. 이제 사랑하는 아내와 만나서 그동안 못다한 이여기이며 사랑을 나눌 것을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이 왔음에도 남편은 거들떠보지 않고 사진을 보면서 여보 보고 싶어요! 라고 한다면 그 남편은 무엇이라 하겠는가?

 

여보! 나야! 나!

나란 말이야!

내가 왔단 말이야!

내가 왔으니 이젠 그 사진은 필요가 없어!

날 보란 말이야!

당신 남편이야!

날 모르겠어!

 

그럼에도 아내가 남편을 투명인간 같이 본체만체 하며 의식하지도 않고 빛 바랜 사진 속의 남편을 보면서 그립다고 사모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남편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남편은 사진을 갈기 갈기 찢어 불에 태워 버릴 것이다.

 

사진이란? 남편이 없을 땐 소중하고 귀한 것이지만 남편이 오고 난 후에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남편은 자신과 함께 있을 땐 아내가 사진 속에 남편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섭섭해 하지 않는다.

도리어 사진만 붙잡고 남편을 외면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섭섭할 일이며 화가 날 일이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여인처럼 사진 속의 남편만 붙잡고 있었다.

 

구약의 절기는 사진이고 예수님은 실제 남편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이 실제로 오셨으니 사진 같은 절기는 사라져야 한다.

새 언약이 주어진 후에는 구약대로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이 화를 내지 않는다.

도리어 구약식으로 절기를 지키면 화를 내신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지켜온 구약의 절기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 속에 집어 넣어 지키라고 지시하고 명하신 것들이다.

유월절로부터 시작하여 초막절까지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켜야 할 내용과 방법과 날짜까지 다 세세하게 지시하셨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구약에 지켜졌던 절기들을 폐하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림자가 실체를 가릴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4장 10-11절에선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교회들에게 절기를 절대로 구약식으로 지켜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만약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너희들이 만약 절기를 지킨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십자가의 도를 전하면서 수고했던 일들이 헛것이 된다고 하였다.

 

바울이 수고한 것이란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증거한 일이다.

즉 구약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완성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어느 놈이 절기를 지키는가를 눈에 불을 켜고 살폈던 것이다.

그 놈이 누구든지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다 도말 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골 2:14-15절=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의문에 쓴 증서란? 율법이다.

 

그렇다면 율법 속에 담긴 절기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도말시킨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완성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고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다 도말하셨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이 구약이 말하는 날과 달과 절기를 가감없이 완벽하게 다 지키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 교회들은 갖가지 새로운 절기들을 만들어 성도로 하여금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허물은 것을 다시 세우는 반역이 되는 일이다.

이 얼마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우리는 구약의 절기를 지키지 않습니다 라고 항변을 하지만 새로운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믿음에 보태어서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거나, 십일조를 해야 한다거나,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거나,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성탄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사순절을 지켜야 한다거나, 고난주간과 부활 주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추수감사주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라는 식의 갖가지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고 지키고 있다.

 

(솔직히 탁 까놓고 얘기하면 절기에는 관심이 없고 헌금을 갈취하기 위함이다. 교인들이 그냥 돈을 내지 않으니 갖가지 절기 속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여 헌금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만약 교인들이 교회가 만든 절기에 헌금을 안하면 유야무야 유명무실해 질 것이다. 마치 예전에 부활절 새벽만 되면 지역교회가 연합하여 하얀 소복을 차려 입고 연합예배를 거창하게 드렸었다. 당시엔 다른 날은 몰라도 부활절 새벽예배를 참석하지 않으면 믿음 없는 자로 치부되었다.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 이젠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주일날 오후 예배를 연합하여 드리자고 광고를 해 대고 있다. 이것도 참석율이 저조하면 사라질 것이다.  장사가 안되는데 어느 미친놈이 밤새워가며 정력을 허비하며 절기를 준비하겠는가? 부활절에 삶은 계란 하나 주면서 수만배 돈을 받아 내지 않는가? 성탄절 연극하나 해 주곤 얼마나 뽑아내는가? 추수감사절 떡 한덩이 주곤 얼마나 갈취하는가? 그래서 예수님이 구약식으로 세워진 성전을 향하여 강도의 굴혈이라고 일갈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어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서만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셨겠는가? 지금 이 시대 한국교회를 향한 말씀이지,,,)

 

교회들이 갖가지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지키는 것은 개가 토하였던 것을 도로 주워 먹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도말시킨 것들을 다시 주워 모아서 지키기 때문이다.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에게 어느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라고 물으니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어디서든지 어느 시간이든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하면 된다고 하셨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란? 성령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약속을 앞세우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피와 살로 세우신 새 언약을 믿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장소를 성전이라고 하고 어느 시간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또한 그런 가르침에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게 하는 원수가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 교회들이 듣도 보도 못하는 갖가지 이름의 절기들을 만들어 지키도록 하는 것들이 얼마나 비 성경적인가를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 성경적인 일들이 초대교회에 이미 횡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가  눈 앞에 밝히 보이는데 왜? 율법인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 라고 질타하였던 것이다.  

 

바울이 이런 경고를 한다는 것은 곧 마귀는 어느 시대이고 옛 것을 붙잡으라고 미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영적인 성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시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귀가 사라지지 않는 한 바울의 경고는 늘 유효하고 또한 바울에게 경고 받을 짓들을 교회들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아브라함 시대 인간이나 모세 시대 인간이나 2천년전 바울시대 인간이나 지금 인간이나 똑같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는 늘 되풀이가 되어왔고, 되어가고 있으며, 되어 질 것이다.

신앙적인 일도 마찬가지로 되풀이 될 뿐이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 새 것이 없고 인간의 역사는 늘 반복되는 역사라고 하였다.

 

전 1:9-11절=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인간은 어느 시대나 다 똑같고 하는 짓 또한 다 똑 같다는 말이다.

 

바울 시대에 절기를 가지고 십자가를 가렸다면 지금도 각종 행사와 절기를 가지고 십자가를 가린다.

2천년전 마귀가 지금도 동일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동일하게 활동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영적인 미혹의 악순환은 계속된다.

또한 바울같이 거짓 것을 폭로하는 성도들도 일어나 영적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너희 앞에 예수의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왜?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고 책망하였다.

 

그럼에도 십자가에서 다 폐하여진 구약의 율법 속에 속한 절기를 이 시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왜인가?

 

이는 그림자적 성격을 띄고 보여준 절기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실상으로 완성을 하셨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래서 거짓 것에 속지 말고 성도들의 눈과 귀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잡아 두고자 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세세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럼 서론적으로 어떤 절기가 있는지 살펴보자.

 

레위기 2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7대 절기들을 말씀해 주셨다.

 

레 23: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23: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레 23: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레 23:4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레 23: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레 23:6 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레 23:7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레 23:8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레 23: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23: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레 23: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레 23: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 23: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레 23: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 23: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레 23:16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레 23:17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찌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레 23:18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레 23:19 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레 23:20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레 23: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 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3: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23:2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찌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레 23:25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찌니라

레 23: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23:27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레 23:28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레 23:29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 질 것이라

레 23:30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레 23:31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레 23:32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찌니라

레 23: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

레 23:35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찌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레 23:36 칠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 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레 23: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찌니

레 23: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레 23: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레 23:40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레 23:41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레 23:42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레 23: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3:44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7대 절기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이 바로 그것이다.

7대 절기는 1년 속에 담겨져 있다.

1년을 주기로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곧 1년이 온 역사의 전부와 같다는 뜻이다.

 

절기가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라고 하였으니 그럼 1년이라는 기간 속에 7대 절기가 다 포함되어져 있다는 말은 곧 7대 절기가 예수님의 전 생애를 다 담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즉 예수님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 담겨져 있다는 말이다.

 

물론 예수님은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내일도 계시는 영원한 분이시다.

어느 시대고 계시는 영원하신 예수님의 일생을 고등어 자르듯이 어디서 어디까지는 어제이고, 어디서 어디까지는 현재이고, 어디서 어디까지는 미래라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어제 속에 현재와 내일로 사셨고 내일 속에 어제로 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창세 전에도 계셨고 초림 때도 계셨고 재림 때도 계시고 재림 후에도 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기 속에 예수님의 일생에 대한 예언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면 과연 예수님은 그 절기가 담고 있는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를 살펴보고자 함이다.

 

아! 예수님께서 이렇게 절기를 완성하셨구나!

하나님의 약속은 한치도 빈틈없이 예수님에게 다 이루어 졌구나를 깨닫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구약을 읽으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풍성하게 맛보아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만약에 구약에 그림자적으로 준 절기 속에 담겨진 메시야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살지 않으셨다면 그 예수는 하나님의 약속한 메시야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예수이고 가짜가 된다.

그러나 절기 속에 담겨진 대로 예수님이 삶을 풀어 내셨다면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를 믿어야하고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마호메트나 문선명이나 박태선이가 그외 등등의 인물들이 메시야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구약의 절기 속에 담겨진 메시야의 삶을 풀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적 그리스도들인 것이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인물도 절기로 계시되어진 메시야의 삶을 풀어내지 못하였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풀어 내셨다. 그러니 모두가 이단이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하나님의 참 아들이고 정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절기가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에게 완성이 되었는지, 또한 예수님은 절기를 어떻게 완성하셨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절기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먼저 7대 절기를 살펴보자.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월절(1월14일), 무교절(1월15일), 초실절(1월16일), 칠칠절(초실절 후 50일째), 나팔절(7월1일), 속죄일(7월10일), 초막절(7월 15일)이 있다.

 

이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7대 절기이다.

 

일년이라는 계절로 나눈다면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은 봄에 지켜지는 절기이고,

칠칠절 또는 오순절은 봄절기의 마지막 절기인 초실절 40일 후에 지켜지는 것이므로 여름절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칠칠절과 여름 넉 달을 지나면 가을절기로 접어든다.

 

7월 1일 나팔절과, 7월 10일 속죄일과, 7월 15일 초막절을 지키고 긴 겨울 안식에 들어간다.

 

그러니 7대 절기를 크게 나누면 봄절기와, 여름 절기와, 가을 절기로 나눌 수가 있다.

 

도표로 보면 아래와 같다.

 

유월절(1월 14일 금요일)

무교절(1월 15일 토요일)       (봄 절기)

초실절(1월 16일 일요일)

 

 

40일 후 칠칠절          (여름 절기)

넉 달 농사 기간

 

 

나팔절(7월 1일)

속죄일(7월 10일)       (가을 절기)

초막절(7월 15일)

 

 

 봄 절기는 무교절이라고 하고, 여름 절기는 칠칠절 또는 맥추절이라고 하고, 가을절기는 수장절 또는 초막절이라고 한다.

 

절기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라고 하였으니 7대 절기의 봄, 여름, 가을은 곧 예수님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로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 7-8절에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사도요한은 예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의 초림에서부터 재림 때까지의 사역을 어제와 오늘과 내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전에도 있었고” 라는 말은 사도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주후 95년경에 기록하였으니 계시록을 쓸 당시를 기점으로 하여서 본다면 초림으로 오셔서 십자가 사역을 담당하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때까지를 말할 수 있고,

 

“이제도 있었고” 라는 말은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으로 현재 성도들 안에서 일하시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장차 올 자” 라는 말은 재림 이후에 하실 일들로 말할 수가 있다.

 

“전능한 자” 라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시대나 일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이런 구도로 절기를 나눈다면

봄절기인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은 예수님의 육체적인 사역을 감당하신 초림 사건으로 볼 수 있고,

여름절기인 칠칠절과 넉달농사 기간은 예수님의 승천 후 성령의 일하시는 사역으로 볼 수가 있고,

가을절기인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은 재림하셔서 하실 사역으로 볼 수가 있다.

 

혹시 곡해를 할까 염려스러워서 참고적으로 다시 말하지만 모든 절기는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하기 때문에 예수님 속에는 봄 여름 가을 절기 모두가 들어가 있다.

초림 속에 재림이 들어가 있고 재림 속에 초림도 들어가 있다는 말이다.

 

즉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하시면서 전능하신 자라고 하는 것은 어느 시대고 계시다는 말이다.

 

절기를 성도에게 적용하면 유월절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미 초막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구원이란? 시간 개념이 아니라 사건이기 때문에 현재 속에 미래가 담겨져 있다.

 

그럼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봄절기인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차례로 살펴보자.

 

여기서 잠깐!

동일한 봄절기임에도 굳이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나누어 놓은 것은 무슨 뜻일까?

이는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이 주는 영적인 의미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은 하루 간격으로 지키기 때문에 맞 물려서 겹치는 절기이다.

유월절은 1월 14일 이다.

그런데 무교절은 15일부터 칠일간 지낸다.

무교절은 엄밀히 말해서 14일 저녁부터 지내기 때문에 유월절과 날짜가 겹친다.

그리고 초실절은 안식 후 첫날이므로 역시 무교절 절기 속에 포함된 날인 16일에 지킨다.

요일로 살펴보면 유월절은 금요일이고, 무교절은 토요일이고, 초실절은 일요일이 된다.

유대인은 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 저녁까지 안식일로 지키니까 무교절인 일요일은 안식 후 첫날이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 이 세 절기를 다 합산하여 보아야 사흘 안에 다 포함되어져서 한 주간 지내는 절기인 것이다.

날 수로는 사흘이고 기간으로는 한 주간이지만 따로 따로 지키게 하신 것은 그만큼 각각의 절기마다 담긴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 간격으로 지내는 절기이지만 그 절기마다 엄청난 그리스도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

세 절기 모두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하심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하나 하나의 절기를 상세하게 지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각의 절기마다 지키는 방법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세 절기 모두가 예수님의 사역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절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모든 절기를 탐사해 보자면 긴 시간이 되겠지만 그래도 인내하고 기도하면서 탐사해 보기로하자.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조망되어지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의 지혜와 지식으로 종이 미쳐 깨닫지 못한 것들까지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그리하여 절기 속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을 알게 하여 예수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더 깊이 더 높이 더 넓게 더 많이 깨닫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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