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聖書]The Bible

노아의 방주-3

好學 2010. 1. 16. 08:48

 

노아의 방주-3
 

* 목차

1. 노아홍수 사건의 연대

2. 방주

3. 홍수의 시작

4. 궁창 위의 물

5. 홍수의 끝

6. 노아홍수의 간접적인 증거

7. 노아홍수 사건의 이전과 이후

8. 창조의 증거들

 

 

1. 노아홍수 사건의 연대

먼저 노아 홍수 사건의 연대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120년전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날이 120년이 되리라(창6:3)'고 하시며 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다. (창6:13)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 6:17)

하나님이 경고하신 대로 노아는 120년동안 날씨가 쨍쨍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갖고 높은 산위에 하나님께서 설계해주신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장장 120년 동안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방주를 지은 노아의 믿음은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노아 600세 되던 해에 정결한 짐승 암 수 일곱씩과 부정한 짐승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에 들어갔으며 노아는 먹을 음식을 방주에 실었습니다.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17일. 드디어 40일 밤낮으로 비가 쏟아짐으로써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홍수후 150일간 물이 불어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혔고 땅위에서 호흡하는 동물들은 다 죽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지 150일 후 방주는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그후 166일간 물이 감하여져서 노아 601세 되던 해 1월1일에 땅에서 물이 완전히 걷혔고 그후 57일동안 땅이 급격히 말랐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대개의 신화집과는 달리 성경말씀은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성경이 참으로 역사적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창세기에서 단지 1년 동안에 일어났던 노아의 홍수 사건에 대하여 매우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수 전후의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이 홍수 이야기만큼 자세하게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홍수시작

    비가 내림    물이 불어남      물이 감하여짐       땅이 급히 마름

     40일              150일                 166일                      57일

홍수가 일어났던 그 1년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중에서 가장 세밀히 기록된 한해일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가 인류와 지구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그 심각성을 증거해 줍니다.

 

 

2. 방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창 6:14-16)" ※ 1규빗 = 46~56cm

노아의 가족 8명과 많은 동물들을 태운 방주는 3층으로서 길이가 135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의 거대하고 길다란 직사각형 상자와 유사합니다.

길이로는 축구장 길이보다 더 길며 면적으로는 20개의 농구장보다 더 큽니다. 과연 이 용적으로 모든 동물들을 쌍쌍이 싣기에 충분했을까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중 덩치가 커다란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는 종으로 따지면 약 17,600종이 있습니다. 이 종류대로 각각 쌍쌍으로 실렸다면 35,200마리가 방주에 실려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평균하여 어른 양으로 환산해 볼 때, 방주는 125,280마리의 양을 실을 수가 있습니다. 서너배나 더 실을 수 있는 용량입니다.

현대 과학자들이 성경을 기초로 모형방주를 만들어 실험한 적이 있는데 이 방주는 큰 파도에도 빨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높은 안정도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조선 건축가 디키씨는 미국 전함 U.S.S오레곤호를 설계할 때 노아가 방주를 건조할 당시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설계비율을 사용했었습니다. 미 해군에서는 U.S.S오레곤 호를 지금까지 건조된 것중 가장 견고한 군함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와 같은 의미로 아기 모세가 나일강에서 탔던 바구니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방주는 내부에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노나 키가 없었습니다. 단지 뜨기만 하고 조정이 불가능하여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기 모세를 광주리에 담아 공주의 양자로 보내시듯 노아의 방주도 인도하신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수많은 크고 작은 동물들이 탔는데 어떤 과학자들은 배설물을 수거하고 음식물을 먹이는 일은 방주안의 8명의 사람이 하기는 너무 벅찬 일이다라고 주장하며 노아의 홍수 사건을 부인하려 합니다.

창세기 8:1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라고 되어 있는 것을 미루어 볼때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주신 신기한 능력중의 하나는 공기가 탁하거나 기온이 떨어지고 빛이 줄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동물들이 '동면'을 하는 것입니다.

새들은 동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푸우월'같은 새는 동면하는 것으로 알려져 새들도 동면의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면의 신비는 과학자들에게는 아직도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동물들의 이런 능력은 노아의 대홍수 기간 중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노아의 홍수중 내내 잠을 자 8명의 노아식구들이 그 많은 동물들을 돌보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3. 홍수의 시작

창세기 7:11에 의하면 노아의 홍수는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노아의 홍수라하면 비만 많이 왔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이 두가지 사건으로 홍수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먼저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사실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하늘과 연결이 됩니다. 창세기 1:6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 1:6~7)'

그래서 하늘의 창들이 열림으로 궁창 위의 물들이 땅에 떨어져 40주야의 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대기권에서는 이와 같은 궁창 위의 물은 없이 오존층 만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대기권과 현재의 대기권과는 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궁창 위의 물은 거대한 담요처럼 보이지 않는 수증기 형태로 지상을 뒤덮었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대기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궁창 위의 물은 그 당시의 기후계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먼저 궁창 위의 물은 지표로 날아오고 있는 고 에너지를 지닌 고주파 방사선을 완전히 제거해주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고주파 방사선은 인간의 세포를 파괴하고 급격한 노쇠현상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고주파의 하나인 X선과 같은 것은 인간에게 극히 해로워서 임산부가 X선촬영을 두 번이상 하게 되면 태아에게 해롭습니다. 또한 이 고주파는 지상에 있는 공기 중 산소와 충돌하여 인간에게 아주 해로운 물질인 오존을 형성 시키기도 합니다. 궁창 위의 물은 이런 고주파 방사선을 완전히 제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궁창 위의 물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저주파 중 열선을 흡수하고 산란시키며 재반사시켜 전 지구 상에 열선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 수증기층(궁창 위의 물)은 별들로부터 오는 빛에 대하여 반투명했지만, 놀랍게도 지구상에 온실역할을 하여 극에서부터 극까지 지구 전체를 항상 온화한 기온으로 유지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궁창 위의 물이 없는 현재는 열선이 골고루 분산되지 못하기 때문에 열선을 많이 받는 적도 지방은 따뜻하고 적게 받는 극도 지방은 춥지만 궁창 위의 물이 있을 경우에는 지구상의 온실 효과를 일으켜 전 지구상에 걸쳐 27°정도의 일정한 온도를 지닌 아열대 기후가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노아홍수 이전에는 고온다습한 기온이 계속되었다는 증거를 지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질학적 발견을 통하여 사하라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은 이전에 물이 풍부한 습지대였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후커는 북극의 높은 지대에 단단한 활엽수의 숲이 무성하게 성장하여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패튼은 남극에서 발견된 나무줄기 자국과 석탄 및 목판으로 보아 남극의 기후가 한때 온대 또는 아열대였다고 말합니다.

기후가 세계적으로 온화하며 일정불변했다는 더욱 명확한 증거는, 시베리아 북부 한 대지방의 얼어붙은 땅에서 아직도 익은 열매와 초록색 잎이 달린 과일나무가 쓰러져 발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극지방의 빙하에서는 아열대와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을 먹고사는 맘모스와 코뿔소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 더하기 하나

최근 한국창조과학회가 의뢰하여 국가출연연구기관인 해사기술연구소(구 선박연구소)에서 실시한, 성경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노아 방주의 안정성에 대한 실험결과가 발표되어 언론과 매스컴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실험 결과, 노아의 방주는 매우 안정된 배였으며 현대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매우 현실성이 있는 배였다는 것이다.

세계 조선 제2위국인 우리나라에서 수출되는 선박의 대부분이 해사기술연구소에서 성능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실험에서는 조선공학적 측면에서 홍수 당시 방주의 거동과 안정성 여부에 연구의 초점이 모아졌다. 먼저 노아방주와 동일한 부피를 가지면서 길이나 폭과 높이의 비율을 다르게 한 다른 13척의 배를 선정하여 이론적인 안정성을 검토한 결과 노아의 방주가 최고의 복원안정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그 외의 다른 안정도를 종합하여 평가한 결과도 노아의 방주가 최적의 안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노아 방주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노아의 방주를 단순히 과학만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강조되어야 할 점은 노아 방주가 홍수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방주가 우수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방주를 특별히 기억하고 돌보셨다는 점일 것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진행한 것은 노아의 방주를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셨기 때문에 방주 자체의 구조에도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와 계시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과연 어떤 연구결과가 나올지는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다.

연구 책임자인 홍석원박사는 의도적인 결론이 유도되지 않을까 하여 그렇게 되지 않도록 결벽증 환자같이 비의도성을 오히려 강조하여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마침내 최종적인 연구 결과에 이르렀을 때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아 방주에 대한 연구 성과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과학으로 알아볼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었다. 과학은 선용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창조주되심을 밝히는 훌륭한 도구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인본주의와 유물론에 근거한 과학은, 과학을 맹신하고 인류 스스로 자만에 빠지도록 과학만능주의를 만들어 내었다. 이들 잘못된 과학주의는 과학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전제로하는 창조과학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앞으로 이번의 연구결과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데 커다란 도구로 사용될 것을 확신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오늘날 지나친 과학기술의 맹신에 따른 과학주의의 함정에 스스로 빠지지 않도록 노력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영길 - 과학으로 푸는 창조의 비밀

 

 

4. 궁창 위의 물

궁창 위의 물은 존재했는가

그렇다면 과연 궁창 위의 물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을까요? 먼저 성경에서의 증거를 찾아봅시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창 2:6)'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개만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구가 극지방이나 적도지방이나 온도차가 별로 없어 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궁창 위의 물에 의해 지구 전체가 일정하고 따뜻한 기후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노아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대부분 900세이상 장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대기의 조건으로는 과거 인간이 900살이상 살았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온도의 급격한 변화가 없는 사시사철 따뜻한 기후에 사람에게 해로운 고주파를 완전히 제거해주는 창세의 생태계를 미루어 본다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보면 노아 홍수 이후 믿음의 조상들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벨렉은 239세, 아브라함은 175세, 모세는 120세, 그리고 다윗은 오늘날의 사람의 수명과 비슷한 70세까지 살아서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해 온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노아 홍수 이후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짐으로써 기후계와 생태계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 사람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인간의 죄에 의하여 최초의 창조의 세계는 파괴되어 살기좋은 환경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홍수 이전의 환경에서는 사람의 수명이 길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동물이 살 수 있었습니다.

 

사라진 궁창 위의 물

앞에서 하늘위에 엄청난 양의 수증기층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늘의 창들이 열렸을까요? 창세기 7장 11절의 기록에 보면 하늘의 창들이 열리기 전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습니다.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곧 그 달 17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7:11~12)'

이는 지하수가 터지고  화산이 폭발하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화산이 폭발할 때 하늘로 분출된 엄청난 양의 사진(沙塵)으로 인하여 화산진 주위에 궁창 위의 물이 응축되어 강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오늘날 인공강우를 위하여 구름에 약품을 뿌리는 것과 유사합니다.

1883년 인도네시아의 쟈바섬과 스마트라섬 사이에 위치해 있는 크로카토아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화산재는 27km이상 치솟았고 이 화산재로 말미암아 그 근처 주민들은 대낮에도 등불을 켜야 했으며 수 천만톤의 화산진이 3년에 걸쳐 지상에 떨어져 마을과 숲을 덮쳤습니다.

화산으로 생긴 해일은 높이가 15m나 달했으며, 화산폭발후 6주일 동안이나 전세계적으로 초우가 계속되었고 3년간 사진(沙塵)으로 인해 기온이 뚜렷하게 내려갔습니다. 화산의 폭발이 비와 날씨에 큰 영향을 준 예입니다.

 

 

5. 홍수의 끝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10월 곧 그 달 1일에 산들이 봉우리가 보였더라 (창8:2~5)'

노아의 홍수 때에 비만 내린 것이 아니고 엄청난 지각변동도 같이 일어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40일동안 비만 내렸다면 방주는 지리적으로 볼 때 유프라테스강을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빠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방주가 북쪽 지방에 있는 아라랏산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점은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바닷속에 있는 화산이 폭발함으로써 엄청난 해일이 일어났으며 육지는 가라앉고 바다는 솟아오르는 지각 변동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육지에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현재 수많은 활화산을 지니고 있는 환태평양 화산대는 그 당시의 화산폭발에 대한 흔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흔히 지구를 덮었던 그 많은 물들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과연 노아홍수 때에 지구를 다 덮었던 물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의 70%는 바다로 덮혀 있습니다. 나머지 30%만이 바다위에 육지가 올라와 있습니다. 요즘 신문에 자주 나는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그에따라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으며 얼음이 모두 녹을 경우 지구는 바다로 덮힐 것입니다.

남극과 북극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얼음으로 덮혀 있습니다. 만약 지구를 평평하다고 가정한다면 바닷물의 거의 2.4km의 깊이로 전 지구의 표면을 덮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기후가 변하여 많은 양의 물이 북극과 남극으로 가서 얼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국내의 각 신문들이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에서 대수로 공사를 마친 한 건설회사의 활약상을 크게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리비아 남부 사막지대의 저수지에서 리비아 북부 해안의 주거지역으로 큰 수도관을 통하여 물을 끌어올리는 거대한 사업이었습니다. 1차 공사의 총연장 길이만 하더라고 1,872km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 것은 아프리카 사막지대에 무슨 물이 그렇게 많기에 그토록 큰 수로공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보고에 의하면 사하라 사막 밑에는 나일강의 2-3백년 흘러 고일 만한 수량과 맞먹는 담수가 저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훨씬 더 많은 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저장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6. 노아홍수의 간접적인 증거

염호

염호란 짠물을 지닌 호수를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육지상에 있는 호수들 중에 왜 짠호수가 있을까하고 의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호수는 오래 되면 짜게 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연구결과는 호수는 아무리 오래되어도 짜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는 염호로 유명합니다. 터어키 동부 지방에 위치한 만호는 해발 1700m에 있는데 다량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바다에 사는 청어가 이 호수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란에 있는 우르미아 호는 해발 1470m에 위치하며 염분의 함유량은 23%나 됩니다.

그 외에도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몽고 지방의 고비사막에는 사라져가는 수많은 염호가 있으며 해발 3800m의 안데스 산맥에 있는 티티카카호는 그 넓이가 480㎢나 됩니다. 현대과학은 어떻게 해서 바닷물이 이렇게 깊숙하게 높은 데까지 침범하였는지 이야기 해주지 못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염호들이 노아의 홍수때 생겼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적어도 전세계 200여 국가와 종족의 고대 전설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창세기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이 전지구적인 대격변의 역사적 실재에 대하여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전 627년에 죽은 앗수르왕의 왕실서고에서 길가메쉬평판이라 불리는 점토평판이 발견되었는데 창세기의 대홍수사건과 많은 유사성을 가진 홍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동일한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동일한 사건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도 대홍수를 극복함으로써 이름을 떨친 옛 선조 '누와'의 자손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에게는 58개의 대홍수 이야기와 오래된 석판들이 전해 내려옵니다.

다음 도표는 여러나라의 홍수에 대한 전설 비교도표입니다. 대홍수 이야기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것은 부분적인 사건이 아니고 전 세계적인 사건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방주가 도착한 아라랏 산

아라랏 산은 터어키와 러시아, 이란의 국경선 부근에 위치한 산들입니다. 최고 높은 곳은 5160m로 방주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856년 이래로 23회이상 200여명의 사람들이 빙하에 파묻혀 있는 방주를 아라랏 산에서 목격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주를 발견하기 힘든 이유는 평상시에는 방주가 빙이브 눈으로 덮혀있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근처에서 눈사태가 나거나 날씨가 풀려서 눈이 녹으면 빙하에서 드러난 검은 목조 건물로 된 방주의 일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1883년 시카고 트리뷴지에는 그 해 8월 터어키 정부가 노아방주를 발견하였다고 정식 발표하였다는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1955년에는 나바라라는 소년이 방주를 발견하고 그 일부라고 믿어지는 목재를 가지고 하산하였습니다. 그 나무는 유프라테스 평원에서만 나는 나무임이 밝혀 졌습니다.(유프라테스강 유역은 노아가 방주를 건축한 장소로 추정되는 지역)

현재 아라랏 산은 여러나라의 국경선에 위치하여 군사지역으로 되어 있어 이 산의 탐험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방주의 발견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종이 되고 복음을 증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시기에 우리들에게 방주의 발견을 허락하시고 역사상 최고의 유물인 그 웅장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공개하실 것입니다.

 

 

7. 노아홍수 사건의 이전과 이후

노아홍수 사건 이전과 이후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궁창 위의 물이 없어짐에 따라 기후가 변하게 되었습니다. 아열대 기후가 바뀌어 여름과 겨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창 8:22)

전체적으로 온난한 기후로 비가 내리지 않다가(창 2:5)

홍수 이후 현재와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창 7:12)

무지개가 나타났습니다.(창 9:13) 홍수 이후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지므로 최초로 나타났습니다.

19세기 인디언들이 살았던 지방에서 발견된 석판에서 사람의 눈모양의 찌그러진 태양의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궁창 위의 물에 의해 납작해 보였으나 오늘날의 태양은 둥근 모습이 되었습니다.

수백년을 살았던 인간의 수명이 궁창 위의 물이 없어짐으로 인한 여러가지 영향으로 짧아졌습니다. 점차 줄어 다윗에 이르러는 70정도로 짧아졌습니다.

산들은 비교적 낮았을 것입니다. 홍수는 지구상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시 104:8) 바다는 비교적 얕았을 것입니다. 홍수 이후 산들과 마찬가지고 해구 등이 생겨나는 등 깊어졌습니다.

 

 

8. 창조의 증거들

최초의 여자, 'EVE'

얼마전 한 연구결과가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자료들은 종래의 진화론 학계에서 주장하던 인류진화론에 대한 학설과는 여러면에서 크게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진화론에서는 진화가 매우 천천히 오랜기간에 걸쳐서 진행되어 왔으며, 인류의 진화도 수백만 년에 걸쳐 그러한 과정을 밟아 왔다고 주장되었으나, 몇몇 학자들은 인류 모두가 약 14만년 쯤 전에 아프리카에서 부터 기원하는 한 여성을 공통조상으로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브'라고 명명된(물론 성경상의 이브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이름만 붙인 것입니다.) 이 여성은 한 인류의 공통조상이며 검은 머리에 검은 피부를 지녔고, 식량을 찾아 약 20만년 전에 대초원을 떠돌아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세계적인 여자 테니스 선수인 나브라틸로바처럼 남자같은 근육질의 몸에 강인한 체력을 소유하였으며 짐승을 맨손으로 직접 잡아서 먹고, 석기를 다룰 줄 아는 여자였을 것으로 그들은 상상합니다.

그녀는 당시 지구상에 살던 유일한 여성은 아니었으나 오늘날까지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일정한 유전정보를 유전시킬 수 있던 출산력이 왕성한 재수좋은 여성으로, 우리 직계로 계산하면 약 1만대조 할머니쯤 된다는 것이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학자들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인류기원에 대한 논쟁에 새불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이론이 인류가 훨씬 이전부터 살면서 진화되었다는 대다수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브의 이론'은 아프리카 협곡에서의 화석발굴작업 같은 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험실 안에서 분자생물학자들에 의하여 모든 인류의 조상이 한 여자로부터 왔다는 것을 DNA추적을 통하여 주장하므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로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하와이 대학의 칸 교수와 버클리 대의 윌슨 그리고 스톤킹 교수들입니다.

이들은 '이브'를 추적하기 위해서 전세계 147명의 산모를 설득하여 아이의 태반을 기증받았습니다. 태반은 커다란 체세포의 표본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중동 그리고 아시아의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뉴기니와 호주에 있는 연구팀들은 그 곳의 원주민 여성들에게서 태반을 얻었습니다. 수집된 태반은 동결되어 윌슨 교수의 실험실에서 분석되었습니다.

모든 세대에 걸쳐 여성에게만 전해져 오는 것이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DNA입니다. 60년대까지만 하여도 미토콘드리아 DNA에 관해 알려진 것이 없었으나 70년대 말,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로부터만 승계되는 것으로, 혈통관계를 추적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이것은 핵 안에 있는 DNA처럼 부모의 DNA가 서로 합쳐진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걸쳐 여성에게만 일정하게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뀌려면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것으로 보아 그렇게 많은 유전암호의 재배열이 우연히 나타날 가능성은 불가능합니다.

스톤 킹 교수는 이것에 대하여 "인류는 오래되지 않은 젊은 종이며 타문화권 사이에 유전적 차이도 거의 없고 미토콘드리아 DNA의 개념에서 보면 다른 어떤 척추동물이나 포유류보다도 인류 상호간에 훨씬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어린 유아의 DNA를 통하여 볼 때 인류는 아프리카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DNA는 두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현재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만 발견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부 아프리카 사람들과 다른 모든 지역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립된 어떤 아프리카 사람들의 집단가운데에서 발견되는 DNA는 좀더 다양한 형태의 DNA를 볼 수 있으므로 이 지역이 바로 전세계에 있는 현재 모든 인류의 공통 조상이 되는 여성이 살았던 곳이라는 것입니다. 윌슨 교수는 우리의 조상이 된 '행운의 한 어머니'가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한 어머니가 '이브'로 표현된 것에 대해 성서와 연관하는 것을 극구 꺼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류의 본성(롬 1:28)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을 성서의 '이브'라고 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원의 연대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연구결과를 발표한 윌슨 교수 등은 그 점을 인정하기를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진화론자들도 이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무조건 승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일 이것을 인정해 버리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그들의 주장이나 연구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버클리 대학의 연구팀이 주장한 약 20만년 전이라는 계산은 백만년 정도가 경과하면 약 2-4%의 미토콘드리아 DNA에 변이가 생길 것이라는 가정하에 추론되었습니다. 이것이 정확한 연대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약 4,000년이라는 계산이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새로운 '이브'의 등장으로 이들 진화론자들은 종래의 네안데르탈인, 북경인, 자바인 등과 이 '이브'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 종래의 인류기원에 대한 연대개념과 종족간의 분자생물학적인 연관관계를 해석하는데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아마도 구구한 해석과 이론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더욱 기원에 대한 논란 자체를 미궁속으로 빠뜨려버릴지도 모릅니다.

이제 화석 발굴가들은 진화론자들이 20만년쯤 되었다고 주장하는 퇴적층에서 유전학자들을 옹호할 증거자료를 발굴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전학자들은 이 같은 자료를 기다리지 않고 또다른 시도를 시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

그것은 '이브의 이론'을 확장하여 '아담'(물론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상의 아담은 아닙니다.)을 찾는 작업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과학자들은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Y염색체에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염색체는 미토콘드리아보다 훨씬 많은 유전인자를 지닌 세포핵 내의 DNA에 포함되어 있어 이것을 추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아담'은 적어도 모든 세대에 한 명의 자손을 전할 수 있었던 행운의 조상일 것이라 추측합니다. 아마도 수년 내에 새로운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미토콘드리아 DNA논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어쩌면 이 논쟁은 단지 어떤 실마리만을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논쟁의 말미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한 계속적으로 미궁 속으로 빠져들며 결론없이 후회할 것입니다.

마치 화석의 증거를 가지고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방황하듯이 말입니다. '미토콘드리아 DNA'의 연구야말로 성경을 믿는 이들에게는 아주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브'와 '아담'은 성경 창세기에서 말하는 바로 그 이브와 아담이라고 하면 훌륭한 해답이 될 것입니다.

 

노아 가족으로부터의 전인종의 기원

성경에 의하면,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노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세아들들과 자부(子婦)들로부터 기인하며, 그 이전의 기원은 아담과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창세기 9:18-20)

오늘날 다양한 모습을 지닌 인종과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피부색깔에 관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기록의 역사를 의심하기도 한다. 이들은 각 종족들이 수십만년에 걸쳐 각기 진화되어 생겨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려진 것처럼 그와같은 생각은 맞지 않는다. 피부색깔처럼 계승되는 특징들에 대한 현대적 지식은, 성경에 기록되어진 바벨탑 사건과 같은 특별한 일들을 통하여, 독특한 개성을 지닌 다양한 종족들이 단지 몇 세대동안에 갈라졌을 것임을 알려준다. 사실 오늘날 오랜 기간에 걸쳐 분산되지 않은 다양한 인종집단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가 있다.

심지어 진화론자들도 여러 인종들이 각기 같은 기원을 갖는다는 데에는 견해가 일치한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도 동일한 고유의 집단으로부터 모든 인종이 유래하였다는 데에 관하여는 성서적 창조론자들과 견해를 같이한다.

 


피부색깔을 생각해보자. 노란 피부, 붉은 피부, 검은 피부, 흰 피부, 그리고 갈색 피부 등 다양한 피부를 지닌 여러 인종집단이 있으므로, 다양한 피부색소와 채색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채색에 따르는 서로 다른 화학성분은, 인종마다 각기 다른 유전적 처방이나 유전적 암호에 의함을 의미함으로 실질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과연 어떻게 그와 같이 다양한 차이점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실은 단 한가지 피부색소가 존재한다. 즉 그것은 멜라닌 색소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피부의 특수한 세포 속에 갈색을 띤 멜라닌 색소를 갖고 있다. 만일 색소가 전혀 없다면 사람은 매우 흰 피부 색깔을 지닐 것이다.

우리 몸이 약간의 멜라닌 만을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유럽계 백인'임을 의미하며, 만일 우리 피부가 다량의 멜라닌을 만든다면 매우 검은 피부가 될 것이다. 물론 이들 중간에는 갈색피부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른 피부의 색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예로 중국계 사람들에 있는 유난히 두터운 피부와 같은 경우는 황색 효과를 줄 것이다. 이것은 본래의 피부색깔은 아닌 것이다. 외모가 어떻게 보이든 다른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실체를 지닌 인종은 없다.

멜라닌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알아보자. 멜라닌은 태양광선의 효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만일 당신이 태양이 오랜기간 비치는 환경에 살면서 매우 적은 멜라닌 색소를 갖고 있다면, 태양에 그을리고 피부암 때문에 쉽게 고통받을 것이다.

만일 멜라닌 색소가 많은 사람이 태양광선을 거의 쬐지 못하는 곳에서 산다면, 그는 충분한 양의 비타민D를 공급받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타민D 결핍에 의해 생기는 구루병과 같은 뼈의 이상이 생겨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 유전적으로 일정한 양의 멜라닌 색소를 갖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태양광에 따라서 일정한 양을 갖출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일정한 '잠재력'만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코카서스인이라고 하자.

당신 친구들은 여름이 되면 해변가로 떠날 것이고, 만일 그들이 겨울동안에 온종일 실내에서 보냈다면, 그들 모두 다소간 헬쓱한 흰피부를 지녔을 것이라는 것을 당신은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여름이 계속되면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검게 될 것이다.

심지어 매우 검은 피부를 지닌 인종들 조차도 그 정도의 피부색깔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이것은 태양광선에 피부가 노출됨으로써 피부의 멜라닌 색소 '공장'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피부가 매우 검은 사람에게 있어, 손바닥이나 발바닥과 같은 부위는 태양광선에 거의 노출되지 않으므로, 보통 신체부위의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밝다.

피부색은 2조(組)의 유전자에 의해 지배되고 멜라닌 색소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흑백 혼혈(AaBb)인 경우에는 퍼닛구획법(punnet square)에 의하여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보면 놀랍게도 단지 한 세대동안에 완전한 백인으로부터 완전한 흑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위를 망라한 피부색깔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단지 특별한 유형의 중간 갈색피부를 지닌 양친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AABB를 지닌 자녀들은 피부에 전혀 밝은 색조가 없는 유전자를 지닌 완벽한 흑인이다. 만일 그들이 결혼하여 그들의 후손들이 다른 피부색깔을 지닌 사람들과는 전혀 결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그들의 모든 자녀들은 검은 피부일 것이다. 즉 완전한 흑인혈통이 될 것이다. aabb의 사람들은 흰 피부이다.

만일 그들이 서로 결혼하여 다른 피부 색깔의 사람들과 서로 결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이주한다면, 그들은 완전한 백인의 혈통이 될 것이다. 그들은 검게 되도록 하는 유전자 즉 다량의 멜라닌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두 사람의 중간 갈색피부를 지닌 양친으로부터, 모든 피부색깔뿐 아니라 영원히 피부색이 다른 인종들이 손쉽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볼 수 있는 항상 유색을 지닌 인종들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것도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aaBB 라든가 AAbb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는다면 항상 중간 갈색 피부의 후손을 낳는 일이 가능해 진다.

만일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자유로이 서로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스스로 지켜왔던 종족간의 결속을 깨뜨린다면 모든 종류의 새로운 조합이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어떤 특정한 인종 내에서 종종 다른 인종과 결합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목격이 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때때로 납작코를 지닌 유럽인이나 매우 창백한 피부의 중국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특징들을 연구하는 유전학자들은, 이제 각 인종간의 평균적인 유전적 차이라는 것은 각 인종간에 존재하는 상이점만큼 그렇게 큰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이것은 역시 각 인종이 오랜 기간 개별적으로 진화되어 왔다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창조합본 8호 / 창조과학회

 


노아의 16명의 손자 (The Sixteen Grandsons of Noah)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수많은 고대의 지명들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노아 후손들의 이름이 남아 있다.
 역사적 기록은 노아의 홍수가 사실이었으며, 살아 남은 자들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로부터 나왔을 때, 그들은 지구상에 유일한 ‘사람들’ 이었다. 그 이후, 지구는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과 그들의 부인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에 의해서 채워졌다. 창세기 10장에는,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한 인물들임을 확신시켜줄 수 있는 풍부한 증거들을 남겨 놓으셔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름들이 그들의 실제 이름들이고,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창세기 10장) 그들의 자손들이 전 세계로 흩어진 후 다양한 고대 왕국들을 건설했다는 말씀도 사실이었음을 입증시켜 주고 계신다.


홍수 이후의 첫 번째 세대는 매우 오래 살아서 어떤 이들은 그들의 아들, 손자, 증손자보다도 오래 살았다. 이러한 사실이 그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다.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은 각 씨족의 족장이 되었으며, 그들 지역에서 커다란 집단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1. 각 지역 사람들은 그들 조상의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2. 그들이 거주하는 땅, 주요 도시, 강 등의 이름 또한 그들 조상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3. 가끔씩 각 나라들은 그들의 조상을 숭배(worship)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우 일반적으로 조상의 이름 뒤에 그들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장수한 조상을 그들의 신으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에 근거해서, 노아 후손들의 이름은 잃어버릴 수 없는 방법으로 보존되어져 왔으며, 인간의 모든 흔적들은 사라져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검증해 볼 것이다.


 

1. 야벳(Japheth)의 일곱 아들


창세기 10장 1~2절 :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1) 고멜 (Gomer)

노아의 손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사람은 고멜(Gomer)이었다. 에스겔서에는 도갈마(Togarmah, 고멜의 아들)와 함께 고멜의 초기 자손들이 북쪽 지역(극한 북방)에 살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 38:6). 현재의 터어키(Turkey) 지방이 신약시대에 갈라디아(Galatia)라 불리던 지방이다. 유태인 역사학자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살던 시대인 AD 93년경에는 갈라디아인(Galatians) 또는 골(Gauls)은 이전에는 Gomerites 라고 불려졌었다.1


그들은 현재 프랑스와 스페인이라 불리는 서쪽지방으로 이주하였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는 고멜의 자손들 이후에, 골(Gaul)이라고 불려졌었으며, 현재도 스페인의 북서쪽은 갈리시아(Galicia)라 불리고 있다. 


고멜의 자손들(Gomerites) 중 몇몇은 현재 웨일즈(Wales)라 불리는 곳까지 더 멀리 이주하였다. 웨일즈의 역사학자인 데이비스의 기록에 의하면, 전통적인 웨일즈 사람들은 고멜의 자손들이 프랑스로부터 영국의 섬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고, 그 시기는 대략 대홍수로부터 약 3백년이 지난 후였다고 믿고 있다.2 또한 그의 기록에 의하면, 웨일즈의 언어도 Gomeraeg (그들의 조상인 고멜의 이름에서 비롯된)라 불려졌었다고 한다.


그들 씨족의 다른 무리는 아르메니아(Armenia)에 속해 있는 땅에 정착하였다. 고멜의 아들들은 ‘아스그나스(Ashkenaz)와 리밧(Riphath)과 도갈마(Togarmah)’ 였다 (창10:3).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도갈마와 아스그나스의 자손들이라고 주장한다.3 고대 아르메니아는 터어키에까지 그 지경이 닿아 있었다. 터어키(Turkey) 라는 지명도 도갈마로부터 파생되어졌을 것이다. 그들 중에 다른 이들은 독일로 이주하였다. 아스그나스(Ashkenaz)는 독일(Germany)의 히브리어 명칭이다. 


2) 마곡 (Magog)

다음 손자는 마곡(Magog) 이다. 에스겔서에 의하면, 마곡은 북쪽에 살았다(에스겔 38:15, 39:2).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Magogites 라고 불려졌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 이라고 불렀다.1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지금의 루마니아(Romania)와 우크라이나(Ukraine)를 포함한 지역의 고대 이름도 스키타이(Scythia) 였다.4


3) 마대 (Madai)

그 다음 손자는 마대(Madai) 이다. 셈의 아들인 엘람(Elam)과 함께, 마대는 현재 이란사람들의 조상이다. 요세푸스는 마대의 자손들이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서 메대(Medes)라 불려졌었다고 말한다.1 구약에서 메대가 언급될 때마다, 히브리어로는 마대(Madai(maday))라고 쓰여졌다. 키로스(Cyrus, 페르시아(바사)제국 건설자)시대 이후에, 메대는 (한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항상 페르시아인들과 함께 언급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법에 의해서 지배받는 하나의 왕국이었다. - ‘메대와 페르시안인의 법 (다니엘 6:8,12,15)’. 이후에 그들은 간단하게 (메대를 생략하고) 페르시아인들(Persians)로 불려졌다. 1935년 이후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이란(Iran) 이라고 불렀다. 메대인들은 또한 ‘인도에도 정착하였다’.5


4) 야완 (Javan)

다음 손자 이름인 야완(Javan)은 그리스(Greece)의 히브리 단어이다. 그리스, 그리시아(Grecia) 또는 그리시안(Grecians)은 구약에 다섯 번 나타나며, 그 때마다 항상 히브리어로 야완이라 쓰여졌다. 다니엘은 ‘그리시아의 왕(다니엘 8:21)’ 이라는 단어를 인용했는데, 문자 그대로는 ‘야완의 왕’이었다. 야완의 아들들은 엘리사(Elishah)와 달시스(Tarshish)와 깃딤(Kittim)과 도다님(Dodanim) (창 10:4) 이었는데, 모두 그리스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명칭인 Elysians는 엘리사(Elishah)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달시스(Tarshish) 또는 다서스(Tarsus)는 실리시아(Cilicia, 현재의 터어키) 근방에 위치했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깃딤(Kittim)은 키프로스(Cyprus)의 성경적인 이름이다.6 그리스 사람들은 쥬피터 도다네우스(Jupiter Dodanaeus)라는 이름으로 쥬피터 신을 숭배했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야벳(Japheth)과 야완의 네 번째 아들인 도다님(Dodanim)에서 파생된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신탁소(oracle)는 도데나(Dodena)에 있었다.


5) 두발 (Tubal)

다음은 두발(Tubal) 이다. 에스겔은 그를 곡(Gog)과 메섹(Meshech)과 함께 언급하였다 (에스겔 39:1). 약 BC 1100년 경에 앗시리아의 왕이었던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 1세는 다발리(Tabali)라 불렸던 두발의 자손이었다. 요세푸스는 그들의 이름을 도벨리트(Thobelites)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후세에 이베리아인들(Iberes)로 알려졌다.1


'요세푸스 시대에 그들의 땅은 로만 이베리아(Romans Iberia)로 불려졌었으며, 현재에는 (구소련 연방인) 그루지아(Georgia) 지방에 속하는데, 지금도 그 곳의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로서 두발(Tubal)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이곳으로부터 코카서스 산맥을 가로질러서 그 사람들은 정확하게 북동쪽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 그들 부족의 이름을 따서 강의 이름도 도볼(Tobol)이라 불렸고, 토볼스크(Tobolsk)라는 유명한 도시의 이름도 불려지게 되었다.' 7


6) 메섹 (Meshech)

다음 손자의 이름인 메섹(Meshech)은 모스크바(Moscow)의 옛 이름이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임과 동시에 그 도시를 둘러싼 지역의 명칭이기도 하다. 현재에도 그 주변 지역 중 메스체라 노렌드(Meschera Lowland)는 여전히 메섹의 이름을 따라 불려지고 있으며,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고 있다.


7) 디라스 (Tiras)

요세푸스에 의하면, 디라스(Tiras)의 자손들은 디라시안스(Thirasians)라고 불리웠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트라시안(Thracians)으로 바꾸었다.1 트라키아(Thrace)는 남쪽으로는 마케도니아(Macedonia)로부터, 북쪽으로 다뉴브강, 동쪽으로는 흑해까지 이르렀다. 이들이 유고슬라비아(Yugoslavia)를 이루게 된다. 세계대백과사전에 의하면 '트라키아 사람들은 야만적인 인도-유럽계통의 사람들로써, 전쟁과 약탈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고 되어있다.8 디라스는 그의 자손들로부터 두라스(Thuras), 또는 번개의 신인 토르(Thor)로써 숭배를 받았었다.



2. 함(Ham)의 네 아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세기 10:6)


1) 구스 (Cush)

함(Ham)의 자손들은 주로 남서부 지역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살았다. 성경에서는 자주 아프리카(Africa)를 함의 땅이라고 부른다(시편105:23, 27; 106:22). 노아의 손자 이름인 ‘구스(Cush)’ 는 옛적 에디오피아(Ethiopia, 아스완 남부로부터 카르툼까지)의 히브리어 단어이다 . 예외 없이 영어성경에서의 에디오피아란 단어는 항상 히브리어로 ‘구스’ 라고 기록되었다. 요세푸스는 그 이름을 ‘Chus' 라고 표현하였으며, 심지어 현재에도 에디오피아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또는 아시아인들 모두에 의해서 ’Chusites' 라고 불린다.9


2) 미스라임 (Mizraim)

노아의 다음 번 손자는 미스라임(Mizraim) 이다. 미스라임은 이집트(애굽, Egypt)에 대한 히브리 단어이다. 애굽이란 이름은 구약에서 수백번 언급되고 (한 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항상 미스라임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된다.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가로되 이는 애굽사람(Egyptians)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 미스라임(Abel Mizraim)이라 하였으니~”(창세기 50:11).


3) 붓 (Phut)

노아의 다음 번 손자인 ‘붓(Phut)’의 이름은 리비아(Libya, 이집트의 서부지역)의 히브리어이다. 구약성경에서 세 번 이렇게 번역되었다. 리비아 내에는 고대 붓 강이 있다. 다니엘 시대에 이미 그 이름은 리비아로 바뀌어져 있었다 (다니엘11:43). 요세푸스에 의하면, “붓은 리비아를 창건한 사람이며, 그들은 부타이티스(Phutites)라고 불려졌다.” 9


4) 가나안 (Canaan)

노아의 다음 번 손자인 ‘가나안(Canaan)’ 은 훗날 로마인들에 의해서 팔레스타인(Palestine)이라고 불리던(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지역) 지역의 히브리어식 이름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몇 함의 자손들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10:14~18). 그 곳에는 ‘블레셋(Philistim)' 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것은 Philistines의 조상인 것이 명백하며(후에 팔레스타인(Palestine)이 된 것도 확실하다), 시돈(Sidon)도 그 도시를 처음 창건한 조상의 이름이고, 헷(Heth)도 고대 히타이트족(Hittite)의 조상이었다. 또한 그의 자손들은 창세기 10장 15-18절 사이에 열거되어 있는데, 여부스 족속 (Jebusites, 여부스(Jebus)는 예루살렘의 옛 이름이었음. 사사기 19:10), 아모리 족속(Amorites), 기르가스 족속(Girgasites), 히위 족속(Hivites), 알가 족속(Arkites), 신 족속(Sinites), 아르왓 족속(Arvadites), 스말 족속(Zemarites), 하맛 족속(Hamathites)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들은 가나안에 살았던 고대인들이었다.


함의 자손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자손은 니므롯(Nimurod)이었는데, 그는 바벨론(Babel, Babylon)의 창시자였으며, 시날(Shinar, Babylonia) 땅의 에렉(Erech), 악갓(Accad), 갈레(Calneh)의 창시자였다.



3. 셈(Shem)의 다섯 아들


마지막으로 셈의 다섯 아들을 살펴보자.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창세기 10:22)


1) 엘람 (Elam)

엘람(Elam)은 페르시아(Persia)의 옛 이름이며, 페르시아는 또한 이란(Iran)의 옛 이름이다. 카로스(Cyrus) 시대까지 이 곳의 사람들을 엘라마이트(Elamites)라고 불렀으며, 이것은 신약시대에까지도 여전히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2장 9절에 보면, 오순절날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페르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을 엘람인(Elamite) 이라고 불렀었다. 따라서 페르시아인들은 셈의 아들인 엘람과 야벳의 아들인 마대(Madai)의 자손(앞의 내용 참조)들이었던 것이다. 1930년대 이후로 그들은 그들의 나라를 이란이라 칭하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서 유명해진 ‘아리안(Aryan)’ 이란 단어는 '이란(Iran)' 이라는 단어로부터 왔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우수한 민족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바로 ‘아리안’ 이라는 민족은 셈족(Semites)과 야벳족(Japhethites)이 합쳐진 혼합된 민족이었던 것이다.


2) 앗수르 (Asshur)

앗수르(Asshur)는 앗시리아(Assyria)의 히브리 단어이다. 앗시리아는 고대의 거대한 왕국 중의 하나였다. 구약에서 앗시리아인이나 앗시리아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그것은 앗수르(Asshur)라는 단어로부터 해석이 되었다. 그는 그의 자손들로부터 숭배를 받았었다.


'참으로 앗시리아 제국이 지속되었던 동안(BC 612년경까지), 전쟁과 외교관계, 그리고 해외소식들은 그의 동상 앞에서 매일 읽혀졌으며, 모든 앗시리아의 왕들은 조상인 앗수르의 신성시된 영혼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었다.'10


3) 아르박삿 (Arphaxad)

아르박삿(Arphaxad)은 칼데아(Chaldeans)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이것은 허리안 서판 (Hurrian(Nuzi) tablets)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는 칼데아의 창시자를 아립허라(Arip-hurra) 라는 이름으로 표현하였다.11 그의 후손인 에벨(Eber)은 아르박삿의 이름을 에벨-벨렉-르우-나홀-데라-아브람의 경로를 통하여 히브리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창세기 11:16~26). 에벨의 다른 아들인 욕단(Joktan)은 13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창세기 10:26~30), 그들은 모두 아라비아(Arabia)에 정착하였다.12


4) 룻 (Lud)

룻(Lud)은 리디아(Lydians) 사람들의 조상이었다. 리디아는 현재 터어키 서부(Western Turkey)로 알려진 곳이다. 그들의 수도는 사데(Sardis) 였는데,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에 하나가 사데에 위치해 있었다 (계시록 3:1).


5) 아람 (Aram)

아람(Aram)은 시리아(Syria)의 히브리 단어이다. 구약에서 시리아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것은 ‘아람’ 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었다. 시리아인들은 그들 자신을 아람인(Arameans) 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쓰는 언어도 아람어(Aramaic) 라고 칭하여진다. 그리스 제국이 확장되기 전까지, 아람어는 국제어로써 사용되었었다(열왕기하 18:26).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oi, Eloi, lama sabachthani) (막15:34)’ 라고 부르짖으셨는데,13 그것은 아람어로서 그 시대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언어였다.


 

결론


우리는 노아의 16명의 손자들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14 그들이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이었다는 증거들은 너무도 많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들 조상들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져 있다. 성경은 신화나 전설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며, 고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 Harold Hunt has pastored churches in Tennessee, Georgia and Mississippi for 40 years.

    He is currently writing a verse by verse commentary on Pauls epistles.

 

출처: 한국창조과학회
 


 

* 관련 사이트

http://www.wyattmuseum.com/index.htm : 노아의 방주와 발견된 유물 소개

http://biblenews.co.kr/ : 만화간증에 가면 노아의 방주 관련 내용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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