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감리교회 이인규 권사 한국장로교총연합회 협력상담위원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http://cafe.naver.com/anyquestion.cafe) 카페 운영자
인터넷에서 이단들과 대화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질문을 받아 본 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즉 “이단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러한 질문은 “이단이 뭔지 알고 있느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단이라는 용어는 무슨 뜻이며, 정통교리란 무슨 뜻인지 살펴보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다른 예수와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하고 있음을 엄하게 꾸짖으며 책망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본문을 통하여 이미 초대교회부터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2000년 동안의 교회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한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은 모두 사도들이 전파한 것(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이단의 개념
(1) 한글의 문자적인 의미: 처음과 중간은 같은데 끝이 다르다는 것(異端)이다. 즉 종말적으로 볼 때에 이단은 기독교와 다르다는 것이다.
(2) 헬라어적인 의미: 헬라어로 이단이란 용어는 "하이레시스"이다. 이 단어의 뜻은 "선택"이란 의미로 원래는 "당파. 종파"를 가르키는 단어이다. 예를 들면 사두개인의 당파(행 5:17), 바리새파(행 15:5)에도 사용되었고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행 26:5)라는 구절에도 사용되었다.
이단들과 토론을 할 때에 “이단이라고 하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는 이유가 이러한 성경적인 의미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즉 이단이라는 헬라적인 단어의 의미로만 보면 단순히 기독교와 다른 또 하나의 당파, 종파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단지 그러한 뜻이라면 그들은 이단이라는 말을 특별히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러한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3) 교리적 차이: 행 24:5에서 바울에게 “나사렛이단의 괴수”라고 말하고 있다. 또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Heresy)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행 24:14) 라고 말한다. 유대교의 시각으로 볼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것이 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단들은 이단이라는 용어가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로교의 입장에서 다른 신학과 교리를 가진 감리교는 이단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감리교의 시각에서 장로교를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으므로 상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감리교와 장로교의 교리는 서로 다르지만, 성경적인 범주 안의 다양한 신학과 교리를 갖고 있을 뿐이다. 즉 기독교의 교리는 다양성이 인정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기록된 말씀, 즉 성경 안에서 인정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종교단체가 그 세력이 커지면 이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 그것도 결코 그렇지 않다. 개신교의 많은 사람들은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며, 세계적인 이단에 들어가는 몰몬교나 통일교를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기독교인은 없다. 즉 아무리 큰 교회나 단체라고 할지라도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주장을 한다면 누구라도 이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단과 정통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바로 성경적인 기준이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성경이다. 기독교는 유대교가 아니며, 구약과 신약성경이 그 신앙의 기준이 된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그 기준이 다른 것이다. 즉 기독교의 이단은 “구약과 신약을 포함한 성경의 기록된 내용”의 범주를 벗어나는 교리를 가진 곳을 말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 4:6).
(4) 자력으로 취하는 교리: “하이레시스”라는 단어는 “하이레오마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단어는 "자력(自力)으로 선택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어느 교회나 단체의 교주 혹은 지도자의 개인적인 주장, 즉 인위적이며 자력적인 가르침이 교리가 된다면 그곳은 이단이 된다. 즉 이단이란 뜻은 교회의 전통적인 의미로서 "인위적이며 자력으로 취한 가르침을 갖는 분파“를 말하며, 성경과 어긋나는 "다른 교훈" 혹은 "다른 복음"을 스스로 취하는 단체나 분파를 말한다.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선생을 “이단”이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하이레시스)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벧후 2:1).
이단들은 기록된 성경말씀이 아니라 자력적인 가르침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안에는 진리가 없으며, 거짓을 제 것으로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즉 이단이란 뜻은 교회의 전통적인 의미로 "어긋나는 가르침"을 말하며 거짓 선생과 거짓 선지자의 "다른 교훈" 혹은 "다른 복음"을 말한다. 즉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유 1:18)를 말한다. 바울은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으며,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의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였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6-9).
(5) 이단의 정의: 초대교회의 이레니우스는 정통을 “어느 곳에서나 항상 모든 사람에 의하여 믿어진 바”라고 하였고, 이단을 “올바른 교리의 표준에서의 이탈”로 정의하였다. 20세기 이단학의 권위자로 알려진 윌터마틴은 이단에 대해서 "어떤 특정인의 그릇된 성서해석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집단"이라고 정의하였다.
피영민 교수는 "정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거짓된 신앙을 만들어 낸 집단이나 혹은 그들의 거짓된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라고 하였고, 최삼경 목사는 "2천년 동안 교회에 전승되어온 교리를 부인하는 사람이나 단체들, 즉 교단을 초월해서 인정하는 공통된 교리들을 부정하는 사람이나 단체들을 이단이라고 한다"고 정의하였다.
어떤 이단들은 자기들은 교리와 신학이 없고 성경대로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곳일수록 그들은 모두 획일적이고 동일한 주장과 사상과 교리를 갖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다른 서적을 참고하지 않고 성경만 놓고 뭔가를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자신들의 원칙대로 주장하게 되면 그것은 곧 그 단체의 교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000년 동안 기독교의 정통신학과 교리는 숱한 이단들과 사이비들의 공격과 비난에도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성경적인 진리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즉 정통 기독교는 무려 2000년 동안 검증을 받아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단이란 무엇인가? "성경적으로 검증되어온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거부하면서, 어느 특정인의 자력적인 성경해석을 스스로 취하여 잘못된 교리를 주장하는 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초신자에게는 이단을 분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에 특별히 유의하여야만 한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으로서, 때로는 목회자의 신분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으며, 선한 의의 일군의 모습(고후 11:15)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양의 옷(마 7:15)을 입고 나타날 수도 있으며, 광명의 천사(고후 11:4)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거짓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으며,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어 보여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은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첫째, 그들의 교리와 사상이 성경과 부합되는가를 판단해야만 한다. 둘째, 그들의 행동이 그리스도인의 향기에 부합되는가를 판단해야만 한다. 세째, 그들의 주장과 목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판단해야만 한다.
어느 단체를 외부적으로 볼 때에 둘째와 셋째 현상은 판단하기 어렵다. 그들의 교주는 일반 사람에게 그 행동이 노출되지 않으며, 그들 역시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분별하기 쉬운 방법은 그들의 교리가 성경적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
성경이 기록될 당시, 즉 초대교회 때도 거짓교사나 거짓선지자가 있었으며, 다른 교훈과 다른 복음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성경을 가감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요한은 그것을 경고하였고(계 22:18-19), 베드로는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는 자들은 멸망을 받는다고 책망하였다(벧후 3:16). 예상 외로 성경은 다른 복음과 다른 영,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경고를 상당히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으며(갈 1:6-9), 예수님 자신은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경고를 반복하여 말씀하셨는데, 오늘날 자신이 그리스도, 메시야, 보혜사,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너무나 많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3-24, 마 24:26, 막 13:21).
이단에 대해서 디도서3장에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관계를 끊고 멀리하라고 충고하고 있으며, 사도요한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충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로부터 변질된 거짓 복음이 전파됨을 사전에 예방하려는 목적이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딛 3: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요이 1:10-11).
(6) 그렇다면 정통교리란 무엇인가? 이단교리와 달리, 정통교리는 성경적이며 건전한 가르침(ortho-dox)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통교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1. 이단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2. 신앙적인 성숙을 위하여 3. 교회의 표준을 위해서 4. 불신자와 초신자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성경적으로 “올바른 교리”란 양을 양육하는 울타리의 역할을 한다. 울타리는 양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음으로 이탈되어지지 않게 함이지만, 다른 짐승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른 예수와 다른 영과 다른 복음은 언제나 부분적인 한 측면만을 확대, 강조하려고 한다. 성경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뜻보다는 자신들의 교리와 유사한 부분적인 구절만을 찾아 오직 그 구절만을 인용하기를 즐겨 한다. 즉 갖고 있는 교리에 성경을 짜맞추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성경적이라고 잘못 오해하기가 쉽다.
창세기만을 강조하거나, 계시록만을 지나친 풍유와 상징으로 해석하며, 종말론, 구원론의 한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하고, 특별히 어느 부분만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주로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는 구절이 그들이 주로 인용하는 증거로 제시된다. 때로는 표적이나 이적같은 가시적이며 신비적인 것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하며, 어떤 행위나 특정한 법규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단들은 정통교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난한다, 과연 그럴까? 기독교의 이천년 역사는 끊임없이 이단과의 싸움이었다. 정통교리란 먼저 이단교리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그 교리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어진 것이다.
삼위일체론도 아리우스장로와 청년집사인 아타나시우스의 토론을 한 니케야회의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기독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주장하거나 신성만을 주장하는 자들, 양성론자들과 단성론자들에 의하여 그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정립된 논리이었다. 정경(Cannon)이라는 오늘날의 신약성경도 결국은 영지주의자 이단들의 무분별한 성경의 채택을 대항하기 위한 투쟁의 결과이었다. 마리시온이라는 영지주의자는 자기의 책을 성경으로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가톨릭으로부터 분열된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이 바로 “오직 성경”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영적싸움으로 표현되는 이유는 그들의 배후에는 인간이 아닌 영적 존재,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다른 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