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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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어: Tēvzemei un Brīvībai (조국과 자유를 위하여!) | |||||
국가: 하느님, 라트비아를 축복하소서! | |||||
수도 | 리가 56°57′N 24°6′E | ||||
공용어 | 라트비아어 | ||||
정부 형태 | 공화제 발디스 자틀레르스 이바르스 고드마니스 | ||||
독립 • • 선언 • 승인 • 재독립 |
1918년 11월 18일 (러시아로부터) 1921년 1월 26일 1991년 8월 21일 (소련으로부터) | ||||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64,589km² (124위) 1.5% | ||||
인구 • 2005년 어림 • 인구 밀도 |
2,307,000명 (141위) 35명/km² (166위) | ||||
GDP (PPP) • 전체 • 일인당 |
2005년 어림값 $294.2억 (95위) $12,800 (53위) | ||||
HDI • 2006년 조사 |
0.863 (44위) | ||||
통화 | 라트 (ISO 4217:LVL ) | ||||
시간대 • 여름 시간 |
EET (UTC+2) EEST (UTC+3) | ||||
ISO 3166-1 | 428 | ||||
ISO 3166-1 alpha-2 | LV | ||||
ISO 3166-1 alpha-3 | LVA | ||||
인터넷 도메인 | .lv | ||||
국제 전화 | +371 |
(Latvija 라트비야, 문화어: 라뜨비야)는 유럽에 위치한 공화국으로서, 공식 명칭은 라트비아 공화국(라트비아어: Latvijas Republika 라트비야스 레푸블리카)이다.
북쪽은 에스토니아,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리투아니아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발트 해와 리가 만에 닿아 있다. 수도는 리가(Riga)이다. 18세기부터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독립하였으나 1940년 8월 스탈린에 의해 소련에 강제 합병되었다. 1991년 구 소련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독립국가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민족구성은 라트비아인이 58%이며,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국민소득의 48.6%를 서비스업이 23.9%를 제조업이 22.8%를 농업이 차지하고 있다.
역사
기원전 2000년 경부터 핀우그르계의 리브인들과 레트족이라고 불리는 발트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말부터 독일인들이 리가만 연안에 진출하기 시작하여, 1201년 이들에 의하여 리가 시가 건설되었다.
1558년 러시아의 이반 4세가 리보니아 전쟁을 일으키자, 이 지역을 지배하던 독일 기사단은 라트비아를 리투아니아의 보호령으로 양도하였고, 1561년 리투아니아의 보호를 받는 리보란드(Livoland) 공국과 쿠를란트(Courland) 공국이 성립하였다.
그 후 1600년부터 1629년까지 이 지역을 둘러싸고 폴란드-리투아니아와 스웨덴이 전쟁을 벌였다. 스웨덴은 1621년 리가를 점령하였고, 1629년 리보란드 공국은 스웨덴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쿠를란트 공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향 하에서 독립을 유지하였다.
예캅스 케틀레르스(Jekabs Ketlers) 공작이 지배하던 시대(1642-1682)에는 동방의 네덜란드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발전을 꾀하였다. 이 시기에는 쿠를란트 공국의 선단이 대서양을 누비고 다녔으며, 서인도 제도의 토바고와 아프리카의 감비아에 해외식민지를 만들기도 하였다.
1700년부터 1721년까지 계속된 스웨덴과 러시아 제국간 북방전쟁의 결과 리보란드 지역이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갔고, 이어 쿠를란트 역시 1795년 폴란드 분할의 결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가 독일에 패하자, 1918년 11월 18일 라트비아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라트비아는 농지개혁을 실시하고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어 다시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고 말았다.
소련으로의 편입 과정에서 약 13만 명의 라트비아인들이 해외로 망명하였고, 1953년까지 약 12만 명의 라트비아인들이 죽거나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었다. 한편 약 75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보다 산업환경이 좋은 라트비아로 이주하여, 라트비아인의 비율은 총인구의 52% 선으로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99년에는 제6대 대통령으로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Vaira Vīķe-Freiberga)가 선출되어 라트비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으며, 친미,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다.
행정 구역
수도인 리가 외에 26개의 구역(rajoni 라요니)과 7개의 도시(lielpilsētas 리엘필세타스)로 나뉜다.
지리
발트 해 동쪽에 있는 라트비아는 동유럽 평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 전체가 매우 평탄한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저지대로, 비옥하며 숲이 우겨져 있다. 주위에는 다우가바 강, 리에루페 강, 가우야 강이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총 531km이다.
기후
습윤한 대륙성 기후이다. 그러나 발트해와 접하고 있어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띤다. 여름에는 따뜻하고 봄과 가을에는 아주 온화하지만 겨울은 북쪽에 위치해 있어 다소 춥다. 강수량은 8월에 가장 많다. 러시아 일대의 북쪽 기압골의 영향으로 겨울이 되면 칼바람이 몰아치거나 눈보라가 치는 일도 많으나, 북위 60도에 가까운 위도를 감안하면 상당히 기온이 높은 편으로 같은 위도의 러시아 내륙에 비하면 훨씬 따뜻하다.
주민
주민은 2002년 시점에서 라트비아인이 58.8%, 러시아인이 28.6%[1], 벨라루스인이 4.1%, 우크라이나인이 2.7%, 폴란드인이 2.5%, 리투아니아인이 1.4%, 기타가 2%이다. 300여명 정도 밖에 남아 있지않은 소수 민족 리보니아인도 대부분이 라트비아에 산다.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5년 현재 1.29명이다[2]. 1998년에는 1.1명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 2005년 현재 천명당출산율은 9.3명, 천명당사망율은 14.2명이어서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언어
라트비아는 다민족 다언어국가로서, 독립 직후부터 라트비아어의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민족주의적인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라트비아어가 공용어이나, 수도인 리가에서는 러시아어 사용자가 시 인구의 절반에 달한다. 그 때문에 러시아인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서부에서는 라트비아어와는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라트갈레어가 사용된다. 또한 핀우그르계의 토착소수민족인 리보니아인이 사용하는 리보니아어도 있으나, 오늘날은 거의 사멸 직전이다. 그 외에도 리투아니아어, 독일어 등이 일부 사용된다.
종교
과거 라트비아 인은 스웨덴과 독일 북부의 영향으로 개신교의 루터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련 통치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루터교 신앙은 크게 위축되었다. 루터교 신도가 가장 많으며, 소련 시절 러시아 인의 이주가 많았으므로, 러시아 정교회 신도도 상당수 남아 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향으로 남부지방에는 로마 가톨릭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군사
이 나라의 방위는 국방부(Latvijas Nacionālie bruņotie spēki, 약칭 NBS)가 맡는다.
- 육군 (Latvian Army)
- 제메사르제 (Zemessardze, 영어로 National Guard)
- 해군 (Latvijas Jūras Spēki, 영어로 Latvian Naval Forces)
- 공군 (Latvijas Gaisa spēki, 영어로 Latvian Air Force)
- Border Guards
대한관계
대한민국은 라트비아와 1991년 수교하였다. 주(駐)스웨덴 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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