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世界史/(지구촌)유럽

[E.U] 리투아니아

好學 2009. 12. 15. 19:25

 

리투아니아

 

Lietuvos Respublika
(국기) (국장)
표어: Tautos jėga vienybėje
국가: Tautišką giesmę
수도 빌뉴스
54°40′N 25°19′E
공용어 리투아니아어
정부 형태 공화정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독립
 • 독립
 • 불법 점령
 • 재독립
러시아로부터 독립
1918년
1940년
1991년 9월 6일
면적
 • 전체
 
65,200km² (123위)
인구
 • 2005년 어림
 • 인구 밀도
 
3,431,000명 (131위)
108명/km² (69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493.8억 (75위)
$ 15,657 (49위)
HDI
 • 2006년 조사

0.869 (43위)
통화 리타스 (ISO 4217:LTL)
시간대
 • 여름 시간
UTC (UTC2)
UTC+3 
ISO 3166-1  440
ISO 3166-1 alpha-2  LT
ISO 3166-1 alpha-3  LTU
인터넷 도메인 .lt, .eu
국제 전화 +370

 

(Lietuva, 문화어: 리뜨바)는 유럽 북동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공식 명칭은 리투아니아 공화국(리투아니아어: Lietuvos Respublika)이며 수도빌뉴스(과거에는 카우나스)이다.

동쪽과 남쪽은 벨라루스, 서쪽은 발트 해, 남서쪽은 러시아연방 및 폴란드, 북쪽은 라트비아에 닿아 있다. 발트 3국 국가 중에서는 인구와 영토가 가장 많다. 18세기 말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립했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합병되었다. 1991년 8월 구 소련 쿠데타 실패 후 독립을 선언, 9월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독립국가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발트 3국의 최남부에 있다. 민족구성은 리투아니아인이 83%이다. 전체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식품 및 담배가 29.6%, 기계장비가 18.3%, 섬유의복·가죽제품이 17%이다. 6세부터 11년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1990년 종교교육을 도입하는 등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역사

옅은 초록색이 리투아니아 대공국1420년대의 넓이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은 1009년의 라틴 연대기 Annales Quedinburgenses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1253년 7월 6일 민다우가스(Mindaugas)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1386년 요가일라(Jogaila)가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하면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동군연합(同君聯合)을 형성하게 된다.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군은 1410년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튜튼기사단을 무찌름으로써 독일인들의 동방 팽창을 저지하였고, 리투아니아는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동일한 운명을 걷게 되어(→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폴란드 분할 결과 1795년 리투아니아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고 말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은 1795년, 1830년, 1863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원래는 군주제로 독립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러시아 혁명독일 제국의 패망으로 독립되어, 공화국으로 출발한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1918년 독립선언한 이후, 공산당세력, 보수세력, 농민세력등 복잡한 이념세력들의 정권 쟁탈 투쟁으로 국내사정은 극히 혼란하여 정권교체가 잦은 불안이 계속되어왔었다.

그 틈새를 타서 파시스트 세력들이 점점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하게되었는데, 1930년대즈음 들어오면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 국가들은 군사독재 세력들이 쿠테타로 집권하여 반소, 반공, 친독 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이후, 1940년 리투아니아는 히틀러-스탈린간의 조약에 의거하여 소비에트 연방(소련)에 편입되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가, 1941년 독-소 개전 이후 독일군에 점령되기도 하였다. 1944년 나치 독일이 패퇴하면서 다시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소련군은 독일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리투아니아인들을 박해하여 3만 가구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12만 명이 국외 추방되거나 북유럽, 미국 등지로 망명하였다.

1990년 3월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년 1월 소련군이 리투아니아를 침공하여 13명이 사망하고 700여명이 부상하였으나, 리투아니아는 소련군을 물리쳤고 같은 해 9월 17일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다.

현재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 연방(소련) 당시의 리투아니아 SSR을 괴뢰 국가로 호칭하고 있으며 반러시아적인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2008년 11월 27일에 리투아니아는 신임 총리로 안드류스 쿠빌류스가 새총리로 당선되었다.[2] 2009년 5월 17일에 대선에서 리투아니아는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되었다.[3]

지리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다. 북유럽에 위치하는 리투아니아는 99km 정도의 모래 해안선이 있으며 이 중 38km만이 발트 해와 접한다. 나머지는 쿠로니안 반도와 맞닿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가장 중요한 부동항인 클라페다(Klaipėda)는 쿠로니안 반도와 아주 가까우며 남쪽으로는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와 접한다. 네만 강이 가장 중요한 강이며 강의 지류가 국제 선박의 이송로로 쓰인다.

리투아니아는 빙하로 조각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은 서부와 동부의 고지대인대 300m 이상인 곳은 없어서 가장 높은 아우토자스(Aukštojas Hill) 언덕으로 294m 정도이다. 많은 습지와 호수가 있어서 삼림을 포함하여 전체 국토의 30%가 숲이다.

행정 구역

10개 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

 리투아니아의 주민

83.5%가 리투아니아인이며, 리투아니아어를 사용한다. 러시아인, 폴란드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유대인, 기타도 거주한다.

인구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2004년 현재 (Eurostat 추정) 1.26명이다. 합계출산율은 1994년 이래 계속 줄어들기만 하다가 2002년의 1.24를 기점으로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추세이다. 2005년 현재 천명당출산율은 8.9명, 천명당사망율은 12.9명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언어

리투아니아에서는 공용어인 리투아니아어외에도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 벨라루스어도 사용된다.

리투아니아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기도 하다.

종교

리투아니아인의 전통적인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다. 소련 통치와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가톨릭 세력이 많이 위축되기도 했으나, 소련 시절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가톨릭은 소련에서 독립할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소련에 속했던 나라 중 유일하게 국민 중 다수가 가톨릭 신도인 가톨릭 국가로 빌뉴스카우나스 관구를 중심으로 전국은 8개의 교구로 나누어진다. 다음으로 러시아 정교회루터교 신도가 많으며, 기타 개신교 교파와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신도도 소수 있다.

문화

전통옷을 많이 입으며, 엄격한 문화가 발달하였다. 올림픽에서는 농구투원반이 강세한 편이다.

외교관계

한국과의 관계

리투아니아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1991년에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93년 투자 상호증진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였다. 북조선과는 1991년에 수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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