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요점 정리 작자 : 구간 등 다수 제재 : 거북
내용 연구 '구지가'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단다. 사실 다산에 대한 원시인들의 기원을 표현한 노래라는 견해,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산신 제의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거북 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단다. 그러나 대체로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공통점은 거북을 신령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를 보면 왕의 강림을 기원하는 주술적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왕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지배 계급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사실 이런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왕들의 권위를 높여 주고,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백성들을 이끌어가는데 일정한 후광 효과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지. 보통의 사람들은 지도자에게서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할 때 더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가 있지.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들이 그런 미망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고, 지도자를 보는 눈을 보다 과학적으로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또 재미 있는 것은 이 작품의 주제를 생명 탄생과 관련시켜 본다면 거북이와 인간의 생식기와 비교해 보면 재미 있는 공통점이 보이지 않니? 한번 왜 비슷할까 생각을 해봐. 먼저 이 글을 이해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어. 龜何(구하) : 거북아라는 뜻으로 '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용(龍)과 더불어 동양에서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간주하고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고 보는 주술(呪術)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何'는 고어에서의 호격조사 '하'를 음차(音借)한 것으로 고려 시대 이전에는 '존칭'의 뜻이 없었다고 하지만 호격 조사 정도로 간주하면 될 것 같다.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地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아니 내면은(내어 놓지 않으면) 만약 나타내지 않으면, (또는 '머리를 내어 놓지 않으면'이라는 말로 가정적 표현을 통해 위협적인 언사를 사용.)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심화 자료 '구지가'의 다양한 해석 향가의 4구체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이 노래는 수로왕의 강탄 의식에서 불리어진 주술적인 집단 무요로서, ① 다산에 대한 원시인들의 기원을 표현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거북의 머리는 외형적으로 남근과 유사하므로 이 노래는 남근 숭배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다산을 기원하는 신화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한편 거북은 여신이며, '거북'의 머리는 남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거북'은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가진 양성구유의 존재로서, 그 자체가 남성과 여성의 합체를 통한 생산력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 해석은 '거북'이 구지봉의 산신이라는 해석과도 상통하는데, 대체로 한국 고대의 산신은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정병욱- ②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 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은 특별한 제의에서 제단에 바쳐지던 희생 동물의 이름을 따서 제의 공간의 이름을 지은 사례가 있는데, 구지봉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 김열규- ③ 산신 제의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 노래의 공간적 배경은 구지봉이라는 신성한 지역이며 구지봉이라는 이름이 곧 거북을 나타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노래의 거북은 구지봉의 산신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즉, 구지봉의 산신을 거북이라는 구체적이고 신령스러운 동물로 나타낸 것이다. 혹은 이와 달리, 이 노래의 가창 집단이 거북을 토템으로 하는 족속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경우, '구지가'는 자신들의 토템인 거북을 죽여서 먹음으로써 신령스러운 토템인 거북과 자기 집단 사이의 일체감을 형성하려는 집단의 제의에서 가창되던 노래로 볼 수 있다. ④ 거북 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을 불에 구워 먹겠다고 위협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점복 의식과 관련된 상징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오랜 옛날에는 거복의 등껍질을 불에 구울 때 그것이 갈라지는 모양을 통해 점을 치던 습속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거북등껍질을 이용한 점복 의식에서 새로운 우두머리의 출현을 예언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임명덕 등이 있다. ⑤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 박지홍- 그러나 700여년 후 성덕왕 때 불러졌다는, 내용 및 주제가 같은 '해가'와 연결시켜 볼 때 원시 주술적 집단 무요(舞謠)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구지가의 배경 설화 '영신군가(迎神君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한다. 가락국(駕洛國)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강림신화(降臨神話) 가운데 곁들여 전하는 신화 중의 삽입가요(揷入歌謠)인데, 4구체(四句體)의 한역가(漢譯歌) 형태로 전한다(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출전문헌인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가락국에 아직 임금이 없어 9명의 추장(酋長)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42년(후한 건무18) 3월 계욕일(액을 없애기 위하여 물가에서 목욕하며 노는 날)에 마을 북쪽 구지에서 무엇을 부르는 수상한 소리가 났다. 마을 사람 이삼백 인이 그 곳에 모이니, 사람의 소리가 나는데 그 모양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기를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구간 등이 말하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말하되, '이 곳이 어디냐?' 대답하되, '구지입니다.' 또 말하되, '황천에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이 곳에 와서 나라를 새롭게 하여 임금이 되라 하였으니, 너희들은 구지의 봉우리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하는 일이 될 것이니, 기뻐하고 용약하라."하였다. 구간 등이 그 말을 따라 다같이 빌고, 또한 가무하였다. 10여일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와 6명의 귀공자(貴公子)로 변하여 그 중 한 사람이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휘를 수로라 하고 나라를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고도 하여 육 가야(伽倻)의 하나이고, 나머지 다섯 가야의 주가 되었는데, 그 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사람이 수로왕이었다. 이 노래는 임금을 맞이하기 위한 민중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무가적(巫歌的)인 주술성(呪術性)을 지니고 있는 서사시의 하나이다.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간에 상당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잡귀를 쫓는 주문(呪文)으로 보는 견해, 둘째 거북을 신으로 풀이하여 “신이여, 신이여, 우리에게 머리(곧 우두머리:군주)를 내놓아라”라고 하는 견해, 셋째 거북은 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영신제(迎神祭)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희생무용(犧牲舞踊)에서 가창(歌唱)된 노래라는 견해, 넷째 거북의 머리와 목은 남성의 성기(性器)를, 구워 먹겠다(燔灼而喫也)는 여성의 성기를 은유(隱喩)한 것으로 보고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가사의 뜻과 표현형식이 이 노래와 비슷한 것으로 '해가사(海歌詞)'라는 것이 전해지는데, '구지가'를 40∼50년경의 작품이라 본다면 '해가사'는 그로부터 약 700년 후의 작품이다. 이 신화는 하늘의 신이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 등 9족장들이 부족 을 다스리는 부족(9간) 연합사회의 통치자로서 인간사회에 내려왔다는 것과, 인간사회가 그 를 환영의 극치인 ‘춤과노래’로 스스럼없이 맞아들여 왕으로 삼은 영신(迎神)신화라는 데 특색이 있다.
구지가(龜旨歌) 원문 三國遺事2卷-2紀異-駕洛國記-02 屬後漢世祖光武帝建武十八年壬寅三月 *<洛{浴}>之日, 所居北龜旨[是*<峰,峯>巒之稱, 若十朋伏之狀, 故云也.], 有殊常聲氣呼喚, 衆庶二三百人, 集會於此, 有如人音, 隱其形, 而發其音曰: "此有人否?" 九*<于{干}>等云: "吾徒在." 又曰: "吾所在爲何?" 對云: "龜旨也." 又曰: "皇天所以命我者, 御是處, 惟新家邦, 爲君后, 爲玆故降矣. 爾等須掘峯頂撮土, 歌之云: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以之蹈舞, 則是迎大王, 歡喜*<踊, >躍之也." 九干等如其言, *<感欣,咸 >而歌舞, 未幾, 仰而觀之, 唯紫繩自天垂而着地. 尋繩之下, 乃見紅幅*<裏, >金合子. 開而視之, 有黃金卵六圓如日者. 衆人悉皆驚喜, 俱伸百拜, 尋還*<裏, >著, 抱持而歸乃我刀家, 榻上, 其衆各散. (제공 안 되는 한자도 있음)
< 해 석 > 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액을 덜기 위해 목욕하고 술을 마시던 계욕일에 그들이 사는 북쪽 구지(이는 산의 이름인데 열 붕새가 엎드린 모습이기 때문에 구지라고 불렀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2,3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사람 소리는 있는 것 같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하는 말소리만 들렸다. 구간 등이 "우리들이 있습니다."하자, "내가 있는 데가 어디냐?" 하였다. "구지입니다." 하자, 또 "하늘이 내게 명하여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시므로 여기에 왔으니, 너희는 이 봉우리의 흙을 파서 모으면서 노래하여라. 龜 何 龜 何 거북아 거북아 하면서 춤을 추면 이것이 대왕을 맞이하면서 기뻐 날뛰는 것이라." 하였다. 구간 등이 그 말대로 즐거이 노래하며 춤추다가 얼마 후 우러러보니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늘어져 땅에까지 닿았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을 싼 것이 있었다.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있는데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났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 기뻐하며 백 번 절하고 다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모셔 두고 흩어졌다가 12일쯤 지나 그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모두 남자로 변하였고, 용모가 매우 거룩하였다. 이어 의자에 앉히고 공손히 하례하였다. [삼국유사2권-2기이-가락국기-02]
구지가(龜旨歌) 작자·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영신군가(迎神君歌)·구하가(龜何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부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으나, 관련설화와 4구체의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삼국유사》권2 가락국기조에 전한다. 이에 의하면 서기 42년 3월 계욕(擧浴)의 날에 북쪽 구지에서 수상한 소리로 부른 것이 있었다. 무리 200∼300명이 거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형상은 나타나지 않고 소리만 내어, “여기에 누가 있느냐?”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구간(九干) 등이 “우리가 있소.”라고 대답하자,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하고 재차 물어오자, 구간이 다시 “구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다시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워 임금이 되라 하였기에 여기에 내려왔다. 그러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를 파서 흙을 모으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에 너희들은 매우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간들이 그 말과 같이 행하고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러자 얼마 후 자주색 끈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았다. 그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자(金合子)가 싸여 있었다. 열어보니 그 속에는 해와 같이 둥근 황금빛 알 여섯이 있어 이를 본 모든 사람이 놀라고 기뻐하여 함께 수없이 절을 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보자기에 싸서 아도간(我刀干)의 집으로 돌아와 평상〔榻〕위에 두고는 무리들이 모두 흩어졌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모여 금합자를 열어보니, 알 여섯개가 모두 동자로 변했는데, 용모가 매우 준수하였다고 한다. 〈구지가〉와 그 신화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신화를 영신제의(迎神祭儀)로 보고 신탁의식(神託儀式)·희생의식·영신의식의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논의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등극제의로 보고 신탁의식·귀복의식(龜卜儀式)·등극의식의 세 단계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등극의식은 다시 하강-격리-재수용-등극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구지가〉는 이 세 단계 가운데 제2 단계에서 신탁에 의해 불린 주가(呪歌)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 가요의 성격을 밝히는 데는 가창 뒤의 결과나 가사 자체의 분석도 중요하지만 산문전승 중에 들어 있는 ‘굴봉정촬토(掘峰頂撮土)’라는 행위전승의 풀이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① 가래질과 타작을 시늉한 농부의 동작을 그린 것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었는가 하면, ② 제의를 베풀 때 신이 내려와 앉을 신좌를 만드는 과정의 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혹은 ③ 거북 토템사회의 제사에서 나타난 거북 토템을 모방하여 만든 극행위(dr○mena)로 보기도 하고, ④ 극행위로써 주술·종교적인 도신행위(禱神行爲)를 흉내낸 가무로 보는 입장도 있다. ‘굴정봉출토’를 ⑥≪위지≫ 동이전의 “그 춤은 수십명이 같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또는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한다.”라고 한 기록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여 집단 가무의 양상을 기술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외에도 ⑦ 신탁 예언에 맞추어 그것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예언적으로 모방하는 형태의 희생의식의 무용으로 보거나 ⑧ 철기문화를 가진 유이민집단이 토착집단과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토착집단의 성역을 훼손하는 행위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구지가〉의 가 가운데 연구대상이 되어온 어사(語辭)는 ‘거북〔龜〕’과 ‘머리[首〕’와 ‘구워먹겠다(燔灼而喫也)’ 등이다. 이들 어사를 은유 내지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거북’을 ‘검〔神〕’ 또는 토템으로서의 거북으로 풀이하거나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수신의 사자인 제의적 상관물로 풀이하기도 한다. ‘머리’는 수로(首露)·우두머리·남근(男根)·구지봉(龜旨峰)으로 해석된 바 있다. ‘구워먹겠다’에 대한 해석은 네 가지로 집약된다. ① 토템사회에서 그네들의 토템인 거북을 죽여 향연을 갖는 제의의 가요적 투사(透射)라고 보는 입장이 하나이다. ② 남성성기의 불합리한 욕망의 대두에 대한 보다 강한 거세욕구(去勢欲求)의 표현으로서 청정의식(淸淨儀式)을 상징하였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혹은 ③ 우두머리 선정의 점괘인 거북의 조짐〔龜兆〕을 얻기 위해 계속 굽겠다는 위압적 구절로 보기도 했으며, ④‘번작(燔灼)’이 나타내는 이미지는 원시인들의 격렬한 욕정이 반영되어 여성성기를 은유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구지가〉의 성격을 ① 영신제(迎神祭)의 절차 중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의식의 무용에서 불려진 주가(呪歌)라는 견해가 있다. ② 안산(安産)을 촉구(促求)하거나 농산물의 풍요를 기원하고, 기우하는 주가가 부가장제(父家長制)의 확립에 따라 선행하던 원시 모가장제(母家長制)가 쇠퇴할 당시의 애환이 서려 있는 민요라고 파악하기도 하였다. 일부 학자들에서는 〈구지가〉의 성격을 ③ 잡귀를 쫓는 주문이나 ④ 원시종교생활에서 볼 수 있는 원시적 기도로서의 주원사로 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⑤ 거북이 머리를 내민다는 것은, 토템의 출현과 수로의 탄강(誕降)이 상응하여 거북 토템이 머리를 내밀듯 상서로운 수로왕의 탄생이 있으리라는 뜻으로 보아 어디까지나 무속적·주술적 신요(神謠)라는 견해도 있다. ⑥ 가락국의 우두머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려진 귀복가(龜卜歌)라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⑦ 거북 토템집단이 장차 그들의 통치자로 내정된 영아(叛兒)의 출산제의 겸 영신제의에서 정상 출산을 촉구하는 열망의 극한적 표현으로 불리어진 주사(呪詞)라라고 파악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⑧ 기우제를 올릴 때 불려진 주가라는 견해까지 〈구지가〉의 성격에 대해서 제기되어 온 견해는 해석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가요는 원시시대 또는 기원전 6, 7세기 경부터 가창되었으나 시대의 추이에 따라 의미내용에 변화가 있었으리라 보는 입장에서는, ① 처음 〈구지가〉가 임금이 나타나 주셨으면 하는 뜻으로 부른 축도가였던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구지가〉는 어사(語辭)의 의미 전이과정을 거쳐 제사에서 부르는 의식가(儀式歌:祭歌)가 되었고, 다시 주력(呪力)을 불러일으키는 주가로 형성되는 과정에 있던 가요라는 것이다. ②〈구지가〉가 애초에는 원시인들의 성욕에 대한 강렬하고도 소박한, 즉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불렸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구지가〉가 차차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일종의 주문적인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건국신화에까지 끼어든 것으로 본다. 이외에도 ③ 원가시대(原歌時代)에는 자기 집단의 무한한 생생력(生生力)을 주원(呪願)하던 도가(蹈歌)이던 것이 수로왕 탄강시대에는 신군을 맞이하는 노래로 변이되고, 후대의 ‘해가시대(海歌時代)’에 와서는 ‘원가시대’의 생생력을 상징하는 기능이나 수로왕 탄강시대의 영신군(迎神君)이라는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오직 주술적인 요소로만 받아들여 〈해가 海歌〉와 결부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마지막으로 ④ 가락국 선주민들의 토착적 제의에서 쓰이던 일종의 풍요주술 형태이던 〈구지가〉를 시조신으로서의 수로왕을 맞기 위한 영신제의에서 영신주술의 형태로 바꾸어 사용한 것이라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그리고 이 가요의 뜻과 표현형식이 비슷한 것에 신라 성덕왕 때 해룡에게 끌려간 수로부인(水路夫人)을 구출하기 위해 부른 〈해가〉라는 노래가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三國遺事, 韓國上古文學硏究(金承璨, 第一文化社, 1978), 한국고전시가론(鄭炳昱, 新丘文化社, 1979), 韓國古典詩歌의 硏究(金學成, 圓光大學敎出版局, 1980), 龜旨歌硏究(朴智弘, 국어국문학16, 1957), 駕洛國記攷(金烈圭, 釜山大學校 國語國文學誌 2, 1961), 龜旨歌攷(黃浿江, 국어국문학 29, 1965), 駕洛國記說話考(蘇在英, 高麗大學校 語文論集 10, 1967), 駕洛國記(崔東元, 金海地區 綜合 學術調査 報告書, 釜山大學校 韓日文化硏究所, 1973), 龜旨歌의 作品的 性格과 그 解釋(成基玉, 배달말 12, 慶尙大 배달말학회, 1987), 首露神話의 敍述原理의 特殊性과 그 現實的 意味(李康沃, 加羅文化 5, 慶南大學校 加羅文化硏究所, 1987), 駕洛國記의 山上儀禮와 龜旨歌의 性格에 對한 小攷(黃京淑, 釜山大 國語國文學 31, 199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지가와 해가의 어법상의 공통점과 내용 및 형식상의 차이점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라. 신라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할 때, 바닷가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었다. 문득 바다의 용왕이 나타나 순정공의 부인인 수로부인을 끌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가 버렸다. 공은 땅에 넘어져 아무런 계책이 없었는데, 한 노인이 있어 이렇게 말했다. "옛 사람의 말에 뭇 입은 무쇠도 녹인다 했으니, 이제 속의 짐승이 어찌 많은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인근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기로써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은 이렇게 하여 부인을 되돌려 받았다 한다. 구지가 계통의 노래로 구지가가 오랜 세월 민간에 구비 전승되어 있음을 확인해 준 노래이다.(삼국유사 권2) 주술 바로 가기 남근 숭배 사상 <생식기숭배 (生殖器崇拜)>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의 상징으로서 성기상(性器像)을 숭배하는 일. 일반적으로 남근숭배(男根崇拜)가 많다. 여성기(음부)숭배는 남근숭배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상례이고, 또한 여성만의 풍요력(豊饒力)은 오히려 허리부분 등을 과장하여 나타낸 나녀상(裸女像)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생식기숭배의 바탕을 이루는 관념, 즉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민족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성기숭배(性器崇拜)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生殖器) 형태나 모형을 숭배 대상으로 받드는 민속신앙.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기본적인 생계수단의 생산 및 인류 자신의 생산 즉, 종의 번식을 해결해야만 한다. 이러한 생산과 재생산은 인류 사회가 존속하고 발전하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이다. 〔성기숭배의 유형〕 성에 대한 숭배는 생식 숭배, 생식기 숭배, 성교 숭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성숭배는 인간의 긴 역사 속에서 상호 밀접한 영향을 받으면서 전승되어 왔다. 특히 생식기에 대한 숭배 형태는 신앙 형태에 따라 다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의 성기숭배 사례를 소개하면, 이 마을에서는 성기와 꼭 닮은 선돌형 화강석 2기를 암미륵·숫미륵이라 부르며 이에 대해 정기적으로 매년 치성행위를 행하고 있다. 남성기와 비숫한 모양의 숫미륵은 윗부분에 띠모양의 도드라진 돌대띠가 둘러져 있다. 남근석의 명칭은 부근(付根)·부군(府君, 附君)·선바위·선돌·입석·기자암·총각바위·숫바위·좆바위·남근석·양석(陽石) 등이고, 여근석은 공알바위·보지바위·씹바위·처녀바위·암바위 등이며, 남녀근석 혼용으로는 미륵님(영감·할멈)·돌빼기방구·부부석·골맥이·액막이 등으로 불린다. 선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성과 관련된 민요로는〈천안삼거리〉,〈도라지타령〉,〈새타령〉이 있고, 전설로는 남해안의〈옥녀봉(玉女峰)이야기〉, 강원도〈달래고개전설〉, 강릉지방의〈해랑당(海娘堂)전설〉, 장승과 얽힌〈장승상(張丞相)이야기〉,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리의〈남근석전설〉등이 있다. 이처럼 성기를 숭배하는 목적은 개인적으로는 기자·자손발복(子孫發福)에 있고, 마을을 위하여서는 풍농, 마을평안, 해상의 안전·풍어 등의 공동기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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