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교육 3/[시조]古時調

구지가(龜旨歌)

好學 2009. 11. 9. 18:14

 

 

구지가(龜旨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龜何龜何(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내어 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삼국유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구간 등 다수
circle01_blue.gif 갈래 : 4구체 한역 시가, 서사적 집단 가요. 집단 무가, 노동요. 주술(
呪術) :불행이나 재해를 막으려고 주문을 외거나 술법을 부리는 일. 또는 그 술법)요
circle01_blue.gif 연대 : 신라 유리왕 19년, 가락국 건국 때

circle01_blue.gif 제재 : 거북
circle01_blue.gif 성격 : 주술적(
무격사상이 깔려 있음, 무격은 샤만을 한자로 차용한 것임), 집단적, 직설적 표현, 명령 어법
circle01_blue.gif 별칭 : 영군가(
임금을 맞이하는 노래), 영신군가, 구지봉, 영신가, 가락국가
circle01_blue.gif 주제 : 수로왕 강림 기원, 생명 탄생의 염원
circle01_blue.gif 의의 : 현전 최고의 집단 무요, 주술성을 지닌 현전 최고의 노동요로 가락국 건국신화에 삽입되어 있는 주술적인 노래이다.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을 맞으면서 구간(九干)과 마을 사람들이 부른 '영(迎)신(神)군(君)가(歌)이며, 원시 가요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고, 아류작으로 해가가 있다.
circle01_blue.gif 출전 :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구지가'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단다. 사실  다산에 대한 원시인들의 기원을 표현한 노래라는 견해,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산신 제의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거북 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단다. 그러나 대체로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지만 공통점은 거북을 신령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를 보면 왕의 강림을 기원하는 주술적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왕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지배 계급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사실 이런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왕들의 권위를 높여 주고,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백성들을 이끌어가는데 일정한 후광 효과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지.

 보통의 사람들은 지도자에게서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할 때 더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가 있지.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들이 그런 미망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고, 지도자를 보는 눈을 보다 과학적으로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또 재미 있는 것은 이 작품의 주제를 생명 탄생과 관련시켜 본다면 거북이와 인간의 생식기와 비교해 보면 재미 있는 공통점이 보이지 않니? 한번 왜 비슷할까 생각을 해봐.

먼저 이 글을 이해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어.

龜何(구하) : 거북아라는 뜻으로 '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용(龍)과 더불어 동양에서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간주하고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고 보는 주술(呪術)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何'는 고어에서의 호격조사 '하'를 음차(音借)한 것으로 고려 시대 이전에는 '존칭'의 뜻이 없었다고 하지만 호격 조사 정도로 간주하면 될 것 같다.
首(수) : '머리', 또는 '목'의 뜻으로 보아 '생명'의 심상으로 파악하려는 견해와 수로왕의 '首'로 보려는 견해가 있다.
 若不現也(약불현야) : 若은 만약을 뜻하며, 만약에 (머리를) 나타내지 않으면, 내어 놓지 않으면
 燔灼(번작) : (불에) 굽다
 喫也(끽야) : 먹다

龜何龜何(구하구하)   

군왕의 출현 기원

요구

首其現也(수기현야)

若不現也(약불현야)

소원 성취의 의지

위협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龜何龜何      거북아, 거북아,

  동양에서 용이나 거북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동물들로 알려져 왔다. 즉, 특히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이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거북'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는 '신령스러운 것'이고 '장수하는 동물'이다. '龜何'는 이러한 거북을 부른 것인데, 주술적인 노래에서는 이를 '신격(神格)의 호명(呼名)'이라고 한다. 소원을 들어 줄 대상신을 먼저 불러 모신 뒤에 소원을 말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에 주술적 노래에서는 대개 첫머리에 호명이 놓인다.

首其現地      머리를 내어라,

 
수(首)라는 글자는 거북의 머리, 우두머리[君主] , 산등성 마루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노래를 수로왕 강림(降臨)신화의 삽입 가요로 볼 때, 수로(首露 : 머리를 드러내다)는 首現(수현)과 상통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수(首)는 '머리' 또는 '목'으로 보겠는데, 이 말의 이미지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강신(降神)한 신에게 인간의 소망을 말한 것으로 이 노래의 중심 구절(주제)이다.

若不現也      아니 내면은(내어 놓지 않으면)

 만약 나타내지 않으면, (또는 '머리를 내어 놓지 않으면'이라는 말로 가정적 표현을 통해 위협적인 언사를 사용.)

燔灼而喫也    구워서 먹으리.

 '번작'은 '굽고 구워서, 거듭 구워서'의 뜻. 이 구절은 전형적인 주술적 내용으로 700여 년 후의 동궤(同軌 : 같은 궤도, 같은 유형)의 주술가인 '해가사'의 '[입(入)망(網)포(捕)략(掠)번(燔)지(之)끽(喫) : 그물로 잡아서 구워서 먹을 테다]에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3행과 4행은 표면적으로 거북을 위협하는 태도이지만 이면은 위협을 통해서 자신들의 소망을 달성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지가'의 다양한 해석

 향가의 4구체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이 노래는 수로왕의 강탄 의식에서 불리어진 주술적인 집단 무요로서,

 다산에 대한 원시인들의 기원을 표현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거북의 머리는 외형적으로 남근과 유사하므로 이 노래는 남근 숭배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다산을 기원하는 신화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한편 거북은 여신이며, '거북'의 머리는 남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거북'은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가진 양성구유의 존재로서, 그 자체가 남성과 여성의 합체를 통한 생산력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 해석은 '거북'이 구지봉의 산신이라는 해석과도 상통하는데, 대체로 한국 고대의 산신은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정병욱-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 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은 특별한 제의에서 제단에 바쳐지던 희생 동물의 이름을 따서 제의 공간의 이름을 지은 사례가 있는데, 구지봉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 김열규-

산신 제의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 노래의 공간적 배경은 구지봉이라는 신성한 지역이며 구지봉이라는 이름이 곧 거북을 나타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노래의 거북은 구지봉의 산신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즉, 구지봉의 산신을 거북이라는 구체적이고 신령스러운 동물로 나타낸 것이다. 혹은 이와 달리, 이 노래의 가창 집단이 거북을 토템으로 하는 족속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경우, '구지가'는 자신들의 토템인 거북을 죽여서 먹음으로써 신령스러운 토템인 거북과 자기 집단 사이의 일체감을 형성하려는 집단의 제의에서 가창되던 노래로 볼 수 있다.

거북 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을 불에 구워 먹겠다고 위협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점복 의식과 관련된 상징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오랜 옛날에는 거복의 등껍질을 불에 구울 때 그것이 갈라지는 모양을 통해 점을 치던 습속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거북등껍질을 이용한 점복 의식에서 새로운 우두머리의 출현을 예언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임명덕 등이 있다.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 박지홍-  

 그러나 700여년 후 성덕왕 때 불러졌다는, 내용 및 주제가 같은 '해가'와 연결시켜 볼 때 원시 주술적 집단 무요(舞謠)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지가의 배경 설화

 '영신군가(迎神君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한다. 가락국(駕洛國) 시조인 수로왕(首露王)의 강림신화(降臨神話) 가운데 곁들여 전하는 신화 중의 삽입가요(揷入歌謠)인데, 4구체(四句體)의 한역가(漢譯歌) 형태로 전한다(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출전문헌인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가락국에 아직 임금이 없어 9명의 추장(酋長)이 백성들을 다스리던 42년(후한 건무18) 3월 계욕일(액을 없애기 위하여 물가에서 목욕하며 노는 날)에 마을 북쪽 구지에서 무엇을 부르는 수상한 소리가 났다. 마을 사람 이삼백 인이 그 곳에 모이니, 사람의 소리가 나는데 그 모양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기를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구간 등이 말하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말하되, '이 곳이 어디냐?' 대답하되, '구지입니다.' 또 말하되, '황천에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이 곳에 와서 나라를 새롭게 하여 임금이 되라 하였으니, 너희들은 구지의 봉우리 흙을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하는 일이 될 것이니, 기뻐하고 용약하라."하였다. 구간 등이 그 말을 따라 다같이 빌고, 또한 가무하였다. 10여일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와 6명의 귀공자(貴公子)로 변하여 그 중 한 사람이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하여 휘를 수로라 하고 나라를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고도 하여 육 가야(伽倻)의 하나이고, 나머지 다섯 가야의 주가 되었는데, 그 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사람이 수로왕이었다.

 이 노래는 임금을 맞이하기 위한 민중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무가적(巫歌的)인 주술성(呪術性)을 지니고 있는 서사시의 하나이다. 이 노래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간에 상당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첫째, 잡귀를 쫓는 주문(呪文)으로 보는 견해, 둘째 거북을 신으로 풀이하여 “신이여, 신이여, 우리에게 머리(곧 우두머리:군주)를 내놓아라”라고 하는 견해, 셋째 거북은 신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영신제(迎神祭)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희생무용(犧牲舞踊)에서 가창(歌唱)된 노래라는 견해, 넷째 거북의 머리와 목은 남성의 성기(性器)를, 구워 먹겠다(燔灼而喫也)는 여성의 성기를 은유(隱喩)한 것으로 보고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가사의 뜻과 표현형식이 이 노래와 비슷한 것으로 '해가사(海歌詞)'라는 것이 전해지는데, '구지가'를 40∼50년경의 작품이라 본다면 '해가사'는 그로부터 약 700년 후의 작품이다.

 이 신화는 하늘의 신이 아도간(我刀干)˙여도간(汝刀干) 등 9족장들이 부족 을 다스리는 부족(9간) 연합사회의 통치자로서 인간사회에 내려왔다는 것과, 인간사회가 그 를 환영의 극치인 ‘춤과노래’로 스스럼없이 맞아들여 왕으로 삼은 영신(迎神)신화라는 데 특색이 있다.
  
 그리고 거북이는 용 ·봉황과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되고 있어 집을 지으면서 상량(上樑)할 때 대들보에 거북을 뜻하는 ‘하룡(河龍)’ 또는 ‘해귀(海龜)’라는 문자를 써 넣었고, 비석에 귀부(龜趺)를 받쳐 장생(長生)과 길상(吉祥)을 염원하였다. '삼국사기'의 ‘구지가(龜旨歌)’는 제왕의 출현과 관련하여 매개자(媒介者)의 의미를, 곤경에 빠진 주몽(朱蒙)을 도운 자라는 신의 사자(使者)라는 의미를 가진다. 무속 전승에서는 거북이 백제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하며, 귀복(龜卜)으로 길흉과 운세를 점치고 있다. 거북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풍습이 있다. 거북을 보은(報恩)하는 동물로 또는 신성한 존재로 한 '숙향전', 용왕의 사자로 등장하는 '별주부전' 등의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지가(龜旨歌) 원문

 三國遺事2卷-2紀異-駕洛國記-02

 屬後漢世祖光武帝建武十八年壬寅三月 *<洛{浴}>之日, 所居北龜旨[是*<峰,峯>巒之稱, 若十朋伏之狀, 故云也.], 有殊常聲氣呼喚, 衆庶二三百人, 集會於此, 有如人音, 隱其形, 而發其音曰: "此有人否?"  九*<于{干}>等云: "吾徒在." 又曰: "吾所在爲何?"  對云: "龜旨也."  又曰: "皇天所以命我者, 御是處, 惟新家邦, 爲君后, 爲玆故降矣. 爾等須掘峯頂撮土, 歌之云: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以之蹈舞, 則是迎大王, 歡喜*<踊, >躍之也." 九干等如其言, *<感欣,咸 >而歌舞, 未幾, 仰而觀之, 唯紫繩自天垂而着地. 尋繩之下, 乃見紅幅*<裏, >金合子. 開而視之, 有黃金卵六圓如日者. 衆人悉皆驚喜, 俱伸百拜, 尋還*<裏, >著, 抱持而歸乃我刀家,  榻上, 其衆各散. (제공 안 되는 한자도 있음)

 

 < 해 석 >

  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액을 덜기 위해 목욕하고 술을 마시던 계욕일에 그들이 사는 북쪽 구지(이는 산의 이름인데 열 붕새가 엎드린 모습이기 때문에 구지라고 불렀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2,3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사람 소리는 있는 것 같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하는 말소리만 들렸다. 구간 등이 "우리들이 있습니다."하자, "내가 있는 데가 어디냐?" 하였다. "구지입니다." 하자, 또 "하늘이 내게 명하여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라 하시므로 여기에 왔으니, 너희는 이 봉우리의 흙을 파서 모으면서 노래하여라.

  龜 何 龜 何          거북아 거북아
  首 其 現 也          머리를 내어라
  若 不 現 也          내어 놓지 않으면
  燔 灼 而 喫 也      구워서 먹겠다

  하면서 춤을 추면 이것이 대왕을 맞이하면서 기뻐 날뛰는 것이라." 하였다. 구간 등이 그 말대로 즐거이 노래하며 춤추다가 얼마 후 우러러보니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늘어져 땅에까지 닿았다. 줄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을 싼 것이 있었다.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있는데 태양처럼 황금빛으로 빛났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 기뻐하며 백 번 절하고 다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모셔 두고 흩어졌다가 12일쯤 지나 그 다음날 아침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 합을 열어보니 알 여섯 개가 모두 남자로 변하였고, 용모가 매우 거룩하였다. 이어 의자에 앉히고 공손히 하례하였다.    [삼국유사2권-2기이-가락국기-02]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지가(龜旨歌)

 작자·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영신군가(迎神君歌)·구하가(龜何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부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으나, 관련설화와 4구체의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삼국유사》권2 가락국기조에 전한다.

이에 의하면 서기 42년 3월 계욕(擧浴)의 날에 북쪽 구지에서 수상한 소리로 부른 것이 있었다. 무리 200∼300명이 거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형상은 나타나지 않고 소리만 내어, “여기에 누가 있느냐?”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구간(九干) 등이 “우리가 있소.”라고 대답하자,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하고 재차 물어오자, 구간이 다시 “구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다시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워 임금이 되라 하였기에 여기에 내려왔다. 그러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를 파서 흙을 모으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에 너희들은 매우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간들이 그 말과 같이 행하고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러자 얼마 후 자주색 끈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았다. 그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자(金合子)가 싸여 있었다. 열어보니 그 속에는 해와 같이 둥근 황금빛 알 여섯이 있어 이를 본 모든 사람이 놀라고 기뻐하여 함께 수없이 절을 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보자기에 싸서 아도간(我刀干)의 집으로 돌아와 평상〔榻〕위에 두고는 무리들이 모두 흩어졌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모여 금합자를 열어보니, 알 여섯개가 모두 동자로 변했는데, 용모가 매우 준수하였다고 한다.

〈구지가〉와 그 신화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신화를 영신제의(迎神祭儀)로 보고 신탁의식(神託儀式)·희생의식·영신의식의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논의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등극제의로 보고 신탁의식·귀복의식(龜卜儀式)·등극의식의 세 단계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등극의식은 다시 하강-격리-재수용-등극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구지가〉는 이 세 단계 가운데 제2 단계에서 신탁에 의해 불린 주가(呪歌)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 가요의 성격을 밝히는 데는 가창 뒤의 결과나 가사 자체의 분석도 중요하지만 산문전승 중에 들어 있는 ‘굴봉정촬토(掘峰頂撮土)’라는 행위전승의 풀이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① 가래질과 타작을 시늉한 농부의 동작을 그린 것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었는가 하면, ② 제의를 베풀 때 신이 내려와 앉을 신좌를 만드는 과정의 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혹은 ③ 거북 토템사회의 제사에서 나타난 거북 토템을 모방하여 만든 극행위(dr○mena)로 보기도 하고, ④ 극행위로써 주술·종교적인 도신행위(禱神行爲)를 흉내낸 가무로 보는 입장도 있다.

‘굴정봉출토’를 ⑥≪위지≫ 동이전의 “그 춤은 수십명이 같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또는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한다.”라고 한 기록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여 집단 가무의 양상을 기술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외에도 ⑦ 신탁 예언에 맞추어 그것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예언적으로 모방하는 형태의 희생의식의 무용으로 보거나 ⑧ 철기문화를 가진 유이민집단이 토착집단과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토착집단의 성역을 훼손하는 행위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구지가〉의 가 가운데 연구대상이 되어온 어사(語辭)는 ‘거북〔龜〕’과 ‘머리[首〕’와 ‘구워먹겠다(燔灼而喫也)’ 등이다.

이들 어사를 은유 내지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거북’을 ‘검〔神〕’ 또는 토템으로서의 거북으로 풀이하거나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수신의 사자인 제의적 상관물로 풀이하기도 한다. ‘머리’는 수로(首露)·우두머리·남근(男根)·구지봉(龜旨峰)으로 해석된 바 있다.

‘구워먹겠다’에 대한 해석은 네 가지로 집약된다. ① 토템사회에서 그네들의 토템인 거북을 죽여 향연을 갖는 제의의 가요적 투사(透射)라고 보는 입장이 하나이다.

② 남성성기의 불합리한 욕망의 대두에 대한 보다 강한 거세욕구(去勢欲求)의 표현으로서 청정의식(淸淨儀式)을 상징하였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혹은 ③ 우두머리 선정의 점괘인 거북의 조짐〔龜兆〕을 얻기 위해 계속 굽겠다는 위압적 구절로 보기도 했으며, ④‘번작(燔灼)’이 나타내는 이미지는 원시인들의 격렬한 욕정이 반영되어 여성성기를 은유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구지가〉의 성격을 ① 영신제(迎神祭)의 절차 중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의식의 무용에서 불려진 주가(呪歌)라는 견해가 있다.

② 안산(安産)을 촉구(促求)하거나 농산물의 풍요를 기원하고, 기우하는 주가가 부가장제(父家長制)의 확립에 따라 선행하던 원시 모가장제(母家長制)가 쇠퇴할 당시의 애환이 서려 있는 민요라고 파악하기도 하였다.

일부 학자들에서는 〈구지가〉의 성격을 ③ 잡귀를 쫓는 주문이나 ④ 원시종교생활에서 볼 수 있는 원시적 기도로서의 주원사로 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⑤ 거북이 머리를 내민다는 것은, 토템의 출현과 수로의 탄강(誕降)이 상응하여 거북 토템이 머리를 내밀듯 상서로운 수로왕의 탄생이 있으리라는 뜻으로 보아 어디까지나 무속적·주술적 신요(神謠)라는 견해도 있다. ⑥ 가락국의 우두머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려진 귀복가(龜卜歌)라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⑦ 거북 토템집단이 장차 그들의 통치자로 내정된 영아(叛兒)의 출산제의 겸 영신제의에서 정상 출산을 촉구하는 열망의 극한적 표현으로 불리어진 주사(呪詞)라라고 파악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⑧ 기우제를 올릴 때 불려진 주가라는 견해까지 〈구지가〉의 성격에 대해서 제기되어 온 견해는 해석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가요는 원시시대 또는 기원전 6, 7세기 경부터 가창되었으나 시대의 추이에 따라 의미내용에 변화가 있었으리라 보는 입장에서는, ① 처음 〈구지가〉가 임금이 나타나 주셨으면 하는 뜻으로 부른 축도가였던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구지가〉는 어사(語辭)의 의미 전이과정을 거쳐 제사에서 부르는 의식가(儀式歌:祭歌)가 되었고, 다시 주력(呪力)을 불러일으키는 주가로 형성되는 과정에 있던 가요라는 것이다.

②〈구지가〉가 애초에는 원시인들의 성욕에 대한 강렬하고도 소박한, 즉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불렸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구지가〉가 차차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일종의 주문적인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건국신화에까지 끼어든 것으로 본다.

이외에도 ③ 원가시대(原歌時代)에는 자기 집단의 무한한 생생력(生生力)을 주원(呪願)하던 도가(蹈歌)이던 것이 수로왕 탄강시대에는 신군을 맞이하는 노래로 변이되고, 후대의 ‘해가시대(海歌時代)’에 와서는 ‘원가시대’의 생생력을 상징하는 기능이나 수로왕 탄강시대의 영신군(迎神君)이라는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오직 주술적인 요소로만 받아들여 〈해가 海歌〉와 결부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마지막으로 ④ 가락국 선주민들의 토착적 제의에서 쓰이던 일종의 풍요주술 형태이던 〈구지가〉를 시조신으로서의 수로왕을 맞기 위한 영신제의에서 영신주술의 형태로 바꾸어 사용한 것이라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그리고 이 가요의 뜻과 표현형식이 비슷한 것에 신라 성덕왕 때 해룡에게 끌려간 수로부인(水路夫人)을 구출하기 위해 부른 〈해가〉라는 노래가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三國遺事, 韓國上古文學硏究(金承璨, 第一文化社, 1978), 한국고전시가론(鄭炳昱, 新丘文化社, 1979), 韓國古典詩歌의 硏究(金學成, 圓光大學敎出版局, 1980), 龜旨歌硏究(朴智弘, 국어국문학16, 1957), 駕洛國記攷(金烈圭, 釜山大學校 國語國文學誌 2, 1961), 龜旨歌攷(黃浿江, 국어국문학 29, 1965), 駕洛國記說話考(蘇在英, 高麗大學校 語文論集 10, 1967), 駕洛國記(崔東元, 金海地區 綜合 學術調査 報告書, 釜山大學校 韓日文化硏究所, 1973), 龜旨歌의 作品的 性格과 그 解釋(成基玉, 배달말 12, 慶尙大 배달말학회, 1987), 首露神話의 敍述原理의 特殊性과 그 現實的 意味(李康沃, 加羅文化 5, 慶南大學校 加羅文化硏究所, 1987), 駕洛國記의 山上儀禮와 龜旨歌의 性格에 對한 小攷(黃京淑, 釜山大 國語國文學 31, 199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circle01_blue.gif 구지가와 해가의 어법상의 공통점과 내용 및 형식상의 차이점

 

공통점

차이점

형식

구지가

주술적인 표현과 명령어법(요구와 위협)

수로왕 강림을 기원, A.D.42

4구체 한역시가

해가

수로부인의 귀환을 기원, A.D.8세기경

8구체 한역시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해가(海歌)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어라.
掠人婦女罪何極(
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를 앗은 죄 얼마나 크냐.
汝若悖逆不出獻(
여약패역불출헌) 네 만약 어기어 내 놓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
입망포략번지끽) 그물을 넣어 잡아 구워 먹으리

 신라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할 때, 바닷가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었다. 문득 바다의 용왕이 나타나 순정공의 부인인 수로부인을 끌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가 버렸다. 공은 땅에 넘어져 아무런 계책이 없었는데, 한 노인이 있어 이렇게 말했다. "옛 사람의 말에 뭇 입은 무쇠도 녹인다 했으니, 이제 속의 짐승이 어찌 많은 사람의 말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인근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고, 막대기로써 언덕을 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은 이렇게 하여 부인을 되돌려 받았다 한다.

구지가 계통의 노래로 구지가가 오랜 세월 민간에 구비 전승되어 있음을 확인해 준 노래이다.(삼국유사 권2)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술 바로 가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남근 숭배 사상 <생식기숭배 (生殖器崇拜)>

 풍요(豊饒)와 다산(多産)의 상징으로서 성기상(性器像)을 숭배하는 일. 일반적으로 남근숭배(男根崇拜)가 많다. 여성기(음부)숭배는 남근숭배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상례이고, 또한 여성만의 풍요력(豊饒力)은 오히려 허리부분 등을 과장하여 나타낸 나녀상(裸女像)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생식기숭배의 바탕을 이루는 관념, 즉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민족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미개민족에게서는 오히려 생식기숭배를 찾아볼 수 없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진보(특히 농경)와 더불어 다른 여러 가지 성적(性的) 행사(축제 때의 성적 행사나 성적인 해방을 수반하는 축연 등)와 함께 같은 목적으로 나타난다. 이 생식기숭배가 가장 명확한 형태를 취하는 것은 인도나 그리스 등의 고대 문명국인데, 그곳에서는 최고의 신 시바가 남근의 형태로서 숭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예로부터 남근의 형태를 한 갖가지의 크고작은 선돌[立石]을 숭배하는 풍습을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남근석은 장군석(將軍石) 또는 망주석(望柱石)이라고 하는데,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되어 있어 자손이 귀한 사람이나 불임 여성이 여기에 치성을 드리면 어린애를 가진다는 전설이 있고, 또한 풍작을 기원하기도 한다. 전북 정읍시 칠보면(七寶面) 백암리(白岩里), 전남
곡성군 입면(立面) 입석리(立石里) 등지에 이런 입석이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기숭배(性器崇拜)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生殖器) 형태나 모형을 숭배 대상으로 받드는 민속신앙.

〔기원 및 전승〕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기본적인 생계수단의 생산 및 인류 자신의 생산 즉, 종의 번식을 해결해야만 한다. 이러한 생산과 재생산은 인류 사회가 존속하고 발전하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이다.
특히 인간의 성행위와 생식 현상을 둘러싼 재생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종족 번식은 인류로 하여금 일종의 신비감과 경외감을 갖게 하였을 것이다.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물의 수태 과정을 관찰하면서 재생산에 얽힌 신비를 일정 부분 인식하였다 할지라도, 인간의 재생산 현상은 그 자체가 주술종교적 믿음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기능의 중요한 유산으로도 전승되었다.
따라서 성기숭배의 기원이나 전승에 대해서도 초기에 성이 지닌 생식 및 생산의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에서 점차 풍요·기자·소망·행운 등의 기원으로 발전하고, 후대에 풍수신앙과도 문화융합을 거쳐 전승되어 왔다고 보여진다.
즉, 성력숭배(性力崇拜)가 생식·재생의 의미로서 묘지 풍수사상과 연결되었으며, 전승되는 가운데 남근의 상징인 망주석(望柱石)과도 연관되어 후손의 번창과 행운 등을 기원하는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양택풍수(陽宅風水:집터의 길흉을 점치어 판단하는 풍수)로서 마을의 입지조건에 따라 음양의 조화를 갖추게 한다든가 음양 중 어느 한쪽의 노출로 풍속이나 풍기가 문란하여진다는 관념 등도 폭넓게 형성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질적 증거로는 선돌이 곧 남근의 상징으로 믿어지고 있는 한국의 현존 민속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일반화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고고민속학적 유물로는 울주 암각화에서 생산의례적인 동물 성기의 표출된 선각이 보이고, 신라 토우(土偶)나 고배(高動) 뚜껑 중에는 성기를 과장하여 크게 만들어 붙인 예라든가, 배모양 토기에서 뱃사공의 남근을 큼지막하게 돋보이게 한 형태가 나타난다.
또한, 정교하게 가공된 목제 남근이 발굴된 안압지의 유물, 별전(別錢)에 보이는 성체위 묘사, 조선시대의 미륵불과 함께 존재하는 양근석(陽根石), 남자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조각한 순창(淳昌) 남근석, 전국에 산재한 무수한 선돌신앙 등의 예에서 우리는 성기숭배 관념의 역사적 전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나라 성신앙에 대한 역사적 문헌기록은 ≪삼국유사 三國遺事≫ 권1 기이(紀異)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의 옥문지(玉門池)에 얽힌 여근곡(女根谷) 전설을 비롯하여, ≪중종실록≫ 6년 기묘조(己卯條) 및 12년 병진조(丙辰條)의 부근(付根) 기록,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의 부군당(府君堂)에 목제남근을 당 안의 네 벽에 봉안하였다는 내용과 ≪지봉유설 芝峰類說≫에 보이는 부군당 기록 등이 있다.

〔성기숭배의 유형〕

성에 대한 숭배는 생식 숭배, 생식기 숭배, 성교 숭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성숭배는 인간의 긴 역사 속에서 상호 밀접한 영향을 받으면서 전승되어 왔다. 특히 생식기에 대한 숭배 형태는 신앙 형태에 따라 다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남자의 생식기를 인위적으로 조각하여 세우거나 비슷한 형태의 자연암석을 대상으로 하여 기자나 풍년, 풍어, 자손만복 등을 기원하고 질병이나 역신(疫神)으로부터 자신과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 신앙하는 형태, 둘째는 여성기와 모양이 흡사하거나 여성기를 상징하는 암석을 신체로 상정하여 신앙하는 형태, 셋째는 바위의 외형이 남녀성기와 모양이 유사하거나 남녀성기를 상징하는 암석을 신체로 하여 신앙하는 형태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성기신앙의 대상인 신체(神體)를 재질로 구분하면, 돌·나무·도토기(陶土器)·짚 등으로 나누어지며, 의례 형태에 따라서는 성기와 유사한 암석이나 지형 등 자연물적 신체로서 남녀근 숭배신앙과 남근조형물(男根造形物) 신체로서 모형성기 봉납 성신앙, 마을제사에서 희생공물로 마련한 짚으로 만든 인형의 남근신체와 줄다리기에서 암수줄로 상징된 남녀성기신앙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상 성기숭배 민속의 현지 유형을 구체적으로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1) 여성기숭배 형태① 여근곡에 얽힌 예언보허적(豫言補虛的) 전설의 기능을 지닌 여성 국부형(局部形)의 지형과 샘의 형태(경상북도 월성군 진천읍 신평2리 원신마을)
②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 위의 바위가 여인의 하체를 닮아 풍수비보적 암석전설이 얽힌 씹바위(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팽진리 호피마을), 보지바위(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고흥여고 앞), 밑바위(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중계동 불암산 동남향 초입).
③ 돌을 던져 여성기모양으로 패인 구멍〔岩陰·岩石窟〕에 돌이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는 공알바위(충청북도 제천군 송학면 무도리 2구) 등이 있다.
(2) 남성기숭배 형태① 모형성기숭배신앙(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 팔왕마을, 창덕리 태촌마을, 이들 남근석은 지방민속자료 14·15호로 지정되어 있음).
② 망주석(望柱石, 望頭石) 형태를 남근으로 신성시하는 신앙(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원백암리) 등이 있다.
③ 나무로 남근의 모형성기를 깎아서 신목(神木)에 매달거나, 신당에 봉안한 소위 남근봉납 성신앙 형태(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신남리,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삼일1리) 등이 있다.
④ 의례적 신체로서 짚으로 만든 인형에 남근을 커다랗게 만들어 바다로 띄어보내는 희생공물남근(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천촌리)과 줄다리기에서의 암수줄 쇠머리대기(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신당에 성기를 상징한 한지를 오려 붙인 예 등이 있다.
⑤ 남근 형태와 꼭 닮은 자연석으로 기자와 마을의 액막이 기능을 하는 미륵님·영감·할머니로 불리는 양석류(陽石類)들(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석교리, 충청북도 중원군 가금면 용전리,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
⑥ 선돌 형태의 자연석이 은유적 남근으로 신앙되어 경계표·금표·마을신의 기능을 하는 것(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 신포리, 충청북도 영동군 부상리 부상골, 전라북도 옥구군 개정변 발산리,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면 하리, 강원도 삼척군 원덕면 갈남2리,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전라남도 화순군 동북면 동사리).
(3) 남녀근석 성기숭배 형태① 남녀근 형태와 꼭 닮은 자연석으로 기자신앙과 마을의 액막이 기능을 하는 미륵형 형태와 선돌형 형태(경남 산천군 시천면 외공리 꼬치바위와 암돌, 전남 함평군 월야면 동촌마을 당산할아버지·할머니).
② 바위의 외형이 남녀근석 결합의 단순한 형태로 신앙되는 신석(信石:경상북도 안동시 태강동 합장마을, 충청남도 대덕군 회덕면 법동리,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등이다.

〔성기숭배의 실례〕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의 성기숭배 사례를 소개하면, 이 마을에서는 성기와 꼭 닮은 선돌형 화강석 2기를 암미륵·숫미륵이라 부르며 이에 대해 정기적으로 매년 치성행위를 행하고 있다. 남성기와 비숫한 모양의 숫미륵은 윗부분에 띠모양의 도드라진 돌대띠가 둘러져 있다.
원통형의 암미륵은 윗부분에서 좁아지는데, 여기에 흰 베가 감겨져 있다. 높이는 3.8∼4.5m, 둘레는 2∼2.8m이고, 바다를 바라보는 마을 남쪽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제는 음력 10월 23일에 지내며, 생기복덕이 제일에 닿는 제관이 제사 7일 전부터 뒷산 계곡물로 목욕재계하고, 집 앞에 금줄을 쳐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경계하며 정성을 드린다.
제의에 드는 비용은 전에는 마을에서 조직한 미륵계를 통해 충당하였으나, 요즈음은 각 가호를 통해 갹출하고 있다. 제수는 과일·산나물·술·백설기·소무릎뼈를 올리는데, 소무릎뼈는 숫미륵의 허리에 감아둔다. 제관은 축관과 함께 미륵 앞에 술을 붓고 축을 올린 뒤 음복하는 것으로 이곳의 미륵제는 마치게 된다.
이 미륵은 이곳 주민뿐 아니라 충무 욕지도의 선주들까지도 풍어와 안전한 조업을 위해 싱싱한 생선을 바치고, 자식없는 사람이 백설기와 과일을 놓고 밤에 공들이면 아이를 낳게 해주는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명칭 및 금기〕

남근석의 명칭은 부근(付根)·부군(府君, 附君)·선바위·선돌·입석·기자암·총각바위·숫바위·좆바위·남근석·양석(陽石) 등이고, 여근석은 공알바위·보지바위·씹바위·처녀바위·암바위 등이며, 남녀근석 혼용으로는 미륵님(영감·할멈)·돌빼기방구·부부석·골맥이·액막이 등으로 불린다.
또한 성기유적에 대한 금기로는 근처의 수목을 베거나 오물을 배설해서는 안 되고, 샘이 솟는 수원을 건드려서도 안 되며(월성 여근곡), 함부로 손을 대거나 넘어뜨리거나 옮긴다든지 훼손하는 사람은 벼락이 떨어져 죽는다(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고 한다.

〔성 관련 설화〕

선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성과 관련된 민요로는〈천안삼거리〉,〈도라지타령〉,〈새타령〉이 있고, 전설로는 남해안의〈옥녀봉(玉女峰)이야기〉, 강원도〈달래고개전설〉, 강릉지방의〈해랑당(海娘堂)전설〉, 장승과 얽힌〈장승상(張丞相)이야기〉,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리의〈남근석전설〉등이 있다.
또한 성기와 관련된 이야기나 욕설 등이 지방마다 전해지고 있다. 한편, 풍농과 관련된 성 묘사 민속으로는 암수줄을 서로 꿰 맞추어 겨루는 창녕 영산지방의 줄다리기가 있고, 양주별산대에서 노승이 소무가 소변본 장소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 흉내를 냄으로써 성교합의 간접표현을 나타내고 있다.
꼭두각시놀음의 홍동지는 큼지막하고 새빨간 남근을 휘두름으로써 번문욕례(繁文縟禮:번거롭고 까다로운 규칙과 예절)에 찌들었던 유교 양반사회를 풍자하며 제해초복(除害招福)의 의식내용을 성기와 연결시키고 있다.

〔성기숭배의 목적 및 의의〕

이처럼 성기를 숭배하는 목적은 개인적으로는 기자·자손발복(子孫發福)에 있고, 마을을 위하여서는 풍농, 마을평안, 해상의 안전·풍어 등의 공동기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암석이나 자연지형의 경우 풍수지리상 마을처녀·총각의 안정과 근신을 위하는 보허진압의 수구막이(풍수지리에서 골짜기의 물이 돌아 흘러서 하류가 보이지 않는 땅의 형세)로 믿어지거나, 마을의 입지선정에 있어 명당의 안식처 또는 남녀간의 결합이나 기자의 소망을 기원하는 대상처로도 신앙된다.
그리고 민속신앙에서는 기자·풍어·해상안전·풍농·마을수호·소망·행운의 기원으로 신앙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근대화·과학화의 시대사조 속에서 주민의 관행으로만 전승될 뿐 원초적인 신성성(神聖性)과 신앙성은 점차 변질되어 가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芝峰類說, 五洲衍文長箋散稿, 古今東西의 生殖器崇拜의 俗(崔南善, 怪奇 1, 1929), 支那에 있어서 祈子와 性崇拜에 관한 資料(孫晉泰, 鄕土硏究 6卷 3號), 性器信仰의 硏究(金泰坤, 韓國宗敎 創刊號, 1971), 全北地方의 性器信仰에 對하여(朴順浩, 韓國民俗學 8, 1973), 韓國의 性信仰 現地調査(李鐘哲 外, 國立光州博物館學術叢書 第9輯, 1984), 韓國의 性文化硏究(李鐘哲 外, 文化財硏究所, 1994), 성, 숭배와 금기의 문화(이종철 외, 대원사, 1997), 민중들이 바라본 性文學(이종철 외, 민속원, 1999).(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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