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20대 자비왕(慈悲王) 때 백결선생(百結先生)이 지은 거문고곡으로'삼국사기'에 따르면 어느 해 세모를 당하여 이웃집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가 나니 백결의 부인이 “우리는 무엇으로 과세를 할까” 하자 백결은 “사생은 명(命)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나니 그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쫓을 수도 없는 것이오” 하면서 “무엇을 상심하오, 내 부인을 위하여 방아공이 소리를 지으리라” 하고 금(琴)이라는 현악기로 방아공이 소리를 내어 부인을 위로하였다 한다. 이를 사람들은 대악(방아라는 뜻)이라 하여 즐겼으나 현재 이 곡은 전하지 않는다. 학자간에는 방아타령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는 이도 있다.
요점 정리 주제 : 가난을 음악으로 위로 내용 연구 어느 해 세모를 당하여 이웃집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가 나니 백결의 부인이 “우리는 무엇으로 과세를 할까” 하자 백결은 “사생은 명(命)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나니 그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것을 쫓을 수도 없는 것이오” 하면서 “무엇을 상심하오, 내 부인을 위하여 방아공이 소리를 지으리라” 하고 금(琴)이라는 현악기로 방아공이 소리를 내어 부인을 위로하였다 한다. 이해와 감상 고금을 막론하고 가난은 항상 고단한 삶의 시작이었다. 백결선생이 오죽했으면 노래로 부인을 위로하려 들어겠는가?
심화 자료
출처 http://cw.mylab.co.kr/html/story/tradition/99_11_2.html
백결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았다. 몹시 가난하여 어찌나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던지 세상에서는 “현순백결(懸鯤 百結 : 가난하여 입은 옷이 갈가리 찢어짐)”의 문자를 빌려 백결선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백결선생은 한점 흔들림이 없이 오직 거문고만을 사랑하여 모든 희로애락을 거문고로 풀었다. 어느 해 세모(歲暮)에 집집마다 울려나오는 떡방아 소리를 듣고 부인이 “우리는 무엇으로 과세(過歲)를 합니까”라고 근심하자 거문고로 방앗공이 소리를 내어 위로하였는데, 그 곡조가 후세에 전하여 '대악'이란 이름이 붙었다.
방아 타령 신라 때의 명금(名琴) 백결(百結)선생의 '대악(엣樂)'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살림이 몹시 가난하여 옷을 100군데나 기워 입었다 해서 백결선생으로 불린 그의 집에서 어느 해 섣달 그믐 부인이 떡쌀이 없음을 한탄하자 선생은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부인을 위로하였는데, 그 거문고소리가 방아소리와 하도 흡사하므로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함께 들었다는 일화로서 전한다. 전승된 민요로서의 방아타령은 형태상으로 보아 비교적 오랜 노래에 속하며, 흥겹고 멋진 가락이다. 이 밖에도 신재효(申在孝)가 지은 '방아타령'과 경복궁을 지을 때 회(灰)방아를 찧으면서 부른 듯한 '경복궁타령'이 있고, 지방마다 여러 가지 방아노래가 있다. 옛 방아타령의 한 대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노자 좋구나, 노들강변 비둘기 한 쌍이, 푸른 콩 한 알을 물어다 놓고, 암놈이 물어 수놈을 주고…(후렴)에 에에헤야, 에라 우여라 방아로구나 반이나 넘어 늙었으니”.(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방아 타령 신라 자비왕 때 경주의 낭산(狼山) 밑에 살았던 백결선생(百結先生)이 지었다는 악곡의 이름. 어느해 섣달 그믐날 이웃집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데 가난 때문에 떡을 장만하지 못하는 아내의 푸념소리를 듣고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하여 금(琴)이라는 현악기로 떡방아소리를 연주하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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