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文學/[참회록]Augustine

12권 [1~8]

好學 2009. 7. 26. 22:31

 



제12 권 태초의 말씀 - 1. 진리의 탐구의 한계. 
 
주여, 이 세상의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나의 내적인 문을
성경의 말씀이 두드리셨을 때에 나는 무척 당황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경우 수다스러움 속에 오히려 인간 지성의 결핍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발견보다는 탐구를 위하여 많이 이야기해야 하며,
획득보다 차라리 요구 쪽에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손으로 받는 것 보다는 차라리 손으로 문을 두드릴 때,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미 당신의 약속을 손에 넣고 있습니다.
누가 그 약속을 폐기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면 누가 우리를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라.
찾으라 , 그러면 찾으리라. 
두드려라, 그러면 그대들에게 열리리라."
진정 구하는 자는 모든 것을 얻고, 찾는 자는 찾을 것이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릴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이 하신 약속입니다.
속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약속하신 것은 진리 그 자체인데 말입니다.

 

 

 



제12 권 태초의 말씀 - 2. 하늘과 땅의 이중의 뜻. 
 
나의 천하고 보잘것없는 혀는 높고 귀하신 당신을 향하여
'당신은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늘이란 즉 내가 보는 하늘이며, 땅이란 내가 밟고 있는 땅입니다.
내가 내 것으로 여기고 있는 땅도 거기에서 옵니다.
당신은 그것을 만드셨습니다.
어쨌든 주여,'하늘의 하늘'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에 관해서 시편의 저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하늘의 하늘은 주의 것,그래도 주는 인간의 자식들에게 땅을 주시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하늘에 대해서는  볼 수 있는 것, 모든 것은 땅입니다.
사실 이 모든 물체계는 어디에 있어서도 전체는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의 끝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운 모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땅은 그 모든 물체계의 밑 바닥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하늘'에 비교한다면 
우리의 땅이 받들고 있는 저 하늘도 땅에 불과합니다.
진실로 이 거대한 물체의 어디를 보더라도 
'주의 것이며 인간의 자식들의 것은 아닙니다.'라고 일컬어지는
그 무엇인지 모르는 저 하늘에 비교한다면
땅에 불과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12 권 태초의 말씀 - 4. 보이지 않는 어지러운 땅. 
 
그러면 빨리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무엇이든 그것에 대해
막연한 관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어떤 이름으로 불려져야 했을까요?
통상 쓰고 있는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ㅡ 그런데 세계 어디를 둘러 보아도'땅'과 '심연' 이상으로
'모든 의미에서 무형'인 것에 가까운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가징 밑에 있는 것으로서 밝고 투명하게 빛나는 다른 모든 위에
존재하는 것에 비교한다면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승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아름다운 형태를 갖춘 세계를 거기로부터 만들어 내기 위해
당신이 형태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으신 무형의 질료가
'눈에 보이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땅'이라고 불리도록
사람들에게 명령하신 것은 참으로 적절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12 권 태초의 말씀 - 5. 무형의 질료. 
 
그래서 질료에 관해 생각을 해보고 
우리의 이해력을 가지고 무엇을 파악할 수 있을까를 묻고
자기 자신을 향애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과 같은, 또 정의의 가지적(可知的) 형상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물체의 질료이므로 가감적(可感的) 형상이라고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보이지도 않고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 않은 질료 속에 보이는 것,
감각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이 자기 자신에게 이러한 것을 말할 때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은 
결국 모르는 일로 인하여 알게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아는 일에 의하여 
모르게 되든가의 어느 한 쪽이 될 것입니다.


 



제12 권 태초의 말씀 - 6. 무형의 질료에 관한 개인적 견해. 
 
그러나 하나님, 이 질료에 관해서 당신이 가르쳐 주신 것을
모두 나의 혀와 붓을 통해서당신에게 고백해야 한다면ㅡ
그전에 질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었습니다.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던 제 주위의 친구들도 아무것도 몰랐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질료를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갖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나의 가슴 속에는 추잡하고 끔찍한 형상이 복잡하게 딩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형상임에는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형의'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은 형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고
만약 나타난다면 그 이상한 기괴함에 나의 감각은 혐오감을 느끼고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해 놀랄 것 같은 
그런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은 모든 형상이 없었기 때문에 무형이 아니라
더 아름다운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무형이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이성은 나에게 권고하며 '만약 정말로 무형의 것을 생각하려고 마음 먹는다면
무릇 형상에 속하는 것을 철저하게 거기서 없애 버려야만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것이 나에게는 힘들었습니다.
사실 모든 형상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형상과 무와의 중간에 형상지워져 있지도 않고 무도 아니고
거의 무에 가까운 무형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후 나의 정신은 나의 마음에 묻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마음은 형상지워진 물체의 심상으로 메워져 있어
그 심상들을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바꾸거나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물체들과 그 변전을 주시하여 변전에 의해 
지금까지 있었던 것이 있기를 그만 두고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 있기 시작하는 것을 한층 더 깊게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형상으로부터 다른 형상으로의 추이는 
일종의 무형에 의해 생기는 것이지
전적인 허무에 의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지 추측하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알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 당신이 설명해 주신 것을 모조리 
나의 혀와 붓으로 당신에게 고백해야 한다면
독자 중에 누가 인내를 가지고 나의 말을 따라 이해해 주겠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나의 마음은 충분히 여기서 쓸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당신에게 영예와 찬미의 노래를 바치기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가변적인 것은 바로 그것이 가변적이기 때문에 모든 형상을 받아들일 수 있고 
가변적인 것은 변해서 그들 형상으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변적인 것 자체는 실제로 무엇일까요?
정신일까요? 물체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정신 또는 물체의 형상일까요?
만약 '무란 무엇인가'라든가 
'있으면서 없다'라는 말이 허용된다면 바로 그러한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이들 가시적이고 
잘 정돈된 형상을 받아 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미 어떤 형태로든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12 권 태초의 말씀 - 7. 무에서 만든 무형의 질료. 
 
그런데 어떤 모양으로 존재했든 간에 
당신에 의해 존재한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무릇 존재하는 것은 모두 존재하는 한 당신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과 닮은 정도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만큼 당신에게서 멀어집니다.
사실 당신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은 장소적 공간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여, 다른 때에 다른 것이라든가, 
다른 때에 다른 식이라든가 하는 일이 없이 언제나 같은 것이며
성스럽고도 성스러운 전능의 하나님인 주,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시원에서,
당신의 실체로부터 비롯된 지혜에서 무엇인가를 무로부터 만드셨습니다.
즉 당신은 하늘과 땅을 당신으로부터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만약 당신으로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당신의 독생자와 같아지고
따라서 또 당신과 같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닌데 만약 당신과 같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일체인 삼위이며 삼위인 일체이신 하나님이시여,
당신 이외에 거기로부터 당신이 그것들을 만드셔야 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늘과 땅을 무로부터 만드셨습니다.
한쪽은 무엇인가 위대한 것이며 한쪽은 어떤 작은 것입니다.
진정 당신은 전능하며 선하시므로 모든 선한 것을 
ㅡ위대한 하늘도 작은 땅도ㅡ 만드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존재하셨습니다.
나머지는 허무하였습니다.
그 허무로부터 당신은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한쪽은 당신에게 가깝고 또 한쪽은 무에 가깝습니다.
한쪽보다 더 높은 것은 하나님뿐, 또 한쪽보다 더 낮은 것은 허무뿐ㅡ


 



제12 권 태초의 말씀 - 8. 무형의 질료로부터 생긴 것들. 
 
그러나 주님이시여,
저 하늘의 하늘은 당신의 것입니다만
당신은 인간의 자식들에게 보여지고 만져질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 주신 땅은
그와 반대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거나 만질 수 있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볼 수 없고 형상이 정돈되어 있지도 않은 심연이며
그 위에는 아직 빛이 없었습니다.
즉 암흑이 이 심연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의미는 "심연 속에 있는 것보다 더 짙은 암흑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미 보여질 수 있는 것이 된 물의 심연에는
그 깊은 곳에도 그만큼의 빛이 있어,그 빛은 심연의 바닥에 살고 있는 
물고기나 파충류에게서도 혹종의 방법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저 땅의 전체는 거의 무에 가까운 것이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형상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이미 
'형상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여, 진실로 당신은 하늘과 땅을 무형의 질료로부터 만드셨습니다.
그 질료를 '거의 무에 가까운 것'으로서 '무인 것'에서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질료로부터 우리 인간의 자식들이 놀라는 
훌륭한 것을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이 물체적 하늘은 경이롭습니다.
그 천공을 당신은 빛을 만드시고 
둘째 날에 물과 물사이에 '되어라'고 말씀하시어 그것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 천공을 당신은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과 바다와 하늘이었습니다.
이 땅과 바다를 당신은 모든 날에 앞서서 만들어진 무형 질료에
보이는 형상을 세째날에 주시므로써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모든 날에 앞서서 이미 '하늘'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하늘의 하늘'이었습니다.
즉, 당신은 이미 처음에 하늘과 땅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당신이 먼저 만드신 땅은 무형질료였습니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정돈되지도 않은 심연위의 암흑이었습니다.
그 보이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땅으로부터 이 무형의 것,
거의 무에 가까운 것으로부터 이세계의 모든 것을 당신은 만드실 게획이셨습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변화하는 세계는 성립해 있습니다만 
역시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 속에는 가변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이 가변성에서 감각되어 측정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체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바꾸면서 
변화하므로써 시간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의 질료가 앞서 말한 '보이지 않는 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