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스포츠)이야기

제3회 1938 프랑스 월드컵

好學 2009. 3. 18. 21:04

 

 

'1938년 프랑스 월드컵'

 

개최도시 : 안티베, 보르도, 르 하브르, 리예, 마르세유, 파리, 레임, 스트라스부르, 툴루세

 

FIFA가 제3회 월드컵대회 개최국을 선정한 시기는 히틀러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직후, 그리고 유럽이 전쟁발발의 위기감과 불안에 젖어 있을 때였다.

제3회 월드컵 개최국을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할 것인가? 유럽의 프랑스로 할 것인가?'를 놓고 대립했다. 올림픽대회가 끝난 직후인 1936년 8월 15일, FIFA의 54개 회원국 가운데 40개 나라 대표들이 베를린 총회에서 프랑스로 결정했다.

FIFA회장인 쥴 리메에게는 조국 프랑스가 월드컵대회 개최권을 따낸 것이 더 없이 감회 어린 일이었다. 월드컵을 출범시킨 당시 FIFA회장 쥴 리메(JULES RIMET)와 FIFA 창설의 주역이었으며 초대회장을 역임한 로베르 게렝(ROBERT GUERIN)은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축구는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축구를 세계적인 스포츠로 꽃피운 사람들은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그런 프랑스에 축구가 들어온 것은 1891년 영국 선원들에 의해서였고, 프랑스 최초의 축구 클럽도 영국인들이 그들 거류민만으로 조직한 White Rovers F.C.와 Gorden F.C.(후에 Standard A.C.로 개명)였다.

프랑스 사람들로 구성된 첫 클럽은 1892년에 탄생했다.

프랑스축구협회가 1894년에 'Championat de France'라는 첫 축구대회를 열었는데 6팀이 경쟁을 벌였다.

세 번째 맞는 월드컵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나라는 쿠바, 네덜란드령 동인도, 노르웨이, 폴란드였다.

제3회 월드컵축구대회는 오스트리아의 기권으로 15팀만으로 치러야 했다.

유럽 12개국, 남미에서 브라질, 북중미의 쿠바, 그리고 아시아의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출전국들이었다.

이번 대회도 두 팀씩 짝을 지어 넉아웃 방식으로 진행됐다.

짝이 맞지 않는 스웨덴은 1회전 없이 8강에 진출하는 행운을 얻었다.

1938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 모두 18개의 경기를 치렀다.

독재자가 군림하고 있는 나라들인 이탈리아와 독일이 우승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는 이탈리아를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고 다음으로 헝가리와 브라질을 쳤다.

개막경기는 독일과 스위스가 벌였다.

지난 이탈리아월드컵대회에서 이탈리아와 쌍벽을 이뤘던 오스트리아 선수 6명을 편입시킨 독일은 역대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 스위스와의 경기에 독일은 4명의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스위스는 빠르고 날카로운 팀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파리 파르끄 데 프렝세 경기장에서 시작된 독일과 스위스의 개막경기가 10분쯤 지났을 때, 독일의 키칭거와 스위스의 아베글렌이 정면 충돌했다. 두 선수는 기절해 들것에 들려 나갔다. 첫 골은 19분에 터졌다. 스위스 진영 오른쪽 중간에서 얻은 프리킥을 독일의 레너가 문전으로 띄워주자 하네만이 헤딩으로 가우첼에게 연결했고 가우첼이 골을 성공시켰다. 스위스는 반격을 개시해 6분 뒤인 25분, 기절해 들려 나갔던 아베글렌이 동점골을 만들어 냈다. 그 후 양 팀은 후반전과 연장전에서도 골을 보태지 못했다.

재경기는 5일 후 같은 경기장에서 속개됐다. 첫 경기와는 달리 독일이 일찌감치 승리를 굳히는 듯 했다. 독일은 전반에 두 골을 얻었다. 첫 골은 전반 8분에 하네만이, 두 번째 골은 22분 스위스 로에르체르의 자책골이었다. 전반은 2-0으로 끝났다.

스위스 선수들은 후반에 들어서자 새로운 힘이 솟구쳤다. 7분만에 왈라스첵이 한 골을 만회했고 이어서 19분에 비켈이 동점골을 넣었다.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스위스는 계속 몰아붙여 아베글렌의 후반 30분과 33분 연속골로 독일을 4-2로 쓰러뜨렸다, 오스트리아 선수들까지 편입시켜 구성한 독일 팀이었지만 경기는 빈약했다.

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는 노르웨이와 만났다. 관중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으면서 입장한 이탈리아가 선제골을 넣었다. 전반 2분 피올라가 몰고 들어가 연결해 준 공을 페라리스가 강슛, 골키퍼 요한센의 손에 맞고 나오자 다시 밀어 넣었다. 이후 이탈리아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흥분한 상태이어서 인지 예상외로 어려운 경기를 했다. 실점한 뒤 노르웨이의 브린힐드센이 이탈리아의 문을 여러 차례 위협했으나 골로 연결하지는 못했다. 전반은 1-0이었다.

후반에도 분발한 노르웨이가 기어코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후반 28분 부르스타드가 속임 동작을 쓰면서 동점골을 따냈다. 이후 노르웨이의 공격이 몇 차례 기회를 잡았으나 결승타를 날리지 못하고 1-1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지난 대회에서 연장전에 강하다는 평을 받았고, 그때 뛴 선수는 몬제글리오, 페라리 그리고 메아짜 3명만 남아있었다. 역시 연장전에 익숙한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의 신예 피올라가 연장 전반 4분 결승골을 뽑아 냈다.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가 간신히 살아난 것이다.

1회전에서 가장 불꽃 튀는 경기는 브라질과 폴란드가 엮어 냈다. 프랑스에 가장 먼저 도착한 뒤 한밤중에만 은밀하게 훈련하면서 철저하게 전력을 감춰 온 브라질에는 '검은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의 레오니다스가 번쩍이고 있었다. 폴란드에는 빌리모프스키라는 걸물이 있었다. 이 두 선수의 대결로 집약되는 이 경기는 장관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여서 운동장은 진흙탕이었다. 브라질의 레오니다스가 이런 운동장과 날씨에 일응 걸맞는 제안을 했다. 양 팀 모두 축구화를 벗고 경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주심 에클린트는 당연히 거절했다.

경기가 시작됐다. 브라질의 노도와 같은 공격은 폴란드를 짓 눌렀다. 맨발로 경기를 하자고 제안했던 '검은 다이아몬드' 레오니다스가 전반18분만에 선취골을 넣자, 폴란드의 스제르프케가 5분 후에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전반은 브라질이 3-1로 앞선 채 끝났다. 후반에 들어서자, 폴란드의 다이아몬드 빌리모프스키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빌리모프스키는 후반 8분과 14분에 연속골을 넣어 3-3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에 당하기만하던 브라질이 다시 공격력을 발휘하면서 26분 페라시오가 4-3 리드골을 넣었다. 폴란드가 거의 패했구나 하고 여겨질 무렵인 후반 44분 빌리모프스키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4-4 동점을 이루었다.

이 경기는 골만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풍경도 펼쳐졌다. 후반 39분 경, 경기 시작 때 맨발로 경기하자고 제안했던 브라질의 레오니다스가 더 못 참겠다는 듯 갑자기 축구화를 벗어 던지고 뛰기 시작한 것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던 레오니다스는 주심에게 발각돼 경고를 받고 다시 축구화를 신었다.

브라질과 폴란드의 파란만장한 쇼는 좀처럼 막을 내릴 줄을 몰랐다. 관중들에게 보여줄 것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이 세기의 배우들은 계속되는 명연기로 관중들에게 월드컵축구의 진수와 재미를 보여 줬다. 연장전에서는 브라질의 검은 다이아몬드가 번쩍이는 섬광을 연발했다. 전반 3분, 레오니다스는 혼자서 몰고 들어가는 놀라운 일인극으로 브라질을 5-4 다시 앞서게 했다. 그리고 11분 뒤에 레오니다스는 브라질의 승리를 굳히는 추가골을 터뜨리면서, 폴란드의 빌리모프스키와 함께 브라질의 레오니다스도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패색이 짙어지그는 했지만, 그러나 폴란드의 빌리모프스키가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연장 후반 13분에 자신의 네 번째 골을 브라질에 먹이면서 한 골차로 다가섰다. 경기는 이것으로 막을 내렸다. 폴란드의 빌리모프스키는 한 경기에서 4골을 넣은 새로운 기록을 세운 것이다. 폴란드의 여한이 없는 패배였다. 그들은 귀국하기에 앞서 브라질에 행운이 있기를 비는 전문을 보냄으로써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예선에서 멕시코의 기권 덕에 월드컵 본선무대에 처음 등장한 쿠바는 강호 루마니아와 당당히 맞서 첫 경기를 3-3으로 비기고, 재경기에서 전반에 한 골을 빼앗긴 다음 후반에 두 골을 터뜨려 2-1역전승을 거두고 8강에 진출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승리를 더 흥미있게 한 것은 골키퍼 베니토 카르바할레스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사실이다.

쿠바의 승리를 예측하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스피디한 경기운영과 GK 카르바할레스의 눈부신 방어에 힘입어 연장까 벌인 끝에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에는 승부차기가 없어 4일 후 재경기를 치렀다. 영웅으로 떠오른 카르바할레스는 재경기를 앞두고 “루마니아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틀림없이 우리가 2-1로 이긴다”며 장담했다. 예언자 카르바할레스는 재경기 출전하지 않았지만 경기 결괴는 그의 예언대로였다.

쿠바는 전반 35분 루마니아의 스테판 도바이에게 먼저 골을 빼9았겼지만 후반 10분 헥토르 소코로의 동점골과 5분 뒤 카를로스 마퀴나의 결승골로 기적 같은 역전승릉 거뒀다. 마퀴나가 결승골을 터뜨리는 순간 선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했지만 주심은 그대로 골을 인정했다. 쿠바는 이 재경기에서 힘을 소진했던 탓인지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는 8-0으로 참패하고 말았다.

1934년 월드컵대회에서 준우승한 선수들 대부분을 다시 출전시킨 체코슬로바키아는 막강한 팀이기는 했지만 네덜란드를 꺾는 데 애를 먹었다. 연장전에 들어가서야 우세를 보였다.

6월 12일부터 준준결승전들이 벌어졌다. 해당 팀들은 다음 일정을 위해 멀고 먼 여행을 했다. 이탈리아를 빼고는 모두 지루한 기차여행을 했다. 이탈리아 선수단은 유일하게 자체 비행기를 갖고 있었다. 브라질과 쿠바, 스위스 선수들도 여행에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폴란드와 그토록 극적이고 흥분된 경기를 치른 브라질은 다음 경기에서 체코슬로바키와 대결했다. 지난 대회 결승전의 스타였던 골키퍼 플라니카가 버티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와 정교한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브라질 경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심인 헝가리의 헤르스카가 결단력과 주관 없는 진행을 해 경기는 기대와는 거리가 먼 꼴이 되고 말았다. 신축한 보르도 경기장에서 개장경기로 치른 브라질과 체코의 준준결승전은 불명예스럽고 기분 나쁜 경기였다. 전반에 두 번, 후반에 한 번, 연장전에서 한 번의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치는 등 폭력이 난무해 전반 초에 브라질의 제제가 퇴장 당했고, 전반 끝나기 직전에는 브라질의 마샤도와 체코의 리하가 함께 퇴장 당했다. 또 체코의 스타 플레이어 네예들리의 발목과 골키퍼 플라니카의 오른팔이 부러졌는가 하면, 브라질의 페라치오와 레오니다스가 부상을 입은 최악의 험악한 경기였다. 브라질은 9명, 체코는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실로 전쟁이었다. 관중들은 연장전까지 눈살을 찌푸리며 지켜봤다. 이 경기는 '보르도의 전투'라는 오명을 얻었다.

폭력과 골은 반비례하는가? 브라질의 레오니다스가 전반 30분에 선취골을 넣었으나 후반 19분에 체코의 네예들리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것으로 골은 마감됐다.

브라질과 체코슬로바키아는 이 대회 세 번째의 재경기에 들어갔다. 이틀 후의 재경기에, 첫 경기에서 입은 부상으로 브라질은 9명을, 체코슬로바키아는 6명을 교체해야 했다. 재경기는 첫 경기와는 전혀 다르게 모범적으로 진행됐다. 전반 30분 코페키가 먼저 골을 얻은 체코슬로바키아였으나 후반 12분에 검은 다이아몬드 레오니다스, 44분에는 로베르토에게 골을 빼앗겨 브라질이 2-1승을 거뒀다.

같은 날, 프랑스는 파리에 있는 콜롱베 경기장에서 58.455명의 응원을 받으면서 이탈리아와 싸웠다. 전반전은 1-1이었으나 결국은 이탈리아가 3-1로 승리를 거뒀다. 개최국 프랑스의 우승을 향한 행진이 중단되고 말았다.

브라질은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전을 위해 또 긴 여행을 했다. 모든 면에서 최고수준인 브라질은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재경기를 치른 이틀 후 이탈리아와 준결승전을 벌이게 됐다.

첫 골은 후반 11분에 이탈리아의 클라우시가 넣었다. 그리고 브라질의 도밍고스 다 구이아가 이탈리아의 피욜라에게 반칙하다가 스위스의 주심 부트리치에게 발각돼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메아짜가 키커로 나섰다. 그런데 메아짜의 팬티 고무줄이 느슨해져 엉덩이에 겨우 걸려있었다. 메아짜는 왼손으로 바지를 잡은 채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2-0이 됐다. 브라질의 로메우가 한 골을 만회했을 때는 시간이 너무 지나있었다. 이탈리아가 결승에 올랐다.

브라질의 피멘타스 감독은 이탈리아를 깔보고 선수기용에 실수를 범했다. 결승전에 대비한다고 골잡이 레오니다스와 센터하프 팀을 출장시키지 않은 것은 물론 체코를 이긴 선수들 중 3명만 남기고 모두 교체했다. 이것이 치명적인 패배의 원인이었다. 프랑스 관중들의 일방적이고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2-1패, 중도 하차했다.

오스트리아가 참가하지 못하는 바람에 부전승으로 2회전에 올라 쿠바를 8-0으로 물리친 스웨덴은 헝가리와의 준결승에서 출발은 일단 좋았었다. 전반 1분에 니베르그가 득점함으로써 헝가리를 당황하게 했으나 끈기와 투지의 부족으로 역으로 초토화됐다. 스벤젤러가 해트트릭을 기록한 헝가리에 5-1로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3위결정전에서 브라질은 스웨덴을 4-2로 이겨 3위에 머물렀다. 브라질의 레오니다스는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어 모두 8골로 제3회 월드컵대회의 최다득점선수가 됐다.

결승전은 2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이탈리아와 첫 패권을 잡아보려는 헝가리의 대결로 좁혀졌다.

6월 19일 파리의 꼴롱베 스타디움이 대미의 무대였다. 지난 대회에 이어 포조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는 급격하고 소란스러운 공격을 퍼붓는 반면에 헝가리는 훌륭한 공 다루기 기술과 여유 있고 경제적인 경기를 펴는 팀이었다. 결승전은 또한 두 명의 걸출한 센터포워드의 대결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피올라와 헝가리의 사로시가 바로 그들이었다.

전반 5분, 헝가리의 코너킥이 오히려 이탈리아의 기회로 급속히 전환됐다. 느슨하게 넘어온 헝가리의 코너킥을 이탈리아의 비아바티가 내찼고, 이 공을 메아짜가 왼쪽날개 콜라우시에게 길게 패스하자 바로 선취점으로 이어진 것이다. 반격을 개시한 헝가리도 7분에 사스가 오른쪽에서 센터링, 정면에 파고들던 티트코스가 사뿐히 받아 동점골을 때렸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피올라가 콜라우시의 도움으로 16분에 다시 앞서는 골을 넣은 데 이어 35분에는 첫 골을 넣은 콜라우시의 추가골로 전반은 3-1로 끝냈다. 이탈리아2연속우승선수들.gif

 

(오른쪽 사진 : 월드컵 2회 연속 우승한 이탈리아 선수들)

 

후반. 헝가리는 다시 추격전을 벌였다. 25분에 사로시의 골로 3-2로 바짝 다가섰다. 힘과 자신감에 찬 이탈리아는 헝가리의 맹추격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경기를 이끌면서 후반 37분 피올라가 승부를 결정짓는 득점을 올렸다. 결승전은 4-2로 이탈리아가 헝가리를 눕히고 첫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프랑스 관중들은 헝가리를 응원했지만 이탈리아의 막강한 축구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의심 없는 최고의 팀이었다.

우루과이가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연속 우승과 1930년 월드컵을 우승한 위업을 달성한 것처럼, 이탈리아도 1934년과 1938년의 월드컵 연속 우승을 했는가 하면 1936년 올림픽 축구도 우승했다. 1920년대가 우루과이의 시대였다면, 1930년대는 이탈리아의 시대였다.

2년 뒤에 터진 2차 대전 동안 쥴 리메 컵을 보관했던 FIFA 부회장 오토리노 바라시 박사는 군대에 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구두상자에 넣어 침대 밑에 감췄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는 재경기가 3개 있었다. 연장전도 6개나 있어 이 대회의 승부를 위한 처절한 싸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독일에 강점 당함으로써 본선진출권을 따고도 포기한데다 몇몇 선수들을 독일대표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오스트리아의 불행은 월드컵의 불행이었고 전 세계의 재앙의 시작이었다. 유럽과 남미의 열강들 속에 초라하게 낀 아시아의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 자바섬)는 월드컵 본선에서 단 한 경기만(헝가리에 6-0패)을 치른 유일한 나라다.

월드컵의 역사는 2차 대전으로 이 대회 후 12년 동안 중단됐다. 1942년과 1946년 두 월드컵대회는 열리지 못하고 1950년 브라질의 개최로 이어진다.

 

본선경기들(15국)

 

 

36)스위스 1-1 독일(전반 1-1. 연장 1-1)

37)프랑스 3-1 벨기에(전반 2-1)

38)브라질 6-5 폴란드(전반 3-1. 후반 4-4. 연장 2-1)

39)체코슬로바키아 3-0 네덜란드(전반 0-0. 연장전 3-0)

40)이탈리아 2-1 노르웨이(전반 1-1. 연장 1-0)

41)쿠바 3-3 루마니아(전반 2-2. 연장 1-1)

42)헝가리 6-0 네덜란드령 동인도(전반 4-0)

43)스위스 4-2 독일(재경기. 전반 1-2)

44)쿠바 2-1 루마니아(재경기. 전반 0-1)

웨덴(부전승)-오스트리아(독일군 점령으로 기권)

 

준준결승전

 

45)스웨덴 8-0 쿠바(전반 4-0)

47)이탈리아 3-1 프랑스(전반 1-1)

46)헝가리 2-0 스위스(전반 1-0)

48)브라질 1-1 체코슬로바키아(전반 1-0. 연장 0-0)

49)브라질 2-1 체코슬로바키아(재경기. 전반 0-1)

 

 

준결승전

 

50)이탈리아 2-1 브라질(전반 0-0)

51)헝가리 5-1 스웨덴(전반 3-1)

 

 

3위결정전

 

52)브라질 4-2 스웨덴(전반 1-2)

 


결승전

 

53)이탈리아 4-2 헝가리(전반 3-1)

 

 

'1938년 최종순위

 

나라(감독)

승점

경기

1

이탈리아(POZZO Vittorio)

8

4

4

0

0

11

5

+6

2

헝가리(SCHAFFER Alfred)

6

4

3

0

1

15

5

+10

3

브라질(PIMENTA Ademir)

7

5

3

1

1

14

11

+3

4

스웨덴(NAGY Jozsef)

2

3

1

0

2

11

9

+2

5

체코슬로바키아(MEISSNER Josef)

3

3

1

1

1

5

3

+2

6

프랑스(BARREAU Gaston)

2

2

1

0

1

4

4

0

7

스위스(RAPPAN Karl)

2

3

1

0

1

5

5

0

8

쿠바(TAPIA Jose)

2

3

1

0

1

5

12

-7

9

루마니아(SAVULESCU Alexandru)

1

2

0

1

1

4

5

-1

10

독일(HERBERGER Sepp)

1

2

0

1

1

3

5

-2

11

폴란드(KALUSZA Jozef)

0

1

0

0

1

5

6

-1

12

노르웨이(HALVORSEN Asbjorn)

0

1

0

0

1

1

2

-1

13

벨기에(BUTLER Jack)

0

1

0

0

1

1

3

-2

14

네덜란드(GLENDENNING Bob)

0

1

0

0

1

0

3

-3

15

네덜란드령 동인도(MASTENBROEK Johannes)

0

1

0

0

1

0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