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 dadaism ]
1916년경 유럽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192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던 문예운동.
‘다다(dada)’라는 용어를 지어낸 사람이 누구인지, 또한 그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다.
다다이즘을 한 시기의 중요한 예술사조로 자리잡게 한 데에는 스위스 취리히에 거주하는 루마니아 태생의 시인 차라(Tzara, T.)의 공이 컸다.
그는 잡지 ≪다다 DADA≫를 편집, 발행하였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자신의 예술운동을 펼쳐나갔다. 그가 접촉했던 문인들은 브르통(Breton, A.)·아라공(Aragon, L.)·엘뤼아르(Eluard, P.) 등이다.
이 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한 1916년은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때였으며, 운동의 발원지인 스위스는 위치상 전쟁의 중심지이면서도 전쟁이 비켜가는 중립지대였다.
다다의 예술운동은 이러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다이즘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하여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 세계대전이 가져온 상처는 합리적 이성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다다는 재래의 전통을 부정하고, 비합리주의적 사고를 내세우며, 일종의 허무의식과 이어지는 무의미의 예술을 추구한다.
오늘날에는 그것이 무체계·무절제·무의미의 예술이라는 평가와 함께, 한 시대의 암울한 회의주의, 인간의 정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역설적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이루어진다.
다다이즘은 예술사조상으로는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 정신에 대한 반박적 입장을 보여주고, 그 운동이 퇴조하면서 뒤로는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문예사적 맥락을 형성한다. 다다이즘이 초현실주의로 바뀌는 시점은 1922년이다.
한국 문단에 다다이즘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20년대 초반 이후이다. 한국 문단에서는 다다이즘을 대체로 세기말적 허무주의로 이해하였고 거기에는 절망·비분·반항·저주와 자조의식 등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다.
다다이즘의 한국 수용을 주도한 인물로는 고한승(高漢承)을 들 수 있다. 그는 ‘고따따’라는 필명으로 다다이즘을 소개하는 글을 여러 편 발표하였다. 〈따따이슴〉(개벽, 1924.9) 및 〈DA·DA〉(동아일보, 1924.11.17)와 같은 글이 그 예가 된다.
다다이즘의 작품으로는 박팔양(朴八陽 )의 시 〈윤전기와 사층집〉과 김화산(金華山)의 〈악마도-엇던 따따이스트의 일기 발췌〉 등이 자주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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