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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寫實主義 ]

好學 2012. 9. 10. 18:02

사실주의[ 寫實主義 ]

 

 

경험적인 현실을 유일한 세계, 가치, 방법으로 인식하려는 문예사조(예술사조).

사실주의(또는 현실주의)는 res(실물)에 어원을 둔 realism의 역어이다.

경험적인 현실 외의 이상적·초월적 세계의 존재 증거가 없다고 보는 일원론적 세계관에서 진리나 진실, 미학적 가치, 예술창작의 방법 등을 뭉뚱그려 통칭한다.

따라서 이상주의적 경향(고전주의·낭만주의·심미주의 등)과 자의식(自意識)의 절대성 및 회의주의를 바닥에 깔고 있는 모더니즘(modernism)과 대립된다.

‘진리’란 현실인식의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창조되는 것으로 보는, 즉 대응이론(對應理論)이 아닌 통일이론(統一理論)이라는 관점에서 말하는 의식적 리얼리즘(conscious realism), 즉 심리적 리얼리즘이 있다.

이를 제외하면, 리얼리즘은 ‘당대 사회의 객관적 묘사’로 보는 19세기의 근대 리얼리즘(사실주의, 자연주의)과, 사회적 변혁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리얼리즘(변증법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두 갈래로 대별할 수 있다. 19세기의 리얼리즘은 당대 사회현실의 객관적 묘사, 또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의 반영을 특색으로 한다.

또한 당시의 실증철학과 과학사상의 영향하에 환상이나 과거나 초월 세계가 아닌 현실의 정확한 인식과 반영(또는 모방), 제재의 수집·선택·비판·정리를 원리로 한다.

그리고 주관이나 형식적 방법이 아닌 현실자체의 심화된 분석과 개괄에 의한 객관적 방법, 대상의 관념적 구성이나 유형화가 아닌 역사적 제약하에 특수적이고 개성적인 것, 장르상으로는 시보다 소설, 즉 ‘신에게서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루카치)의 중시 등을 특색으로 한다.

 

19세기 프랑스의 발자크(Balzac, H.) 플로베르(Flaubert, G.)영국의 디킨즈(Dickense, C.) 등의 소설이 이 계열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의 이러한 일반 개념은 과학사상의 영향으로 유전에 의한 생물학적 인간관과 결정론(determinism)으로 발전한다.

여기에 실험소설론이 추가되어 졸라(Zola, E.)의 자연주의(naturalism)가 리얼리즘의 한 갈래로 파생한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등 초기 도입 과정에서 혼류·교착 현상으로 한국에서는 프랑스적인 명백한 식별을 보기 어려운 점 때문에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한 개념으로 묶는 견해도 있다(장사선).

 

사실소설·사실주의·자연주의 등의 용어는 1907년 무렵부터 등장한다.

공상적·낭만적·심미적 예술주의에 대한 안티테제(Antiethese : 反定立)로서 자연주의는 백대진(白大鎭)을 통해서(‘현대조선의 자연주의 문학을 제창함’, 신문계 29호, 1915.12.) 도입된다.

리얼리즘의 성격으로서 인생과 사회의 진상, 하층사회의 특수적·국부적 묘사 등은 현철(玄哲)을 통해서(‘소설개요’, 개벽 1∼2호, 1920.6.∼7.), 그리고 중국 리얼리즘의 도입은 양백화(梁白華)를 통해서(‘胡適氏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文學革命’, 개벽, 1920.11.∼1921.2.), 각각 도입된다.

그리고 ≪창조≫(1919) 무렵부터 개화기 및 추원의 계몽주의에 맞서서 “인생의 회화”, “인생문제의 제시”라는 근대 리얼리즘론을 표방한 김동인(金東仁)을 비롯하여 현진건(玄鎭健)·염상섭(廉想涉)·전영택(田榮澤) 등의 소설작품이 초기의 구체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즘의 한 분파인 자연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창작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그 방법을 과학과 일치시키려는 무모한 시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에서 리얼리즘의 본질적 개념을 진전시킨 것은 아니다.

신흥 부르주아지 사회의 개인주의에 의거한 근대 리얼리즘은,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1917)을 전후하여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그러나 자기 방법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 1920년대 후반 내내 그 유동성을 보인다.

그러다가 근대 리얼리즘에 대하여 국부적인 것에 대한 고집, 세부나 말단에 대한 집착, 무지향적·무이념적 방관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그 비판을 강조하고, 유물변증법과 결부하여 마침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밀착된 리얼리즘으로 발전한다.

비판적 리얼리즘(critical realism),

변증법적 리얼리즘(dialectical realism),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은 그러한 발전 과정을 보여주며,

특히 루카치(Gyorg Luk0x8044cs, G.)에 이르러 리얼리즘의 이론이 완성에 이른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의 리얼리즘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과정으로 성장한다.

엥겔스(Engels, F.)의 리얼리즘론을 계승한 고리키(Gorkii, M.)의 용어인 비판적 리얼리즘은 봉건 잔재와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의 부패와 암흑상을 묘사·비판하고 사회의 변혁을 의도한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주의에 의거한 채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의 결여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문학사조라기보다는 그것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22년 무렵부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사회적 관점을 도입하고 이념으로서 리얼리즘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정백(鄭栢)의 〈노농 노서아의 문화시설〉(신생활 6호, 1922.6.), 강매(姜邁)의 〈자유비평의 정신〉(신생활, 1922.9.) 등을 비롯하여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개벽, 1923.9.∼11.)를 발표한 김기진(金基鎭), 민중문예를 주장한 김석송(金石松) 등이 논의한 비판적 리얼리즘은 최서해(崔曙海) 등의 살인과 방화로 결말을 맺은 신경향파소설로 구체화된다.

비판적 리얼리즘을 거쳐, 1930년대 전후의 변증법적 리얼리즘에 이르러 자연과 사회 및 사유(思惟)의 일반적 발전법칙에 관한 과학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과 결합한다. 그리고 리얼리즘은 근대적 노동운동의 혁명적 실천이라는 성격을 띠게 된다.

라프(RAPP : 러시아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화되기 이전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볼셰비키화(Bolsheviki化), 유물변증법적 창작 방법, 프롤레타리아문학이론 건설 등을 결정한다.

1928년 라프 회의에서 벨린스키(Belinskii, V.G.)는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방법을 제안한 바 있다. 이 무렵, 한국·일본·러시아 등에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변증법적 리얼리즘, 공산주의 리얼리즘, 사회적 리얼리즘 등의 혼용이 보이나 대체로 변증법적 리얼리즘으로 통합될 수 있는 공통성과 유사성을 갖는다.

러시아의 이론과, 쿠라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 등의 이론(‘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 戰旗, 1928.5., ‘다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에 대하여’, 1929.8., ‘예술적 방법에 관한 감상’, 1931.8.)에서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여러 비평가들에 의하여 변증법적 리얼리즘이 정착하기 시작한다.

무산계급의 집단의식과 총체성 및 내용과 형식의 일원화(박영희, ‘문예운동의 이론과 실제’ 조선지광 75호, 1928.1.), 문예운동의 내적 발전과 외적 정세에서 본 동적 시각에서 관찰·파악하는 변증법적 방법(한설야, ‘문예운동의 실천적 근거’, 조선지광, 1928.2.∼3·4 합병호)이 발표된다.

근대 부르주아지의 개인주의 리얼리즘의 한계 극복과 프롤레타리아 철학에 입각한 변증법적 사실주의(김기진, ‘변증법적 사실주의’, 동아일보, 1929.2.25.∼3.7.), 유물적·객관적 현실주의와 사회적·전체적·동적 관점, 계급협조나 국가주의가 아닌 계급 투쟁적·국제주의적 태도(안막, ‘프로예술의 형식문제―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의 길’, 조선지광, 1930.3.∼6.) 등이 주장된다.

이로 인하여 사실상 변증법적 리얼리즘은 이론으로서 체재를 갖춘다. 한편 변증법적 창작방법의 실천을 유독 강조한 백철(白鐵)은, 그 실례로 김창술(金昌述)의 시 〈오월의 훈풍〉, 임화(林和)의 시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 그리고≪캅프시인집≫ 등을 든다(‘창작방법문제-계급적 분석과 시의 창작문제’, 조선일보, 1932.3.6.∼20.).

라프의 변증법적 리얼리즘은 헤겔(Hegel, G.W.F.)의 관념적 변증법을 기초로 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에 의거하여 현실을 인식·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예술창작 고유의 특수과정을 무시하고, 이를 변증법적 방법으로만 단순화·도식화함으로써 경직된 기계적 공식으로 고착된다.

시대의 변화(1928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에도 유리되는 결과를 낳고, 또 한편 동반작가에 대한 적대적 태도에서 분파화 경향을 드러낸다.

여기서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새 창작 방법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제기된다. 소련작가동맹 주최 제1회 소련작가대회(1934.8.17.∼9.1.)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규약으로 채택한 것이 그것이다.

그 이전인 1932년 4월에 개최된 소련 공산당 중앙위가 라프 등 모든 문학단체의 해산과 단일 조직체 결성을 결의하면서 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 대신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였다.

그 해 소련의≪문학신문≫에서도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으며, 같은 해 10월에 열린 소련작가동맹 조직준비위원회에서 행한 키르포친(Kirportin, V.Y.)의 총회 보고서에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식화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54년 제2차 소련작가대회에서 1차 때의 규정에 약간의 삭제와 보충을 가하여 개정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따라, 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점차적으로 이행하는 현재의 조건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방법은 소비에트 국민의 창조력을 한층 더 고양하여 공산주의로 가는 도상에 가로놓인 모든 곤란한 장애의 극복을 작가가 모든 수단을 다하여 촉진한다.”

이 개정의 큰 특징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점차적으로 이행하는 현재의 조건하”라는 보충이다. 20년이 지난 소련의 1954년 무렵은 사회주의를 거의 성취하고 공산주의 사회로 발전하는 전환기로 본 점을 반영한 것이다.

1990년의 소련체제붕괴와 소련 70년의 역사를 ‘전체주의 제도의 희생자, 수백만 인의 기념비(러시아 소로베츠키 섬에 있음)’로 새기고 있는 시점에서 볼 때 역설적 현실인식임을 면할 수 없다.

어찌하든 고리키의 말대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프로그램 문학, 집단주의,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이라는 낙관주의적 전망, 교육적 기능의 강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동구권·일본·한국 등으로 확산되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수용여부, 그리고 소련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이념이냐 창작 방법이냐의 문제 등이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도입된다.

최초의 소개자인 백철은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유물변증법적 창작방법→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서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면서, 세계관과 창작 방법의 분리,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수용 불필요론을 전개한다(‘文藝思潮’, 조선중앙일보, 1933.3.2∼8.).

백철의 글은 소련작가동맹에서 규약으로 공식 채택되기 이전의 논의 과정과 때를 같이한다. 이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발생의 배경(정치·경제·문화의 대발전), 유물 변증법적 창작 방법의 오류(단순화·도식화)와 그 극복을 위한 수용의 당위성(安莫,‘創作方法問題의 再討議를 위하여’,동아일보,1933.11.29.∼12.7.), 세계관과 현실의 본말 전도의 불가, 세계관과 방법의 혼동 및 세계관의 과도한 중시(權煥,‘現實과 세계관 및 창작방법과의 관계’, 조선일보, 1934.6.24∼29) 등을 논의한다.

이와 같이 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론적 윤곽을 드러낸다. 그러나 소련과는 달리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한국에서의 소용 여부론이 일어나 수용론(韓曉·朴勝極), 반대론(李箕永·安含光), 절충론(宋江·金斗鎔) 등으로 갈라지고, 한편 상보성의 필요로 혁명적 로맨티시즘과의 결합론(林和·宋江 등), 이념과 창작실천과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李箕永·韓曉·安含光·金南天·韓植·林和 등) 등이 계속된다.

그러나, 만주사변(1931)과 경제공황으로 인한 대륙 침략의 전조(前兆)와 식민지정책의 강화, 신간회의 해산(1929), 국민문학파와의 대립 해소와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1·2차 검거 및 해산(1935) 등 외적 요인과, 변증법적 창작 방법의 경직성과 프로문학의 급진적 관념에의 편향, 소련 및 일본의 추구 경향,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중심의 창작 방법 논의의 일단락(1936) 등의 내적 요인 등으로, 작가들에게는 전향과 휴머니즘으로 후퇴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한식(韓植)의 풍자문학론(‘풍자문학에 대하여’, 동아일보, 1936.2.21.∼27.)과 김남천(金南天)의 고발론·풍속론·관찰론(‘고발의 정신과 작가’, 조선일보, 1937.6.1.∼5., ‘창작방법의 신국면’, 조선일보, 1937.7.10.∼15.) 등이 그것이다.

전자는 풍자를 프롤레타리아문학과 연결한 점이 돋보이고, 후자는 카프 해산으로 막힌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계승할 신창작론을 구체화해 본 시도다. 백철의 종합문학론, 임화의 본격소설론도 경색된 문학론의 한 타개책으로 볼 수 있다. 실천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남천은 전형의 창조를 중심으로 발자크의 리얼리즘과 루카치를 원용한다.

그리고 채만식(蔡萬植)의 ≪탁류 濁流≫(1937∼1938), 박태원(朴泰遠)의 ≪천변풍경 川邊風景≫(1936)을 세태·풍속소설로 규정 평가한다.

김남천은 발자크의 리얼리즘에 의거한 방법으로서 관찰문학론(‘관찰문학소론’, 인문평론 7호, 1940.4.4., ‘체험적인 것과 관찰적인 것-속관찰문학론’, 인문평론 8호, 1940.5.)과 루카치 소설론에 의거하여 전형 문제를 중심으로 한 리얼리즘 소설론으로 발전하여(‘소설의 운명’ 인문평론 13호, 1940.11.), 당시의 리얼리즘 논의의 정점에 도달한다.

그러나, 근대의 미완결 사회에 비하여 공산주의의 유토피아적 완결성보다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세계의 총체적 완결성을 보는 루카치 리얼리즘의 휴머니즘적 일면은 거의 외면한 듯하다.

일제 말 암흑기(1940∼1945)의 전향·부역·종군(從軍)·침묵 등을 거쳐 광복을 맞은 리얼리즘 논의는, 김남천·이원조·임화 중심의 문학건설 총본부(1945.8.16.)와, 한효·이기영·한설야 중심의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1945.9.17.)으로의 양분된 발족과 당(남로당)과의 연결로, 당시의 건국 이데올로기에 상응하는 진보적 리얼리즘(인민연대독재에 의한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 건설과 상응)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일당 독재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 상응)으로 갈린다.

그러나 남로당의 지령에 따라 두 단체가 조선문학가동맹(1946.2.8.∼9.)으로 통합함으로써 진보적 리얼리즘 쪽으로 귀결된다(김윤식).

이어서 민족주의 또는 순수문학파(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건설과 상응) 쪽이 결성한 조선청년문학가협회(1946.4.4)의 김동리(金東里)와 문맹의 김동석(金東錫)·김병규(金秉逵) 간의 논쟁이 전개되어, 문학사조의 첨예한 양극화 구도를 형성한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을 전후하여 좌파의 전향(보도연맹 가입), 월북 등으로 일단락 된다.

남북한이 따로 단독정부 수립으로 분단은 1차적으로 고착화되고, 북한의 남침전쟁(1950.6.25)으로 2차적으로 고착화된다.

중공군과 UN군의 참전으로 확대된 한국전쟁은 내전과 국제전의 이중구조를 갖게 된다.

폐허와 죽음의 직·간접적 체험, 민족 대이동(월남)으로, 이어령(李御寧)·고석규(高錫珪)에게서 드러나듯이, 모든 문제(근대화, 근대국가, 이데올로기, 문학사조 등)는 실존과 생존에 집중된다

여기서 삶의 원초적 물음과 탐구가 새로 시작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1950년대의 전후 리얼리즘도 예외일 수 없다.

손창섭(孫昌涉)의 〈비오는날〉(1953)을 비롯한 전후 리얼리즘은 실존주의 및 휴머니즘과 결부되어, 당과의 연결고리도 없고 좌우 논쟁도 없이 비로소 역사의 자생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오상원(吳尙源)의 〈유예〉(1954),

장용학(張龍鶴)의 〈요한시집〉(1955) 등은 실존주의적 현실 인식을,

황순원(黃順元)의 〈학〉(1953),

오영수(吳永壽)의 〈갯마을〉(1953),

이범선(李範宣)의 〈학마을 사람들〉(1957) 등은 향토적 현실인식을, 월남 난민·전쟁고아·도시빈민·불구자 등을 리얼하게 그린 손창섭(孫昌涉)·이호철(李浩哲)·송병수(宋炳洙) 등은 미래가 차단된 현실인식을, 그리고 최일남(崔一男)은 무력한 서민층의 리얼리즘을 보여 준다.

4.19와 5.16은 민주화와 자유, 근대화(산업화)와 평등이라는 두 창문을, 전자는 민중의 힘으로, 후자는 총의 힘으로 열면서 1960년대는 시작한다.

 

김동리·서정주(徐廷柱)·유치환(柳致環) 및 청록파를 스승으로 하는 문예파와 현대문학파의 순수 서정주의를 강타하면서 역사의식과 역사적 책임, 현실의식을 강조하는 참여파의 순수파에 대한 논쟁에서, 자생적 리얼리즘은 이 시기에 그 다양성을 드러낸다.

서기원(徐基源)·최인훈(崔仁勳)·김승옥(金承鈺)이 가진 자유, 자의식과 생존논리 등의 주제는 그들이 전후문학의 연장선상에 놓임을 보여 준다. 시에서는 김수영(金洙映)이 자유를 외치고, 신동엽(申東曄)이 껍데기 폐기론 문학을 표방한다.

순수와 참여의 첨예한 양극화 논쟁은 1960년대의 한 인상적인 사건(1차는 이형기·김양수·원형갑 대 김우종·김병걸, 2차는 김붕구·선우휘 대 임중빈·이철범·임헌영, 3차는 이어령 대 김수영 등)인 동시에 다시 문학관의 양극화 구도의 부활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생적 리얼리즘(또는 토착적 리얼리즘)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러 탄탄한 밀도를 갖게 된다. 4·19의 민주화(자유)와 5·16이 점화(點火)한 근대화(산업화)의 공존적 갈등, 즉 산업사회화와 그 모순의 동시적 성장이 리얼리즘의 토양이 된다. 신에게서 버림 받은 세계의 서사시라는 리얼리즘을 이 시기에 체험하는 듯하다.

≪현대문학≫이나 ≪월간문학≫을 압도한 듯한 ≪창작과 비평≫(1966)의 창간도 한국 리얼리즘 성장에 기여한다. 특권층의 부패 풍자(김지하, 〈五賊〉, 사상계, 1970.5.), 변두리 노동자들의 생태(황석영, 〈객지〉, 1974) 등 산업화로 1970년대 계층사회의 모순 인식은 바로 모순의 근원에 대한 질문의 심화다.

현실의 본질이 바로 모순이며, 그 모순의 극복이 리얼리즘의 핵심이므로, 1980년대에 이르러 모순의 근원을 사회의 여러 국면에서 다양하게 추구한다.

1970년대의 시민문학론(백낙청, ‘시민문학론’, 1969)은 민중 곧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민족문학론(백낙청,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 1974)으로 변화한다.

1980년대 전후부터는 민중문학·노동문학(민중주의 리얼리즘)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식민지 농촌 현실을 그린 대하소설 박경리(朴景利)의 ≪토지1∼5≫(1994) 연재가 시작되고, 김원일(金源一)의 ≪겨울 골짜기≫, 이문열(李文烈)의 ≪영웅시대≫(1982∼1984), 조정래(趙廷來)의 ≪태백산맥≫(1983∼1989) 등은 탈냉전·탈반공주의적 시대상황으로의 변화와 맞물려 탄생한 것이다.

1980년대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사회운동을 반영한 전위적 노동문학의 출현이다.

노동계급 의식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노동자 출신 작가들(박현석, ‘새벽출정’, 1991., 정화진, ‘쇳물처럼’, 1989)의 소설은 노동현장의 사실적 묘사를 넘어 선전·선동으로 치달아 급진적 운동문학의 양상을 띤다.

여기에 도시 중산층의 풍속과 도덕, 특히 산업사회가 배양한 소시민의 탐욕과 허위의식을 다룬 윤흥길(尹興吉), 김원우, 오정희(吳貞姬), 현길언(玄吉彦), 박영한(朴榮漢)을 더하면 80년대 리얼리즘의 깊이와 폭을 더하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 소설적 관습의 해체와 새로운 형식 방법, 모더니즘적 미학 등을 추구하는 반리얼리즘적 경향이 우측 날개를 형성하여, 문학사조의 양극화 구도가 지속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리얼리즘의 많은 극복 대상과 그 미래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낭만주의·모더니즘·형식주의·구조주의는 배제 대상이 아니라 극복 대상이며, 그 미래는 최근의 신마르크스주의 및 신역사주의 이론과 결합할 때 새 지평과 전망이 열릴 것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리얼리즘, 특히 변증법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우,

① 실천(창작)보다 왕성한 이론이 앞섰고,

② 소련의 경우에는 사회주의 체제를 어느 정도 갖춘 현실사회를 기반으로 한 점, 당(공산당)과 단체(라프, 소련작가동맹)와 작가와의 3중 연결로 묶여 있는 점이 지적될 수 있으나 한국의 경우에는 그런 연대가 없고,

③ 일본을 매개로 수입된 복사(複寫) 이론의 공소성을 면할 수 없다.

광복 후, 특히 6·25 이후 사회현실 및 문학사조의 양극구도에서 자생적 리얼리즘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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