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創造論]창조.신학.과학

현대 창조과학 운동의 아버지 -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好學 2012. 9. 5. 02:43

현대 창조과학 운동의 아버지 -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많은 훌륭한 책들의 저자요, 과학자요,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설립자인, 그리고 ‘현대 창조과학 운동의 아버지’로서 간주되고 있는 헨리 모리스 박사는 몇 번의 작은 뇌졸중 후에 2006. 2. 25일 8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헨리 모리스(Henry Morris, 수력학, 라이스 대학) 박사와 존 휘트콤(John Whitcomb) 박사는 1961년에 함께 저술한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 라는 책을 통하여 잠자고 있던 교회를 흔들어 깨웠다. 많은 사람들은 그 책의 출간이 현대 창조과학 운동(modern creationist movement)의 시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책은 오래된 연대에 반대되는 증거들과 한 번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 격변을 찬성하는 과학적인 명백한 증거들을 제공했다.

 

 1970년에, 헨리 모리스는 그의 창조과학 사역에 전념하기 위해서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부의 장을 맡고 있었던 버지니아 공대(Virginia Tech)를 떠났다. 버클리 대학(UC Berkeley)의 생화학자였던 듀안 기쉬(Duane Gish) 박사와 함께, 모리스는 미국창조과학연구소(ICR,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를 설립하였다.

미약하게 시작했던 ICR은 점점 성장하여, 세계에서 선도적인 창조과학연구소가 되었고, 이제는 박물관과 대학원을 가지게 되었다. 모리스와 기쉬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대학 캠퍼스에서 수많은 과학자들과 창조/진화 토론을 벌였다. 문자적 성경 해석과 기독교관을 견고히 하며, 진화론적 과학과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는 그의 50여권이 넘는 책들은 일반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펜을 들면 강하고 견고했던 헨리 모리스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몇일 전까지도 저술 작업을 하였다. 그가 저술했던 주제들의 폭과 깊이는 탁월하고 깊었다. 그의 정신은 87세의 나이에서까지 날카롭고 명철했다.

 ICR 에서의 사역들은 그의 아들 존 모리스(John Morris, 지질공학) 박사의 리더쉽 하에서 계속되고 있다. ICR은 최근 8년간 11명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수행되었던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들에 대한 학문적 분석 연구였던 RATE(Radioisotopes and the Age of the Earth)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2005년 11월), 유전학 분야를 포함한 새로운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

 

2002년에, ICR은 코스타메사(Costa Mesa)에 있는 갈보리 예배당(Calvary Chapel)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조론의 횃불을 넘기며(Passing the Torch of Creation)”라고 불리는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곳에서 헨리 모리스는 그의 마지막 대중 연설을 하고난 후 모든 사람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와 그의 저서들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심지어 그의 적이었던 진화론자들도 그를 존경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믿음에는 반대하지만, 진화론자들도 그의 개인적 인격, 성실성, 영향력은 결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저술했던 많은 책들과 이어진 오디오와 비디오물들, 그리고 그가 설립한 ICR과 함께 헨리 모리스(Dr. Henry M. Morris, Jr)의 이름은 그가 부활시켰던 창조론 운동과 함께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랐던 한 사람에 의해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거의 모든 창조론 지도자들은 모리스의 사역과 저술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1960년 대에, 창조론을 주장하고 있는 책은 극히 드물었다. 교과서들은 진화론에 의해서 완전히 점령당해 버렸고, 과학에 의해서 협박당하고 있던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 주제를 다루는 것을 회피했다. 헨리 모리스의 첫 번째의 작은 책 ‘성경과 현대과학(The Bible and Modern Science)’은 이러한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는 대학을 졸업한 새로운 세대의 크리스천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자유주의 교회들은 오래 전부터 진화론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었고, 많은 성경을 믿는 교회들도 수십억 년의 오래된 연대와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에 굴복되어져 있었다. 과학이 오래된 연대를 사실로서 입증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간격이론(gap theory)과 점진론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등으로 타협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모리스와 휘트콤은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홍수 기록과 일치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화석기록과 지질학적 지층들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라,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과학적인 증거들이 대홍수를 동반한 격변설적 개념으로 해석할 때 더 합리적으로 해석되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일단의 창조과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은 오늘도 더 깊이있는 조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BSA(Bible-Science Association)와 CRS(Creation Research Society) 같은 새로운 기구들이 조직되어졌고, 창조과학 운동을 지지하는 무수한 클럽과 단체들이 강하게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며 성장하고 있다. 그들 거의 모두는 거슬로 올라가면 ICR로부터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헨리 모리스는 결코 자기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늘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다. 그는 이 지적 전투(intellectual battle)의 본질과 그 마지막을 잘 알고 있었다. 전투는 일찍이 있었던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 뜨겁게 가열되고 있다. 새로운 세대에게 그 횃불을 넘겨주었지만, 그는 이 전투의 현장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다른 이들에게 도전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을 계속했던 것이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현대 창조과학 운동의 모세였다.

그의 개인적인 인내심, 근면성, 성결함, 그리고 그의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지혜로움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고, 그들을 강하고 용기있게 만들어서, 진정한 과학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들이 안주하고 있던 땅들을 떠나게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