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옥스포드 광야시절과 George Whitefield의 거듭남 3

好學 2012. 8. 24. 19:54

옥스포드 광야시절과 George Whitefield의 거듭남 3

 

 

 

횟필드는 기도를 통해서도 이와 유사한 기쁨을 누렸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오! 나는 글로스터에 다시 온 이후에 매일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과 얼마나 달콤한 교제(sweet communion)를 누렸는지 모른다. 들판에서 달콤하게 묵상에 잠기면서 내 자신을 잃어버린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을 얼마나 확실하게 느꼈는가! 그리고 나는 매일 성령의 위로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었으며, 놀라운 평화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의 덕을 쌓아갔으며, 새 힘을 공급받았다."


이러한 기도의 체험은 휫필드가 가졌던 '정기적인 기도의 시간‘으로부터 나온 은혜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의 시간 (아침, 점심, 저녁)을 가진 것은 틀림없지만, 그의 기도는 결코 정해진 기도의 시간에만 제한되지 않았다. 휫필드는 하루 종일 기도하는 마음의 태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한편 이 기간 동안 휫필드의 생활을 알려주는 그의 일기(이 일기는 이 기간 동안에 쓴 것으로, 출판되지 않고 오랫 동안 알려지지 않은 채로 대영박물관에 보존되어왔다)는 그가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해나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예로, 그의 일기에는 하루 동안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판단하는 근거로써 매일 밤마다 점검했던 목록들이 있다.


"1. 나는 개인기도 시간에 뜨겁게 기도했는가? 2. 정해진 기도시간을 지켰는가? 3. 모든 시간을 아꼈는가? 4. 모든 대화나 행동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했는가? 5. 어떤 기쁨 후에 즉시 감사했는가? 6. 하루의 일을 계획 가운데 진행했는가? 7. 모든 면에 검소하고 침착했는가? 8. 무슨 일을 행할 때 열심히 혹은 힘있게 행했는가? 9.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면에서 온화하고 상냥하며 친절했는가? 10. 거만하거나 허영을 일삼거나 난잡하거나 다른 사람을 시기하지 않았는가? 11.먹고 마시는데 점잖았는가? 그리고 감사했는가? 잠자는 일을 절제했는가? 12. 로(William Law)의 법칙대로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는가? 13. 연구하는데 최선을 다했는가? 14. 어떤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15. 모든 죄들을 고백했는가?


휫필드는 이러한 항목들을 염두에 두고 매일 두 부분으로 나눠서 일기를 썼다. 한 페이지에는 그날의 매 시간마다 특별한 활동들을 기록하면서 위의 각 항목을 근거로해서 매 시간의 장점과 단점을 표시해서 자기를 점검했다. 다음 페이지에는 그날에 있었던 일상적인 일들을 기록했지만, 우선적으로는 자신의 내적인 상태나 자기반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처럼 빈틀없이 철저한 휫필드의 자기관리는 그의 성경연구나 기도생활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유지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흔히 전기작가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휫필드의 생애 가운데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엄청난 업적(예를 들면, 어떤 때는 한달 중 28일 동안 매일 만 명의 사람들에게 설교했다)들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까지 말해왔다. 하지만 필자는 휫필드가 옥스포드에서 근로장학생으로서 뼈아픈 마음으로 쌓았던 훈련들, 즉 일 분 일 초도 낭비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성품이나 불같은 열심, 진지함, 근면 등을 생각하면서 그의 엄청난 업적들은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횟필드는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면서도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독서하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은혜와 지식' 에 있어서 동일하게 장성해지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리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휫필드는 몇 년 전에 읽기를 원했지만 돈이 없어서 살 수 없었던 로(William Law)의 「경건한 삶에로의 진지한 부르심」(Serious Call to Devout Life)을 읽었고, 백스터(Baxter)의 「회개하지 않는자를 부르심」(Ca11 to the Unconverted), 알레인(Allein)의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 대한경고」(Alarm to Unconverted Sinners), 제인웨이(Janeway)의 「생명」(Life), 그리고 성경 주석으로 버키트(Burkitt)의 주석, 그밖에 고전과 청교도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특히 그는 매튜 헨리 주석(Matthew Henry's Commentary)을 무척 갖고 싶어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거금에 해당되었던 7파운드 짜리(당시 노동자가 15-16주 동안 일해서 벌 수 있었던 액수) 주석집을 살수는 없었다. 하지만 휫필드는 그 소망을 포기할 수 없어서 그 주석서를 가브리엘 해리스에게 외상으로 구입했다(횟필는 일 년 후에 그 외상 값 7파운드를 해리스에게 보냈다). 휫필드는 그 주석집을 구입한 후 "여러 달 동안 그 책들(버키트와 매튜 헨리 주석)을 연구하면서 거의 항상 무릎을 끊고 기도해왔다”고 할 정도로 매튜 헨리 주석을 아꼈고, 그후에 휫필드에게 그것은 일생 동안 뗄 수 없는 동반자가 되었다.


휫필드가 매튜 헨리 주석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고 연구했는지 그의 일기는 어느 정도 소상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그는 새벽 다섯 시부터 여섯 시나 일곱 시까지 그 주석을 읽었고, 때때로 오전과 오후에도 다시 읽었다. 그는 낙심될 때 위안의 수단으로써 헨리의 강해를 읽었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도 성경구절을 강해한 헨리 주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되었다. 휫필드는 “헨리 주석이 나의 신앙 인격 확립에 얼마나 귀한 수단이 되었는지!"라고 감탄했고, 또 어떤 때는 ”헨리 주석을 놓고 기도하며 읽을 때면 내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게 지나갔던지!"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그래서 휫필드는 늘 아침 다섯 시면 영어성경과 헬라어성경 그리고 헨리의 주석을 무릎 앞에 펼쳐 놓고 말씀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때에 휫필드는 자신의 독특한 성경연구방법을 터득했는데, 먼저 영어성경을 한 부분 읽은 후, 헬라어 단어와 시제를 절절이 연구해서 완전한 통찰럭을 얻었고, 그리고 나서 헨리의 주석에 나타난 설명과 대조해보는 형식으로 연구했다. 여기에서 휫필드가 터득한 독특한 연구방법은 영어와 헬라어의 모든 절과 단어를 기도하면서 그 구절의 본질적인 의미가 그의 영혼에 와 닿을 때까지 즐거움으로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독특하고도 집중적인 성경연구를 통해서 휫필드는 후에 설교를 준비할 겨를도 없었던 바쁜 사역, 즉 한 주일에 40시간 이상씩 설교할 때도 전혀 어려움없이 지식의 창고에 쌓인 무한한 보배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글로스터에서의 생활은 장차 휫필드의 본격적인 목회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의 기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 9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휫필드는 말씀을 구체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정기적인 기도생활을 통해서 표현할 수 없는 영적인 풍성함도 체험했다. 그 무렵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영적 생활의 극치를 맛보고 있던 휫필드는 불타오르는 복음의 열정을 억제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찰스 웨슬리는 휫필드의 열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모든 멍에로부터 해방된 그는, 그의 사역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열심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서 그루터기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타오르며 날아갔다. 그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하늘의 불꽃을 지피웠다…"


마침내 휫필드는 불같은 열정을 갖고 글로스터에서 처음으로 하늘의 불꽃을 지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곧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휫필드의 사역은 생각 밖에 좋은 반응을 얻었고,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휫필드는 시편을 노래하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형식으로 그 모임을 이끌었다. 때때로 그는 그 모임에서 교리서를 읽게 하고, 경건서적을 읽으며, 경건한 삶에 대한교훈을 하기도 했다. 이 조그마한 공동체는 역사적인 중요한 의의를 지졌다. 왜냐하면 그 공동체는 엄격한 의미에서 '최초의 감리교 공동체' (the first Mothodist Society)였고, 휫필드의 일생을 통해서 그의 사역의 한 모습(unit)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임은 일부사람들에 의해서 심한 반대를 받기도 했다. 휫필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도구로 삼으사 몇몇 젊은이들을 일깨우게 하셨고, 그들은 곧 조그마한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그들은 곧 전에 우리가 옥스포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글로스터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취급받는 영예를 누렸다."

그 즈음에 사람들은 휫필드의 열심과 뜨거운 복음의 열정을 보고 그가 목회의 길을 갈 것을 희망하면서 목사안수를 받도록 권면했다. 하지만 휫필드는 이미 자신은 목사가 되기를 소원해왔지만 막상 주변 사람들로부터 목사안수에 대한 강력한 요청을 듣고보니 안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목회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과 설교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깊은 염려를 해왔는지 하나님만이 아신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당신의 사역을 하도록 밀어 넣으실 때까지도 내가 교회에서 사적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비오듯이 땀을 흘리며 수천 번을 기도했다."


다시 말하면 횟필드는 목회자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확인할 때까지 수천 번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는 것이다. 피땀 흘린 수천 번의 기도!!! 아마도 그것이 없었다면 휫필드는 글로스터 주변의 한 교회 목사는 되었을지 몰라도 한 시대를 움직일 만한 위대한 설교자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렇게 처참하고 초라하게 되돌아갔던 휫필드의 글로스터행은 인생의 낙오자의 발걸음이 아니라, 오히려 승리를 향한 발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휫필드에게 목사안수에 대한 갈등이 계속되었지만, 정념 하나님께서 자신을 목사로 세우시려고 한다면 다시 옥스포드로 갈수 있는 모든 여건, 즉 모든 재정을 조성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마치 기드온처럼(삿 6:36-40)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기다렸다. 얼마되지 않아서 휫필드는 목사로 세우심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옥스퍼드로 돌아가기 위한 모든 재정이 충당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휫필드는 아흡달만인 1736년 3월에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갔고, 그후 학부괴정을 다 마치고 학사학위(B.A.)를 받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휫필드의 초기생애에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은 그가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헨리 스쿠갈의 「인간의 영혼속에 거하신 하나님의 생명」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1677)이라는 책과의 만남. 휫필드는 그 책을 통해서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죽음을 무릅Tm고 ‘하나님의 생명'을 추구함으로써 마침내 자신 안에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생명이 있음을 체험하게 되었다. 따라서 휫필드의 불같은 설교는 '하나님의 생명'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둘째, 말씀의 체험. 휫필드가 어릴 때부터 말씀을 가까이 해왔다는 것은 이미 주지한 바이다. 그런데 휫필드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말씀은 로마서 8장 15-16절이었다. 그 말씀은 휫필드가 참 자유와 하나님의 생명을 추구하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매달려 기도하고 있을 때 깨달았던 말씀이다. 횟필드가 그 말씀을 통해서 받았던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었던 소중한 체험이었다. 그러한 말씀의 체험이 횟필드로 하여금 평생 동안 말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갖도록 했을 것이다. ‘성경만이 나의 유일한 연구대상’이라고 한 그의 고백이 이것을 입증해준다.


셋째, 글로스터에서의 말씀연구와 피땀 흘린 수천 번의 기도 휫필드가 처음에 글로스터로 되돌아갈 때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실패자였다. 하지만 휫필드는 그곳에서 피나는 말씀연구와 기도로 깊은 영적 세계를 체험하였고 그곳은 휫필드에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광야와 같은 곳이 되었다. 그는 옥스포드에서부터 쌓아온 철저한 시간관리로 피나는 기도생활을 해나갔다(그는 보통 아침 4시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5시부터는 말씀을 묵상하거나 연구했다고 한다. 이러한 새벽의 기도는 예나 지금이나 영국의 상황으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니,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의 영성을 관리했는지 알 수 있다). 횟필드가 그곳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성경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성경연구 스타일을 쌓아나간 것이나, 목사의 소명을 확인하기 위하여 수천 번이나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것은, 그가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리라 본다.

이처럼 '하나님의 생명'의 체험과 '말씀‘의 체험, 그리고 ’말씀연구와 피땀 흘린 수 천 번의 기도‘등은 휫필드가 평생 동안 불 같은 말씀을 전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들은 휫필드가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확신한다. 덧붙여 필자는 휫필드가 위대한 설교자로서 ’설교자의 정상' 을 차지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확신하는 몇 가지 요인을 더 말하고 싶다. 그것은 탁월한 웅변술, 지칠줄 모르는 불타는 열정, 철저한 자기관리, 무서울 정도의 진지함, 근면 등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요소들과 그가 일찍이 체험했던 '하나님의 생명'과 말씀'의 체험들, 피나는 '기도‘의 준비,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하나로 어우러져 '사도시대 이후 최대의 설교자'라는 하나님의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註)--------------------------------------------------------------------------------------------
1.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P 61-62,
2. Douglad Macleane, A History of Pembroke College, Oxford, Oxford Historical Society, 1897, P. 189, cited by Ibid., P. 61.
3. V. H. H. Green, The Young Mr. Wesley, London; Edward Arnold, 1961, P. 162.이 책은 "성령강림주일(Whitsunday)에는 대학의 모든 학생들이 성례에 참여했지만, 근로장학생들은 다음날 따로 참여 했다"라고 밝힌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의 말을 인용한다., cited by Ibid., PP 6l~62.
4. 지금도 왕족이나 귀족층의 자녀들은 '이튼 칼리지'(Eaton College)에서 공부를 마치고, 개인의 성적 여 하에 따라 옥스포드(Oxford)나 캠 브리지(Cambridge)에 진학한다.
5. Luke Tyerman, 1890, P. 19.
6. Amold A. Dallimore, 1990, P. 18.
7.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64.
8. Cf, ibid., PP. 67-68.
9.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68.
10. Luke Tyerman, 1890, P. 16.
11.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op. cit.
12. ibid.
13. ibid., P.27.
14. Robert Philip, 1838, P. 17.15.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15.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75.
16. George White field's Journals, 6th impression 1992, P.52.
17. Luke Tyerman, 1890, P. 25.
IS. James Paterson Gledstone, 1900, P. 14.
19. Arnold A. Dallimore, 1990, P. 21.
20.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77
21. J. I. Packer, Great George, Christianity Today, September 19, 1986, P. 12.
위대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 연구 233
22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79.
23. Luke Tyerman, 1890, P. 36.
24. ibid. p. 37.
25.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80.
26. 예를들면, 글래드스톤(Gledstone)은 “휫필드의 사역의 위대성은 쉽게 설명될 수 없으며, 심지어 그것을 세 권으로 쓴다해도 다 쓸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James Paterson Gledstone, 1900, P.v.
27.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82.
28. ibid.
29. ibid., P. 85.
30. ibid., P. 83.
31. George Whitefield's Journals, 6th impression 1992, P. 60
32. Arnold A. Dallimore, 1970(reprinted 1995), P. 86.
33. Luke Tyerman, 1890, P.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