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택시기사

好學 2012. 6. 28. 21:54

택시기사

 

일흔 넘은 기사가 하루 17시간 운전… '먹고살아 가려니 핸들 놓지 못해'
低출산의 여파로 생산인력 老化, 국가 활력 붕괴는 再起 힘도 뺏을 것

 
전국의 택시기사들이 "서민택시 못 살겠다"며 파업했던 지난 20일 오후 서울광장. 집회가 끝난 후 텅 빈 광장 뙤약볕 아래 70세쯤 된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흰 턱수염에 주름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 소주 한 병 깠소. 허리가 아파 통증 좀 없애려고 쥐포와 소주를 사서 마셨지." 취기가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그리고 술 냄새 나는 입에서 신세한탄이 쏟아져 나왔다.

"나, 30년 운전했소. 집도 장만했는데 아들 놈이 사업한다고 해서 담보 잡혀 날려 버렸소. 지금은 고시촌에 혼자 살아. 집사람도 연락이 안 돼. (하루에) 12시간 택시 몰아 사납금 내고 나면 밥 먹을 돈만 남아. 내 인생 이렇게 망가졌어."

허리춤에 찬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토해냈다. "엠비가 '부자(富者)정치'만 했어. 말로만 서민 서민 했지, 서민들 더 밟아 버렸어. 젊은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딸뻘 되는 아이(승객)에게 반말까지 듣고 살아."

그날 서울광장을 찾은 이유 중 하나는 택시기사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언제부턴가 택시를 타면 기사의 연로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 기사가 부쩍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광장 집회에서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새벽 4시부터 하루 17시간 운전한다는 70대 초반의 기사는 "지금 서울에서 92세 노인도 택시를 몬다"면서 "나는 10년만 더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 문제만 없으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가 택시기사라는 것이다. 나이 들어 속도감과 판단력이 떨어지고, 승객이 말한 목적지를 금세 잊어버리고 되묻곤 하지만 먹고살려고 핸들을 놓지 못한다고 노인 기사들은 말한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집에서 쉬다가 생계비를 벌려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길을 찾는 초보 노인 기사도 늘고 있다. 차고지에서 쉬는 택시는 많은데 운전을 하겠다는 젊은이가 없으니 택시회사들은 찾아오는 노인을 받아준다.

시민사회의 대표적 직업인 택시기사 중 노인이 많아진 건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의 미래를 걱정케 하는 상징적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안내 도우미, 주유소 직원, 음식점 종업원, 심지어 건설현장까지 노인이 차지해가고 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앞으로 10년이 흐르면 인구 10명 중 2명, 그 후 20년이 지나면 10명 중 3.2명이 노인이다. 지나온 과거의 속도를 떠올리면 순식간에 우리에게 달려올 현실이다.

1990년대 이후 경제대국 일본을 무너뜨린 주범은 복합불황이나 엔고(高)보다 생산인력의 노쇠(老衰)가 초래한 국가활력의 붕괴였다. 시골 동네에서도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아침부터 파친코 도박장 앞에 줄 서서 문 열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그렇게 무심코 나라가 늙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던 일본의 실패를 한국이 더 빠른 속도로 따라가고 있다.

후손을 쑥쑥 낳는 '청년 나라'들은 세계 대공황 같은 난관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체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노인국가는 위기가 지나고 새벽이 와도 힘차게 일어서지 못한다. 지금 이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노인국이 돼버린 후에는 대통령을 백 번 잘 뽑아도 소용이 없다. 결혼을 기피하고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은 국가의 존폐가 걸린 문제인데도 젊은 세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아기를 한 명이라도 더 낳게 하는 지혜를 공약집 첫 줄에 쓰는 후보가 나온다면 그에게 표를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