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韓國社會의 重病] 정신차리자 大韓民國

好學 2012. 6. 23. 06:54

[韓國社會의 重病] 정신차리자 大韓民國

 

 

安秀吉

細菌/바이러스 등 눈에도 보이지 않는 微生物은 극히 작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 微細한 存在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 알려졌을 때 萬事 덩치크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有害性에 대해 별로) 강조 함 없이 報道가 됐더라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을지 잘 짐작이 안 간다. 微細하기 때문에 ‘그까지 것’하고 경시해서 흘려버리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 危險性에 대해서 경고를 한 學者들을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平地風波를 일으키는 “쫀쫀한” 사람들’이라고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結局은 이 작은 細菌에 대해서 關心을 안 가질 수가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쫀쫀’이란 원래 ‘피륙의 발이 곱고 고르다는 뜻’이지만 이곳에서는 ‘작은 일을 꼼꼼하게 챙긴다’는 뜻으로 侮蔑의 표현으로 쓴다.
대순진리회의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人類에게 危機가 다가온다면 그것은 ‘全世界에 蔓延하게 되는 疾病의 형태로’ 라는 것, 다시 말해 일이 터지면 그 당시 아직 백신 개발이 안되어 있는 新種 怪疾의 急襲 때문일 것”이라는 것인데 작금 날이 갈수록 그러한 '時兆'(AIDS로부터 시작해서 조류독감, CJD 등 동물과 人間사이를 오가는 傳染病, 그리고 쉽게 한 두 달은 끌게 되는 이상한 돌림감기)도 있어 보인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危險한 것’에 대해서 치사하게 보이고 쫀쫀하게 보일망정 ‘생각 있는 이’들이 警覺心을 갖고, 사람들에게 그 危險性을 충분히 설명하고 强調를 해줘야 그 사회는 滅亡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수롭지 않게 보이면서도 사실은 대단히 重要한 일’인 것이다.

 


韓國社會는 지금 (자칫 잘못하면 大韓民國이라는 國體가 송두리째 넘어갈 가능성이 큰) 重病을 앓고 있다. 그런데 그 原因이 되는 ‘작은 것’ 들에 대해서 우리는 번번이 ‘아유. 그까짓 조금한 일을 갖고….’ 하면서 지나쳐 버리곤 했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일을, 남들이 말들 안 하는 데 먼저 擧論하자니 躊躇를 하게 되는데, 사실은 그렇게 해서 重要한 문제가 충분한 注意를 끌지 못하고 지나곤 해서 그 간 破滅을 향한 社會病弊의 原因菌 들은 드디어 이 나라 가장 깊은 骨髓에까지 侵入하고 말았다.
光復 後 우리 정부가 처음 들어섰던 이래로 뇌물, 또는 賣官賣職, 그리고 親日派 等 옳지 않는 일이 종종 생겨서 世上이 시끄럽곤 했기 때문에 그 間 韓國사회가 그러한 ‘있을 수 없는 일’에 치를 떨면서 하나하나 是正이 될(또는 됐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은 ‘앞으로는 잘 되겠지’하고 다시 希望을 갖곤 했던 것이다. 그간 눈에 띄게 큰 것들은 整理가 되곤 했기 때문에 깨끗한 世上이 될만한 充分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한국사회의 病狀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고 있다.
이제는 市民들이라는 巨漢 들을 대리고 ‘바이러스나 病因菌이라는 미세한 것’이 결국은 우리를 파괴하게 되는 危險한 것임을 설명하는 것과 같이 이 社會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작은 일’ 들에 관해서 그것을 풀어서 일일이 說明해주면서 한국사회의 變質 또는 破壞 요인 等은 하나하나 규명하고 警覺心을 높여 주어야하는 고달픈 世上이 된 것이다.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획책하고 커다란 일을 작게 分割해서 조금씩 조금씩 推進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發病에 이르게 하는 傳染病的 사례를 아래에 들기로 한다.
公營放送이라고 해서 視聽料의 ‘韓電의 요금과 끼워 팔기’라는 초강수를 동원해서 收金을 하면서 “宣傳 없는 방송을 한다”고 해 왔는데 그 ‘선전 안 한다는 KBS1’이 어느 날 宣傳을 시작했다. 그 내용은 굳이 ‘선전’이랄 것이 없는 ‘전기안전공사/電氣安全公社의 安全켐페인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에 擧論하기에는 좀 치사한 감이 있어서 그대로 지났다.
오늘날까지 韓國社會에서 방송이나, 신문들이 機會있을 때마다 ‘캠페인’을 일삼는 경향이 있는 것은 쉽게 觀察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와 같이 사람들 생각에 影響을 주려하는 경향이 심하다는 것은 이 민족이 머리가 좋아서 ‘교육이 가능하고, 교육효과가 있는’ 可敎育種이기 때문일 것이다. (反面에 소위 선진국들 中에는 ‘敎育不可’의 종자들이 많아서 그들 능력을 넘어선 ‘level(준위)’의 義務분위기의 敎育은 그들에 대한 殘虐行爲로 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KBS2, KBS prime(유선) 등은 상당한 광고수입을 올리고 있는 속에서 한국의 유일한 ‘선전 없는 방송’이라는 공영방송 KBS1마저도 이 ‘전기안전공사’건을 期해서 결국은 ‘선전’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작은 일로 보이지만 ‘劃期的’, 즉 ‘期를 달리하는’ 중대사로 볼 수도 있다.  
한편 地方自治단체 들도 그 지역의 名所에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구실로 자치 단체장들이 자신들의 잘 생긴 얼굴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그들도 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작금은 그러한 風潮가 가시는 듯해서 筆者도 그 광고가 “정부예산을 써가면서 하는 自己PR”임을 비난하고 나서자니 좀 ‘쫀쫀한 感 ’이 있어서 보아 넘겼다.

韓國電力公社가 敗戰日本이 남긴 ‘敵産’과 국민의 돈(국고豫算투입)으로 公社형태로 영업을 시작한지가 60여년이 됐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어느 날 ‘韓國電力’의 子會社(역시 公社)가 선전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러한 비용은 한 다리를 거쳐 결국은 電氣料金引上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 나라 안에서 우리끼리의 필요성에 의해서 설립된 ‘公社’가 왜 株式上場을 해서 ‘상장 때 긁어 모인 만큼의 돈이 결국은 우리 국민의 부담이 되게 하느냐’하고 평상시 公기업 들을 株式市場에 上場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더니 엄연히 國民이 그 主人이어서 전기료를 實費제공해야 할 韓電 역시 돈을 들여 ‘어두워서 젖을 못 찾는 새끼 개들이 오렌지에 金屬極板 꽂아 만든 電池’ 電燈의 밝음으로 해서 어미개의 젖을 찾게 된다는 宣傳을 시작했다.
다시 강조해서 ‘우리끼리의 必要性’에 의해서 우리 돈으로 경영되는 ‘公社’가 선전에 예산을 쓰는 것은 잘못이다. 전기 등 기본된 생활용 소비재 및 서비스 요금이 비싼 것으로 해서 지금 서울의 물가, 따라서 생산품의 原價는 높고 그것은 결국은 우리제품의 경쟁력 약화로 귀결되는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서는 行政府가 지금까지 해온바 ‘관보/官報’나 사실상 官의 대변을 하고있는 S신문等 재래식 홍보방법에 그치지 않고 政策放送 等 複數의 국립방송국을 開局해서 ‘이 정부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 지’를 선전한다는 지금까지의 政權 들이 국민들에게 ‘조심히 가서’ 하지 않았던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예산 浪費를 牽制해야 할 國會마저도 그것을 指摘하지 않더니 급기야는 자기네들도 홍보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농림부의 ‘GAP'선전, 건교부의 ’집 갖는 것보다 30년 임대가 낫다’는 敎示調 선전 등을 위시해서, 농협의 프로야구단 引受 試圖 등 정부의 많은 部處, 그리고 주택공사를 위시해서 공기업들이 국민의 돈으로 자기네들의 존재를 강조하고자 宣傳행위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韓電은 ‘불이 없으면 젖을 못 찾는’ 강아지라는 非科學的인 선전을 하더니 그 다음에는 더 비싼 製作費를 들인 것으로 보이는 ‘電線을 따라 흐르는 光點’의 광고로 格上이 되고, 이번에는 구석구석 底邊을 겨누는 것인지 地下鐵 차칸 선전판에 농사용 ‘지게’를 동원하고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글까지 곁들려 宣傳방법을 늘리고 있다.
이제 韓電이란 ‘公社’는 선전을 本格的으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전력이란 공기관은 국민들이 여름 한동안 평상시보다 다소 많은 量의 電氣를 쓰면 ’精神이 버쩍 드는' 累進料金率을 적용하면서 ‘節約을 유도’한다더니 이제 와서는 지금까지 하지 않던 宣傳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電氣를 쓰라고 誘導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 公社는 우리에게 電氣를 아끼라는 것인가, 아니면 더 쓰라는 것인가? 제발 한 會社의 경영에는 하나의 哲學이 있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요사이 국민의 살림은 더 어려워지고 있는 속에서 S市의 ‘시민체육’誌를 위시해서 政府의 여러部處는 제각기 弘報用 刊行物, 그리고 代辯人을 두어가며 우리의 세금으로 그들의 업적을 宣傳하는 데 躊躇함이 없어져 가고 있다.
옛날에는 정부가 道路 하나 만들고 廳舍 하나 짓는 데에 있어서도 ‘根本’이 儉素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公職者들이 떳떳할 수 있었던 그 ‘根本’을 잃고 근래에 와서는 각급 공무원들이 일하는 官廳 廳舍를 짓는데도, 건물은 놀랍게 크고 고급 재료를 써서 화려하게 짓고 있다. 지방에서도 크기가 문제가 될만한 시청/구청 건물들이 생기고, 해변 빈촌에 세운 ‘公衆便所’라는 것도 億대의 호화 建物이다.
‘公僕’이란 여러 사람이 부리는 ‘종:servant’이라는 뜻인데 鐵밥통의 公僕, 즉 공무원들이 한편으로는 필요한 행정 업무도 하지만, 그보다도 자기 자리보전을 위한 완벽한 要式갖추기와 그럴듯한 이유를 羅列하는 공문서 작성의 요령만 발달해서 美辭麗句 찾아내기에 대부분의 執務시간을 보내는 속에서 더 나아가서 自己네들 ‘일 잘하고 있다’고 하는 홍보를 强化하고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예전에 비해 조심성 마저 없어진 行政의 豫算과다使用으로 해서 사회에도 破滅誘導性 사치풍조를 유발하고 있다.
이 사회의 根本문제로 돌아가서 그 옛날부터 있어왔던 ‘庶民 經濟’는 정부의 存在여부와 관계없이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 모여 살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인데 정부가 덜 쓰고 (그 돈이 우리에게 남아)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生必品’을 마음 편하게 펑 펑 사줄 수 있다면, 우리 동네의 작은 기업들을 밥 먹게 해주는 바 ‘1000원짜리’나마 賣上을 올려 줄 수 있고, 따라서 자식들이 더 좋은 직장 생길 때까지 임시로 일할 수 있는 ‘작은 일터’ 들이 생길 수 (‘다이소’등 ‘1000원짜리 가게’에 납품하고 있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있는 것이다. 즉 골목시장 등 基本經濟를 위해서는 돈이 政府보다는 민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大型土木프로제크트 등 政府에서 집행하고 있는 공사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부익부’만 더 深化시켜 왔다.
결국 서민들에게 돈이 있으면 자연발생적으로 ‘장사하는 자리’들은 생기는 것인데 ‘改革’이니 ‘先進國’이니 하면서 사회를 뒤흔들고 豫算을 계속 키워 가면 앞날에 不安을 느끼는 庶民 들은 주머니 끈을 더 조이게 마련이어서 나라 경제는 망치게 된다. 家計簿에서 ‘큰 항목 들’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其他項目’이 결국은 더 큰 액수를 차지하게 되는 것과 같이 서민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서민 가계의 총계가 國家全體 經濟動因의 더 큰 部分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를 통째 넘겨주려는 ‘스멀스멀’ 工作에 ‘韓半島 旗’공작이 있다.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남북선수 同時入場’을 명분으로 공식 國旗로 인정된 것이 아닌 ‘韓半島旗’만을 들고 입장을 해 (孫基禎 때에도 못 써서 온 民族이 원통해 했던 太極旗를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못 보게 해서) 기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公式的인 절차가 안되어 있는 일이어서 國際的으로도 ‘두 나라’ 國旗들 대신 들고 나온 ‘한반도地圖’가 무엇인지 疑訝해 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오히려 ‘두 나라’의 公式國旗 들을 들고 나왔더라면 어느 면에 있어서도 民族和解를 위해 더 좋은 결과가 됐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가 지금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새로 發行하겠다고 하는 10만원권, 5만원권 등 新券의 도안에서 바탕그림의 홀로그램 부분에 왜 ‘한반도기’가 들어 있는 지 奇異한 느낌이 든다. 紙幣의 방향을 조정하면 視角에 따라 서너個 도안이 보이는 속에서 太極旗 등 더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당연히 主된 役割을 해야 하는 象徵 들은 안 보여주고 신문 등에 발표함에 있어서도 왜 하필이면 ‘한반도기’를 대표 무늬로 登場시켰는지 그 뒤에 숨은 세력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번 5000원권 新券 발행 때 이미 해외동포들까지 ‘韓半島旗 도안’을 홀로그램에 넣은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태극기 卦 들도 정확한지 확인해야 한다고 指摘했는데 그러한 ‘島嶼 들은 없는 맨 한반도지도’ 무늬의 採擇, 그리고 ‘主된 무늬로의 발표’ 역시 쫀쫀하게 보이지만 우리가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작은 事項을 散發的으로 노출시켜’ 歲月따라 常識化, 나아가서 通念化로 이끄는 技法은 ‘국민 조작’에서 흔히 쓰는 방법으로 지난 날 ‘나라님 하시는 일인데... ’하고 좀 더 참고 기다리게 되는 ‘착한 백성들의 心理를 이용해서 DJ가 ‘국회를 거치는 것도 아니고, 국민 총 투표(referendum)를 거치는 것도 아니고, 국무회의를 거치는 것도 아닌’ “햇볕정책”으로 나갔던 것도 바로 이 ‘스멀스멀’作戰이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법치국가란 ‘당연하게 보이는 일도 새 일이 생길 때마다 각급 절차를 正正堂堂하게 거쳐’ 根據를 남기는 그 절차들의 累積으로 이룩되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러한 작게 보이지만 내용이 큰 各段階 절차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면서 큰 일을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뚜벅뚜벅 惡辣하게” 나아가면서 이 사회에서 “실험/實驗을 하고, 다시 시작을 해보겠다“는 말이 들린다. 이 表現 들은 자칭/自稱해서 ‘中道좌파’라고 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용어이다. 갑자기 强하게 나가서 한번 敵의 목을 물면 놓아주지 않는 土佐犬(鬪犬)技法도 쓰지만 지금까지 이들이 주로 써왔던 방법은 狀況을 봐서 눈에 띄지 않게 스멀스멀 움직이다가 問題가 되면 中斷하는 척 하고, 슬며시 (後日에 效果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작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事例로는 電子投票를 향한 ‘스멀스멀’ 수작을 들 수 있다. 서울市 K區의 區홍보용 刊行物은 지난 年末무렵에 北韓 義士의 墓 사진들을 실은 한편 當該區의 ‘選擧管理 委員會’가 한다는 “未來 有權者 대상 설명회“라는 것이 소개됐는데 ‘電子투표기 體驗행사를 겸한다’는 小題目이 달려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惡性바이러스가 충분히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 大韓民國은 대통령선거 등에 있어서 電子 投票方式을 쓰고 있지 않다. 비록 國會에서 처음으로 전자투표 및 開票시스템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지난 번 ‘私學교육법’ 통과 무렵에도 몰래 다른 議員의 단추를 눌렀다는 ‘이미 豫見되어 있던’ 事件들이 있었다.

 


筆者는 지금 한국인들의 倫理의 準位(level)가 815光復직후보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고 보는데 그러한 狀況에서 電子投票라는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電子裝置의 도입에 찬성이 아니지만 그것은 國會라고 하는 (擧手投票, 또는 起立投票도 종종하고, 대통령彈劾도 할 수 있는) 뼈대있는 機關에서 하는 일이니까 卽, 이론상 ‘행정부를 牽制한다’는 그 사람들 하는 일이니까 잘못이 있어도 쉽게 되잡을 것으로 생각해서 看過해버렸다.
그런데 아직 電子투표方式을 결정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어떠한 ‘認准되지도 않는’ 장치를 일반민들에게 쓰게 하면서 아동들이라는 아직 연약한 年齡層에 ‘電子投票機’의 체험을 시켰다는 말일까?
선거의 投票관리, 開票관리, 그리고 특히 集計에 있어서도 발달된 기계나 裝置가 나오면 다 쓴다는 것은 아니다. 電算裝置가 아무리 完璧하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완벽하기 때문에 사람이 시키는 대로 作動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떠한 裝置가 가능하다, 또는 편리하다’가 裝置 採擇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 뒤에서 裝置를 다루는 사람들의 倫理와 信條 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뜻에 있어서 한국은 어제까지는 국회에서 투표관계 ‘전자처리’를 할 만하고, 人件費를 줄일 수 있다고 믿고, 그래서 다른 選擧에도 ‘電子投票’를 검토할 수가 있었는지 몰라도 그것은 ‘새것’에 대한 好奇心, 또는 尊敬 뿐이고 지금 段階로는 ‘긴 세월 사용의 경험으로 證明되어있는 재래식 방법’이 아닌 엉뚱한 새 方法을 쓸 상황이 아닌 것이다.
멋대로 전자투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몰래 준비하고 대중媒體공작을 해가면서 무리하게 試行을 하고 나서 사람들이 不正選擧라고 항의를 强하게 해도 철면피/鐵面皮 작전으로 침묵으로 깔아뭉개다가 그것이 안되면 이번에는 “뚜벅뚜벅 악랄하게” (好人들이 많은) 憲法裁判所에 끌고 가서 그 判決을 갖고 자기네들이 願하는 것을 얻어내겠다고 하는 ‘實驗’ 좋아하는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는 일이다.  
일찍이 노태우/盧泰愚 前大統領 때 濟州道에서 아직 투표도 안한 선거 前日에 ‘投票결과’가 방송된 電子裝置 조작사건도 있었고, 그 間 지난 선거에서도 ‘3박 4일 짜리 “외부세력”의 투입’까지도 입소문을 몰고 있는 속에서, 어린이들을 대리고 ‘電子투표 體驗행사’를 한다는 記事가 示唆하는 것은 이러한 不信사회에서 電子式 득표集計方式은 물론 電子투표 방식은 절대 써서는 안 된다는 敎訓이다.

 


政治勢力의 검은 속셈들이 굼틀거리는 大統領선거에 (銀行의 金錢出納機에서 쓰는) ‘터치스크린’이라는 방식, 즉 투표지 하나도 검증/재확인을 위해서 남는 것이 없는 ‘電子投票’라는 (화면을 손끝으로 찍는)방식으로 大選투표를 하게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全無한데 ‘어린이들을 대리고 전자투표 체험행사’를 한다는 것은 電子投票방식에 대한 ‘警戒心 허물기’, 그리고 電子방식으로의 長期的인 移行誘導 努力의 一環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저기 狀況에 따라 正體를 드러낼 때도 있고 감출 때도 있는 勢力이 劃策하고 있는 일 들 중에는 ‘대량人事유발作戰’도 있다. 지난 半年동안 政府 各 部處에서 次官 들, 그리고 1급공무원 등 上位공직자 들이 많이 물러났는데 다 自意에서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정부 各部處에서 윗자리 한 자리만 비워도 그 다음을 이은 連鎖 人事발령를 유발하게 되는 데 그 모든 단계의 자리에 進級하는 사람들을 選擇함에 있어서 ‘당성’ 좋은 사람들을 진급시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 놓겠다고 하는 作戰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들을 항상 관심을 갖고 觀察해서 “뚜벅뚜벅 악랄하게”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微細한 것에 대해서 힘을 다해 깐깐하게 따져 ‘쫀쫀하게’ 防備를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게릴라性 國民洗腦時代가 돼서 (稀代의 名將 들도 칼은 칼집에 영영 꽂아 버리고) 쫀쫀하게 바이러스 먼지를 닦고, 병균消毒을 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의 머리 속생각을 단속해야 하게 된 것 같다. 韓國에서 지금 廉恥도 없이 흔히 사용하고 있는 국민洗腦조작이라는 ‘人間경시/국민경시 술수’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널리 認識되어야 한다.
며칠 전부터 앓고 있는 돌림感氣로해서 “어제 밤은 계속 꿈만 꾸다가 아침이 됐는데, 그 꿈이 萬里長城을 싸는 役事였는지 팔이 무척 아프다”는 筆者의 푸념에 이틀 정도 먼저 같은 돌림感氣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그 感氣는 雜꿈을 꾸고, 팔이 많이 아픈 다음에는 허리가 아픈 것”이란다. 이러한 몇 가지 共同特徵을 갖고있는 돌림感氣가 해마다 유행했는데 이러한 ‘이상한 돌림感氣’나, 지난해부터 急增하고 있는 ‘노로 바이러스’, 그리고 유난히 많이 나고 있는 산불과 건물방화, 조류독감(‘철새說’은 철새들이 죽고 난 후에도 AI가 오히려 增加한다면 거짓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偶然하게 발생한 것인지 몰라도 일반적으로 ‘敵國사회를 不安에 몰아넣는’ 게릴라 戰法과 무척 닮아 있다.

 


우리는 결국 앞으로는 작은 일에 대해서 오히려 警覺心을 가져야 하는 시대가 될 것 같다. 이 二次大戰 때부터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洗腦’라는 국민들의 人權무시 工作은 적극적으로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雜생각이 들어가기 전에 朝鮮朝 때부터의 人倫書 들을 활용해서 옳은 생각을 일찍이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 을씨년스런 상황에서 어느 날 ‘스멀스멀’ 게릴라式의 細菌病에 걸려 겨울 내내 감기를 앓게 되더라도 時間내서 손자들에게 明心寶鑑 등 마음을 닦는 古典을 설명해주고, 흔들림 없는 ‘良心’을 심어주는 것이 ‘생각 있는 이’ 들이 최후의 瞬間까지도 할 수 있는 ‘人類에의 슬기로운 寄與’가 되는 것으로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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