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시사 칼럼]

이름 세탁

好學 2012. 7. 4. 20:44

이름 세탁

 

 

'김치국' '지기미' '조지나' '구태놈' '하쌍연' '김방구'….

대법원이 재작년 펴낸 책 '역사 속의 사법부'에 실린 실제 이름들이다.

이런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놀림거리가 되다 못해 법원에 개명(改名) 허가를 신청했다.

'박시알' '신재채' '정쌍점'처럼 부르기 힘든 이름도 있고, '노병삼랑' '정천대자' '박건차랑' '김다니엘' '한소피아아름' 같은 외국식 이름을 우리 이름으로 바꿔 달라는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개명 신청 사유를 열세 가지로 분류했다.

출생 신고서에 이름을 잘못 쓴 경우,

실제 쓰이는 이름과 일치시키려는 경우,

족보의 항렬 자에 맞추려는 경우,

이름에 선대나 후대의 항렬 자가 들어 있는 경우,

친척 중에 동명이인이 있는 경우,

한글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바꾸려는 경우,

'성명학(學)'에 따라 개명하려는 경우들이다.

 

2009년 여성 7명을 납치·살해한 강호순이 붙잡혔을 때는 강호순과 같거나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개명 신청이 밀려들기도 했다.

▶과거 법원은 개명 허가에 인색했다.

 

이름을 함부로 바꾸면 사회 혼란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2005년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개명이 쉬워졌다.

 

"범죄를 숨기거나 법적 제재를 피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개명 허가를 해줘야 한다"는 판결이다.

 

2004년 5만여건이던 개명 신청은 2006년 10만, 2009년 17만여건으로 급증했다.

 

2005년 이전 80%대였던 개명 허가 비율도 2006년 이후 90%대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들이 경찰 추적을 따돌리려고 이름을 바꿔 신분을 세탁하는 사례가 잇달고 있다. '김○○'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는 '김××'라고 개명하는 식이다. 개명을 신청해 허가가 나기까지 두어 달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범죄자에겐 솔깃한 얘기다. 그 바람에 경찰은 용의자의 평소 이름과 주민등록 이름이 달라 애를 먹기 일쑤다. 범인을 잡기도 어렵고, 잡은 뒤에도 이름을 확인하느라 바쁘다.

▶개명 신청을 하려면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족보, 개명 신청서만 내면 된다. 범죄 경력 증명서는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서류가 아니다. 전과와 신용정보 조회는 법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한다. 전과자나 수배자가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가 허술한 셈이다. 이름은 그 사람을 부르는 사회적 약속이다. 한 사람의 이름은 '그의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이름을 한 개인의 것으로만 여겨 너무 쉽게 바꾸려 하고 너무 쉽게 허가해주는 세상이 되면서 '신분 세탁'이라는 엉뚱한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好學의 時事 > [시사 칼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Korean War, 6.25 한국전쟁   (0) 2012.07.05
아펜젤러를 떠올리게 하는 종교계  (0) 2012.07.04
택시기사  (0) 2012.06.28
老 夫婦  (0) 2012.06.28
[韓國社會의 重病] 정신차리자 大韓民國  (0) 2012.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