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초강력 알파걸' 탄생기

好學 2012. 6. 28. 21:45

'초강력 알파걸' 탄생기

 

 

"으매, 징그라게 덥네잉. 나 살다 살다 요렇게 덥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이요잉."

봄 꽃이 지기도 전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5월 말. 산부인과 6인용 병실에서 낼모레 칠십이라는 순복씨는 원성이 자자했다. 모자동실(母子同室)이라 하여 손바닥만한 병실에 6명의 산모, 6명의 아기, 6명의 보호자들이 와글와글 북적이는데, 둘째를 임신한 딸이 진통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화순서 심야버스를 타고 상경한 순복씨는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목소리로 장내를 휘젓고 다니며 갖은 참견을 다 하는 것이었다.

"꽃가루가 아그들헌티 치명적이란 거 모르요. 저그 복도에 내다 놓으라고 나가 몇 번을 말허요." "아따, 젊은 양반. 지금 뉴스를 틀면 으쩐당가. '엄니가 뿔났네' 하는 시간인 거 모르요." 뭣보다 에어컨을 못 틀게 하는 바람에 숨통이 턱턱 막혔다. "여그가 산모들 위한 병실 아니당가. 쪼매 더워도 우리가 참아야제, 안 그렇소?"

초저녁부터 울려 퍼지는 코골이 소리 또한 가관이라 산모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잠시 일어나 앉으면 딸 자랑이 늘어졌다. "나가 딸만 너이(四)요. 그 중에서도 야가 제일 야물고 반짝였어라. 공부 잘혀서 장학금 타오제, 얼굴 반반허제, 은행에 턱 붙어서 봉급 타다주제. 그랑께 내 딸이 '알타리걸' 원조인기라."

객석에서 아무 반응이 없을 때라야 순복씨는 간이침대에 대(大)자로 누워 잠을 청했는데, 발바닥 올 풀린 스타킹 사이로 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씩 박혀 있는 풍경에 산모들은 히죽거렸다.

그 당당하던 순복씨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 건, 48시간의 진통 끝에 딸이 '공주님'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였다. "아이고, 으째 또 딸이랑가. 떡두깨비 장군이 아니고오~ 제왕할매도 너무 하시제. 사둔댁을 어찌 본당가…."

그러나 우리의 명랑한 순복씨, 탄식은 잠깐이었다. 산통이 어지간했는지 초죽음이 된 딸이 병실로 돌아오자, 순복씨 코 한번 팽 풀더니 짐짓 대견한 어조로 일성을 터뜨렸다. "장허다, 우리 딸! 여걸들이 휩쓰는 시상에 딸 못 낳아 우는 엄마들이 천지라는디, 우리 딸은 워째 낳았다 하면 떡두깨비 겉은 딸인고." 출장 갔던 사위가 숨이 턱에 닿도록 병실 문턱을 넘는 순간 그녀의 목청은 더욱 높아졌다. "맏딸이 살림밑천이면 둘째딸은 나랏기둥이라 안허더냐. 더도말고 딱 니 맹큼만 키워라잉. 암만, 우리 잘난 딸 맹큼만 자라그라잉."

순복씨는 이웃에 맡겨놓은 농사일 때문에 딸의 퇴원을 못 보고 내려갔다. 가방을 싸던 날 발바닥에 숨겨뒀던 비상금까지 죄다 딸의 손에 쥐여주던 순복씨는 침대마다 커튼을 열어젖히며 "몸조리덜 확실히 허시요잉, 딸 아덜 구별말고 나랏일꾼들 튼튼허게 키우시요잉" 하며 덕담을 날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전의 가득한 눈빛으로 배웅하던 딸과 그 품에 안겨 또록또록한 눈망울을 굴리던 갓난아기. 외할머니로부터 초강력 배터리를 주입 받은 '특급 알파걸'들은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