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양주동역)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김완진역)
요점 정리
작자 : 어느 소 끄는 노인(牽牛老翁, 견우노옹)
시대 : 신라 성덕왕 때
갈래 : 4구체 민요적 향가
성격 : 연가적, 찬미적, 서정적
표현 : 상징법, 도치법
제재 : 꽃을 바침
주제 : 꽃을 꺾어 바치는 사랑의 노래 (헌화),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연정, 꽃을 바침, 아름다움 찬양, 수로부인에 대한 사랑
의의 : 적극적 애정 표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작품으로 신라인의 소박하고 보편적인 미의식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내용 연구
붉은 바위가에 :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배경을 설정하여 노인의 행동을 보다 헌신적으로 느끼게 한다.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 놓게 하시고의 주체는 수로부인임. 여기서 암소는 노인의 모든 것에 해당하며, 그 모든 것을 놓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됨.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 노인의 구애의 마음이자, '미'를 추구하는 노인의 욕망을 읽을 수 있음.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 위험한 곳에 있는 꽃[탐미심]을 탐하는 속없는(?) 여인이나 그곳을 충족시키고 여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아름다움의 소망, 탐미심] 노인의 태도가 낭만적임. 여기서 수로부인이 탐하는 꽃은 탐미심이나 노인이 바치는 꽃은 시적 화자인 노인의 분신으로 아름다운 수로부인을 향한 노인의 흠모의 마음이자 , 곧 연정을 전하는 매개물이다.
이해와 감상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바닷가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천 길 벼랑 위의 바위 가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고 공의 아내인 수로 부인은 크게 감탄하여, 누가 그 꽃을 자기에게 꺾어다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엉뚱하고 다분히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젊은 그녀의 종자(從子)들 중에는 아무도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 그때 소를 이끌고 가던 어떤 노인이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말한다.
이 노래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수로 부인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한 노인이 생명을 걸고 천 길 벼랑을 기어올라갔고, 용(龍)이 나와 수로 부인을 납치해 갔으며, 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온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에 모여 거세게 항의했다. 이를 통해 트로이의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미인 쟁탈은 비록 시대를 달리하고 규모를 달리 할지라도 동양의 신라 땅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미인은 얼굴만 예쁠 뿐 속은 없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리석은 요구를 하고 그 어리석은 요구에 응하는 사람들의 속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하여간 노옹은 꽃을 꺾어 부인에게 바치면서 '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이라는 표현에서 유의할 것은 아름답고 젊은 상류층의 부인이 꽃을 갖고 싶어하는 것과 초라하고 늙은 노인이 암소를 끌고 간다는 것이 서로 대조를 이루기에 이 상황을 '부끄러움'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정법과 도치법을 사용하여 노인의 심정을 드러낸 시구로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으려는 그 당시 신라인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 한편으로 여기서 노인은 초라한 '노인'이 아니라 불교의 선승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은 오랫동안 잃어던 자기 마음의 소를 붙들고 가는 선승을 가리킨다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노옹을 농경 의례에 등장하는 농신으로 보기도 하며 또 도교적 측면에서는 신선으로 보기도 한다. 도교에서는 신선을 현빈(玄牝)이라 하고 검정 암소는 불멸영생의 상징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로 부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무당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무당이 정치적 목적과 관련하여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굿을 하게 되었는데 '헌화가'는 이 굿에서 부른 굿노래라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1
수로부인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사랑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대개 헌화가는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하고 있다.
정연찬은 현대어로 "붉은 바위 끝에(제 4구 꽃으로 연결), (부인께서) 암소 잡은 (나의)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라고 읽었다. 이 노래의 작자는 노옹이고 서정의 대상은 수로부인이. 암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누구인지 모르나, 수로부인은 자태와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깊은 산, 큰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잡혀 갔다고 한다. 그런데 허영순은 바다용에게 납치되었다가 나온 수로부인의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는 약초의 향훈이나 신경과민.정신이상에서 오는 무적(巫的)병을 기진 것이며, 미려하다는 수로부인 또한 때때로 무적 병을 일으키는 여성이라 하여 수로부인을 무당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안영희도 현대에 사는 무녀의 꿈에 벼랑에 있는 꽃을 신선이 꺾어 주더라는 꽃꿈이야기를 원용하여 수로부인의 이야기가 꿈이라 보고 수로부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샤먼이요 용궁에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고 하였다.
노옹에 대하여 김종우는 소를 끌고 가는 노옹이니 다년간 잃었던 자기의 심우(心牛)를 붙들어 그 소의 고삐를 잡은 노인, 곧 자기 법열을 즐기면서 그립던 본가향으로 돌아가는 운수(雲水)의 향객이요 선승이라 하고 그렇지만 아직도 인아구망(人我俱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던지 미모의 여인 수로를 보자 남성으로서의 심적 동요를 일으킨데다가 공교롭게도 한 떨기 꽃을 원하는 애처로운 장면에 봉착하여 여인의 애원에 호응해 주는 동정심이 깊고 자기를 희생하는 숭고한 성(聖)의 정신적 소유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동욱은 <삼국유사>의 본문에 노승이 아니라 노옹이라 하였으며 노래의 형식 자체가 이른바 4구체가로서 사뇌가의 전형적인 형태에서 일탈되어 있으므로 이를 사뇌가의 계통에 넣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하다고 하였다. 김선기는 노옹이 끌고 가는 암소를 도교에서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이러 현빈(玄牝)이라고 한다."고 하는 '검은 암소'로 보아 예사 늙은이가 아니고 신선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헌화가>와 관계되는 수로부인은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여 가는 순정공의 부인으로 여러 번 신물에 붙잡혀 갔었다고 할 정도로 절세의 미녀였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였다. 또 가사를 지어 바친 노옹은 암소를 끌고 가던 사람이다. 이 암소는 생산능력을 가진 치부의 수단으로 보이며, 노옹은 물욕에 사로잡힌 완악한 완부(頑夫)로 보여, 꽃의 아름다움을 탐는 수로부인에 대조시켜 볼만한 촌로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탐미적인 미녀 앞에서 완악한 완부가 애정을 읊조린 서정시로 신라인의 미의식을 나타내주고 있다. 꽃을 향한 수로부인의 정서와 미인 수로부인을 향한 노옹의 정서의 대조가 미의 상징일 수 있는 꽃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철쭉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붉은 바위와 손에 잡고 있는 암소와의 대조로 물욕에만 사로잡힌 비린(鄙吝)을 스스로 느낀 노옹은 숭고하리만큼 아름다운 꽃을 탐내는 절세미녀의 탐미심 앞에서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대상에 투사하여 자신에게 나타낸 자기표출로서 미의 추구를 최고의 욕망으로 나타내었다. 그래서 노옹은 자기의 탐미심도 만약 허락된다면 미녀에게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그의 감동된 심경을 노래한 것으로 신라인의 소박하고도 보편적인 서정시라 하겠다. (출처 : 미확인)
이해와 감상2
신라 성덕왕대(702~737)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노인이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4구체 향가로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조에 가사 전문과 배경설화가 실려 전한다.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가 되어 부임해가던 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깎아지른 벼랑이 병풍처럼 바다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높이가 1,000장(丈)이나 되는 벼랑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수로부인이 "저 꽃을 꺾어 바칠 사람이 없느냐"라고 하며 꽃을 원했다. 그러나 종자(從者)들은 모두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하며 나서지 않았다. 이때 소를 끌고 가던 한 노옹(老翁)이 부인이 꽃을 바란다는 말을 듣고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꽃을 꺾어 바쳤다. (중략)
노래의 성격과 해석에 대한 학설은 다양하며 특히 수로부인과 노인의 정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수로부인은 절세의 미인으로 깊은 산과 큰 물을 지날 때마다 매번 신물(神物)에게 납치되곤 했다. 동해용도 미색을 탐내 납치해갔다가 뭇사람의 〈해가 海歌〉를 듣고 풀어주었다. 이렇게 수로부인은 범상하지 않은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보통사람이 아니라 무당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상층의 무당이 정치적 목적과 관련하여 민심을 무마하기 위해 굿을 하게 되었는데 〈헌화가〉는 이 굿에서 부른 굿노래라는 것이다. 노옹의 정체에 대한 견해는 다양한데 먼저 선승(禪僧)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불가에서는 선승을 가리켜 목우자(牧牛子)라고 하며 그들이 수도하는 거처를 심우당(尋牛堂)이라고 한다. 따라서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은 오랫동안 잃었던 자기 마음의 소를 붙들고 가는 선승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한편 노옹은 '어느 곳에 사는지 알 수 없다'라고 처리되었으며,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점은 동양인의 상상 속에 있는 신의 모습과 상통하므로 노옹을 농경의례에 등장하는 농신(農神)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황해도 장연지방에서 행해지는 농경의례에는 산신 역의 사나이가 암소를 거꾸로 타고 오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도교적 측면에서는 배경설화의 노옹을 신선으로 보기도 했다. 도교에서는 신선을 현빈(玄牝)이라고 하고 검정 암소는 불멸영생의 상징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적·원시종교적·도교적 시각으로 배경설화 기록을 볼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반성적 견해도 제기되었다. 노옹은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신적 존재가 아니라, 부근에서 농사를 지으며 그때 마침 암소를 끌고 가던 평범한 농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할 수 없었던 벼랑 위의 철쭉꽃을 꺾어온 것은 그곳의 지형에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헌화가〉는 꽃을 갖고 싶어하는 미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며 부른 노래이다. 아름답고 젊은 상류층의 미인이 꽃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과 초라하고 늙은 상민에 불과한 노옹이 암소를 끌고 간다는 것은 서로 대조를 이룬다. 노옹은 이러한 상황을 가사내용 중에서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 〈헌화가〉는 사랑을 구하는 헌화의 노래가 아니라 미의 세계에 대한 추구를 본질로 하는 노래이다. 노옹은 암소를 끌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과 미인의 미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했다. 신라인들이 지니고 있는 미의 세계에 대한 경건한 추구의식을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해와 감상3
이 노래의 작자는 노옹이고 서정의 대상은 수로부인이다. 암소를 끌고 가던 노옹은 누구인지 모르나, 수로부인은 자태와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깊은 산,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잡혀 갔다고 한다.
그런데 허영순(許映順)은 바다 용에게 납치되었다가 나온 수로부인의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는 약초의 향훈이나 신경과민·정신이상에서 오는 무적(巫的) 병을 가진 것이며, 미려하다는 수로부인 또한 때때로 무적 병을 일으키는 여성이라 하여 수로부인을 무당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안영희(安英姬)도 현대에 사는 무녀의 꿈에 벼랑에 있는 꽃을 신선이 꺾어 주더라는 꽃 꿈 이야기를 원용하여 수로부인의 이야기가 꿈이라 보고, 수로부인은 보통사람이 아니라 샤먼이요, 용궁에 들어 갔다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고 하였다.
노옹에 대하여 김종우(金鍾雨)는 소를 끌고 가는 노옹이니 다년간 잃었던 자기의 심우(心牛)를 붙들어 그 소의 고삐를 잡은 노인, 곧 자기법열(自己法悅)을 즐기면서 그립던 본가향(本家鄕)으로 돌아가는 운수(雲水)의 행객이요 선승(禪僧)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인아구망(人我俱忘)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던지 미모의 여인 수로를 보자 남성으로서의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데다가 공교롭게도 한 떨기 꽃을 원하는 애처로운 장면에 봉착하여 여인의 애원에 호응해 주는 동정심 깊고 자기를 희생하는 숭고한 성(聖)의 정신적 소유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동욱(金東旭)은 ≪삼국유사≫의 본문에 노승이 아니고 노옹이라 하였으며, 노래의 형식 자체가 이른바 4구체가로서 사뇌가의 전형적인 형태에서 벗어났으므로 이를 사뇌가 계통에 넣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하였다.
김선기(金善琪)는 노옹이 끌고 가는 암소를 도교에서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검은 암소)이라 한다.”고 하는 ‘검은 암소’로 보아 예사 늙은이가 아니고 신선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헌화가〉와 관계되는 수로부인은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는 순정공의 부인으로 여러 번 신물에게 붙잡혀 갔었을 정도로 절세의 미녀였고, 그 자태는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였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천길벼랑 위의 철쭉꽃을 꺾고 또 가사를 지어 바친 노옹은 암소를 끌고 가던 사람이다.
이 암소는 생산능력을 가진 치부의 수단으로 보이며, 노옹은 물욕에 사로잡힌 완악한 완부(頑夫:완고한 사내)로 보여, 꽃의 아름다움을 탐내는 수로부인에 대조시켜 볼 만한 촌로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탐미적인 미녀 앞에서 완악한 완부가 애정을 읊조린 서정시로 신라인의 미의식을 나타내주고 있다. 꽃을 향한 수로부인의 정서와 미인 수로부인을 향한 노옹의 정서의 대조가 미의 상징일 수 있는 꽃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철쭉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붉은 바위와 손에 잡고 있는 암소의 대조로 물욕에만 사로잡힌 비린(鄙吝:눈에 거슬릴 정도로 인색함)을 스스로 느낀 노옹은 숭고하리만큼 아름다운 꽃을 탐내는 절세미녀의 탐미심 앞에서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대상에 투사하여 자기에게 나타낸 자기표출로서 미의 추구를 최고의 욕망으로 나타내었다.
그래서 노옹은 자기의 탐미심도 만약 허락된다면 미녀에게 꽃을 꺾어 바치겠다고 그의 감동한 심경을 노래한 것으로 신라인의 소박하고도 보편적인 서정시라 하겠다.
그런데 박노준(朴魯褻)은 이 노래의 연구사를 검토한 뒤, “다른 신라가요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쉽게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그렇지만도 않은 작품이 바로 〈헌화가〉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도 물론 소중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더욱 합리적이고도 심도 있는 천착에 있다고 하겠다.”고 하며, 문학적 해석의 경우, 지금의 고식적인 상태에서 시원스럽게 배상하며 민요나 고려 속요와 연계시켜 연구할 필요가 있고 뿐만 아니라 시경의 풍시(風詩)와도 비교 고찰하는 등 시야의 폭을 넓혀서 상고하면 의외의 소득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韓國歌謠의 硏究(金東旭, 乙酉文化社, 1961), 鄕歌文學硏究(金鍾雨, 宣明文化社, 1978), 新羅詩歌의 硏究(尹榮玉, 螢雪出版社, 1980), 곶받틴 노래(金善琪, 現代文學 153호, 1967), 獻花歌에 대한 一考察(南浿江, 石靜李承旭先生回甲紀念論叢, 1991), 獻花歌와 신라인의 미의식(成老玉, 한국고전시가작품론, 集文堂, 1992), 獻花歌(朴魯褻, 鄕歌文學硏究, 一志社, 1993), 鄕歌批解(兪昌均, 螢雪出版社, 199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배경 설화
제 33대 성덕왕 때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할 적에, 가다가 바닷가에 머물러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돌로 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에 다가서 있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고, 그 위에는 철쭉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이것을 보고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꽃을 꺾어다 바칠 사람이 그 누구인고?" 종자(從者)들이 말하였다. "사람의 발자취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물러섰는데, 그 곁으로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옹이 수로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오고 또한 노래를 지어서 바치었다. 그 노옹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삼국유사」 권2 '기이 제이(紀異 第二)' '수로 부인' 편의 배경 설화에서
'헌화가'에 대한 문학적 해석상의 다른 견해 소개
인간적 욕망과 관련된 노래로 다음과 같이 대별된다.
소박한 구애(求愛)의 노래로 본다.
육욕적인 성애(性愛)의 알레고리로 본다.
나아가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상징 형식의 노래로 보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노인은 단순한 노인이 아니고, 노인이라는 어원이 장자라는 뜻과 웃어른이라는 뜻이 있다는 점에 주목을 하고, 다른 권세가 일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래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수로 부인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한 노인이 생명을 걸고 천 길 벼랑을 기어올라갔고, 용(龍)이 나와 수로 부인을 납치해 갔으며, 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온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에 모여 거세게 항의했다.
미(美)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순수하고 절대적인 인격만이 참된 미를 알고, 그 미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종자(從子)들은 참된 미(美)를 알지 못했으나, 그 노인은 참된 미를 알았다. 여기서 우리는 신라인의 뛰어난 미의식(美意識)의 일면을 역력히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