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교육 3/[시조]古時調

황조가(黃鳥歌)

好學 2010. 12. 4. 21:20

 

 

황조가(黃鳥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翩翩黃鳥  편편황조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꾀꼬리
클릭하면 소리가 들려요

雌雄相依 자웅상의
쌍쌍이 즐기는데,(암수 다정히 노니는데)

念我之獨 념아지독
외로운 이 내 몸은(외로워라, 이 내 몸은)

誰其與歸 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뉘와 함께 돌아가리)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dia_bluve.gif 요점정리

circle01_blue.gif 지은이 : 고구려 2대 유리왕
circle01_blue.gif 연대 : 유리왕 3년

circle01_blue.gif 갈래 : 4언 4구의 한역 시가, 개인적 서정시
circle01_blue.gif 성격 : 우의적, 애상적
circle01_blue.gif 표현 : 자연물을 빌려 우의
[(寓意) : 다른 사물에 빗대어 비유적인 뜻을 나타내거나 풍자함. 또는 그런 의미.]적으로 표현, 대조, 의태, 설의[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을 의문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상대편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수사법.]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외로운 심정을 노래, 한시의 전형적인 선경후정의 방식을 사용함[선경후정(先景後情) : 한시 창작의 한 방법으로 시의 앞부분에서 경치를, 뒷부분에서는 이에 대한 시적 화자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는 구성방법으로 여기서 꾀꼬리가 정답게 놀고 있는 모습(선경)과 나의 외로움(후정)을 표현하고 있는 방법을 선경후정의 방법으로 볼 수가 있다.]

circle01_blue.gif 제재 : 꾀꼬리
circle01_blue.gif 주제 : 짝을 잃은 슬픔(외로움), 임을 잃은 슬픔
circle01_blue.gif 출전 : <삼국사기>권 13, 고구려 본기
circle01_blue.gif 의의 :
① 현전하는 최고의 개인적 서정시
②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시로 넘어가는 단계의 가요로 작가는 유리왕이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유리왕조'에 4언 4구로 전하는 한역시이다. '공무도하가'와 함께 우리 나라 최고의 서정시로 추정된다.

circle01_blue.gif 구조

翩翩黃鳥  편편황조
펄펄 나는 꾀꼬리는

암수 꾀꼬리의 정다운 모습

雌雄相依 자웅상의
쌍쌍이 즐기는데,(암수 다정히 노니는데)

念我之獨 념아지독
외로운 이 내 몸은

짝을 잃은 '나'의 외로움

誰其與歸 수기여귀
뉘와 함께 돌아갈꼬.(뉘와 함께 돌아가리)

 

dia_bluve.gif 내용 연구


翩翩黃鳥(편편황조
) : 숲 속에서 즐겁게 펄펄 날아다니고 있는 저 꾀꼬리는. :  시적 화자의 서정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되는 제재인 꾀꼬리의 모습을 묘사하여 자신의  외로운 처지와 대비시키고 있다. 여기서 꾀꼬리는 시적 화자와 대조되어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존재이다.

翩翩(편편) : 나부끼다, 펄펄, 훨훨 가볍게 나는 모양, 의태어.
黃鳥(황조) :
꾀꼬리

雌雄相依(자웅상의) : 암컷과 수컷이 잘 어울려 정답게 노닐고 있구나. : 꾀꼬리의 정다운 모습을 통해 자신의 고독하고 슬픈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제 1 구와    함께 이 노래의 배경 역할을 한다.

雌(자) : 암컷
雄(웅) :
수컷

依(의) : 의지하다

相依(상의) : 정답구나, 서로 의지함, 여기서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놂을 뜻한다

念我之獨(염아지독) :  나는 사랑하는 임을 잃었으니 외롭기 그지없구나. : 여기에서의 '獨'은 임을 여읜 서정적 자아의 심정이 단적으로 집약된 단어이다. 시상이 객관적 상관물인 꾀꼬리에서 서정적 자아의 세계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나의 고독, 나의 외로운 심정, 실연의 고독과 절망감 등을 표현한다. '獨(독)'은 이 작품의 시적 모티브

念(념) : 생각
我(아) :
  
獨(독) :
홀로

誰其與歸(수기여귀) : 이제 나는 누구와 짝을 하여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 '암수 서로 정다운데'와 대조를 이루는 시구로, 그 뉘와 더불어 돌아갈 것인가, 또는 함께 살아 갈 사람이 없다는 뜻. 함께 돌아갈 사람을 잃은 데서 오는 슬프고 고독한 감정이 절정에 이른 구절이다. 제3구와 함께 '펄펄 나는 꾀꼬리'와는 대조적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꾀꼬리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 보고 있을 시적 화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있겠다. 4구는 짝을 잃은 자신의 외로운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쓸쓸한 탄식으로 여운을 남기고 있다.

誰(수) : 누구   
與(여) :
더불어, 함께
歸(귀) :
돌아가다

 

dia_bluve.gif 이해와 감상

 이 노래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의 설화에 나오는 삽입 가요로, ' 구지가'가 주술적인 집단 무요(舞謠) 또는 노동요의 성격을 띤 시가임에 비하여 이 노래는 고대인의 이별을 소박하게 노래한 개인적 서정시이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서정시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주류를 이루었던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인 서정을 노래한 작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제 또한 평이하여 독자에게 강한 호소력을 느끼게 한다. 이 노래의 소재는 '꾀꼬리'라는 자연물이고, 주제는 '사랑하던 임을 잃은 외로움과 슬픔'이다. 즉, 주체할 수 없는 실연의 아픔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의탁하여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찍이 유리왕은 아버지를 이별하고 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어머니 곁을 떠나 남방으로 방랑하게 되었고, 끝내는 왕비까지 잃게 되어 화희와 치희의 두 계비를 맞이하는 등 애초부터 정에 굶주리고 있었다. 이러한 그가 두 계비 간의 사랑 싸움으로 치희를 잃게 되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 것은 당연하다. 때마침 정다운 모습으로 펄펄 나는 한 쌍의 꾀꼬리는 두 계비의 시샘과 자신의 갈등이 상징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그 비애감을 한 층 더하게 하였으니, 이 시의 모티브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허탈에 빠진 왕은 나무 그늘에 무심히 앉아 있었다. 때마침 나뭇가지에는 황금빛 꾀꼬리 한 쌍이 서로 부리를 맞대고 정답게 놀고 있었다. 무슨 사랑의 이야기나 나누는 듯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왕은 그 순간 과거의 그 즐거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더욱 뼈저리는 고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래의 짜임은 극히 단순하나 완벽한 대칭 구조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짝을 이루어 즐거이 노니는 꾀꼬리와 홀로 있는 사람, 하늘을 나는 가벼움과 외로운 심사의 무거움, 그리고 마지막 구절 뒤의 쓸쓸한 여운이 서로 대립하고 중첩되면서 그리움의 간절함과 깊이를 보여 준다. 개인의 감정을 꾀꼬리라는 자연물에 이입시킨 대조적 표현이 돋보인다. 짤막한 이 한 편의 노래에서 우리는 왕으로서 유리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유리왕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그에게서 따뜻한 정감이 흐르는 훈훈함을 맛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 작품은 현대적인 관점 다시 말해서 일부일처제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왕이 한 여자만이 아니라 다수를 거느렸던 때인지라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또한 보통 계급과는 다른 지도자였던 왕조차도 사랑 문제에서는 이렇게 심각한 가슴앓이를 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의 감정에는 신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또한 인간은 평등하다는 절대적인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dia_bluve.gif 심화 자료

circle01_blue.gif '꾀꼬리'와 왕은 각각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왕이 '꾀꼬리'를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예시답안 :

 꾀꼬리는 암수가 서로 다정히 노닐고 있는데 비해  유리왕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외로이 돌아오는 길이다. 왕은 다정한 한 쌍의 꾀꼬리를 보며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더욱 절실히 느낀다.

circle01_blue.gif 이 노래의 시상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말해 보자.

예시 답안 : 이 노래의 첫 두 행에서는 꾀꼬리가 다정히 노니는 모습이 제시되었고, 나머지 행에서는 그것을 보는 시적 화자의 심경이 제시된다. 이는 '선경후정'의 시상 전개 방식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정한 꾀꼬리 한 쌍과 외로운 처지의 왕은 대조를 이룬다.

circle01_blue.gif 이 노래는 서정시로 볼 수 있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앞에서 배운 서정 갈래 개념을 바탕으로 말해 보자.

예시 답안 : '황조가'는 집단의 정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정서를 다정한 꾀꼬리와 외로운 왕이라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저 '외롭다'는 정서만을 토로한 것이 아니라 그 외로움을 이미지, 즉 감각적인 형상으로 다듬어 노래하였다는 점이 이 노래를 서정시로 볼 수 있게 한다.

 

circle01_blue.gif 배경설화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경설화 원문<三國史記 卷 第 十三, 김종근 역>

현대어역

 三年 7월에 離宮(이궁)을 골천에 지었다. 十月(시월)에 왕비 송씨가 돌아갔으므로 왕은 다시 두 女子(여자)를 繼室(계실)로 얻었는데 하나는 禾姬(화희)로 골천 사람의 딸이고, 하나는 雉姬(치희)로 漢人(한인)의 딸이었는데 두 여자는 사랑을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하였으므로 왕은 양곡의 동서에 二宮(이궁)을 짓고 각각 두었다. 뒷날 왕은 기산에 田獵(전렵)을 나가서 칠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두 여자는 서로 쟁투하여 화희는 치희를 꾸짖기를 '너는 漢家(한가)의 婢妾(비첩)으로 어찌 무례함이 심한가?'하니 치희는 부끄러워하면서 원한을 품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말을 달려 쫓아갔으나 치희는 노하며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이 때 왕은 잠깐 나무 밑에서 쉬는데 꾀꼬리들이 모여들므로 이에 느끼어 노래하기를  '꾀꼬리는 오락가락 암놈 숫놈 즐기는데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같이 돌아갈꼬?'(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하며 탄식하였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1. 유리왕]

circle01_blue.gif 유리왕

 고구려 제2대 왕(재위 BC 19∼AD 18)으로 휘(諱) 유리(類利)·유류(儒留)·주류(朱留). 유리명왕(瑠璃明王)이라고도 한다. 동명왕의 맏아들. 어머니 예씨(禮氏). 비(妃)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 BC 19년(동명왕 19) 부여로부터 아버지 동명왕을 찾아 고구려에 입국, 태자로 책립되고 동명왕에 이어 즉위하였다. BC 17년 계비인 치희(雉姬)를 그리는 《황조가(黃鳥歌)》를 지었으며, BC 9년 선비(鮮卑)를 공략하여 항복받았다. 3년 도읍을 홀본(忽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13년 부여(扶餘)가 침공해 오자 이를 격퇴하였다. 14년 군사 2만으로 양맥(梁貊:小水貊)을 쳤으며, 한나라 고구려현(高句麗縣:玄娠郡의 屬縣)을 빼앗았다. 두곡동원(豆谷東原)에 묻혔다.

circle01_blue.gif '황조가'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

1. 이병기 : 원시적 서사 문학 가운데서 축수 또는 기원의 요소적인 부분이 분화 독립하여 서정시로 형성되었는데, '황조가'도 그 한 예이다.
2.임동권 ; 고구려의 민요로서 유리왕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가창했을 따름이다.
3. 정병욱 : 이 노래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제례 의식 중에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 불려진 사랑가의 한 토막이다.
4. 이명선 : 유리왕의 치희에 대한 개인적인 미련에서 불려진 것이 아니라. 종족간의 상쟁을 화해시키려다 실패한 추장의 탄식으로 이해된다.

circle01_blue.gif 다른 해석

 그 동안 학계에서는‘황조가’가, 삽입된 설화와 그 시대상을 고려할 때 서정시냐 서사시냐 하는 문제와 작자가 유리왕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여러 견해가 제기되어 왔다. 앞에서는 양주동 이래 학계의 통설이 되어 온 서정시설을 따랐으나 서사시로 보는 견해도 있다. 황조가를 서사시로 해석하면서 화희와 치희의 쟁투를 종족간의 싸움으로 보고,‘황조가’의 배경에 설화적인 모습이 있는 것과 화희·치희의 이름이 토템적임을 들어 이에 동조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정병욱은‘황조가’는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민요로서 유리왕 설화에 삽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다. 즉 황조가는 형식이나 내용으로 보아 중국의 시경과 같은 것으로서 연희석상에서 남녀간의 연정을 읊던 노래의 형태이고 그 기원은 이미 오래 된 것이며, 따라서 황조가의 작자는 유리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화(禾)’가 벼,‘치(雉)’가 꿩인데 착안하여 화희와 치희의 쟁투에서 치희가 부끄럽게 여기고 유리왕 곁을 떠났음을 당시의 시대상과 결부시켜, 유리왕 대가 수렵 경제 생활 체제에서 농경 경제 생활 체제로 발전되던 역사적 사살을 신화적으로 투영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견해가 있지만, 확실한 논증이 없는 지금이 황조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 시가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circle01_blue.gif '황조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

 유리왕은 신화적 인물이다.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경위부터가 신화적인 요소가 매우 짙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과연 신화적인 요소를 띤 인물의 창작적인 시 제작을 인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문학사의 발전 과정으로 보아, 신화적인 존재의 인물은 서사시의 주인공이고, 서정적인 창작시는 그보다 늦다는 견해가 통설인 이상, '삼국사기'의 기록을 전적으로 믿는 데에는 얼마큼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사기의 기록을 떠나, 이 '황조가'를 한 편의 순수한 고대의 서정시로 보고서, 그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이 노래의 소재는 '꾀꼬리'라는 자연물이고, 주제는 남녀간의 애정을 읊은 노래임은 누구나 잘 아는 바이다. 이 말을 바꾸어서 말한다면, 남녀간의 애정 즉 연애 감정을 읊는 데에, 꾀꼬리라는 자연물을 빌려서 그 감정을 표현하였다는 뜻이 되겠다. (중략) 그러나 신화적인 인물의 창작적인 시 제작을 믿을 수 없다는 문학사의 일반적인 발전 법칙을 고려하여, 이 노래를 작자 불명의 서정적인 고대 가요로 친다면, 그 창작 동기도 '삼국사기'의 기록을 떠나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즉 이 노래는 치희를 잃은 유리왕의 외로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우리의 추론을 발전시킨다면, 어떠한 창작 동기를 상정할 수 있겠느냐는 설문이 제기되어야 한다.(중략)

 이 '황조가'라는 노래도 거절당한 남자의 애절한 구애곡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드는 처녀에게 사랑을 호소했다가 패배의 고배를 마시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진 외로운 총각의 심정, 그것이 바로 '황조가'의 내용에 넘쳐 흐른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의 보는 바로는, 이 노래를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위서동이전'이 전하는 바 많은 제례 의식 중에서, 남녀가 배우자를 선정하는 기회에 불려진 사랑의 노래의 한 토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가도 사실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제작 연대도 확정할 수 없는 고대의 서정적인 가요의 한 토막이 후에 한문으로 번역되어, 고구려 유리왕의 설화 속에 끼여들었다는 정도로 생각해 두는 편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처 : 정병욱 저 '한국고전시가론')

circle01_blue.gif 꾀꼬리

 참새목 꾀꼬리과의 새로《삼국사기》에 암수가 의좋게 노니는 것을 읊은 <황조가>가 전하며, 고려가요 <동동>에서 4월의 전경을 노래한 대목에 ‘곳고리 새’라 하여 꾀꼬리가 등장하고 있다. 모습이 아름답고 울음소리가 맑고 다양하여 예로부터 시재(詩材) 및 화재(畵材)로 쓰였다. 관상용으로 기르기도 한다.

circle01_blue.gif 윤사월(閏四月)에 등장하는 꾀꼬리와 비교하기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민요풍의 서정시이다. 초여름의 산경(山景)을 배경으로 눈먼 처녀의 애달픔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는 꾀꼬리가 한 마리 나오고 사람이 한 명 나오는데, 꾀꼬리는 울고 눈먼 처녀는 엿듣고 있다. 그 처녀는 눈이 멀었고, 산지기의 딸이니까 가난하고, 그래서 나이가 차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은 안으로 안으로만 뭉쳐지고 피맺히게 우는 꾀꼬리 울음에서 언뜻 제 설움을 발견하게 된다. 처녀는 바깥의 아름다운 세상이 무척이나 그립다. 그러나 처녀의 이 그리움과 욕구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처녀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문설주에 기대어 그 아름다운 세계의 소리나마 엿듣고자 한다. 여기에서 꾀꼬리의 "울음-한"과 눈먼 처녀의 그것은 하나를 이루고, 거꾸로 "외딴 봉우리-외딴 집"의 외로움으로 되돌아간다. 한국 여성의 한과 설움의 결정을 맛보게 하는 작품이다.
 또한 이 시는 극도의 회화적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전반부는 커다란 화면 구조 속에서 제시되고 후반부는 눈먼 처녀의 모습을 또렷하게 확대하여 보여준다. 외딴 봉우리, 외딴 집, 눈 먼 처녀로 이어지는 공간적 이미지는 고독감과 애절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결국 <윤사월>은 간절한 삶의 충동이 펼쳐질 수 없는 불행한 상황에 처한 눈 먼 처녀의 그리움이 한가로운 산 속의 풍경과 미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함축성 있게 그려진, 토속적 서정을 탁월하게 표현한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꾀꼬리라도 이렇게 다른 것은 시인들의 개성에 연유하는 것이고, 시적 화자의 다양성에 기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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