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 2

好學 2012. 3. 25. 13:25

존 스토트-2


 

 

 복음주의의 위대한 유산 존 스토트

 
존 스토트(John Robert Walmsley Stott)는 현존하는 탁월한 설교가이자, 복음 전도자이며, 기독교 학자이고, 저술가다. 그는 20세기 후 반에 기독교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세계 복음주의 신앙의 대표적인 목회자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 복음주의 신앙 운동을 주도했으며, 세계복음주의협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를 창설하여 그 시대를 이끈 장본인이다.

 

 

성경 중심, 전도 중심, 기도 중심으로의 체질 변화

1942년 여름부터 존 스토트는 본격적으로 신학공부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1945년 캠브리지 대학에서의 수학이 끝나갈 무렵, 올소울즈 교회의 교구목사 헤럴드 스미스 목사의 청빙을 받고 그해 12월부터 부목사로 부임했다. 부목사로 부임하기 직전, 목사 시험에서 존 스토트는 수상할 만큼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올소울즈 교회 담임목사인 헤럴드 스미스는 매우 개성이 강하고 좋은 신앙심의 소유자였다. 더불어 용기와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교인들을 사랑했고, 성도들로부터도 따뜻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존 스토트는 탁월한 목회자 헤럴드 스미스 목사를 자신의 목회 멘토로 삼았다.

 

존 스토트는 안수 받은 지 이주 후 베레가의 성 베드로 교회에서 첫 교구 설교를 한다. 1956넌 중반부터는 존 스토트 스타트의 설교 중 하나를 요약해서 정기적으로 싣기 시작했다. 그는 대체로 긴 설교를 하였다. 이 무렵 그는 책을 저술하는 것을 시작했으며 출판 사역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1947년 언 쇼우 스미스는 병으로 목회를 그만두게 되었고 1950년 3월 그는 세상을 떠났다. 올 소울즈 교회는 왕실 소유였으므로 6월 12일 국왕으로부터 담임목사 승인을 받고 9월 26일 정식으로 그는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는 소울즈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헌신하였는데, 이 무렵부터 그는 복음 전도에 정력을 쏟았다. 그는 자신의 교구를 넘어 더 넓은 사역지를 내다보고 있었다.

 

1950년, 그의 친구 모리스 우드는 헤럴드 우드의 성베드로 교회에서 선교대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의 지병으로 인해 존 스토트에게 선교대회 주말모임을 인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존 스토트는 만사를 제쳐놓고 이 일에 헌신했다. 이때부터 올소울즈 교회는 복음이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다음해 11월에는 런던 시내에 있는 한 교구가 다른 교구를 대상으로 회중선교를 시도하였다.

그 무렵, 존 스토트는 빌리 그래함을 만나면서 전도에 열정을 쏟게 된다. 빌리 그래함이 주축이 된 헤링게이 전도집회 중 존 스토트는 복음주의동맹위원회 회원으로서 전도집회의 실행위원으로 섬겼다. 그는 헤링게이 집회 때 빌리 그래함에게 쏟아진 비난에 대해서 변호하는 글을 쓸 만큼 그의 사역을 후원하고 지지했다. 이처럼 존 스토트가 담임목사가 된 첫 십년 동안은 해마다 복음주의 지도자로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 소울즈 담임목사로서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올 소울즈 교회는 그의 담임기간 동안, 제도나 조직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교회로 만들어 갔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반 위에서 기도 중심, 문서 중심, 설교 중심의 교회로 체질을 변화시켰다.

 

 

대학생 선교대회 강사

존 스토트는 대학생 선교대회에 헌신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대학생 선교단체인 CICCU는 3년마다 전국 규모의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1952년에 존 스토트가 이 선교대회의 주강사가 되었다. 이 대회는 존 스토트가 앞으로의 우선순위를 대학생 선교에 두게 한 분수령이다. 존 스토트가 전 세계에 기여한 가장 큰 공헌 가운데 하나를 말하라면, 바로 대학생 선교 대회 사역이다.

존 스토트에게 이 캠브리지 선교대회는 향후 그가 참여한 수많은 학생 선교대회의 기본 틀이 되었다. 이후 그는 25년 넘게 정기적으로 영국과 북미,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곳곳에 있는 대학에 가서 선교대회 강사로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의 신학 노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것은 빌리 그래함이 주도한 케임브리지 전도집회에 참석한 것을 놓고 벌어진 논쟁이다. 당시, 영국 언론과 목회자들은 빌리 그래함을 근본주의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유로운 신학과 학문을 탐구해야 할 대학에서 편협한 근본주의자에게 강의를 하게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논쟁에서 존 스토트는 빌리 그래함을 근본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가진 근본주의의 정의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근본주의가 성경적인 모든 비평을 거부하고 기계적 영감을 주장하며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견해로 정의한다면, 빌리 그래함은 결코 근본주의자가 아님을 밝혔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이야말로 복음주의자로서 하나님의 계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권위를 인정하며, 교회에 대한 성경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자임을 강조했다. 결국 그가 말하려는 핵심은 복음주의자들이 지성을 억압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앞에 겸손히 지성을 굴복시키는 자들이라고 변호했다. 이를 볼 때 존 스토트는 복음주의자 이면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노선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탁월한 신앙 저술가

존 스토트는 1952년 그동안 자신이 수시로 야영을 즐긴 훅시즈라 불리는 한 계곡의 농가를 별장으로 사들였다. 여기에 1960년 올소울즈 교회의 한 건축업자가 존 스토트를 위해 농가의 절벽 근처 에 그만의 연구 공간을 지어주었다.

그곳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가 좋아하는 새를 관찰 할 수 있는 전원이었다. 존 스토트가 은근한 자연주의자이자, 경이로운 창조질서를 바랄 볼 줄 아는 관조자의 눈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즐겼던 자연의 삶과 훅시즈의 삶 때문이다. ‘은자의 집’으로 불리는 이 집에서 존 스토트는 1990년까지 침실 겸 서재로 사용하면서 독서와 집필에 몰두했다. 지금까지 훅시즈에서 쓴 초기의 책들 중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기독교의 기본진리』다. 이 책은 1950년대 세계 곳곳에서 열린 대학선교 대회의 설교들이 기초가 된 내용이다.

 

존 스토트는 자신보다 20년 연상인 마틴 로이드 존즈 박사와 함께 IVF와 학생 전도사역에 동료이자 동반자로 헌신했다. 복음주의적 연합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따듯한 우정과 존경을 보냈다.

 

존 스토트는『현대교회와 설교』(Between Two Worlds)란 책에서 자신의 설교론에 관한 모든 것을 피력한다. 이 책에서 그는, 설교에 대한 자신의 모든 사상과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설교에 관한 존 스토트의 신학적 기초

존 스토트는 설교자의 신학이 설교의 방법론에 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교에 대한 신학이 없이, 설교 방법에만 치중하면 설교자는 연설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잘 풀어내는 설교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와 설교자가 설교를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 따르면, 설교자가 설교에 대한 분명한 신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설교자가 왜 설교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스토트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위해 성경적인 설교를 할 수 있기 위한 다섯 가지 확신을 설교신학으로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현대 신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역사적 활동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행위뿐 아니라 설명적인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확신하지 못한 설교자라면 입을 다무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둘째, 성경에 대한 확신이다. 존 스토트는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여전히 그가 말씀하신 것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함을 말한다. 설교자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심을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가 전하는 하나님은 죽은 존재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수세기 전에 말씀하신 하나님이 오늘날에는 침묵하고 계신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또한, 교회가 말씀에 관한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존 스토트에 따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교회를 지으시고 지금도 말씀으로 교회를 유지시키시며 지도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개혁하시며 새롭게 하신다. 설교자의 임무는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넷째, 목사 직분에 대한 확신이다. 존 스토트는 목사직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영구적인 특수 직분임을 강조한다. 목사는 가르침과 설교를 통해, 주님의 성도들을 주님의 몸으로 온전히 세워가는 주님께서 세우신 특별한 직분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설교에 대한 확신이다. 존 스토트는 모든 설교자들은 해설 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해설이란 무엇인가? 본문의 내용을 끌어내어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노출시키는 것이다. 본문이 길든지 짧든지, 성경 해설자인 설교자는 가감 없이 본문의 메시지를 확실하고 명확하며 정확하고 적절하게 전달하도록 본문을 개방하라고 주문한다.

 

해설 설교는 설교자로 하여금 성경 본문으로 설교를 한정하게 하고, 정확한 성경적 설교를 하도록 성실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또한, 설교자가 본문의 의미를 벗어날 부주의와 본문의 의미를 왜곡할 함정을 줄일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존 스토트의 설교론은 해돈 로빈슨이 주장하는 강해설교와 맥을 같이한다. 해돈 로빈슨이 강해설교를 설교 형태로 보지 않고 설교철학으로 보았듯이, 존 스토트 역시 해설을 설교의 신학으로 삼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해설은 성경을 구절구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 말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잘 드러내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