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로버트 맥체인 (Robert McCheyne)

好學 2012. 1. 27. 21:10

로버트 맥체인 (Robert McCheyne, 1813-1843)

 

 

     


맥체인 목사는 1813년에 태어나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에서 수학했고,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목사로 임직되었다. 그의 첫 목회는 1839년 던디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건강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교회 방문, 성경 공부, 기도와 명상, 저술 활동 등 늘 정력적인 생활 일정을 실천해 나갔다.

 

그는 소위 '불간섭 운동'(Non-Intrusion movement : 교회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는 운동)의 일원이 되었고, 이 운동은 결국 교회분열(스코틀랜드 국교에서 1733년에 장로교회가 분리되어 나간 뒤에 다시 또 국교에서 자유교회가 분리되어 나간 사건을 말한다)로 이어져, 스코틀랜드 국교회에서 474명의 목회자들이 탈퇴하여 1843년 스코틀랜드 자유교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분열의 원인은 지나칠 정도의 교리주의, 교회 정치와 교회의 업무에 대한 국가의 간섭 때문이었다.

 

맥체인 목사는 선교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1839년에는 유대인 선교를 위해 그 상황을 직접 살펴보려고 유럽과 팔레스틴을 오랫동안 여행하기도 했다. 아테네를 방문했던 사도바울이 그 도시가 예술품으로 가득차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미신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맥체인 목사 역시 자신이 방문했던 대도시들이 세속주의와 이교주의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통탄해 하였는데, 이때 그가 느꼈던 감상들은 그의 전기(로버트 맥체인의생애 / 앤드류 보나르 / 나침반)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맥체인 목사는 1843년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친구들은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였으며, 그와 같이 찬란한 빛이 그렇게 짧게 타오르다가 꺼져 버린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야속하다고 생각한다면, 맥체인 목사는 오히려 우리들을 나무랄 것이다. 일찍이 그가, 친구의 죽음을 두고 "잃은 것이 아니라 먼저 간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는 앞서 간 것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