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박장대소拍掌大笑

대학 떨어진 고3 엄마, 가출하다

好學 2012. 1. 25. 20:58

대학 떨어진 고3 엄마, 가출하다

 

 

 

진학 실패, 엄마 잘못 아닌데 세상이 엄마를 탓하게 해 정말 미안해
벼랑에 떨어졌지만 내겐 날개가 있잖아 거지같은 입시제도와 다시 한판 붙어볼게
엄마, 얼른 돌아오세요

엄마, 나 수애. 산삼보다 귀한 고3 딸 수애요.

휴대폰 꺼놓고 어디 가 있는 거유? 배터리 떨어진 거야? 엄마가 한나절만 없어도 집안이 폭탄 맞은 것 같은데, 엄마 없이는 라면도 못 끓여먹는 아빠와 난 전쟁고아처럼 스타일 완전 구겼는데, 대체 어디 가서 안 오는 거유?

미안, 엄마. 19년 동안 금지옥엽 키운 딸이 대학에 찰떡처럼 붙지 못해 너무 미안해요. 대한민국 대학 입시전형이 3298가지나 된다는데 어떻게 한 군데도 안 붙냐 말이지. 누가 내 떡에만 참기름을 바른 거야? 얼굴도 예쁜데 대학까지 가면 전국의 고교생들이 절망할까 봐 하늘이 시샘한 건가? 캬훗!

어젯밤 아빠랑 다투는 소리 들었어요. 집에서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이 모양이 됐냐며 아빠가 살벌하게 몰아칠 때, 내가 엄마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 내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도 아닌데, 왜 다들 엄마 탓만 하는 건지. 할머니랑 고모도 문책전화 했다면서? 자기 아들 '인 서울' 했다고 문자 날린 중계동 아줌마는 웬 무개념, 뇌 없음의 극치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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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 폭풍설사 했다는 거 뻥이었어. 1교시 언어영역 시험지를 받았는데, 누가 내 머릿속을 숯덩이로 칠해놓은 듯 아무 생각 안 나는 거야. 앞뒤에선 쓱싹쓱싹 빛의 속도로 문제 푸는 소리 들려오는데, 내 눈은 자꾸 시계로만 가고 가슴은 쿵쿵 뛰고. 수리영역 100분을 내가 뭔 정신으로 견딘 건지. 백지장처럼 허옇게 질려서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열어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네. 나 좋아하는 두부뭇국에 장조림이랑 계란말이…. '엄마쭈쭈 먹던 힘까지 내서 화이팅!'이라고 쓴 쪽지는 웬 안습, 캐안습이냐고. 천하의 강수애, 눈이 퉁퉁 부어서 영어 시험지 받아드는데 시험감독이 등을 다 두드려주는 거 있지. 우이씨~.

그래도 내가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 좀 한다' 소리 들었는데. 한때 전교 10등 안에 들어서 엄마가 계모임 가서 막 자랑했잖아. 중3 때 학생회장 하면서 바람 든 게 확실해. 고딩 되니 머리 좀 컸다고 우리 교육제도의 문제점이 손금 보이듯 하는 거지. 왜 모두가 대학의 한길로 가야 하는지. 미국 사람처럼 영어 해야만, 미적분을 한자릿수 덧셈하듯 풀어야만 1등급 도장을 받을 수 있으니, 개뿔, 우리가 무슨 청정한우냐고요.

'니 성적에 잠이 오냐'며 아이들 어깨를 흔들어 깨우는 선생님, '10분 더 공부하면 남친 차종이 바뀐다'며 이 악무는 친구들을 보면 불쌍해 죽겠더라고. 명문대 가는 비법? 유치원생도 알지요.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잠은 충분히 자되, 숨 쉬듯이 공부하는 거, 숨쉬는 동안에는 공부만 하는 거. 그런데 그 입시지옥을 나 또한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더라고요. 수능 D데이가 카운트되기 시작하는데 나만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레알 국보급 벼락치기에 돌입했지. 까짓것, 디카로 찍듯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 버릴 작정이었는데, 내 두뇌용량으로는 어림도 없더라고. 천하의 빌 게이츠라도 3개월 벼락치기로는 대한민국 강철수능 뚫지 못했을 거야.



미안해요 엄마. 고3 딸 말이라면 어명 받들듯 쩔쩔매던 엄마가 바보 같다며 구박한 거, 나도 60만원짜리 수학과외 시켜달라고 대든 거, 이 성적으로 4년제 못 간다는 담임 앞에서 고개 못 들게 한 거,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한번도 성적표 보잔 말 안한 거, 우연히 발견하고도 내색 안한 거, '널 믿는다' 따위 소리 하지 않은 거, 딸내미 마지막 자존심 지켜준 거….

그래서 엄마, 나 재수해보려고요. 일생에 한 번, 숨 쉬듯이 공부하는 거 한 번 해보려고. 누가 이기나, 그 거지 같은 입시제도와 한판 붙어보려고. 갑자기 머리 돌리면 에러 나니까 과속하진 않을게요. 혈관 속에 101가지 수학공식이 유유히 흐르도록, 뼈 마디마디에 2만2000영어단어가 아롱아롱 새겨지도록, 선사시대 공룡처럼, 무소의 뿔처럼 열공해볼게요. 천길 벼랑 끝으로 떨어졌지만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 보일게요.

이게 웬 날벼락이냐고? 재수생 수발 안 해본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랬다잖아. 엄마도 인생고수로 성장할 기회 아니유. 농담농담! 엄마는 엄마 좋은 거 하면서 살아. 남주 엄마처럼 이승기 이모팬카페에도 가입하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가수 이적 오라버니처럼 내 손으로 밥해 먹으면서 공부할 자신은 없으니 도시락만 부탁해요.

공자님 왈, 제일 큰 효도가 부모님 웃게 하는 거라던데, 내년 이맘땐 꼭 엄마 얼굴에 웃음꽃 피워 드릴게요. 계모임에도 떳떳이 나가게 해 드릴게. 그러니 엄마, 빨리 돌아와요. 엄마 잘못 아니니 제발 돌아와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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