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Talmud)유태인격언

유대인 이렇게 삽니다.

好學 2012. 1. 7. 20:52

유대인 이렇게 삽니다.

 


유대인은 독특한 민족입니다.

1. 성이 없이 삽니다.
유대인은 성이 없었습니다. 구약에도 없고 신약에서 성이 없습니다. 지역이 성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성을 가지게 된 것은 약 170년 전 경으로 거슬려 올라 갑니다.

그 전에는 1대 대통령 데이비드 벤 구리온처럼 데이비드의 아들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름이 생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18세기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요세프 2세
프랑스의 나포레옹 1세


프러시아 정부가 유대인들을 등록시키려고 할 때 성이 없으니까 성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아무런 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각국 정부는 유대인들의 돈을 수탈하려고 성을 팔았습니다.

좋은 성은 비싸게 팔았고, 나쁜 성은 싸게 팔았습니다.
예를 들면 꽃 이름이나 금속 이름은 비싼 성이었습니다.

로젠타르(장미), 아이젠버그(철) 동물이름인 볼프강(늑대) 이런 성은 싼 성이었습니다.

어린아이를 낳고 이름을 지으면 회당에서 간단하게 이름짓는 예식을 가집니다.

이 때 모두가 신생아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죽은 가족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죽은 이의 영예와 추억을 가정에 이르려고 하는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어떤 가족이 몹시 아플 때 그 아픈 이의 이름을 따기도 합니다.

이는 생명이라는 뜻의 <하임>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쾌유를 기원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많은 이름은 골드 버그(황금의 산)라는 이름입니다.
개종한 남자에게는 이름에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이 들어 가고, 개종한 여자에게는 사라라는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2. 공기인간으로 삽니다.
유대인의 별명이 있습니다. <공기인간>입니다.

공기가 어느 곳에나 틈만 있으면 들어 가듯이 유대인은 돈이 생길만한 곳이면 빈 틈을 두지 않고 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 곳에서 상권을 잡아 나갔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든지 침투합니다.

유대인들이 돈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 가르쳐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부자가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돈을 벌어온 부자였습니다.

그는 집안 식구들을 모두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내 재산 전부를 현금으로 바꾸어라.

그리고 제일 비싼 모포와 침대를 준비하여라.

그리고 남은 돈은 머릿맡에 두어라.

내가 죽거든 관속에 넣어라.

모두 저 세상으로 가지고 가겠다>
집안 식구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부자는 호화스러운 침대에 누워 비싼 담뇨를 덮고 돈을 보며 만족해 하면서 죽었습니다.
집안 식구들은 그의 유해와 더불어 관속에 돈을 넣었습니다.

매장하려고 하는 데 친구가 이 소문을 듣고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수표에 싸인하였습니다. 이 수표를 넣고 현금은 내게 주십시요>
그 친구는 수표를 넣고 현금을 가지고 시신을 툭 치면서 말했습니다.
<현금과 같은 액수의 수표를 넣어 주었으니 자네도 만족할 걸세>
이것이 유대인의 돈 사상입니다.

조지 소로스
조지 소로스는 유대인입니다.

항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세계 헤지 펀드 업계의 대부로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그가 움직이면 멀리서도 그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이 말은 국제 금융계에서의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96년 1월 일본 도쿄의 한 국제 투자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 주가가 비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 한 마디가 떨어지자 폐장을 앞둔 닛케이주가가 막판 10분 동안 270포인트 이상 급등하였습니다.

1992년 영국 정부를 상대로 파운드화를 놓고 맞대결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만에 10억달러가 넘는 돈을 챙겼습니다.

이런 사실은 국제 금융계의 전설로 통하고 있습니다.
퀀텀 펀드등 1백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굴리며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명성이 높습니다.

이익이 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는 그에겐 <20세기의 금융의 연금술사>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세기의 투기꾼>이라는 비난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돈만 아는 천박한 투기꾼은 분명 아닙니다.

엄청난 부를 쥐고 있지만 지금도 맨해튼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 정도로 검소합니다.

그 대신 조국 헝가리등 가난한 나라에 엄청난 규모의 자선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무섭게 아끼며 놀랍게 쓰고 있습니다.

부자나라에서 돈을 벌어 가난한 나라에 쓴다는 생각이 조지 소로스 마음속에 가득차 있습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직후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자시절인

1998년 1월 3일 새해 첫 공식행사로 조지 소로스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 알려졌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한국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3. 78대 22 법칙으로 삽니다.
유대인 상술의 기본 법칙은 78;22 법칙입니다.

정사각형속에 원을 그립니다.

그러면 그 원은 정사각형 면적의 78%입니다.
공기가 질소 78에 산소 22로 이루워져 있습니다.

이는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법칙속에 사람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대자연의 법칙입니다.
질소 60에 산소 40 비율이면 사람은 이 땅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64점이면 합격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78%의 78%가 바로 64이기 때문입니다.

4. 전역사를 삽니다.
유대인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같이 살아 갑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시간입니다.

동물은 생일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내일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생존하고 사람은 살아갑니다.

그런데 고기는 낚시에 걸릴 뻔 하고 또 뭅니다.

기억력이 3초입니다.

그래서 돌아 다니면서 언제나 새 길을 걸어가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제를 알고 내일을 설계합니다.

특별이 유대인은 언제나 과거 현재 미래 전 역사를 같이 살아 갑니다.


유월절을 예를 들어 봅니다.
유월절은 3500년 전 출애급을 되새깁니다.

소금물을 떠놓고 조상들이 애급에서 흘렸던 눈물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흘렸던 땀방울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넜던 바닷물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유월절 상에는 반드시 엘리야 잔이 놓여 집니다.

엘리야가 오면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을 바라며 엘리야가 오면 마시라고 엘리야 잔을 놓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 둡니다. 끝날 때에는 문을 닫으며 말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오시겠지요>
현재에 살면서 과거 미래를 같이 삽니다.
초막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절기가 그렇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다짐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삶입니다.

5. 민족정신으로 삽니다.
유대인은 민족을 먼저 생각합니다. 고리론은 유대인의 핵심입니다.

한 명만 끊어져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아랍인은 나라를 떠나고 유대인은 나라로 돌아 옵니다.
맛사다 사건은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유대인과 맛사다
맛사다는 사해바다에서 4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유대인은 결코 맛사다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거의 직사각형으로 된 천연 요새입니다.

지중해를 기준으로 40 m입니다.

해발로는 무려 434 m입니다.

둘레가 1300m입니다.
지금은 관광객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헤롯 궁전이 있습니다.

물이 없는 곳이라 비오면 물을 받아 사용하였기에 물탱크가 가장 핵심입니다.


맛사다 사건 이야기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38-100)가 쓴

<유대인 전쟁 이야기> 제7권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70년 예루살렘 성은 로마 장군 베스페시안의 후계자인 그의 아들 타이터스 장군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해 8월 타이터스는 선포하였습니다.
<로마에 굴복하지 않고 로마에 저항하는 유대인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멸절시킨다는 것을 역사속에서 뚜렷하게 알려 줄 것이다>
그러나 960명을 끝까지 로마에 항거하였습니다.
960명을 지휘하던 장군 야르의 아들 엘르에셀은 맛사다로 이 무리들을 데리고 피하였습니다.

이 맛사다 저항군을 시카리(Sicarii)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군에게 대항하는 열심당원이라는 말입니다.
요세프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카리는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기보다는 로마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유대인은 동족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들은 민족 투사였지만 이들이 로마에 반항하였기에 수없이 많은 유대인들이 더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민족을 사랑하기 보다는 민족에게 더 피해를 주었다고 요세프스는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타이터스는 맛사다 점령을 로마의 자존심으로 여겼습니다.

부하 실바 장군을 시켜서 맛사다를 점령하게 하였습니다.

실바 장군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맛사다 점령을 시도하였지만 특수한 지형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을 포위하고 모든 보급로를 차단하였습니다.

그 때 포위하였던 담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둘레와 같습니다.
식량이 떨어지면 항복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맛사다 정상에는 이미 많은 식량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엘리에셀은 맛사다 정상에서 돌로 투석기를 만들어 지칠 줄 모르고 저항하였습니다.

1년 6개월을 기다려도 유대인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항복은커녕 점점 더 거세게 항거하였습니다.

로마 장권 실바는 정상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돌과 흙으로 토성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공격용 장비로 개발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위에서 투석기로 밑에서 공사하는 로마 군인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과 위에서 저항하는 유대인 친척들을 잡아다가 밑에서 공사를 시켰습니다.

공격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민족과 친척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인들이 만들어 놓은 장비들을 계속 공격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토성은 꼭대기까지 올라 왔습니다.

더 이상 견딜 방법이 없었습니다.

최후가 다가 옴을 서서히 직감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중요한 측근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나의 고결한 동지들이여!

우리는 오래 전부터 결코 로마인들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소.

우리는 참되시고 공의로우시고 만민의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더럽혀지기 전에 죽어야 하오.

그리고 우리 자녀들도 로마인의 노예가 되기 전에 죽여야 하오. .....

로마인들은 우리 몸이나 우리 재산에 손을 대지 못 하면 슬퍼할 것이요.

그러나 식량에는 손을 대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하오.

그러면 우리가 자살한 것은 식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초지일관 살아서 노예가 되느니

죽어서 자유인이 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한 우리의 열망을 과실할 수 있을 것이요>
(Josephus, War of Jews. 1993. VII 647 p)

그러나 의외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들은 죽기를 무서워 하였습니다.

동지들과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죽기를 두려워 하였습니다.
다음 날 엘리에셀은 또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알았소.

덕도 없고 용기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 하기는 마찬가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주신 율법이 무엇이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준 진리가 무엇인가요?

인간에게 재난은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비겁하게t 행동하면 온 인류가 우리의 율법을 우습게 볼 것이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율법을 욕되게 하는 것은 모욕이요. 수치요.

우리를 수중에 넣고 기뻐할 로마인들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로마 군인들에게 털끝만한 기쁨도 남겨 놓지 말아야 하오.

오히려 로마 군이 우리의 굳은 결의에 경탄을 금치 못 하도록 하여야 하오.

로마 군이 들어와서 경탄을 금치 못 하게 만들어 놓아 하오.

로마 군이 입을 다물지 못 하게 만들어야 하오>

마침내 열심당원들은 엘리에셀이 말한 대로 로마의 살아서 노예가 되기보다는 죽어서 자유인이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프스는 최후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여 놓고 있습니다.
우선 사형 집행자 10명을 제비뽑기로 골라 냈습니다.

이들이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가족들 하나 하나 키스를 하고 죽였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눕혀 놓고 죽였습니다.

10명만 남았습니다.

10명중에 한 명을 제비로 뽑아 사형집행자를 정하였습니다.
그가 모두를 죽이고 자신은 자살하였습니다.

 

73년 8월이었습니다.

맛사다로 피신하지 3년만이었습니다.

로마군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성벽을 공격하였습니다.

저항이 없었습니다.

실바 장군이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960명 시체만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은 실전에서 이길 때만이 그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실바 장군은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용기에 그저 경탄할 뿐이다>


실바 장군은 죽은 엘리에셀 지도자 앞에서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