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3.

好學 2011. 12. 17. 06:06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3.

 

 

 8. 종교개혁의 조언자


 루터 역시 아내 케테의 말에 묵묵히 귀기울일 줄 알았다. 한 번은 한 친구가 루터에게 결혼식 축제를 집례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루터는 정중히 이 부탁을 아내 케테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거절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나 그리고 나의 케테도 그것을 허락할 수가 없구려. ... 나는 너의 부부 그리고 나의 부부에게도 하나의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구려. 내 생각에는 자네가 프라이부르그(Freiburg)에서 잔치를 행하든지 아니면 가까운 친지들만을 불러서 두 세 식탁 정도로 소박하게 점심 먹기 전 간식 정도로 준비하는게 어떨는지 하네.” 우리는 루터가 이 결정을 할 때 아내 케테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카타리나는 무거운 신학적 물음에도 많은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였는데, 예를 들어 1529년의 「마부르그 종교회의」(Marburger Religionsgespräch)에서 루터가 어떻게 성찬론에 관하여 토론을 이끌어 갈 것인지를 생각할 때, 그녀는 성경을 읽을 것을 제안하였다. 


 물론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어떤 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부부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이 되지만, 어쨌든 당시의 급박한 위기적 상황과 더불어 당시 종교개혁자 루터의 역사적 무게를 기억할 때 남편 루터를 위한 케테의 야무진 역할은 특별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내 케테를 향하여 루터는, “나는 케테를 사랑한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나는 내 자신보다도 그녀를 더 사랑한다. 만약 그녀가 아이들과 더불어 죽어야만 한다면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이다”(TR 2, 1563)라고 아낌없는 사랑을 토로하였다. 


 그녀를 향한 루터의 각별한 사랑은 비단 여기서만 제시되는 것은 아니었다. “결혼생활에서 누리는 은혜와 평강은 분명 하나의 선물로서, 복음의 인식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다. ... 사랑하는 케테,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좋은 남자를 소유하고 있소. 당신은 진정 여자 황제올시다. 그것을 아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구려!”(TR 1,1110) 부부애와 그리스도의 사랑에로의 인식은 가까이 있는데 루터에게 있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하였다.

루터는 로마서와 함께 갈라디아서를 종교개혁를 위한 중요한 두 영적 무기로 생각하였는데, 갈라디아서 주석을 쓰면서 루터는 “내가 진실로 신뢰하는 사랑하는 케테 폰 보라”를 일컫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각별한 루터의 부부애는 자신의 유언(1542년)에서도 잘 나타나 있는데, 그녀를 걱정할 뿐 아니라, 다시 한 번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녀는 경건하고 신실하며 부군된 남편 나를 언제나 한결같이 자비와 품위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사랑했으며, 본인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섯 자녀들을 낳았으며, 장성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루터는 그녀를 향한 진심 어린 감사도 잊지않았다(BR 9, 572f.).

 9.평화로운 가정
 루터는 가정의 평화를 참으로 귀하게 여겼다. “우리의 몸과 생활, 아내와 자식, 집과 정원을 위시한 모든 지체들인 손, 발, 눈 그리고 모든 건강과 자유가 평화에 의해서 주어진다. 이 평화의 울타리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자리를 잡는다. 평화가 있는 곳은 거의 천국이 이뤄지는 곳이다. 평화가 있을 때, 한 입의 빵 조각은 마치 설탕처럼 달 것이며, 한 모금의 물도 저 유명한 이태리 산(産) 말바의 포도주처럼 달콤한 맛을 낼 것이다.”. M.A. Kleeberg und G. Lemme(Hrsg.), op. cit., 194.


 종교개혁자 루터에게 있어서 이처럼 귀하게 느껴지는 평화는 카톨릭 교회를 위시하여 대외적으로 닥쳐오는 시련과 어려움으로 여지없이 깨어지곤 하였고,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그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의 힘든 생애에 있어서 포근한 가정이 가져다주는 사랑과 평화는 너무도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루터는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온 가족이 하나님께 함께 찬송함으로 극복하며, 큰 위로를 받았다. 그에게 있어서 찬송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루터는 찬송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모른다. “마치 잘못된 신앙을 가진 모든 자들이 그렇듯이 누구든지 찬송을 함부로 무시하는 자들에게 나는 동의를 할 수 없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능이며,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며 사람들의 심령을 기쁘게 만든다. 게다가 음악은 모든 분노, 불순, 거만 그리고 다른 무거운 짐들을 잊게 한다. 나는 신학 다음 자리에 음악을 놓으며, 최고의 영예를 부여하고 싶다.” 음악은 루터에게 있어서 큰 위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은혜와 영적 고양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최고의 은사이다. 그러한 음악은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영적 힘이 되었으며, 감동을 주어 말씀을 설교함에 있어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Ibid.

 여기서 우리는 루터의 찬송으로 오늘 날 우리가 즐거이 부르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384장)를 기억하게 되는데, 가사를 음미할 때 참으로 핍박과 시련으로 위기 가운데 불렀던 찬송임을 실감하게 된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과연 루터에게 있어서 찬송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임재를 실감하는 능력 있는 또 다른 기도였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루터는 또한 카타리나를 포함하여 가정의 모든 다섯 자녀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기타의 전신인 라오테를 연주하면서 하나님께 즐거운 찬송의 시간을 수시로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별히 1866년 독일의 화가 구스타브 아돌프 슈팡엔베르그(G.A. Spangenberg)는 이러한 루터의 가정을 연상하며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 그림에서 인상깊은 한 대목은 루터의 동료 멜랑히톤이 함께 참석하여 루터 가정의 아름다운 합창을 흐믓한 얼굴로 청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찬송의 은혜 가운데 젖어 있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가정은 참으로 바람직한 개신교 성직자 가정의 아름다운 모델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그림 참조).

 10. 하나님이 주신 기업들
 “사랑하는 딸아, 천국에 너의 또 다른 아버지가 계시단다. 거기로 네가 옮겨가는 거란다.” 이 말은 1542년 큰 딸 마그달레나가 14살의 다 큰 나이로 죽어가고 있을 때 아버지 루터가 최후의 순간에 그녀에게 들려준 가슴 찡한 위로의 메시지였다. 루터는 이 마그달레나를 잃었을 때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모른다. 또한 그 딸의 묘비에 루터는 친히, “여기에 루터 목사의 사랑스런 딸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안식 가운데 잠들다. 나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마땅히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영원한 생명과 기업을 얻었노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영생의 확고한 소망 가운데서 딸을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보내는 아버지 루터의 다른 면을 확인하게 된다. 카타리나 역시 이 사랑하는 딸을 장례 치르는 순간에 깊은 슬픔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어, “사랑하는 딸아, 너는 다시 살아 날거야. 그리고 별처럼 빛날 거야. 아니 태양처럼 빛날거야. 물론 이는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지만, 그래도 이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구나!”라고 절규하였다. 


 루터와 카타리나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로는 아들 셋, 그리고 딸 셋으로 조화를 이루었으나, 그 중 일년도 채 안되어 딸 엘리자베트를 1528년 잃고 난 후, 15년만에 너무도 사랑스런 큰 딸 마그달레나를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보낸 것이다. 이제 남은 루터의 자녀들로는 아들 셋, 딸 하나였는데, 과연 그들은 어떠한 성장과정이 있었을까? 아이들과 아내 카타리나에 대한 사사로운 정보들을 우리는 루터의 담화록(Tischreden)과 편지들에서 거의 대부분 얻고 있다.

카타리나가 임신하여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1526년에 얻은 할아버지 이름 따라 부르는 첫 아들 한스가 걸음마를 어느 정도 빨리 하는지, 그가 이제는 제법 중얼거리고 말을 따라하며,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를 루터는 편지에서 흥겹게 이야기한다. 한 편지에서 루터는 어린 아들 한스의 “모든 성가신 일들마저도 우리에게는 기쁨입니다. ... 이는 축복된 부부에게 내리시는 열매이며, 행복입니다만, 교황에게는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지 않지요”라고 행복한 개신교 첫 번째 목사가정을 서술하였다. 아들 한스가 거의 열 한 살이 되어가고 있을 때 루터는 친구에게가 아니고 한스에게 라틴어로 쓴 편지를 보냈다. 바쁜 중에서도 자랑스런 아들 한스에게 아버지 루터는 학문의 언어인 라틴어로 격려와 함께 기대 섞인 편지를 보낸 것임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 살도 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딸 엘리자베트를 생각하면서 루터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사랑하는 딸 엘리자베트가 죽었다네. 나는 얼마나 슬픈지 말로 형용할 수 없네. 마치 슬픔에 빠진 한 여인의 모습이라네. 자식의 죽음이 이토록 아빠의 마음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지. 이전에 나는 이러한 상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다네”라고 토로하고 있다. 


 1531년 11월 9일 카타리나는 둘째 아들 마틴을 출산하였다. 이 마틴을 루터는 “가장 사랑하는 보물”(mein liebster Schatz)이라고 묘사하곤 하였다. 또한 카타리나가 마틴을 쓰다듬으면서 하는 서로간에 사랑넘치는 대화를 보면서, 루터는 “나의 아내 케테가 사랑스런 아들 마틴에게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하나님은 나에게 자애로운 대화를 하실 것이 분명하다”고 행복한 소망을 표출하였다.

 이러는 중에서도 루터는 늘 카톨릭과의 긴장어린 관계 가운데 있는 자신의 현실을 잊지 않았는데, 아들 마틴이야말로 대적자들인 교황, 주교들, 게오르그 공작, 황제 페르디난트 그리고 모든 사탄들을 물리치는 진리에 충실한 종이 되어 그 어느 때고 그러한 이들에게 “진정 어린 아이와 같이 되라!”고 외치길 원하였다. 루터는 또한 이 마틴이 출생하였을 때, “천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주교들에게도 나에게 베푸신 이 큰 복을 주신 적이 없었다”고 감격해 마지 않았다. 


 1533년 1월 29일 막네 아들이 태어났을 때, 카타리나와 루터는 사도 바울과 같은 인물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바울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 케테를 통하여 이 밤에 선물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교황과 터어키인들의 새로운 대적자로 양육시키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이 저녁이 지나기 전에 한 시라도 빨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한 복판에서 태어난 루터의 아이들은 종교개혁자 아버지 루터에게 있어서 확실한 동역자였던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인식하게 된다.


 1534년 12월 17일 카타리나는 막네 마가레타를 여섯 째로 출산하였다. 할머니의 이름을 따라 그녀는 마가레타로 불리었다. 루터는 마가레타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서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음악성을 발견하였고 가정 음악회에도 종종 참여하게 하였다. 여섯 아이를 낳았지만 카타리나는 건강하였다. 이러한 가정의 행복을 만끽하면서 루터는 늘 사랑하는 아내 케테와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는데, 독일어뿐 아니라, 때로는 라틴어로 대화를 하였으며, 서로가 멀리 떠나 있을 때는 독일어와 라틴어를 함께 쓰는 편지로 부부애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