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時事/[교회소식]본이 되는 교회

<19> 서울 해오름교회

好學 2011. 12. 14. 20:30

<19> 서울 해오름교회

 

 

서 울 관악구 행운동 해오름교회는 1970년대 최낙중 목사를 비롯한 청년 네 명이 세운 천막교회에서 출발했다. 최 목사는 “청년은 어른과 아이를 잇는 허리 같은 역할을 한다. 시대적 사명 의식을 띤 젊은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교회의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행운동 해오름교회 청년회 젊은이들이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에 참여하고 있다. 1970년대 청년들의 힘으로 시작한 해오름교회는 전국 젊은 교인들의 메카가 되고 있다. 해오름교회 제공

 

1972년 6월 22일. 한여름을 코앞에 둔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서울 봉천동(지금의 관악구 행운동)의 한 공터에서 27세의 청년 목회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천막을 치고 있었다. 세 명의 젊은이가 더 있었다. 85번 버스 차장 아가씨, 라면 공장에 다니는 처녀, 디스크에 걸린 청년까지 네 명이 세운 천막 교회가 관악교회의 시작이었다.

천막을 치고 예배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을까. 어느 날 땅주인이 나타났다. “내 땅에서 뭐하는 거요?” 교회는 곡절 끝에 두 곳의 술집 사이 아슬아슬하게 판자로 얽은 작은 가건물을 구해 이사했다. 낮 예배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밤이었다. 왼쪽 술집에선 ‘목포의 눈물’, 오른쪽 술집에선 ‘굳세어라 금순아’가 들려오는 통에 부르던 찬송가 노랫말이 헷갈릴 지경이었다. 당시 교인은 불과 8명. 취객들 목소리에 압도돼 찬송도 설교도 포기한 목회자는 기도를 시작했다. “큰 목소리로 기도합시다. 주여! 주여!” 벌컥 문이 열리며 취객 한 명이 들이닥쳤다. “뭣이 어째? 죽여? 누굴 죽여!” ‘주여’와 ‘죽여’를 혼동한 그가 집기를 내던지기 시작했다. 교회는 풍비박산이 났다. 청년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 일곱 번 이사를 다니며 교회를 지켜갔다.

이렇게 이어온 관악교회는 2008년 본당 건물을 새로 짓고 해오름교회(예장 백석교단)로 개명했다. 72년 천막교회를 손수 짓고 39년을 지킨 최낙중 담임목사(66)는 “교회당에 불이 났을 때도 청년들이 끝까지 남아 교회를 살려냈다”고 말했다. 교회와 인연이 닿은 한 젊은 여성은 오스트리아에서 7년간 간호사로 일하며 번 돈을 보내오기도 했다.

지역 청년들의 힘으로 어렵게 출발한 해오름교회는 이제 전국의 젊은 교인들이 매주 모여드는 ‘청년 명소’가 됐다. ‘한국 CCM계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개신교 문화사역 공동체 ‘마커스’가 이곳에서 매주 목요집회를 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008년, 최 목사와 교인들은 마커스에 3000석 규모의 본당 공간을 무료로 빌려주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집회에 서울 각지에서 600명씩 몰려들더니 3년이 지난 요즘엔 매주 4000여 명이 운집한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집회 시작 세 시간 전인 오후 4시부터 청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은 TV 화면으로 무대를 보며 함께 찬양을 한다. 최 목사는 “청년의 힘으로 시작한 교회인 만큼 청년들의 열정을 보고 넘어갈 수 없어 무상으로 대여해 주게 됐다”며 “청년은 어른과 아이의 중간 역할을 하는 허리 같은 존재”라고 했다. “아무리 체격 조건이 좋고 훌륭한 테크닉을 가진 운동선수라도 허리가 유연하고 강하지 못하면 실력을 발휘할 수 없죠.”

청년들의 열기가 교회당을 채우자 해오름교회 자체 청년회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선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뭉치자 나눔이 시작됐다. 청년회는 일요일마다 모여 김치며 오징어채 등의 밑반찬을 만들었고 근처 복지관과 봉천동 일대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가정에 배달했다. 소아암 아동 돕기 바자나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봉사 활동도 청년들이 앞장섰다. 교회에서 청년회 사목을 담당하는 홍창의 목사는 “최근에는 청년들이 교회 전체 출석자 2000여 명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 시대적 사명을 갖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려는 열기도 뜨겁다”고 말했다.

교회는 해외에서 청년들의 ‘둥지’를 일구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남미의 파라과이에선 1995년부터 17년째 유치원과 초·중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캄보디아엔 최근 두 번에 걸쳐 젊은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최 목사는 한국교회 본질회복운동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교회는 편한 길이 아닌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왕관도 없죠. 그때그때 변하는 ‘제도’를 두고 이전투구하지 말고 다시 예수 닮아가기를 시작해야죠.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야욕을 버리고, ‘너를 위해 내가 죽는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에 싸움 깃들 틈이 있겠습니까.”
   

▼ 최낙중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장종현 목사 ▼

신학대학 만들어 ‘교육 소명’ 최선 다해

장종현 목사(62·백석학원 설립자)를 처음 본 건 1979년 교단 모임에서였다. 그는 정직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예의 바른 이였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안에 대단한 추진력을 품고 있었다. 백석교단을 설립한 데 이어 1994년 백석학원을 세운 그는 10여 년 만에 이를 4개 대학, 7개 대학원을 거느린 큰 학교로 키워냈다.

경영의 천재이자 시대적 소명 의식이 분명한 목회자다. 백석대는 현재 세계적인 신학대로 성장하고 있다. 규모만 큰 것이 아니다. 장 목사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필사시키고 교수진에게 “은혜를 안 받은 이가 있으면 40일 동안 금식하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지식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연배는 어리지만 내가 늘 존경하며 배우고자 하는 큰 목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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