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서울 고척교회
서울 구로구 고척교회는 57년간 한곳에 있으면서 선교와 사회봉사를 통해 지역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지난해 1월 시작한 푸드뱅크는 음식을 통한 사랑의 나눔 운동이다.
자원봉사자들이 푸드뱅크에 사용할 음식들을 도시락 용기에 담고 있다. 고척교회 제공
매주 화, 목요일이면 서울 구로구 작은 교회의 목회자 20여 명이 고척2동 고척교회(예장 통합 교단)에 모인다. 교회 한쪽에는 위생적으로 작은 팩에 담은 다양한 음식이 사람들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차량으로 옮겨진 이 음식들은 구로구 내의 홀몸노인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전달된다.
고척교회의 ‘희망 푸드뱅크(Food Bank)’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푸드뱅크는 음식 업체나 대형마트에서 팔다 남은 식품을 무상으로 기부 받아 굶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주일(일요일)이면 각종 음식과 옷 등을 진열한 장(場)이 서더군요. 인근 마트나 음식점에서 기부 받은 물건인데 사람들이 부담 없이 가져갔습니다. 바로 ‘이거다’ 하며 무릎을 쳤죠.”
조재호 담임목사(56)의 말이다. 오래 벼르다 지난해 1월 푸드뱅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인근 가산디지털단지 내에 있는 뷔페와 음식 유통업체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음식을 추가로 만들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별도의 일손이 들어간다며 거절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그래서 푸드뱅크는 남아서 버려지는 음식을 가져가는 것이고, 혹시 생길지 모를 위생사고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10여 곳이 푸드뱅크 후원 기업으로 등록돼 있다. 교회가 반찬통을 보내면 후원업체는 남은 음식을 채운다. 이 음식들을 냉동차량으로 가져온 뒤 영양사의 감독 하에 재조리와 위생 포장 등의 과정을 거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의 작은 교회 20곳이 푸드뱅크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작은 교회들이 지역 사정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뤄진 일이다. 이 때문에 푸드뱅크는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면서 교회끼리도 서로 돕는 교회연합사업이 됐다. 한 주에 1000여 개의 도시락을 만들어 320여 가정에 전달하고 있다. 기부 업체의 경우 법률에 따라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희망 푸드뱅크를 후원하고 있다는 인증서도 받는다.
“한쪽은 음식이 남아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애를 먹고, 다른 쪽은 음식이 부족해 고통받습니다. 푸드뱅크를 통해 제때에 음식물을 받아 위생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조 목사)
이 교회는 1954년 설립된 뒤 줄곧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네에서 사람들의 애환을 지켜본 ‘느티나무’를 닮았다. 개신교 단체에서 선정하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상’을 받는 등 지역밀착형 교회의 모범적 사례로도 꼽힌다.
이렇게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고척교회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홀몸노인 생활비 지원과 보육원,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사역, 사랑의 간식, 사랑의 식탁, 경로대학, 아기학교, 문화교실, 취미교실, 병원봉사, 결식학생 급식 지원, 방과후교실, 나눔가게….
신자 1004명이 헌금과 기도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1004운동’도 있다. 이 운동은 기존 봉사와는 별도로 북한 주민 개안수술과 난치성 환자 등을 돕기 위해 부정기적으로 진행한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총 9차례 진행했다. 한 달 전부터 후원 대상을 위한 기도문을 작성해 교회 벽면에 붙이고 기도하면서 헌금에 동참한다. 이 교회는 이제 비좁아져 주차장 공간에 새 건물을 건축하고 있다. 담장 없는 교회를 만들어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센터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복음과 봉사에 대해서도 교회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다. 봉사가 복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복음은 편협하지 않습니다. 복음과 봉사 중 무엇이 우선인가를 따지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언인지를 봐야 합니다. 푸드뱅크는 돕는 곳이나 도움을 받는 사람들 모두 이익이 됩니다. 그런 만큼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목회를 ‘선한 유통업’이라고도 하죠.(웃음)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이 중간에서 잘 소통되도록 도와야죠.”
▼ 조재호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김제건 목사 ▼
“지표수가 아닌 지하수 되라”는 말씀 가슴에 새겨
고척교회 원로목사인 김제건 목사(84)는 지금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다. 후임인 내가 이 교회를 더 잘 섬기도록, 이 교회가 지역 사회에 더 유익한 공동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조기 은퇴했다. 19년 전 일이다. 김 목사는 인내와 희생의 목자상을 보여주었는데 마지막까지 한 번 더 희생한 것이다. 그는 6·25전쟁 때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왔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어려운 시절 목사로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건강한 교회를 일구었다. 꾸밈이 없는 순박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자함은 오랜 세월 고난과 인내의 목회 경륜에서 배어 나오는 인품이다. 이 시대에 지표수가 아니라 땅속을 면면히 흐르는 지하수와 같은 교회가 필요하다고 말하던 그분의 교훈이 새롭다.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건강한 교회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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