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서울 정릉교회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정릉교회는 지역친화적 봉사 공동체로서 70년 가깝게 활동하며 해외로까지 나눔의 손길을 뻗어왔다. 교회는 평생대학 운영과 탈북자 지원을 계속하면서 개신교 대안학교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교회 강당에서 평생대학 입학식이 진행되고 있다. 노인들은 이곳에서 섬김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정릉교회 제공
서울 성북구 정릉교회(예장 통합 교단)는 아리랑고개와 내부순환로 등을 끼고 조금은 비좁게 들어서 있다. 1942년 설립된 이 교회의 ‘품’은 넓다. 연고지역을 바투 껴안으면서도 온정의 손길을 나라 밖까지 뻗치고 있었다.
이 교회는 정릉 지역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1975년 국내 교회에서는 최초로 경로대학을 개교했다. 경제발전기에 이미 고령화시대를 예견하고 대비했다. 지역사회에 산재한 저소득층과 홀몸노인들을 대상으로 서예와 등산, 무용 등을 교육하고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신자 비신자를 막론하고 입학생으로 받아들였다.
박은호 담임목사(51)는 “혜택을 지역사회가 고루 누려야 한다는 판단 아래 정릉교회 신자는 등록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후 많은 교회와 지자체가 경로대학을 벤치마킹해 비슷한 포맷의 경로대학을 앞다퉈 개설했다. 대학이라지만 입학금 2만 원만 내면 1년간 수업료가 무료다. 졸업한 뒤에도 동문 자격으로 계속해 수강할 수 있다. 평균 250여 명이 목요일마다 이곳에 등교한다.
37년째 이어온 정릉교회 경로대학은 또 한 발짝 앞서가기로 했다. 올해 ‘평생대학’으로 이름을 고친 것. 박 목사는 “예전의 경로사상을 넘어 노인도 이제 섬김의 대상만이 아니라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학생들은 나이가 많다고 대접만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봉사와 장학활동에 나서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무연고 묘 관리, 지역사회의 다른 노인들을 돌보는 활동도 벌인다. 노인들이 용돈을 절약해 마련한 장학기금으로 매년 10명의 저소득층 대학생 자녀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이 교회는 지역 쉼터에 있는 약물중독 재활자들을 위한 상담·치료 봉사와 호스피스 사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몇 년 전에는 아버지와 아이 셋이 함께 길에서 생활하는 ‘가족 노숙인’의 사연을 듣고 주택 지원과 일자리 주선을 도맡기도 했다.
교회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장보다는 지역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주력하고 있지만 ‘바깥’을 향한 봉사의 세계화에 나서고 있다.
교회는 현재 중국 지린(吉林) 성을 거점으로 탈북자와 조선족 자녀들을 돕고 있다. 도서 보급과 책 읽기 운동, 장학금 지원 등이 중심이다. 200여 명의 중국 내 탈북자 아이에게 매달 식비와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1년의 절반을 지린 성에서 보내며 10년째 현지 도서보급 활동을 지원하는 우주흡 권사(65)는 “현지에 가족이 있지만 봉사활동은 생각지 못했는데 정릉교회를 통해 활동에 나서게 됐다”며 “북한 접경지대에서 탈북자와 조선족 아이들을 대한다는 생각에 처음엔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회는 필리핀 마닐라 외곽에 있는 빈민촌 지역 아이들과도 자매결연을 하고 매달 지원금을 보내고 있다.
이 교회는 향후 대안학교를 건립해 개신교정신을 갖춘 봉사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박 목사는 “대안학교 형태로 초중고교 과정의 소규모 개신교 학교를 이르면 5년 뒤에 세워 봉사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많은 교회가 대형화만 지향하며 지역에서의 영향력과 본질적 사명을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에 등장하는 겨자나무는 아름드리가 아닙니다. 새 한 마리가 깃들여도 흔들릴 정도로 연약하지만 어떤 새도 마다하지 않는 따뜻한 나무죠.”
▼박은호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최용재 목사▼
마을 주민들의 대변자… 나를 돌아보게 해
어찌 보면 나도 서울의 기득권 목회자 중 하나다. 그래서 가슴 한곳에는 진짜 어려운 곳에서 섬기는 목회자들에게 늘 빚이 있다. 경기 연천군 간파리 교회 최용재 목사(38)도 그런 면에서 볼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젊은 목회자다. 5년 전 이 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마을의 창고를 빌려 개조한 초라한 교회는 ‘누가 봐도 웃기는 외형’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선한 영향력과 깊은 생명력이 분출되는 것을 느꼈다. 마을 분교의 폐교를 막기 위해 출산을 독려하며 스스로도 4남매의 아버지가 됐다. 지역 주민의 삶의 대변자가 된 최 목사는 교인 30명에 불과한 이 농촌 마을을 떠나지 않고 11년째 목회를 하고 있다. 간파리 교회는 어쩌면 서울의 큰 교회보다도 그 존재가치가 더욱 확실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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